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흙과 뿌리의 궁합/이용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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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김용호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132회 작성일 19-01-30 0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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흙과 뿌리의 궁합

이용미

각기 다른 외국어 통역 다섯 명을 뽑는 면접관 중 한 사람으로 참석했다.
면접자 중에는 근무가 같은 날이면 얼굴을 맞대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어서
그들의 환경과 장단점을 알고 선정이나 탈락 후 어떤 생활일지
짐작도 할 수 있어 많이 불편한 자리였다.
상황을 알 수 있다는 게 장점이면서 단점일 수 있다는 것을 되씹으며
면접 내내 달아오른 얼굴 열기를 손바닥으로 몇 번이나 식히려 했는지 모른다.

결국, 탈락자는 뿌리 이동을 한 외국인들이었다. 어쩔 수가 없었다.
완벽하게 뿌리내리기란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튼실한 뿌리라도 옮겨진 땅에 익숙해지기 위해서 겪어야 하는
진통을 경험해 보지 않고 어찌 알랴.

길고 파랗게 올라온 윗 부분 두 잎으로 충분하다.
요즘 햇김 먹는 맛에 꽂혀 하루걸러 만드는 양념장이다.
간장에 쫑쫑 썬 파와 깨소금, 참기름 한 방울만 넣으면 되니 간단해서
좋은데 단단히 뿌리내린 대파를 잎만 톡 따는 재미가 더 좋다.
한 달이나 되었나?
길에서 무더기로 놓고 파는 대파 한 단을 사서 몇 뿌리만 다듬고 나머지는
빈 화분에 아무렇게나 묻어두었던 어느 날, 무심코 보니 새잎이
쑥쑥 자라고 있지 않은가.
흔들어보니 뿌리가 단단히 박혔다.
넉넉하고 부드러운 흙과 튼실한 뿌리의 조화, 천생연분이었을까?

그 옆에는 시원찮게 자라고 있는 쪽파가 있다.
시장에 놓여있는 김장양념거리 중 쪽파 다발은 그 무게에 버금갈 정도로
뿌리에 진흙이 잔뜩 묻어있었다. 떠들썩하던 김장 시장이 끝난 무렵이라
타박하며 가릴 형편이 아니라서 울며 겨자 먹기로 사 와서는
끈적거리는 진흙과 한 덩어리가 된 파뿌리 중간 가까이 툭툭
잘라낼 수밖에 없었다.
아깝게 잘린 그것들을 흙이라도 쓰려고 채송화 피고 지어버린 화분에
소복하게 올려놓았다.

그렇게 얼마가 지났을까. 눈에 보일락 말락, 푸르스름한 싹이 돋고 있었다.
워낙 질척한 뭉텅이 진흙은 이미 돌덩이 같이 굳어버렸는데
그 속에서 싹을 틔울 줄이야.
여린 싹 옆으로 가만가만 물을 주었는데 물기가 마르자
흙은 더 단단해져 버렸다.
손을 대면 싹이 다치겠고 뿌리내릴 흙을 갈아주지 않는 한 제대로
크지도 못할 것 같았는데 그럭저럭 부대끼며 키를 높이고 있다.
부실한 흙이지만 그런 대로 제구실하는 뿌리의 만남은
보통 궁합은 되었던 모양이다.

온 밭에 널브러져 발길에 차이고 밟히며 밭가에 무더기로
쌓인 것이 청자 조각이라니. 아무리 들여다봐도 천 년 넘는 세월을
가늠할 수가 없다.
아득한 1억 년의 세월 전 호수였던 이곳에 쓰나미 몇 천 배 위력의
난리가 나고 호수는 고원으로 변하게 된다.
호수 아래 깔린 진흙은 자기를 만드는 데 더없이 좋은 재료가 되고
그렇게 발달하고 부흥하다 기록 없이 사라진 흔적이다.
아무 데도 쓸데없을 것 같은 이 조각이 바로 고려청자의
뿌리였다는 생각을 한다.
조물주가 만들어 키우고 커 가는 생물이 아니라 사람이 만들어낸 뿌리,
조물주의 정성과 바람만큼 들이고 깃들인 혼의 물체. 정성과 사랑으로
바라보고 보살피는 중에 불가항력의 사건에 묻혀버린 뿌리는
3천 년 후에도 발아된다는 연꽃 씨앗과 같이 숨 거두지 않았다가
이제야 세상에 서서히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비색자기와 볼품 없는 초기 청자 조각, 이 또한 떼려도 뗄 수 없는
흙과 뿌리의 운명 같은 궁합일 거야, 그 조각 밟지 않고는 한 걸음도
뗄 수 없는 길을 한참이나 걸어 나오며 혼자 중얼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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