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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루와 가려움을 참을 수 없었던 그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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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교관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516회 작성일 19-02-19 15: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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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루와 가려움을 참을 수 없었던 그녀

 

버루는 오늘도 시험을 대충보고 나왔다. 하얀 종이 위에 까만 글자가 가득 들어있을 뿐, 시험지에 대한 버루의 반응은 언제나 시큰둥했다. 고개를 꺾어 본 하늘빛은 블루코발트 같았다. 블루코발트는 어떤 색이지?라고 묻는다면, 글쎄 잘 모르겠는 걸, 하고 말 것이다. 도로는 잿빛이고 사람들은 스산한 바람에 등을 한껏 구부리고 땅을 쳐다보고 바쁘게 걸어가고 있었다. 자동차들도 내일이면 세상이 끝날 것처럼 액셀러레이터를 밟아가며 달렸다.

버루도 땅을 바라보며 터득터득 걸어가고 있었다. 누군가 버루의 앞에서 어두운 그림자를 만들었다. 버루는 그림자가 드리워진 앞을 향해 고개를 들었다. 거기에는 머리가 하얗게 샌 할머니가 허리가 조금 구부러진 채로 버루를 쳐다보고 있었다. 버루도 할머니를 힘없는 눈으로 바라보았다.

“난 파키스탄에서 온 할머니야, 너도 파키스탄에서 왔지?”라고 말을 했다.

버루는 할머니에게 무슨 소리냐고 했고 자신은 한국 사람이라고 했다.

“할머니는 파키스탄 사람인데 어째서 한국말 따위를 이렇게 잘 하시는 거죠?”라고 물었고 할머니는 이곳에서 파키스탄의 언어를 사용하면 잡혀 간다고 했다.

“아니, 요즘 세상에 누가 잡아 간다는 말이에요?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아요, 할머니.”

“넌 아직 어려서 몰라. 이곳에서 파키스탄의 말을 하면 참치인간에게 잡혀 간단 말이야.”

참치인간은 무엇일까, 하고 버루는 아주 잠시 생각을 했다.

“내가 파키스탄에서 왔다고 절대로 누구에게 말을 해선 안 되는 거야, 알겠지?”

버루는 그저 네,라고 대답을 하고 지나가려 했다.

“그냥 가면 어떡해? 파키스탄에는 말이야 해가 지고 있어. 해가 점점 빨리 지니 큰일이야. 내 딸이 아직 그곳에 있어. 해가 그렇게 빨리 지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는 일이야. 이치에 맞지 않는 일이 일어난다는 것은 재앙이 몰려올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내 딸에게 큰 일이 닥칠 것 같아.”

버루는 파키스탄에서 온 할머니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고개를 끄덕거리며 다시 가던 길을 가려고 했다. 할머니는 버루에게 부탁이라며 하나를 들어 달라고 했다.

“내일 이 시간에 이곳에 다시 올 테니 개구리가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개구리라, 버루는 머릿속에서 개구리의 형상을 만들어 냈다. 그리곤 다시 지우개로 지웠다. 겨울로 접어드는 이 계절의 도시는 메마를 대로 메말라 있었고 파키스탄에서 온 할머니의 그림자는 닳아빠진 빨래 마냥 힘이 느껴지지 않았다.

“글쎄요, 개구리를 어디서 구해야 할지. 재래시장에 가면 황소개구리를 팔긴 하지만.” 버루가 힘없이 말했다.

할머니는 조금 일그러진 표정을 지으며 안 돼! 하고는 황소개구리는 아무 쓸모가 없다고 했다. 버루는, 황소개구리는 아무 쓸모가 없다고 한번 되뇌고 이제 끝이야,라는 표정으로 길을 가려고 했다. 파키스탄에서 왔다는 할머니는 버루에게 넌 분명히 파키스탄에서 왔어, 그런 분위기가 너에겐 아주 강하게 있다고 말한 후 버루의 갈 길을 내 주었다. 버루의 등을 바라보며 파키스탄에서 왔다는 할머니는, 파키스탄을 구할 수 있는 이는 오직 너 뿐이라며 내일 이 시간에 여기서 다시보자는, 늙어 힘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왜 인지는 모르지만 이 도시는 인구 열 명당 외국인이 한 명꼴로 외국인 거주자가 대거 늘어났다. 버루의 생각으로, 아직 고등학생이라 그런 것 따위 중요하지 않았지만 어른들에게서 들리는 이야기로 이 도시가 외국인들이 살기에는 적합하고(의료, 친절함, 거주환경, 재래시장, 환율대비 등) 무엇보다 그들의 식문화인 커피와 빵의 구매가 그들의 나라나 다른 도시보다 수월했으며 자본을 벌어들이기가 훨씬 편리(부당한 처우가 다른 도시에 비해 덜 했다)하다고 했다. 한국의 작은 도시지만 인구가 백만 명을 넘어서고 있고 백화점과 기술력을 요하는 대규모 제조업과 공업단지가 세 개나 들어서있고 항만과 비행장, 고속철도가 개통된 이 도시를 선호하는 유럽의 외국인들이 늘어났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파키스탄이라.

