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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더이상 기다릴 수 없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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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윤서영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1건 조회 294회 작성일 18-12-06 1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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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더이상 기다릴 수 없네


미술도구가 잔뜩 든 박스를 들고 어기적 어기적 걷고 있었다.

햇살은 따사로웠는데 마음은 기쁘지가 않았다.

'난 어디로 가고 있는거지.'

관공서 건물을 빙 둘러서 걷는데

발밑에 지렁이 한마리가 꿈틀거리고 있었다.

'넌 왜 이렇게 건조한 시멘트 바닥에 몸을 비비고 있니'

불쌍한 마음에 화구박스에서 연필 두 자루를 꺼내서 지렁이를 집어 흙더미에 던져 주었다.

'그래 넌 눈이 없으니까 불행을 자초할 수도 있지'


그때 뭔가 마음속에서 꿀렁이는 것이 있었다.

'무겁다'

들고 있던 화구박스를 전봇대 옆에 두고 왔던 길을 도망치듯 되돌아 뛰었다.

미친듯이 뛰었다.

숨이 가빠 뛰던 것을 멈추고 싶었지만 참고 뛰었다.

역이 가까워왔다.

내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그제야 실감이 났다.

'나는 도망치고 있는 거다. 그치만 대체 무엇으로부터?'

"이전의 나로부터."

지하철을 타고 아무곳으로나 향했다.

열차의 쉭쉭대는 소리는 나에게 주문을 거는 것 같았다.

'너는 결코 너로부터 도망치지 못할거야'

아무곳으로나 향했으나 결국 아무 역에서도 내리지 못했다.

수만의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나는. 왜. 여기. 지금. 나는. 나. 나.. 나... 나는...'

어쩔 수 없이 떠밀리듯 종점에서 내려 한참을 역안 벤치에 엎드려 누워있었다.

쇠로된 벤치는 차가웠다. 얼굴을 팔에 묻었다.

한참을 그러고 있었지만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았다.

눈물도 나지 않았고, 그 벤치에 앉으려는 사람도 없었다.

문득 어깨에 메고 있던 가방을 더듬었고,

‘화구박스'

'그래, 내가 그걸 두고 왔지.'


'넌 사실 그림 그리기가 싫은거야.'

문득 스스로를 자책했다.


그녀가 늘 하는 말이 생각났다.

그녀의 대학때 전공은 물리학이었다. 

그런데 교양으로 교육심리학을 맛뵈기로 들은 주제에 자기가 무슨 대단한 심리학자라도 된듯 굴었다.

정말로 쓸데없는데서 자신의 지식을 오용했다.

가장 큰 학설은 그거였다. 인간은 무의식에 의해 움직인다는…

프로이트 나셨다.

그녀는 무언가를 잃어버렸다면 그건 무의식중에 네가 그 물건을 버려버리고 싶었던 것일 수 있다며 물건을 잃어버려서 속상해 죽겠는 나를 본질적으로 질책했다.

그녀는 늘 그렇게 내가 자의로는 절대로 변화시킬 수 없는 부분들을 비난했다.

‘나는 잘못되었다’


내가 정말 무의식 중에 화구박스를 버리고 싶었을까?

만약 그렇다면 그게 잘못일까?

내가 무의식 중에라도 그림을 그리기 싫다고 생각하는 것이 잘못된 일일까?


‘돌아가자’

‘내가 그걸 진짜 왜 두고 왔을까’

화구박스를 두고 왔던 전봇대로 돌아왔다.

그것은 그대로 있었다.

‘다행이다’


이런 신호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종종 감이 안온다.

누군가 가져갔어야 할 화구박스가 그대로 있다는것.

난 사실 그림을 그리기 싫어서 화구박스를 버렸는데, 다시 찾았으니 그림을 다시 그려야만 하는 운명이라는 건가?

아니면 이 모든게 신호라고 할만한 의미조차 갖지 못하는 우연의 일치일 뿐인걸까?


화구박스는 여전히 무거웠다.

‘인생의 짐’


짊어지는 짐의 무게만큼이나 인생도 무거워진다.


나는 단한번도 짐을 간소하고 가볍게 메고 다닌적이 없다.

이걸 넣으면 다른 것이 눈에 밟히고 이걸 넣으면 다른 것도 똑같이 중요한 것 같아서 몇가지만 추려서 넣을 수가 없다.

전부 다 때려 넣어 커다란 짐덩이를 만들고 나서야 마음이 안심이 되고 흡족하다.


내 화구박스도 그런 메커니즘에 의해 만들어진 괴물이었다.

잠시간 내려놓고 싶은 것도 이해가 갈법한 그런 무거운 녀석이었다.


‘이제 어디로 가야하지’

다시 원점이었다.

문득 나는 지하철을 타고 종점에 다녀온 그 3시간 가량 내가 많이 늙었다고 생각했다.

‘3시간 14분 더 죽음에 가까워진거야.’

'나의 시간은 나의 죽음으로 달려가니까.'


‘빨리!’

더이상 기다릴 수 없었다.

내가 나를 기다릴 수 없었다.

체육대회에서 두 사람이 한쪽 다리씩을 함께 묶고 걷는 시합을 하는 것이 생각났다.

나는 마음이 급해서 또 다른 내가 다리를 미처 들기도 전에 내 다리만 들고 혼자만 앞서나가려고 한다.

그러다보니 몸이 자꾸만 기울고 마침내는 넘어져버리게 된다.


“꽈광-우르르르”

눈이 없어 불행을 자초하는 지렁이처럼 나도 이런저런 생각에 눈이 멀어 발 앞에 돌부리를 미처 보지 못했다.

넘어지며 화구박스가 바닥과 부딪혔다. 뚜껑부분이 깨지면서 박스의 잠금쇠가 풀려버렸고 그 안에 있는 것이 쏟아져 나왔다.

목탄, 연필, 지우개, 픽사티프, 파스텔, 오일파스텔, 수채화 파레트, 붓, 그밖에 각종 재료들이 왕창 쏟아져버렸다.


‘에잇 짜증나’

너무 많은 것이 쏟아져 나와서 담아야겠다는 생각보다 버려야 겠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버리고 도망가고 싶었다.

아까 실제로 버리고 도망갔던 것 보다 이번에는 더 확실한 명분이 생겼다.


‘아니다, 이게 얼마짜린데’

화구들을 주섬주섬 주워 담기 시작했다.

해는 어느덧 붉음을 토하며 서쪽으로 뉘엿해지고 있었다,

‘벌써 시간이 이렇게’

내가 그림을 그리려고 했던가. 

이 무거운 화구박스는 왜 들고 나온거지. 

혼란스럽다.


기쁜 마음으로 돌아갈 곳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정처없이 걸으려고 나왔던 것이 기억난다.

“노마디즘” 

괜히 떠오른 단어를 혼잣말로 속삭여본다.

내가 아끼는 것들을 전부 가지고 나왔던 것 같다.

이대로 이것들을 가지고 사라져도 좋을 것 같다.

‘대체 어디로 가야하지’

같은 질문만 반복한다.


어깨에 멘, 화구박스와는 별개로 또 무거운 가방을 고쳐 멘다.


아직도 용서할 수 없는 것들을 생각한다. 

지금은 돌아갈 수 없는 곳들을 생각한다. 

다시는 만날 수 없는 사람들을 생각한다.

이제는 기억해 낼 수 없는 싯귀를 생각한다.

그렇게 매일 매일 멀어져가는 것들을 기린다.


터덜터덜 걸어 도착할 그곳이 내 터전이자 무덤이 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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