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돼지고기 비계와 곤달걀 /윤일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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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김용호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720회 작성일 19-02-03 18: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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돼지고기 비계와 곤달걀

윤일호

정읍 신태인에서 살다가 아들놈 하나 잘 키워보겠다고 농사만 짓던
부모님은 일곱 살이던 나와 여동생 둘을 데리고 무작정 전주로 이사를 했다.
핑계는 자식농사였지만 사실 신태인에서 짓던 농사도 신통치 않았고,
몇 해 흉년이 들어 나올 수밖에 없는 형편이었다.
농사만 짓던 부모님이 전주에 나와서 할 수 있는 일이야 공사판에서
일을 하는 것밖에 없었다.
흉년으로 마땅히 가진 돈도 없으셨고, 딱히 아버지가 할 수 있는
재주가 있으신 것도 아니었다.
그 당시에 몇 달 취직이 되었다가 한 번 드시면 끊을 수 없던 술 때문에
출근을 하지 않아 그만두었다고 한다.
아버지는 노는 걸 좋아하시던 분이어서 시골에서 농사를 지을 때도
막걸리를 드시기 시작하면 끝낼 줄 모르는 분이었다.
그런데 문제는 전주로 나와서도 힘든 공사판 일을 하다가 술을 입에 대면
보름이고 한 달이고 일을 가지 않고 술을 달고 사셨다.
어머니는 그런 아버지를 원망하기도 하고, 많이 안타까워하셨다.
처음 이사를 와서 살집이 없어서 뚝딱 이틀만에 다섯 식구 살 아담한
벽돌집을 지었다.
지금 기억으로는 아주 작은 터였다.
돈을 주고 땅을 산건지 아니면 누군가 빌려준 것인지는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 우리 다섯 식구가 한 방에 붙어서 잘 정도는 되었다.
방이 하나였으니까.
아마도 우리 집 둘레에 오촌 당숙 식구들이 살고 있었는데 제법
그 동네에서는 잘 사는 축에 들었고 그 덕에 그 둘레에
터를 잡을 수 있지 않았나 싶다.
당숙네는 아이가 없다가 뒤늦게 아이가 태어났는데 나보다 다섯 살 어린
우리 집 막내보다 몇 살 더 어렸다.
내가 살던 동네는 전주에서도 변두리였고, 못 사는 사람들이 많은 동네였다.
우리 동네 옆에는 숙사라는 곳이 있었는데 전주 동북초등학교 뒷 담장 옆으로
줄지어 있었다.
사실 지금은 상상할 수조차 없는 나무 판자촌이었다.
닥지닥지 나무집들이 붙어있었는데 방 한 칸에 부엌이라고도 할 수 없는
공간뿐이었다.
화장실은 여러 사람들이 함께 쓰는 공동화장실만 있었다.
그 집들 골목을 지나다보면 어디가 어디인지 길을 잃을 정도로 판잣집들이
줄지어 있었고, 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었다.
불과 삼십년 전이지만 그렇게 어렵게 살던 시절이 있었다.
그 시절 아버지는 술을 좋아하셨고, 술을 많이 드시면 어머니를 때리곤 했다.
지금도 생생한 기억이 아버지가 어머니를 엄청 때리던 날, 나는 우는 동생들을
달래고 있었다.
어머니를 실컷 두들겨 패던 아버지는 술을 드시러 나가시고 어머니 얼굴과
몸에는 온통 멍투성이였다.
퉁퉁 부은 얼굴로 어머니는 “일호야, 엄마가 힘들고 집을 나가고 싶어도
너때매 산다.” 하고 말씀하셨다.
지금도 그 슬픈 기억은 잊을 수가 없다.
삐뚤어지고 싶기도 했고, 패륜아처럼 아버지를 두둘겨 패고 싶기도 했다.
집은 나가고 싶은 충동도 여러 번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맞으면서도 자식들을 위해 희생하는 어머니가 계셔서
버틸 수 있었다.
그럴 때마다 어머니를 함부로 대하는 아버지가 정말 밉기도 하고,
아버지처럼 살지 말아야지, 하고 스스로 되뇌이고는 했다.
