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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연호는 괴물인가, 시인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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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활연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1건 조회 3,071회 작성일 15-07-24 2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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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문'을 통한 '강조어법'



  비문은 당연히 좋지 않은 문장이다. 문법이라는 약속된 규칙을 지켜야 의미의 명증성이 확보될 수 있기 때문에, 이를 어기는 일은 시적인 미숙함의 징표가 된다. 그런데 시인들은 때로 문법의 한계를 벗어나서 비문을 구사하기도 한다. 통상적으로 이를 시적 허용이라 부르지만, 이런 허용은 문법을 '고의적으로' 위반할 때에만 효과를 발휘한다. 시인이 그것이 위반임을 알고도 위반할 때, 다시 말해 규칙을 위반했을 때 생기는 일탈 효과를 측정할 수 있을 때에만 효과가 생기는 것이다.



  부인이 괄태충처럼 사라질까봐 두렵다
  그는 이러한 종류의 산문과 운문을 생의 모든 부분에서 반복했다
  회색이 만든 아름답고 슬픈 시대
  내가 그대에게 하루에 하나씩의 문밖을 던지던 것에 아직 방문객이 없던 시절
  그늘을 잃었고 그날의 그림자를 모두 잃었다
  괄태충처럼 사라질까봐 두렵다
  하지만 잠을 자고 나면 이것이 어떤 잠인지를 알 수 없게 되리라
  멀리서 들려오는 타인의 쇼팽에게 먼지를 묻혀주는 밤
  보다 더 굵고 긴 악몽에
  향기나는 콘돔을 씌우고
  아버지와 하녀 사이에 도착하기 전에 비는 죽는다
  이 계절에 구름을 위쪽 단추까지 채우고 또 이 계절에
  우린 젖은 우리를 풍향계 앞에 꺼내놓고
  괄태충처럼 사라질까봐 두렵다
  운 없는 어린잎이 현관문을 두드렸어 그런 뒤적이는 소리들이
  내 감정의 일부를 성공적으로 부숴놓곤 했다
  창에 돌을 던져준 건 고맙지만 창들은 예전부터 깨진 들판을 달리고 있었다
  양손 곁에 놓여 있는 더러운 주말은 그렇다면 즐겁다
  연금술의 치유력으로 겨울잠을 한 조도(照度) 포기한다
  괄태충처럼 사라질까봐 두렵다
  쓸쓸하게 녹아 없어진 초의 개수를 매일 밤 처음부터 다시 외워보며
  그대도 나처럼 신비한 불결을 향해 잠들어라

                                                            ─ 조연호, 「고전주의자의 성」전문


 

  "그"는 고전적인 삶의 기율을 실천하고 싶어하지만 좌절한 자다. 그의 말을 따라가면서 의미론적으로 꼬인 문장들을 찾아보자.

  먼저 1행: 그가 사랑하는 부인은 "괄태충"처럼 사라질 것만 같다. 괄태충은 한편으로는 민달팽이의 한자어이므로 그녀가 꿈틀대는 살덩어리로밖에 느껴지지 않은 어떤 퇴락의 경지를 이르는 말인데, 다른 한편으로는 '괄시'와 '권태'의 합성어이기도 하다. 그녀는 괄시받고 권태로운 지경에 처했다. 이것은 '귀부인'과 '고전주의자'와 '성'이 결합했을 때 생기는 어감이기도 하다.

  4행: "하루에 하나씩의 문밖을 던지던 것"이라는 비문은 '문밖에 두다'와 '밖으로 던지다'의 합성에서 생겨났다. 거듭해서 그대를 밖에 세워두거나 밖으로 내쳤다는 말이다. 이 중복은 의미의 증폭이자 강조이기도 하다. "문밖"은 '문전박대'의 준말이기도 하다(따라서 문밖은 소리은유이기도 하다). 세 번에 걸쳐 문전박대가 일어난 셈이다.

  8행: "타인의 쇼팽에게 먼지를 묻혀"주는 일이란 누군가의 피아노 연습곡을 듣는 체험을 말하는 것이겠다. 그로써 환기되는 느낌이 낡았거나 추억의 일부가 되었다는 이야기다.

  9~11행: "굵고 긴 악몽에/ 향기나는 콘돔을 씌우고/ 아버지와 하녀 사이에 도착하기 전에 비는 죽는다". 이 긴 문장이 품고 있는 것은 고전적인 영화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상투적 정황이다. "굵고 긴" 성기("콘돔"이니까)가 상상하는 아버지와 하녀 사이의 정사가 있고, 그 상상이 꺼뜨리는 욕망의 죽음이 있다.

