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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산행 <수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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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김영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1,083회 작성일 18-04-04 15: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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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느 날 산행 / 김영채   

                                                                 

    낯선 길로 들어섰다. 푸른 잔솔이 펼쳐진 길을 따라 걸었다. 작달막한 나무들은 싱그러운 바람이 스

칠 때마다 웃음 머금은 듯 나뭇잎은 흔들렸다. 구릉 같은 산길로 접어들자 계곡물이 맑게 흐르고 있었다. 물소리에 이끌려 잠시 걸음을 멈췄다. 맑은 소리는 소곤거리듯 작게만 들려왔다. 물소리가 들리는가 싶더니 멀리서 가까워지는 또 다른 소리는 구슬펐다.

    예상치 못한 상여꾼들의 소리였다. 여러 개의 만장을 앞세워 꽃상여는 뒤따랐다. 요령잡이의 선소리에 맞춰 소리는 이어졌다. “어 노! 어 노!” 상여꾼들의 떨리는 듯 구슬픈 소리는 요령 소리와 어우러져 죽은 자가 떠나가는 마지막 길을 위로했다. 뒤따르는 산 자들의 마음도 편안함을 가져다주었다. 유난히 눈에 띄는 어린 상주는 상엿소리를 가슴에 새겼을까? 어린 맘에 죽음은 꽃잎이 떨어지는 모습처럼 보였을까. 떠나지 못한 영혼은 꽃상여 위로 무늬 나비가 되어 맴돌고 있지 않을까? 이런 생각에 젖어들 때 꽃상여는 더 멀어져 가고 있었다. 구성지게 들리는 상엿소리는 귀가에 여운을 남겼다. 그럼 나는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나?’ 문득 마음속에 새기듯 되물어 보았다.

    계곡 옆길로 걸음을 재촉했다. 그때 숲 속에서 웬 딱새가 퍼드덕 날았다. 깜짝 놀랐으나 시선은 덤불 안쪽 나뭇가지에 멈췄다. 둥지엔 작은 새끼들이 웅크린 채 노란 주둥이를 위로 귀엽게 내밀고 울어댔다. 발길을 옮기자 내 머리를 스치듯 날아온 어미 딱새는 둥지 위 나뭇가지에 앉아 경계하듯 안절부절 바삐 움직였다. 둥지로 가까이 가자 어미 딱새는 어느새 머리 위로 휙 날아와 반대편 나뭇가지에 앉아 날개를 퍼덕였다. 둥지에서 반대쪽으로 내 시선을 끌 듯 관심을 보였다. “왜 그러니?” 작은 소리로 물었다. 딱새는 머뭇거리다 재잘거렸다. “왠지 겁이 났어요. 내 새끼들을 해칠까? 그런데 당신은 어린 새끼들을 사랑스러운 눈빛으로 안아주었어요. 그래서 맘이 놓였어요.” 나는 다정히 웃었다. 그도 가볍게 날갯짓했다.

   바위들이 듬성듬성 흩어져있는 능선을 오르고 있다. 이어진 능선 아래로는 작은 잡목들이 뒤엉켜 초록빛 물결처럼 흔들렸다. 더 걷다가 방석 같은 바위를 힘겹게 밟고 올라섰다. 끝없이 펼쳐진 바다가 한눈에 들어왔다. 수평선 위로는 가물가물 구름층이 여울져 가고. 능선 위로 올라서자 막다른 봉우리였다. 발아래는 수직으로 깎아지른 듯 절벽이었다. 한 마리 갈매기는 낭떠러지 아래로 곡선을 긋듯 바다 위를 날아가고 있다. 넓은 바다는 고요했다. 내 주위를 감싸는 정적은 산과 바다, 가파른 절벽은 마치 한 폭의 화선지에 먹물로 진하게 그려낸 수묵화 같았다. 바윗돌 위에 서 있는 나는 외로웠다.

    그런데 왜 이곳까지 홀로 왔을까? 스스로 자문自問도 해봤다. 아무 대답은 없다. 하지만 이 벼랑 끝으로 위태롭게 올라선 바위는 불안감보다도 아늑함을 가져다주었다. 해안가로 밀려드는 파도는 하얀 물결을 솟구치며 물방울처럼 부서졌다. 가늘게 부서지는 물거품을 지켜볼 때마다 시간이라는 실체는 무수한 물거품같이 사라지다 연이어 밀려오는 파도처럼 생성되어 가는가? 무한히 변화하는 자연 속에서 유한적 존재인 나는 시간의 물결 위에 작은 조각배처럼 떠서 어디로 흘러가는가. 목적지는 어디란 말인가? 그런 의문이 들었다.

    해안 굴곡에서 뻗어있는 산줄기를 굽어보았다. 산줄기를 향해 날아가는 솔개는 바람 따라 유유히 비상하고 있었다. 허공을 가르듯 나는 모습은 신기하게도 아름다워 보였다. 하늘을 날아가는 새는 아무 흔적도 남기지 않은 채 비행하고 있지 않은가? ‘如鳥飛空中 足迹不可得여조비공중 족적불가득이라 이런 불경의 구절이 생각났다. 땅에서 솟아올라 공중을 날아가는 새는 아무 흔적도 남기지 않는다. 바로 그 새는 분명히 땅과 하늘을 오가며 살아가는 생명체이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그가 살아갔던 흔적은 지워지지 않고 재탄생할 수 있지 않은가. 나름대로 의미를 되새겨 보았다.

    늦기 전에 하산 길을 서둘러야 했다. 쉬 떠나기가 아쉬워 발길을 잠시 멈추고 앉았다. 바람은 나뭇가지 사이로 불어왔다. 바람이 스치듯 불어올 때마다 나뭇잎은 잔잔히 흔들렸다. 나뭇잎의 흔들림은 내 가슴속으로 울림처럼 전해졌다. 울림이 전해올 때 나는 파장을 느꼈고 곧 자연에서 전해지는 흔들림은 심장의 박동처럼 느껴졌다. 나는 황홀감에 빠졌다. 가까운 우주는 내 안에서 생명의 울림을 전해 주고 있었다.

    바삐 발걸음을 재촉하며 하산했지만, 어둠은 산자락으로 밀려왔다. 깊게 심호흡을 했다. 마음은 편안히 가라앉았다. 오늘 산행에서 생사生死를 넘어 자문도 하였고 많은 대화자를 만났다. 또 미처 생각지도 못한 대상과의 소통은 상호 존경이었으며 소중한 교감이었다. 이 변화하는 대자연에서 나와 만났던 존재물과 함께 내면 깊숙이 맑게 흐르는 이야기를 전해주고 듣기도 했다. 이런 소통의 세계 속에서 글을 쓰고 그들과 대화하며 또 다른 이야기 속으로 세계를 창조해가는 작업을 쉼 없이 이어져야겠다.

    밤하늘에는 셀 수 없는 수많은 별 무리가 운행하고 가끔 별똥별도 하강선을 그려가며 밝게 사라져 갔다. 저 무수한 별마다 하나하나 교감할 수 있는 선을 이어주고 연결하는 작업은 내 안의 우주에서도 끝없이 진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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