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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일장에 막걸리 두 잔 마신 여자/이용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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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김용호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579회 작성일 17-12-30 2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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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일장에 막걸리 두 잔 마신 여자

이용미

그 날도 작은 군내버스에 승객이라고는 손으로 꼽을 정도였다.
그중 여러 개 비닐봉지에 담긴 짐을 양손 가득 든 40대 중반쯤 되었을
아낙은 차에 오르자마자 부스럭대기 시작했다.
들고 있던 봉지를 꺼냈다가 넣고 다시 꺼내고 어디론가 전화를 하는데
어찌나 소리가 크던지 모두가 쳐다보는데도 아랑곳없었다.
무언가 받아야 할 것을 받지 못한 모양으로 ‘주지 않으려면
애초에 광고를 말지 왜 사기를 쳤느냐?’
식식대며 한동안 하던 전화를 끊고는 내렸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
“꼭 오일장에 막걸리 두 잔 마신 여자 같다.”고 중얼대며 읽던 책을
팽개치듯 의자에 놓는 이는 가끔 버스를 같이 타며
눈인사 정도 하는 사람이었다.
음주단속에 걸리거나 음주로 인한 시비에 휘말리는 것이 남자만이 아닌
요즘 세상에 여자와 오일장과 막걸리, 한잔이나 열 잔이 아닌 두 잔이란
평범한 말에 담긴 어떤 낭만이랄까,
재밌기도 하고 우습기도 해서 여러 사람에게 그 얘기를 하며 웃어댔다.
한참이 지나 다시 옛 기억과 함께 나 자신을 돌아보는 일이 잦아졌다.

