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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추억/다편소설/왕미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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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김용호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605회 작성일 18-01-01 0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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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추억

단편소설

왕미례

지난해 12월 어느 날이었다.
여느 해답지 않게 따뜻한 봄날을 연상케 하는 일요일 무료한 저녁 시간에
그녀의 전화를 받았다.
그녀에 대한 단상은 언제나 아쉬움이 동반한 그리움으로 남아 있었는데……
그런 그녀가 용케도 잊지 않고 전화를 해왔다.
하긴 50여 년을 같은 곳에서 줄기차게 살면서 지금까지 바뀌지 않는 집
전화번호는 이미 알 만한 사람들 사이에 명물이 되어 버린 지 오래다.
그녀의 전화는 “어떻게 알고……”라는 말은 나올 수 없는 말일 것이다.
“나야. 반갑지 않아? 오늘 술 한 잔 사줄 수 있니?”
26년 전이나 지금이나 여전히 어리바리한 나……그녀가 너무나
반가웠음에도 크게 반갑다는 말을 못 한 채 어디로 가면 될까? 전화를 끊었다.
그녀에게 있어 나는 어떤 존재일까?
마누라의 다 늦은 시간에 어디 가느냐의 물음도 못 들은 체하고는 집을 나왔다.
반가움으로 그녀를 만났지만, 오늘이 지나면 그녀와 헤어질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자주 만나자는 말을 뒤로 한 채 집으로 왔으나 그녀에 대한 생각은
갈수록 더 하였다.
난 그녀를 만나면서 일일이 말로 하지 않아도 통하는 뭔가가 있어선지
시간이 지날수록 삶의 냄새가 곳곳에 엉겨있는 집으로 들어가고 싶지 않았다.
무엇인가를 판단한다는 것에 자신이 없어지고 가슴이 시린 날이 계속되었다.
그런 쓸쓸함은 자신의 허물을 덮기 위한 위장도 너그러움도 아니었다.
그녀와의 사랑도 이제는 어쩔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고,
마치 깊은 운명처럼 생각되었다. 아니……
그녀도 어쩜 지난 26년 동안 나란 존재를 가끔 생각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둘은 이미 소통이 없었지만, 불통이 되지 않았고 두 명의
타인이면서도 분리되지 않은 인연이었는지도 모르겠다.
하여 어느 날, 하나의 꿈이 고스란히 뭉쳐져 둘은 어디론가 흐르고
있다는 느낌으로 만나 ‘나’이면서 ‘나’ 아닌 것에 자신들을
옭아매면서 서로를 원하고 있었는지도…… 모르지.

26년 전 그녀와 헤어진 뒤로 난 담배를 배웠다.
마누라에 밀려 베란다는 나의 유일한 흡연 장소임과 동시에 그녀에 대한
추억을 가끔 생각하게 하는 곳이기도 하다.
군대 시절에도 그렇게 거부하던 담배를 깔끔하고 단아한 모습으로
쭉 내밀며 담배를 피워대던 그녀의 모습을 따라 해보기로 한 것이
이젠 거의 중독이 되어버렸다.
그녀는 가끔 고개를 들고 천장 한구석을 멀거니 바라보며 깊은 생각에
잠긴 듯 보였으나 실상은 아무런 생각 없이 담배 한 모금의 맛을 즐기고
있을 뿐이었다.
무표정한 얼굴로 멍한 듯 맹해 보였던 그녀는 세상 모든 것을
초월한 달인의 모습으로 담배도 한 개만이 아니라 줄곧 피워대는 줄담배다.
연기만 모락모락 품어내는 꼴이 진짜 담배 맛을 알고 피웠는지는
아직도 의문이다.
살짝 덧니가 난 그녀의 웃는 모습은 참 매력적이다.
말 한마디 할 때마다 입가에 침방울 고이는 적 한 번도 본 적 없고
열띤 토론이 아무리 길어도 군더더기 하나 없이 정갈하고 단아하게
말하는 모습은 깔끔했다.
그녀는 술도 참 잘 마셨다.
