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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술 <수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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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김영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999회 작성일 18-09-22 02:02

본문

 

 

                                                 첫술 / 김영채

 

                                                   

   저녁놀은 붉게 물들어 갔다. 노을빛 물결이 흐르듯 넘실대는 붉은 구름층은 평야로 끝없이 이어진 두승산 넘어 아득히 펼쳐져 있었다. 동진강 줄기를 따라 아름답게 물들어가는 저녁놀을 지켜보던 친구들은 발걸음을 천천히 옮겼다. 빈속에 막걸리만 늘어지게 들이마셔서 그런지 취기가 올라오자 저녁놀은 점차 한들거리는 꽃잎같이 아른거렸다. 대보름이 지나 우수가 가까이 왔으나 날씨는 별로 풀리는 기색이 보이지 않았다.

   녀석들은 마을 고샅을 벗어나 빈속을 채우려고 읍내 중국집으로 향하고 있다. 검은 짜장면은 별미였다. 쫀득거리는 짜장 면발을 먹다가 가져온 탕수육은 또 다른 입맛을 돋우었다. 맛스런 중국음식과 곁들여 입안에 떨어 넣은 고량주는 목안을 타고 위장에 닿자마자 짜릿하게 톡 쏘았다. 톡톡 쏘는 맛에 빠져 작은 술잔으로 고량주를 떨어 넣고 마시고 호주머니 돈들이 다 털리자 그제야 흔들리는 발길을 재촉했다.

   빠금히 얼굴을 내미는 환한 달빛 따라 녀석들은 하천을 향해 어깨동무를 하고 큰 소리로 노래 부르며 읍내 신작로를 휘젓고 갔다.

   하천 모래밭 사이로 흐르는 잔물결은 은빛 비늘처럼 반짝였다. 달빛타고 목청껏 불렀던 노래는 젊음의 발산이었다. 또한 그리움과 애증이 담겨 있고 미지의 세계로 떠나야 할 두려움이었다. 허나 시간이 지날수록 술기운이 묘하게 달아올라 허둥거렸다. 늦은 밤 싸늘하게 몰아닥친 꽃샘추위는 술 취해 휘청거리는 녀석들을 더욱 아프게 했다.

   벌써 음식물을 토해내고 볏단 밑에 나무토막처럼 쓸러진 녀석도 있다. 멋모르고 막걸리를 냉수 마시듯 퍼 먹어대고 독한 고량주를 겁 없이 덥석덥석 마셔댄 것이 이런 화를 불러왔다. 나도 견딜 수 없는 경련 같은 아픔이 온몸으로 전해져 갑자기 사시나무 떨 듯 떨게 됐다. 누군가 마을 가까이 쌓인 볏단에 불을 지폈다. 모닥불은 달빛 속으로 활활 타올라 따뜻이 몸을 녹이게 했다. 그것도 살갗 속으로 절여오는 찬바람만은 잠재울 수 없었다.

   그러자 머리가 아프더니 정신이 몽롱해졌다. 몸을 가누기가 힘들어 졌다. 고개를 들어 움직일 때마다 그 환한 달이 내 곁에 내려와서 곧 기웃거리다가 떠나갔다. 하늘은 내 주위로 빙글빙글 돌고 보이는 사물들은 눈의 움직임에 따라 휘청거렸다. 모닥불이 커져갈 무렵 추위는 다시 엄습해왔다. 잠시 정신이 맑아졌다. 순간 뭔지 불안 같은 공포감이 스치고 지나갔다. 나도 모르게 발길이 마을 불 켜진 집을 향해 걸어갔다. 녀석들도 달빛을 밟으며 마을로 걸음을 옮겨가고 있었다.

   불빛을 쫓아 들어서던 방은 사랑채였다. 촉수 낮은 불빛 아래 화투짝을 쬐던 노름꾼들은 낯선 내 방문에도 별 관심 없어 보였다. 방구석에 쓰러지듯 몸을 던졌다. 노름에 푹 빠져 화투짝에만 정신이 팔린 줄 알았는데 한 판이 끝나자 한 노름꾼이 내뱉듯 말을 쏘아댔다. “거시기 말여! 요즘 젊은 것들이 술 처먹은 꼴보면, 영 버르장머리라곤 한 푼어치도 없고만. 어른들이 재미로 화투짝 갖고 노는디 벌렁 눕질 않나?” “가만히 보니 우리 마실 놈도 아닌디......” 느닷없이 누워있던 내 멱살을 잡아 방문 밖으로 헌 짐짝 버리듯 내팽개쳤다. 쫓겨났다. 한참 후에야 겨우 정신이 들었다.

   또 큰 목소리로 떠드는 소리와 함께 개 짖는 소리는 마을 언덕배기에서 들려왔다. 한 녀석도 취중에 몸을 가누지 못하고 추위에 쫓겨 불 켜진 방에 찾아 들었다. 처녀 방이었다. 혼자 밤늦도록 자수를 놓고 있었다. 방문이 열리더니 낯모르는 사내가 기어들어와 아랫목에 누워버렸다. 깜짝 놀라. “아이고 어머니!” 비명처럼 큰 소리를 질렀다. 놀랜 처녀 아버지는 누워있던 녀석을 끌어내 다듬이 방망이로 복날 개 패듯 사정없이 두들겨 팼다. 쫓겨나 어깨는 축 늘어진 채 신음소리 같이 한 숨 쉬는 녀석은 비 맞은 장닭처럼 초라하게 보였다. 달 밝은 밤 옹기종기 모여 있던 마을은 갑자기 낯모를 어설픈 취객들이 나타나 벌집을 쑤셔놓은 듯 온통 시끄러웠다.

   그 설익은 술꾼들은 오래도록 뇌리 속에 흑백 영상처럼 남아있다. 지금도 내 곁엔 술 향기가 감돈다. 조금씩 익어가는 술맛을 느끼는 것을 보니 나이가 무르익었나 보다. 가을이 익어가는 속에서 흔들리는 나뭇잎이 흩날린다. 서릿바람이 기울러 가고 달빛이 창문에 스미는 밤엔 누군가와 만나고 싶어진다. 삶의 군더더기는 맑게 정제되어 잔속에 침묵같이 담겨있다. 숙성된 침묵은 오래지 않아 환하게 꽃을 피우기도 하고 잔잔한 물결처럼 작은 파장을 일으킨다. 내 가슴 안에 술 향을 담아본다. 어머니의 굵은 손마디에서 빚은 술 향기는 온 몸으로 적셔온다. 술기운은 벌써 가슴속에서 전율로 솟아져 내린다.

   술잔 속에는 또 다른 세상이 공존하고 있었다. 별 떨기로 떨어진 세계는 잔속에서 익어간다. 술을 기울면 내 안에 자리한 침묵은 우주에서 들려오는 숨소리가 들린다. 숨소리는 거칠기도 하고 계곡 물소리 같기도 하고 가만히 귀 기울러보면 실낱같은 소리는 영혼의 모음이었다. 나도 모르게 술 향기에 젖어 잠속에 깊이 빠져든다. 온몸에 흐르는 감흥은 꿈속으로 나를 홀연히 내려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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