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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메시지 <수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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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김영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1,976회 작성일 16-12-18 0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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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지막 메시지 / 김영채

 

                                                         

                                                                            

     그에게서 만나자는 연락을 받았다. 얼마 전에 부탁했던 책과 시집도 갖다 놓았다고 했다. 서점에 들어서자 쌓인 책 속에서 나를 맞았다. 그를 본 순간 덜컹 뭔가 가슴에 내려앉는 울림을 느꼈다. 전율이라 할까! 하지만 내색을 하지 않았다. 초췌한 얼굴은 납빛으로 어두웠다. 이야기를 나누던 중 그의 눈동자는 초점을 잃어버린 듯이 보였다. 나도 모르게 “야, 정신 차려!” 한숨처럼 말했다. 그는 묵묵부답하듯 3일 후 수술한다고 말을 이었다. 또 부탁한 시집과 한 권의 책을 내놓았다. 네게 꼭 전하고 싶은 귀한 수필집이라면서 법정의 무소유초간본을 내밀었다. 거절할 수 없어 받기는 했지만, 마음이 무거웠다. 그날따라 말수가 적었다. 헤어질 무렵 흐릿한 눈빛으로 나를 응시하더니 어젯밤 꿈엔 파란 혼불이 보이더라?” 한마디 흘리듯 말했다.     

     어느 추운 겨울날 세찬 바람이 휘몰아치는 밤이었다. 연말을 맞아 친구들과 술자리를 마치고 어두운 골목길을 뒤늦게 빠져나오는데, 누군가 갑자기 뒤에서 달려들어 내 어깨를 방망이로 내려쳤다. ‘얻어맞고 주저앉았다. 순간 정신이 아찔했다. “누구냐!” 외쳤지만 도망가지 않고 나를 지켜보고 있는 느낌이 들었다. 비틀거리는 취객들을 노려 지갑이나 금품 털이범이었다. 그때 내 이름을 부르며 녀석이 달려왔다. 빙판길에서 부축을 받고 겨우 일어났다. 하마터면 큰 봉변을 당할 뻔했다. 그는 술도 별로 좋아하지 않았고 자상한 편이었다. 그래도 술을 좋아하는 나를 잘 챙겨주었다.      

    내가 왕십리에서 직장생활을 할 때 그는 홍익대 주변 대학가에 헌책방을 열었다. 책방이라 하지만 그리 넓지 않은 가게엔 낡고 오래된 책들이 수북이 쌓였다. 가끔 퇴근길에 관심 있는 책을 찾아보고 대화도 나눌 겸 들렸다. 입구부터 겹겹이 꽂혀있는 책들 속에 파묻혀 그는 헌책을 다듬고 손질했다. 그 모습은 언뜻 장인같이 보였다. 장시간 어둠 속에 갇혀 보잘것없이 보이는 헌책을 닦아내고 매만져 곱고 좋은 책으로 다시 햇빛을 보게 했다.  

    그의 헌책방을 들릴 때마다 곧잘 어이! 도서관장 만나고 싶어 왔어.” 그런 호칭에 넓은 이마는 밝아지고 환한 웃음을 머금었다. 나도 서가에 책이 꽉 들어찬 서재를 갖고 싶었으나 이곳에 오면 서재에 푹 빠지는 기분이 들었다. 또 나를 만났을 때 가끔 서점에서 일어난 에피소드 같은 이야기도 들려주었다. 문학 지망생같이 보이는 젊은이가 자주 서점을 들렀다. 한번은 시집 여러 권을 들고 겨우 한 권 값을 내기에 그의 눈빛을 보니 너무 진심 어려 한 푼 받지 않고 시집을 다 넘겨주었다. 어느 날 그 젊은이가 모 일간지 신춘문예에 등단했다고 찾아와 두 배의 책값을 내놓고 갔단다. 어쩐지 그 젊은이는 시인으로 대성할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며 환하게 웃었다.  

    처음 서점을 시작하여 이십여 년 동안은 잘 꾸려 갖지만, 최근 들어와서는 좀처럼 사업이 펴지지 않았다. 다만 그에게 남다른 자부심은 마음속 깊숙이 자리 잡고 있었다. 활자문화의 결정체인 서적 그중에서도 고서나 헌책을 팔고 사지만 그것을 잘 식별하고 값어치를 매기는 결정은 상당한 지식과 책에 대한 사랑이 있어야 했다. 또 그는 종교에서도 다 종교적인 견해를 갖고 폭넓게 받아들이는 열린 마음을 가졌다. 일상생활에서 죽음에 관한 생각도 나뭇잎이 떨어지고 새순이 나듯, 생사는 비가 내리고 물이 흘러가는 자연적인 순리로 보았다. 무한한 세상에서 생사는 끊임없이 변화하는 것으로 없어졌다 다시 태어나는과정을 반복하면서 인간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받아드릴 줄 아는 마음. 즉 내세관이 아니겠는가. 이런 믿음은 그와 자연스러운 공감으로 받아들여졌다.  

    그러나 하루하루 지나가는 날짜 속에서 그의 병은 깊어만 갔다. 전립선염약을 오랫동안 복용했으나 허리통증은 점점 심해진다고 호소했다. 그를 만날 때마다 쇠약해가는 모습은 나에게 불안감으로 다가왔다. 전립선 압착으로 소변을 볼 수 없어 119구급차에 실려 병원응급실에서 겨우 요도에 작은 호수를 넣어 소변을 해소했다. 그런 상황이 자주 발생할 때마다 그는 통증을 견디기보다 전립선암 수술 후 투병생활이 더 두려웠다. 더욱이 전립선암 뿌리가 척추로 전이되었다는 진단은 그를 위기로 몰아넣었다.  

    녀석과는 어릴 때부터 친했다. 상경 후에도 만나서 허물없이 이야기 나누며 살아온 날들은 수십여 년이 훨씬 넘었다. 그런데 친했던 그가 갑자기 아닌 밤중에 홍두깨처럼 사람을 놀라게 하고 죽었다는 비보였다. 그 연락은 아픔보다도 마음속에 허전한 동공으로 남았다. 동공 속으로 들리는 목소리, 희미하게 떠오르는 모습들이 나와 함께 영상 속에 어른거렸다.

    며칠 전 그와 이야기를 나눈 후 이틀 만에 갑자기 녀석은 생을 마감했다. 수술을 하루 앞두고 스스로 삶을 지워버렸고 유서도 남기지 않은 채 저세상으로 떠나갔다. 감정은 무덤덤하였다. 꿈인가 싶었다. 가족들은 슬픔에 잠겼으나, 그의 영전에 할 말이 없었다. 그런데 문자 메시지가 왔다. 보낸 사람은 바로 녀석이었다. '먼저 간다.' 무심결에 답신을 보내려고 한참 들여다보니, 하루 늦은 예약된 문자 메시지가 아닌가? 마지막 한마디 메시지였다. 그리고 내게 남겨준 '무소유' 책장을 넘겼을 때 그는 책 속에서 배시시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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