초가지붕 아래 네 개의 기둥만 세워진 맨땅에 가마니를 깐 몇 개의
전(廛)과 회색으로 보이는 흰색천막까지 합치면 요즘의 대형할인매장
한 층 넓이는 되었을까.
닷새마다 열리는 시골 장날의 장터. 없는 게 없는, 말 그대로 장날이었지만
내게 또렷이 남아있는 기억과 추억은 아무래도 술과 함께 팔던 국수전이다.
점심시간이 시작되자마자 아이들과 우우 달려나간 장터에는 까만 뚝배기에
둥글게 말린 삶은 국수사리를 담아 쫑쫑 썬 파를 얹어 까만 솥에서
연신 끓고 있는 육수를 부어주던 국수전이 있었다.
네모진 천막 가운데를 긴 바지랑대로 고여 한 귀퉁이를 걷어올린
그곳은 대충 짜 맞춘 긴 탁자와 의자 두 개가 ㄱ자로 놓여 있었다.
평일이면 후줄근한 차림으로 새우젓을 팔러 다니는 아주머니가 흰 앞치마에
수건을 쓴 다른 모습으로 장사하고 있었는데 그곳에 가면 으레 술을 마시고 있는
엄마를 만날 수 있었다.
손님들은 대부분이 남자들로 여자는 우리 엄마와 나뿐일 때가 많았는데
국수를 파는 아주머니나 들고 나는 손님 중에는 엄마께 ‘사모님’ 이란
깍듯한 호칭으로 정중한 인사를 하기도 했다.
엄마는 그때마다 그저 고개만 까딱했다.
난 국수를 먹는 것에 정신이 팔려 그때 엄마가 마신 술이
막걸리였는지는 모르겠다.
평소 엄마는 되들잇병 소주를 정짓방(주방) 찬장에 넣어 두고 큰 컵에 따라서
수시로 마셨지만, 장터 국수전에는 커다란 항아리와 쭈그러진 주전자가 있던
기억으로 막걸리였지 싶다.
엄마가 그 장에 마셨던 막걸리는 몇 잔이나 되었을까.
요즘 난 술을 자주 마시는 편이다.
마시고 싶은 자리, 마실 수밖에 없는 자리, 물론 사양하거나 못 마시는
흉내를 내며 내숭을 떠는 자리도 있다.
그러나 대부분 사양하지 않고 마신 후의 기분 또한 좋을 때가 많다.
그 날도 그랬다.
하루 9시간씩 닷새 간 이어지던 교육이 끝난 시간, 두 명의 왕이 기도했다는
전설 속 깊은 산 속이었다.
그 지역의 막걸리가 간단한 안주와 함께 배달되어 있었다.
지칠 대로 지친 심신에 산 속에서 마시는 막걸리 몇 잔의 평온을
어디에 비교할까.
“연~분~홍 치마가~ 보~옴 바~람~~에 휘 날~리더라~~ ”
“사랑해선 안 될 사람을~ 사랑하는 죄이라서~” 부르고 싶은 노래는 그러나,
입속으로 가만가만 불렀다.
장날도 아니고 내 손엔 짐 보따리도 없고 두 잔이 아닌 석 잔을 마신,
오일장에 막걸리 두 잔 마신 여자가 아니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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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nt color="#9932cc">오일장에 막걸리 두 잔 마신 여자<br /><br />이용미<br /><br />그 날도 작은 군내버스에 승객이라고는 손으로 꼽을 정도였다. <br />그중 여러 개 비닐봉지에 담긴 짐을 양손 가득 든 40대 중반쯤 되었을 <br />아낙은 차에 오르자마자 부스럭대기 시작했다. <br />들고 있던 봉지를 꺼냈다가 넣고 다시 꺼내고 어디론가 전화를 하는데 <br />어찌나 소리가 크던지 모두가 쳐다보는데도 아랑곳없었다. <br />무언가 받아야 할 것을 받지 못한 모양으로 ‘주지 않으려면 <br />애초에 광고를 말지 왜 사기를 쳤느냐?’ <br />식식대며 한동안 하던 전화를 끊고는 내렸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 <br />“꼭 오일장에 막걸리 두 잔 마신 여자 같다.”고 중얼대며 읽던 책을 <br />팽개치듯 의자에 놓는 이는 가끔 버스를 같이 타며 <br />눈인사 정도 하는 사람이었다. <br />음주단속에 걸리거나 음주로 인한 시비에 휘말리는 것이 남자만이 아닌 <br />요즘 세상에 여자와 오일장과 막걸리, 한잔이나 열 잔이 아닌 두 잔이란 <br />평범한 말에 담긴 어떤 낭만이랄까, <br />재밌기도 하고 우습기도 해서 여러 사람에게 그 얘기를 하며 웃어댔다. <br />한참이 지나 다시 옛 기억과 함께 나 자신을 돌아보는 일이 잦아졌다.<br /><br />초가지붕 아래 네 개의 기둥만 세워진 맨땅에 가마니를 깐 몇 개의 <br />전(廛)과 회색으로 보이는 흰색천막까지 합치면 요즘의 대형할인매장 <br />한 층 넓이는 되었을까. <br />닷새마다 열리는 시골 장날의 장터. 없는 게 없는, 말 그대로 장날이었지만 <br />내게 또렷이 남아있는 기억과 추억은 아무래도 술과 함께 팔던 국수전이다. <br />점심시간이 시작되자마자 아이들과 우우 달려나간 장터에는 까만 뚝배기에 <br />둥글게 말린 삶은 국수사리를 담아 쫑쫑 썬 파를 얹어 까만 솥에서<br />연신 끓고 있는 육수를 부어주던 국수전이 있었다. <br />네모진 천막 가운데를 긴 바지랑대로 고여 한 귀퉁이를 걷어올린 <br />그곳은 대충 짜 맞춘 긴 탁자와 의자 두 개가 ㄱ자로 놓여 있었다. <br />평일이면 후줄근한 차림으로 새우젓을 팔러 다니는 아주머니가 흰 앞치마에 <br />수건을 쓴 다른 모습으로 장사하고 있었는데 그곳에 가면 으레 술을 마시고 있는 <br />엄마를 만날 수 있었다. <br />손님들은 대부분이 남자들로 여자는 우리 엄마와 나뿐일 때가 많았는데 <br />국수를 파는 아주머니나 들고 나는 손님 중에는 엄마께 ‘사모님’ 이란 <br />깍듯한 호칭으로 정중한 인사를 하기도 했다. <br />엄마는 그때마다 그저 고개만 까딱했다. <br />난 국수를 먹는 것에 정신이 팔려 그때 엄마가 마신 술이 <br />막걸리였는지는 모르겠다. <br />평소 엄마는 되들잇병 소주를 정짓방(주방) 찬장에 넣어 두고 큰 컵에 따라서 <br />수시로 마셨지만, 장터 국수전에는 커다란 항아리와 쭈그러진 주전자가 있던 <br />기억으로 막걸리였지 싶다. <br />엄마가 그 장에 마셨던 막걸리는 몇 잔이나 되었을까. <br />요즘 난 술을 자주 마시는 편이다. <br />마시고 싶은 자리, 마실 수밖에 없는 자리, 물론 사양하거나 못 마시는 <br />흉내를 내며 내숭을 떠는 자리도 있다. <br />그러나 대부분 사양하지 않고 마신 후의 기분 또한 좋을 때가 많다. <br />그 날도 그랬다. <br />하루 9시간씩 닷새 간 이어지던 교육이 끝난 시간, 두 명의 왕이 기도했다는 <br />전설 속 깊은 산 속이었다. <br />그 지역의 막걸리가 간단한 안주와 함께 배달되어 있었다. <br />지칠 대로 지친 심신에 산 속에서 마시는 막걸리 몇 잔의 평온을 <br />어디에 비교할까. <br />“연~분~홍 치마가~ 보~옴 바~람~~에 휘 날~리더라~~ ” <br />“사랑해선 안 될 사람을~ 사랑하는 죄이라서~” 부르고 싶은 노래는 그러나, <br />입속으로 가만가만 불렀다. <br />장날도 아니고 내 손엔 짐 보따리도 없고 두 잔이 아닌 석 잔을 마신, <br />오일장에 막걸리 두 잔 마신 여자가 아니기에.</font><br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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