즐겨 마시는 술이랄 것도 없이 동동주면 동동주, 맥주면 맥주, 와인이면 와인,
양주면 양주 아랑곳하지 않고 즐겨 마신다.
가끔 기분 상한 일이라도 생기면 가느다란 허리 바짝 세우며 목젖이
다 보이도록 입을 벌린 채 마신다기보다 거의 털어 넣었다는 표현이 맞을 게다.
술 한 잔 들어가면 덧니를 살짝살짝 보이면서 배시시 웃는 웃음이,
아름다운 그녀가 입술을 쭉~ 내밀고 담배 연기를 내뿜으며 허공을 지긋이
바라보면 그렇게 멋있고 관능적으로 보였다.
그녀가 언제부터 담배를 피웠는지는 알지 못한다.
그녀를 만난 것은 끓어오르는 피를 삭힐 수 없던 내 인생의 절정기라
할 수 있는 스물 여섯 무렵이었다.
그녀가 자신의 아버지 심부름으로 사무실에 들락거릴 때 알게 되었으니
지금부터 꼭 26년 전이다.
내가 그 사무실에 취업한 것이 졸업식 앞둔 며칠 전이였으니 아마
이때쯤 되지 않았을까? 그녀의 아버지는 전직 경찰로 사건 브로커이다.
서소문 5층 짜리 건물 3층 사무실에서 그녀와의 첫 대면을 하였다.
코르덴바지에 체크무늬 옷을 입은 촌스러운 나와는 달리 긴 가죽 코트에
줄이 확 잡힌 모직 바지에 고급 실크 블라우스와 굽 높은 뾰족구두,
구불구불 지져낸 긴 파마머리, 우아하게 화장한 그녀의 모습은 마치
고급요정의 유한마담의 모습이다.
전해들은 말로는 나와 동갑이라는데 앳되어 보이는 얼굴과는 달리
그녀의 모습은 전혀 어울리지 않는 사십 대 중년의 여인 같았다.
그런 그녀가 세 번째 사무실로 찾아온 날 빙그레 웃는 모습에서
아기처럼 순수한 모습을 느꼈다.
경사도 사투리를 알아듣지 못하여 두어 번 더 보충 설명을 들어야
이해되는 어리바리…….
아니지. 그녀의 매력 있는 사투리가 듣고 싶어 부러 더 모른 척했는지도 모른다.
그런 그녀가 데이트 신청을 하였다.
대구에서 올라온 지 얼마 되지 않아 서울 구경을 하고 싶다며 퇴근 시간
맞춰 찾아온 것이다.
사실은 출, 퇴근 점찍듯 다니던 도시 촌놈인 나나 시골 도시 여자인
그녀나 별반 다를 게 없다고 보지만 나름대로 서울살이 더 많이
한 내가 낫지 않을까 싶어 기꺼이 그녀를 위해 나서기로 하였다.
그녀를 데리고 종로와 광화문, 명동 바닥을 휩쓸고 다니면서 많은 이야기를
나눴지만, 실상은 거의 내 주변에 일어난 사건 사고들에 대한 이야기뿐!
그녀의 영역에 내가 쉽게 편입되지 못했는지 그녀는 쉽게 맘을 열지 않아
그녀의 사생활이랄지 속내를 전혀 알 수 없었다.
하긴 내가 생각해도 인생의 쓴맛이라고 여기는 술맛도, 담배 맛도,
심지어는 커피 맛도 몰라 설탕 듬뿍 넣어 달달하게 마셔대는 숙맥 같은
나에게 그녀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 거나 말거나 그녀와의 만남이 해가 바뀌어도 계속되었다.
하긴 사회생활 1년 6개월이란 시간이 내게 많은 것을 알려주었으니
이것도 다 그녀를 따라다닌 결과라고도 할 수 있겠지.
수줍음 많고 내성적인 나를 조금은 뻔뻔스럽게 바꿔 놓았으니 말이다.
제법 맥주도 마실 줄 알고 사람에 대해 두려움도 없어져 누구하고든
대화도 가능해졌으니 나름대로 성숙하였다면 성숙하였다고 할 수밖에…….
