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수지의 어둠 [황인찬] > 소설·수필

본문 바로가기
사이트 내 전체검색
시마을 Youtube Channel

소설·수필

  • HOME
  • 창작의 향기
  • 소설·수필

☞ 舊. 소설/수필   ♨ 맞춤법검사기

 

 

모든 저작권은 해당작가에게 있습니다.무단인용이나 표절을 금합니다

저수지의 어둠 [황인찬]

페이지 정보

작성자 profile_image 존재관련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1건 조회 511회 작성일 18-12-16 14:19

본문

저수지의 어둠[황인찬]

 

우리는 말없이 헤드라이트의 빛만을 보고 있었다

 

우리는 우리의 불안과 슬픔을 모르는 척 했고

터널이 빠르게 지나갔다

 

끝없이

앞으로 뻗어 가는 빛

 

저수지에 도달하기까지

그 시간이 너무 길게만 느껴졌다

 

저수지에는 깊이가 없고 내면이 없고

저수지에 비치는 것은 저수지 앞에 서 있는 것들

 

저수지 내부의 무엇인가가 그 안으로부터 튀어 오르리라는 것을 상상하기 어려웠다.

 

우리가 어젯밤 함께 나눈 것은 뭐였지?

그것에 대해 생각하는 동안

저수지의 수면이 생명을 얻은 무엇인가처럼 꿈틀거리고 있었다.

 

저수지에는 깊이가 없고 내면이 없고

끝없이 앞으로만

돌아오지 않고

 

우리는 지나갔다

저수지에 도달하는 일은 없었고

 

저수지 내부의 무엇인가가 그 안으로부터 튀어오르리라고는 상상하기 어려웠다.

 

 

 

 

 

이제 그만하자.너무 지쳤어.

더 말해봤자 서로 상처만 들춰낼뿐이야.

내말에 넌 고개를 끄덕였어.

이해하는게 맞지?

근데 우리..정말 괜찮을걸까?

괜찮다니 뭐가?

의문스러운 표정으로 바라보자 넌 살짝 미소를 띄며 말했어.

아무리 절망스럽다고 해도 너무 쉽게 죽음을 말하는게 아닌가해서.

흔히 사람들이 말하는 것처럼 죽을 각오로 무언가를 한다면 못해낼게 없는건 아닌지,

한번쯤 다시 생각해야하는게 아닌지 해서말이야.

말할때에 넌 정말 편안해 보였어.

삶에대한 미련이라는게 사라져서일까?

그렇다는건 정말 다른이유에서 말하는게 아닌거잖아.

안심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걱정이 됐어.

선택에서 잘못된걸 고를 확률이란 언제나 존재하지.

그때마다 의문을 가지거나 돌이켜 생각을 한다면 결국 아무것도 할수 없는 상태가 되어버릴거야.

후회와 회한만이 가득한 상황이 되어버리는거지.

아무런 뜻없이 그저 기우로 말하는 너한테 뭐라고 대답해줘야하는걸까.

정말 고민이 됐어.

그러다가 문득 떠올랐어.

넌 산다는게 의미가 있어?

대체 무얼 위해서 살아야 하는건데?

행복,그 실체없는 쾌락을 위해서야?

편안함과 부드러움을 느끼면서 전혀 불안하지 않은 상태가 행복일까?

넌 언제 행복하니?

오랫동안 행복한 적이 있었어?

행복과 쾌락이 뭐가 달라?

난 수많은 질문을 너에게 쏟아부었지.

답이 없는 질문들.생각은 할 수 있지만 답을 찾을 수 없는 것들.

한동안 우리는 말없이 헤드라이트의 빛만을 봤어.

어째서일까.

아무런 생각을 하지 못하는건 슬픔이나 불안,갈등,아픔등도 모두 행복과 다름없는 감정일진대 왜 알지 못하는걸까.

어쨌거나 우리는 우리의 불안과 슬픔을 모르는 척했고 여기까지 오게 되었어.

감정따위야 그냥 무시해버려도 상관없는건데,

무시해도 죽음과 만날 이유는 없는데 왜 우리는 그런 감정의 소비만으로 절망을 맛보고 힘들어 하는걸까?

그런 생각을 할 즈음에 터널이 빠르게 지나갔어.

갑자기 어두워진것도 아닌데 아니 헤드라이트 불빛에 의지하며 가다보니 터널 안이 오히려 밝아진 기분이 들었는데도 무서워졌어.