좋은 기억보다는 안 좋은 기억을 이야기했지만 물론 좋은 기억도 있다.
바로 돼지비계와 곤달걀 이야기가 그렇다.
아버지가 즐겨 드시는 음식이었는데 아버지가 드시는 모습을 보면서
나도 자연스럽게 그냥 먹게 음식들이다.
어렸을 때부터 시골에서 살아서인지 아님 비위가 약해서인지 나는 차를 타면
심하게 멀미를 했다.
차를 타기 두려울 정도로 심했다. 가까운 거리를 가는 시내버스만 타도
멀미를 할 정도였다.
그래서 차를 탈 때면 미리 검은 봉지를 준비해서 차를 타는 게 일이었다.
어머니는 그런 내가 안쓰러웠는지 어떻게 하면 멀미를 하지 않을까
알아보기도 하고 민간요법을 알아보셔서 약을 지어 먹이기도 했다.
그러다가 4학년 어느 날 우연히 학교 선생님이 돼지비계가 멀미에 좋다는
이야기를 하셨다고 한다.
어머니 말씀으로는 어느 날 내가 학교에 다녀와서는 선생님이
그렇게 말씀하셨다며 돼지비계를 사달라고 했다한다.
아버지도 돼지비계가 좋을 수 있겠다며 맞장구를 치셨다.
그리고 며칠 지나지 않아 아버지가 돼지비계를 두 근을 사오셨다.
사실 아무리 어려운 시절이라지만 누가 돼지비계만 따로 사서 먹기나 하겠나.
나도 돼지비계는 그전까지 한 번도 먹어본 경험이 없었다.
돼지고기 살점에 붙은 비계도 떼어낼 정도였으니까.
아버지는 아주 식성이 좋으셔서 무엇이든 잘 드시는 분이었다.
물론 돼지비계도 잘 드셨다.
멀미가 엄청 심해서인지 아니면 아버지가 함께 드셔서인지 잘 모르겠다.
그 날 사온 돼지비계를 어머니가 삶아주셨고, 나는 한 번도 먹어보지 않은
돼지비계를 그 날 한 근 넘게 혼자 먹었다.
정말 내가 신기할 정도였다.
왜 그랬는지 지금도 이해할 수 없다.
하지만 그 날 이후로 나는 돼지비계를 엄청 자주 먹게 되었고, 좋아하게 되었다.
살점 하나 없는 순전히 돼지비계만 그렇게 잘 먹었다.
지금도 그 맛을 잊을 수 없는 것이 참 고소한 맛이었고, 씹는 맛이 일품이었다.
그것이 효과가 있어서인지 신기하게도 언제부턴가 멀미를 하지 않게 되었다.
그 이후로 나는 돼지고기 살코기은 전혀 먹지 않았고, 돼지비계가 먹게 되었다.
지금이야 누가 돼지비계만 먹을까 싶기도 하지만 그 당시에 먹었던
돼지비계 맛은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곤달걀도 그렇다.
지금 곤달걀 이야기를 하면 의외로 모르는 분들도 많을 듯하다.
곤달걀은 암탉이 알을 품다가 병아리로 부화하지 못한 알을 말한다.
부화를 하지 못했으니 버려야 마땅한데 어려운 시절에는 그런 곤달걀도
영양 간식 가운데 하나였다.
어느 날 일을 가셨다가 들어오신 아버지가 검은 봉지 가득 무언가를 들고 오셨다.
어머니는 그걸 삶으셨고, 아버지는 저녁식사를 하시면서 그렇게 맛있게 드셨다.
그냥 달걀인줄만 알았다.
그러다가 아버지가 “너도 한 번 먹어볼래?”하셨지.
삶은 달걀을 깨면 털이 보송보송하게 난 아주 작은 병아리가 들어있었다.
털이 보송보송한 달걀을 삶아서 먹는 것도 신기했지만 아버지가 나에게
먹어볼 것을 권했을 때 주저하지 않고 곤달걀을 입에 넣은 것은
지금 생각해도 미스터리다.
무엇보다 곤달걀은 씹는 맛이 일품이었고, 고소한 맛도 최고였다.