장마철에 접어든 6월의 어느 날이었으리라.
후덥지근하고 답답한 날의 연속이었던 때가 아닌가 싶다.
그녀의 전화를 받고 허겁지겁 달려간 곳은 혜화동 서울대학교 근처다.
난 그곳에서 그녀의 불편한 속마음을 보았다. 적막하고 외로운
미소까지 지으며 담배를 피우던 그녀가 나를 보고 웃으며 담담히
꺼낸 이야기는 왠지 그녀의 상황이 ‘가볍지 않음’을 알았다.
그녀가 내뿜는 담배 연기에 기침이 나오려고 해도 나는 꾹 참았다.
흐트러진 그녀의 모습이 너무 생소하기도 하고 앞으로 그녀가
내뱉을 말들이 궁금하기도 하여서다.
가느다란 그녀의 손끝에서 담뱃재가 위태위태한 모습으로 달랑거릴 때,
그녀를 보는 내 마음은 호기심 반, 안쓰러운 마음 반으로 가슴이 콩닥거렸다.
그녀가 만들어준 분위기에 취한 내게 그녀의 이야기는
너무나 낯선 것들이었다.
그녀가 품어대는 담배 연기도 그러하거니와 마셔대는, 아니
털어 넣는 것 같은 소주 역시 그녀와 만나는 지난 1년 6개월 동안
한 번도 본 적 없는 장면인지라 덜컥 겁이 났다.
귓속 깊은 곳에서 맴도는 그녀의 이야기는 너무나 뚜렷하게 각인되어
지금까지 뇌수 깊숙이까지 파고들어 중년 이상의 남자들을 보면
고개가 절로 돌려진다. 그런 나 역시 중년의 나이 훨씬 지났음에도 말이다.
그녀는 자신의 성장 과정과 현재 처한 자신의 처지, 그리고 앞으로의
계획들을 한꺼번에 와르르 쏟아내고 속이 타는지 냉수를 벌컥벌컥
마셔대기 시작했다.
말을 마친 그녀는 나에게 자문하는 듯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내 머릿속은 그녀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하얗게 탈색되어 희뿌연
안개 속 미로를 헤매는 기분이라 그 어떤 이야기로도 그녀를 위해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렇게 자상한 그녀의 어머니가 생모가 아니라는 것도 믿을 수 없었고
그녀가 임신 3개월 째라는 것과 사귀는 남자가 40대 중년의 유부남으로
현재 이혼 절차 중이라는 사실이 내겐 감당할 수 없는 일들로 느껴져
마치 소설의 한 부분을 읽는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그녀가 고백하는 불륜 이야기에 대하여 막연하게나마 배반감이 느껴졌다.
멀거니 앉아 있는 나를 바라보던 그녀가 또다시 담뱃갑으로 손을 뻗침과
동시에 내 손은 여지없이 그녀의 손등을 거세게 내리치고 있었다.
난 그녀가 유부남을 사귀거나 40대 중년 남자라는 것은 잊었다.
단지 그녀가 임신했다는 사실이 너무나 크게 느껴져 나도 모르게
내리치고 놀라 벌떡 일어서서 주점을 나와 버렸다.
왜 그랬을까?
그 뒤로 그녀의 소식은 알 수 없었다.
들리는 말에 “결혼을 했다더라, 또는 이혼을 했다더라,
또는 갑부가 되었다더라.”라는 확인되지 않은 말들만 들릴 뿐이었다.
생각 없이 털어 낸 담뱃재는 앞서거니 뒤서거니, 오르락내리락하며 유영한다.
마치 그녀를 따라 맴도는 나비처럼 너울너울 춤을 추며 멀어진다.
난 이제 그녀에 대한 단상을 지워버리기로 하였다.
거실 저편에서 종알거리는 마누라 때문은 아니다.
그동안 운명처럼 여겼던 끈을 그녀와의 만남을 이쯤에서 놓아버리겠다는
생각과 더불어 내 안 어디선지 몰라도 지리멸렬하게 이어져 온 그녀에
대한 생각이 이제야 정리가 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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