  17행: "창에 돌을 던져준 건 고맙지만 창들은 예전부터 깨진 들판을 달리고 있었다". 창이 처음부터 깨져 있어서 들판과 나 사이에 아무런 장애물도 없었다는 이야기다. 창이 들판을 달린다는 말을 창밖에 펼쳐진 들판을 달리고 싶었다라고 바꿔 읽을 수도 있다.

  19행: "연금술의 치유력으로 겨울잠을 한 조도(照度) 포기한다". 연금술이 약속하는 치유의 힘이란 신비한 것이자 거짓된 것이다. 겨울에는 태양이 비스듬히 비치기 때문에 조도가 낮아진다. 조도가 한 단계 더 낮아졌으나(어두워졌으나) 편안하지는 않았다는 말이다.

  마지막으로 21~22행: "초의 개수를 매일 밤 처음부터 다시 외워보며/ 그대도 나처럼 신비한 불결을 향해 잠들어라". 개수는 본래 외는 게 아니라 세는 것이다. 여러번 세는 것을 반복해서 외울 정도가 되었다는 뜻이다. "불결"은 불길과 물결을 합성한 말이다. 초는 녹아서 흐르기도 하고, 타기도 한다. 물과 불의 속성을 동시에 간직한 초는 신비하다. 이것은 연금술과 고전주의자와 성에 어울리는 소품이기도 하다.

  따라서 조연호가 구사하는 비문은 의미를 강조하거나("문밖을 던지던 것"), 비유를 품었거나("타인의 쇼팽에게 먼지를 묻혀주는 밤"), 순서를 바꾸거나("창들은 예전부터 깨진 들판을 달리고 있었다"), 합성이거나("불결") 하는 여러 방식에서 태어난 것이다. 그로써 문법은 교란되지만 대신에 수많은 의미와 이미지와 음악을 품은 문장이 생겨났다. 이 시인의 문장이 품은 풍요로움은 한국시에서는 대단히 희귀한 것이다.*


                            註)  * 조연호 시의 난해성에 관해서는 여러 지적이 있어왔으나, 그것이 의미의 적층이라는 점에 관해서는 충분히 논의되지 않은 것 같다. 그의 시들이 품은 것은 의미의 교란이나 훼손이 아니라, 의미의 복수성 내지 강세다. 언어가 불투명하기에 불가피하게 난해성의 외관을 띠게 되지만, 거기에는 이중삼중으로 켜를 이룬 의미들이 살아 숨쉰다. 그것은 무의미로 가지 않고 겹의미로 간다.



                                  「시론」, 권혁웅, pp. 655~pp. 658에서.


  조연호의 『농경시』는 책 한 권이 그대로 한 편의 시다. 물론 평론가나 문학을 강의하는 교수조차도 그의 시를 읽어내는데 상당한 고충이 있고 대부분 모르겠다라고 자백하는 실정이다. 나 또한 책꽂이에 꽂아 두고 가끔 꺼내 읽지만, 나로서는 가독성을 일으키기 어렵다. 그런데 왜 이 시는 출판되어 독자나 전문가를 피곤하게 만들까.

  세상 모든 인간들이 감정공장공장장식 감정통조림을 까먹으라고, 시인 스스로도 홀라당 뒤집어지며 쉽게 쉽게 쓰고, 씩 웃으며 개** 애썼다 하면 되겠는데, 이 시인은 무슨 중뿔이 나서 이렇게 알아먹기 힘든 시를 쓴 것일까.

  짐작하건대, 이 시인은 아무도 가지 않는, 아무도 할 수 없었던 길을 가고 있다는 생각이다. 남들이 다 하는 창조를 창조적이라 말할 수 없으므로 이런 시는 이런 시로써 가치를 가진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는 자신의 안목으로 읽어낼 수 없다면 극악스런 반응을 하며, 마치 자신의 잣대가 진리라 외치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때 자신의 독해력이나 지적수준 또한 고만고만한 이해력을 탓하지 않고, 자신이 가진 사소한 경험을 통해 마치 그것이 확신인 것처럼 말할 때가 있다.

  세상이 단순하지 않듯이 시 또한 단순할 수 없다. 오랫동안 서정시도 상징시도 또 다른 유형의 시들이 많지만 딱히 어떤 것이 좋다란 것은 각자의 취향에 해당되는 것이지, 모든 작가들이 일제히 한 색깔로 간다면 아류이거나 추종자에 불과할 것이다.