지금도 그 맛을 잊을 수가 없다.
희한하게 털이 나지 않은 곤달걀보다 털이 보송보송한 곤달걀이
더 고소하고 맛이 있었다.
어떤 분들은 털이 나지 않은 것만 드시는 분도 있다고 하는데 나는 그때부터
털이 보송보송한 곤달걀을 먹게 되었다.
아버지는 달마다 여러 번 곤달걀을 사오셨다.
나는 기다렸다는 듯이 아버지와 곤달걀을 맛있게 먹었다.
어머니가 맛있게 삶으셔서인지 아니면 먹을 것이 없던 그 당시에
그나마 고소한 맛이 곤달걀이어서인지는 잘 모르겠다.
중학교, 고등학교 시절까지 나는 돼지비계와 곤달걀을 아버지와 함께 즐겨 먹었다.
아버지 생각을 하면 좋은 기억이 별로 없는데 좋았던 추억이 바로
돼지비계와 곤달걀이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20대 이후로는 잊고 살다가 30대 초반에 결혼을 했다.
아버지는 결혼하고 한 해만에 돌아가셨다.
그런데 그 후로 얼마 지나지 않아 정말 희한하게 곤달걀 생각이 났다.
무엇인가를 그렇게 맛있게 먹었던 기억이 없어서일까 아니면
어린 시절 추억이 돋아서일까.
아니면 아버지를 추억해서일까.
나는 곤달걀을 어디서 파는지 알아보기 시작했다.
하지만 어디서 파는 지도 알 수 없었고, 막연히 그냥 한 번쯤 먹어봤으면 하는
생각만 가지고 있었다.
그러다가 충남 금산군 시장에서 판다는 이야기를 어르신들께 듣게 되었다.
너무 먹고 싶었는지 나는 그 소리를 듣자마자 바로 금산 시장으로
차를 몰고 갔다.
물어 물어서 가보니 길가에서 곤달걀을 파는 할머니를 만날 수 있었다.
할머니는 젊은 사람이 곤달걀을 사러 온 것이 신기했는지
“나이든 분들도 잘 안 드시는디 젊은 분이 어떻게 털 있는 걸
달라고 허네.”하셨다.
나는 반가운 마음에 웃으면서 “어렸을 때 아버지랑 많이 먹어서요.”하고
털이 보송보송한 곤달걀로 두 판을 샀다.
집에 오자마자 아내에게 곤달걀을 삶아달라고 했다.
아내는 그런 내가 신기했는지 “신랑, 어떻게 이런 걸 먹어?”했다.
아내가 삶아준 곤달걀 두 판을 나는 순식간에 먹었다.
먹이에 굶주린 사자처럼 먹어치웠다는 표현이 맞을 정도였다.
그 이후로도 나는 곤달걀이 가끔씩 생각났다.
장승초 근처로 집을 짓고 이사 와서는 마을 어른들과 이야기를 나누다가
어찌어찌 곤달걀 이야기가 나왔다.
소양에 곤달걀을 판다는 거다.
옆집 동필아저씨와 바로 곤달걀 다섯 판을 사와서 잔치 아닌 마을
잔치를 벌였다.
마을 어르신들도 털이 보송보송한 곤달걀을 잘 드시지 못했다.
결국 털이 난 곤달걀 두 판은 내 차지가 되었고, 어르신들은 털이 나지 않은
곤달걀을 드셨다.
그 이후로는 곤달걀을 어쩌다 한 번 몇 개정도 먹기는 했지만
많이 먹지는 않는다.
그리고 언제부턴가 또렷하지는 않지만 더 이상 곤달걀을 먹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았다.
왜 그런지는 잘 모르겠다.
상담과 심리를 공부한 선생님에게 아버지 이야기와 곤달걀 이야기를 했더니
“스스로 아버지에 대한 상처와 트라우마를 극복한 거예요.”하고 말씀하신다.
그런 거 같기도 하고. 어쨌든 어린 시절, 나에게 멀미를 하지
않도록 해주었던 돼지비계 그리고 곤달걀의 추억은 잊을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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