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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생에서의 야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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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플루토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1건 조회 397회 작성일 19-05-13 15:37

본문

장독대에 숨겨둔 소주를 몰래 찾아서 반병 쯤 마시고 있는데

남편이 압수를 해갔다. ​원통할만큼 아쉬운 마음을 새우잠에

접어 넣고 잠들면 뒷날이 편하다. 남편은 텐트를 걷을때가 된

것 같다고 하지만 나는 텐트속에서 잠이 잘 온다. 추위나 더위

때문이 아니라 짐만 꾸리면 어디라도 떠날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좋다. 사람들은 정처가 없으면 불안하다는데 나는

정주가 불안하다. 잠을 청하며 누워 있으면 내 등짝의 숨구멍

마다 실뿌리가 뻗어내릴 것 같다. 텐트 안에 누워 있으면

천정과 벽으로 포위된 방 안도 들판이나 산속 같다. 책을 읽고

있으면 남편이 끓여다 주는 커피도 돌부리를 공구고 바람 막이를

둘러, 바람이 콧구멍 벌렁거리며 이미 냄새 맡은 커피 같다.​

밤을 먹으나 잠을 자나, 몇 일 놀러온듯 기분이 홀가분해진다.

그래, 이곳은 일부러 모기에게 뜯기고, 등 밑에 돌부리들이 박이고,

바람에 가스 불꽃이 펄럭이는 것을 즐기러 온 곳이다. 몇 일 그러다

마을 버스를 타고 돌아 갈 것이다. 사람을 용서하기 힘든 것은

언제까지나 용서할 시간이 남아 있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곧

털고 일어날 장소라면 머물수 있을 때 용서하고, 용서 받아야 하는 것이다.

사람과 사건과 상황을 바라보는 눈이 달라진다. 두꺼운 콘크리트 천정과

벽과 인간의 장막이 죽음을 가린다. 그래서 사람들은 언제까지나 이곳에서

살아갈 것이라는 가정하에 생각하고 느끼고 판단한다. 죽음은 불길한 것이라며

돈을 들이고 애를 쓰서 외면을 한다. 죽음은 불길한 것이 아니라 당연한 것이다.

우리가 삶에서 맞는 모든 일들 중 하나다. 텐트 안에서 잠을 자면, 이 삶이

곧 걷을 수 있는 텐트처럼 보인다. 앞으로는 먹고 마시는, 혹은 깔고 덮는 모든 것을

야외용으로 장만할 참이다.  이런 괴짜 같은 마누라랑 산다고 그 사람도 참 욕본다.

이는 이 생에 야영을 하고 있는 것이다.

압생트라는 단어를 들으면 술이 당긴다. 소주 보다는 좀 더 독할 것 같은 이름이다.

그의 화폭은 늘 숙취에 쩔어 있는 것 같다.  술은 혼자 마시는 것이 좋다. 여행도 그렇다.

외로움은 참 깨끗하고 고급진 분위기다. 아무말 없이 술만 마셔도 지루하지 않은 친구다.

외로움과 이간 시키는 친구랑은 절교하는 것이 좋다. 필요하지 않다. 내게서 술을

압수해가는 그 친구만 있으면 된다. 그도 외로움이라는 친구를 좋아한다. 삼각관계다.

그에게 쏠리면 외로움이 질투하고, 외로움에 쏠리면 그가 질투한다.  그와 단 둘이 술이라도

한 잔 할라치면 외로움이 토라져서 다음날 아침까지 등을 보이고 눕는다.

외로움아! 그리 오래 있지 않을거다. 너는 영원히 이 세상에 남겠지만, 검은 옷 입은

프란체스카처럼 나 같은 친구의 피를 빨며 살겠지만, 네게 피 빨려 창백한 나는

머지 않을지도 모른다. 오십 둘, 아직 다들 젊다고들 한다. 동백에겐 너무 많은 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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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라라리베님의 댓글

profile_image 라라리베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정말 자유로운 영혼이십니다
텐트 속에서 잠을.. 별도 쏟아지나요

죽음은 일상의 다가오는 과정이지만
소멸되는 게 두려운게 아니라
애착의 고리를 끊지못했을 때 가장 두려울 것 같습니다

오십둘 아름다운 나이입니다
이십대의 사람들을 오십대에 넣어서
유일하게 다시 살아보고 싶은,

갈증을 풀어주는 글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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