  일찌기 랭보(1854년–1891년)는 어린 나이에 이미 상징시를 다 쓰고 그후 시인처럼 괴인처럼 과격하게 살다갔지만, 그 당시 유행하는, 또는 유명한 시인들 면상에다 오줌을 갈겼다.(그들은 주로 멜랑콜리 서정시 유파들이었다.) 그런 거부권이 시를 더 풍성하게 확장했고, 독자도 폭 넓게 확보한 계기가 되었다는 것은 자명하다. 랭보의 시는 백오십 년 동안, 분석이 이루어졌지만 그 시의 내면이 다 밝혀졌다고 할 수 없는데,

  세계의 수많은 학자, 문학가 또는 문학종사자들이, 문학애호가들이 랭보를 알려하고 그를  문학의 범주 안에서 인류의 커다란 자산으로 인식하는 것은 왜일까? 오랫동안 쉽게 해석이 안 되는 시를 그토록 대접하는 것은, 그들의 자폐성이나 정신병 때문일까.

  시 또한 깊이와 경중이 있을 것이고, 기초적 화법 가령 철수는 영희와 서정적으로 놀며 난해한 짓을 하곤 한다, 를 너무 난해 해서 알아들을 수 없다고 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고. 심화된 화법, 소위 2000년대 난해시를 그냥저냥 읽어내는 사람도 있겠고

  권혁웅 시인은 화자의 내면을, 시의 전체적 맥락과 상징성, 유기적 관계 등을 파헤치기 위해 하루종일 시를 들여다보기도 한다는데, 그들은 다 정신이상자들인가? 그렇다면 그는 돈 벌기 위한 수단으로 대학교수를 하는 멍청한 자인가?

  난해시는 내가 못 알아먹으면 난해, 내가 알아먹으면 안 난해다. 대체로 기준은 자신의 독서력과 독파력에 달린 경우가 더 많다. 전국에 분포한 수많은 창작 교실에서는 그냥 기분대로 싸구려 감상을 남발하는 시보다, 시를 향해 진실하고 공고한 노력을 기울인 시를 시라 여기고 탐독하고 공부한다.

  내 취향이 아니면 무조건 배척부터 하고 보는, 소위 시 쓴다는 사람들의 안일한, 그리고 나른한 시각이 흔한 말로 진정성인가, 모른다는 말을 피하기 위한 탄식인가?

  조연호를 기준으로 한국문학의 전후를 따지는 사람도 있다는데, 그런 객관적인 평가를 받는다면 조연호는 괴물이 아니라, 현존하는 위대한 시인 중의 하나이다.

  나는 늙으면 모르는 시는 모른다 하고, 아는 시를 찾아 열심히 읽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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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石木님의 댓글

profile_image 石木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하이데거가 '언어는 존재의 집'이라고 했던가요?
그가 시인의 역할을 높이 평가한 것은 시인이 철학자와 더불어 존재의 진실을
표현해 주는 사람이라고 보았기 때문이겠지요.
먼저 말이 있고, 학자들이 그 말의 체계를 연구하여 문법을 만드는 것이므르
시인이 창조하는 언어는 문법에 우선하는 것이라고 말해도 과언이 아닐 거라고 봅니다.
문제는 시인의 그 말이 어떤 형태로든 청자(독자)에게 감응되어 기존 문법에 맞는 말 이상의
의미로써 작용하느냐 아니냐 하는 데에 있겠지요.
시 또한 시대의 산물이고, 소통을 전제로 하는 언어예술이므로, 시인은
새로운 표현방식을 창조할 때에도 그것이 어쨌든 '언어'의 구실을 해야 한다는 점을 중시하여
최선의 노력을 해야 할 것입니다.
책을 읽는 인구가 점점 줄어들고 있는 게 오늘의 현실인데, 인터넷과 영상매체의 영향도 크겠지요.
요즘의 일반인들은 복잡한 문장을 기피합니다.
그래서 저는 시인들이 첨단의 사상과 감각을 이야기하면서도 가급적이면
모든 사람들이 어렵지 않게 접근할 수 있도록 하는 친절성을 발휘해 주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가끔 합니다.
시의 대중화, 사랑과 나눔의 사회 참여..
말을 이렇게 하지만 물론 그게 단순한 일이 아니라는 건 압니다.
별로 아는 바도 없으면서 이런 댓글을 달아 혹시라도 활연님의 글에 누를 끼친 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나는 늙으면 모르는 시는 모른다 하고, 아는 시를 찾아 열심히 읽고 싶다.' 라고 하신 말씀에 공감합니다.
조금 다른 점이 있다면 저는 '이미 늙었고' 아는 시를 찾아도 별로 '열심히' 읽지는 못한다는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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