끝없이 이어진 것 같은 터널.

앞으로 뻗어가는 빛이 우리의 삶이 계속 이어질거라는 불안을 암시하는 것 같았거든.

저수지에 도달하기까지 아무런 말을 못할 것 같아.

이젠 눈물을 흘리는 시간이 아까울거야.

감정없이 눈물을 흘린다는건 두려운 일이거든.

시간은 흘렀고 목적지에 도착했어.

차에서 내려 물가에 걸어갔지.

그 시간이 너무 길게만 느껴졌어.

가만히 물을 바라보았어.

저수지에는 깊이가 없고 우리는 서로 바라보면서 웃었어. 

씁쓸해보이는 웃음 사이로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았지.

내면이 없고 투명하지도 않은 수면.

저수지에 비치는 것은 저수지앞에 서 있는 것들이었어.

잔잔한 수면위에 비치는 모습을 볼 때 왠지모르게 서러움이 밀려왔어.

정말 끝내도 되는걸까?

너는 다시 한번 물었어.

괜찮아.우리는 정말 잘하고 있는거야.

내가 말하니 넌 다시 미소지었어.

세상에서 가장 슬픈 미소였어.

내 마음속에서 무언가가 울컥 치밀어 올랐어.

나를 관통한 것.

저수지로 빠져들었어.

저수지 내부의 무엇인가가 그 안으로부터 튀어 오르리라는 것을 상상하기 어려웠어.

그저 깊숙이 빠져들어가는 무언가를 지켜보면서 우리가 어젯밤 함께 나눈 것은 뭐였지?라는 생각을 했어.

끝이란 정말 끝이 아닐수도 있을거야.

항상 끝을 말하지만 시작을 원할수도 있는거야.

그것에 대해 생각하는동안 더 이상의 대화가 필요없을거라 생각했어.

지금껏 말해온 모든게 자꾸만 반복된다고 느껴졌거든.

늘 같은말을 반복하면서 두려움에 떨고 있었던거야.

우리는 서로 마주보며 손을 잡았지.

알겠어.

무얼 잊고있었는지 이제야 알겠어.

네가 말하는 순간에 나도 알았어.

저수지의 수면이 생명을 얻는 무엇인가처럼 꿈틀거리고 있었어.

이성을 가진 인간들은 반복된 습관으로 많은걸 만들어 내는거야.

신을 만들기도 하고,행복을 만들기도 하지.

선과 악이라는 개념을 만들어 서로 나누어 다투게 하고 이념과 사상을 만들어서 옳고 그름을 다투는거지.

모든게 다 반복에서 비롯된거였어.

기시감,데자뷰,관습,풍습,관념등 이 모든게 다 반복으로 만들어진거야.

영원히 살아갈 수 있는 인간도 자손을 위해서 내 분신을 위해서 이유를 만들어놔야 한다는 생각을 누군가가 한거지.

저수지 앞에 와서야 깨달은거야.

저수지에 깊이가 없고 내면이 없고 반복이 없어.

끝없이 앞으로만 나아가는 시간이 존재했어.

다시는 돌아오지않고 머무르지 않는 반복.

그 반복이 사라지니까 그제야 덜 서글퍼졌어.

우리는 지나갔어.

저수지가 시작되는 장소에 도착했지만, 

저수지에 도달하는 일은 없었고 시작이 없으니까 당연히 끝도 존재하지 않았지.

이젠 시작하려 해.

지친 상처를 모두 끌어안고 앞으로 걷기 시작했어.

물은 발목에서 무릎으로 허리를 지나서 턱끝까지 차오르고 곧 머리끝까지 잠기었지.

우리는 손을 더 꽉 잡았어.

물은 몸속으로 흘러들어왔고 숨이 턱 막혀왔지. 

네 얼굴이 일그러졌는데 웃는것처럼 보였어.

정말 시작하는구나,라고 생각했고 의식이 끊겨버렸어.

저수지 내부의 무엇인가가 그 안으로부터 튀어 오르리라고는 상상하기 어려웠어.

이제 모든게 시작된거야.

추천0

댓글목록

 


  • 시와 그리움이 있는 마을
  • (07328) 서울시 영등포구 여의나루로 60 여의도우체국 사서함 645호
  • 관리자이메일 feelpoem@gmail.com
Copyright by FEELPOEM 2001.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