 

내가 어딜 봐서 파키스탄에서 온 사람처럼 보이는 거지?라며 버루는 길을 걸어가다 길거리 식당의 유리창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았다. 아무리 봐도 자신의 모습은 다른 나라 사람처럼 보이지 않았다. 특히 파키스탄 인처럼 보이지는 더더욱 않았다. 눈뜨면 볼 수 있는 흔한 한국인의 모습이었다. 버루 자신의 부모의 조상에 조상 중에도 외국인의 피를 이어받았다는 사람의 이야기는 들어보지 못했다. 음악을 듣던 폰이 울렸다. 폰을 들고 여자 친구와 약속을 하고 그 장소로 발길을 옮겼다.

버루는 여자 친구를 그다지 좋아한다고 할 수는 없었다. 아니다, 버루는 여자 친구를 좋아하고 있다. 여자 친구의 조잘거림을 듣는 것이 버루는 좋았다. 여자 친구의 쉴 새 없이 내뱉는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어쩐지 살아가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깊게 몸속으로 스며들었다. 단지 그랬다. 쉴 새 없이 떠들고 있는 그녀의 목소리가 주위를 가득 메울 때면 공허할 때보다 마음이 편안했다. 그것은 기이한 경험이었고 한 번 그런 경험을 맛 본 후 계속 이어가고 싶었다. 그것은 그녀를 계속 만나고 싶다는 말이겠지. 이후로 그녀와 함께 있으면 종종 편안한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그녀는 자신의 이야기를 묵묵히 들어주는 버루가 좋았다. 다른 사람과 있으면 말없는 성격의 사람이 되었지만 버루 앞에서는 말 많은 말괄량이처럼 변해버렸다.

버루가 여자 친구와 만나기로 한 곳으로 걸어갈수록 날은 점점 힘 잃은 고양이 마냥 고요해졌다. 어디선가 오아시스의 ‘돈 고 어웨이’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겔러그 형제의 목소리가 힘 잃은 대기에 흩뿌려지고 버루는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은 채 주머니의 휴대전화 음악 소리를 더 크게 했다.

두 사람은 버루의 집과 그녀의 집, 딱 중간에 위치한 조그만 동네 공원의 벤치에서 언제나 만났다. 만나서 버루는 그녀의 재잘거리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녀는 신나게 이것저것 이야기를 쏟아냈다. 그러고도 시간이 남으면 그들은 걸었다. 그리고 시간이 다 되면 서로 인사를 하고 각자 집으로 갔다.

벤치에 앉아서 버루는 담배를 입에 물었다. 불을 붙이고 깊게 빨아들이니 담배의 타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다.

 

치이익치이익.

 

입으로 뿜어내는 담배연기는 바람이 불지 않는데도 산발적으로 대기에 흩어졌다. 그녀가 왔고 그들은 나란히 앉아서 담배를 한 개비씩 입에 물고 상념어린 갖가지 것들을 담배연기에 태워 흘려보냈다. 그녀는 담배를 한 대 피우고는 걸 그룹에 대해서 이야기를 했다.

“그녀들이 음악을 하는 건 참을 수 있겠는데 왜 그런 음악을 하는지에 대해서는 이해를 할 수가 전혀 없어. 아니 받아들일 수가 없어. 동의를 못 하겠어. 그녀들 역시 처음에 음악을 한다고 생각을 했을 땐 가수로서, 음악인으로서 사람들에게 공감을 불러들이고 그녀들의 블루스적인 목소리에 맞는 노래를 부르고 싶어 했을 거야. 그런데 회사에서 망쳐놨어. 마치 너희들은 이런 노래를 불러야 해. 어린 아이들이 너희들의 싱글 1집을 너무 좋아했으니 당분간은 이렇게 나가보자고 하면서 그녀들을 계속 부추기고 있잖아. 그녀들이 요상한 옷을 입고 티브이에 나와서 억지웃음과 망가짐으로 그녀들을 알리는 것이 나는 이해가 안 된다고.” 그녀는 걸 그룹에 대해서, 그리고 그녀들이 하는 음악에 대해서 말을 했다.

버루는 그녀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오늘은 그녀의 재잘거림도 다른 날처럼 자신의 마음을 평온하게 해 주지는 못 한다는 것을 알았다. 공원의 바닥은 겨울로 향해 가려는 듯 딱딱해지고 바늘을 쑤셔대도 꼼짝하지 않을 것만 같았다. 버루는 그런 바닥이 어떤지 확인이라도 하는 듯 담배꽁초를 바닥에 고집스럽게 비벼 껐다.

“이봐, 나 말이야 파키스탄 사람처럼 생겼어?”라는 버루의 말에 그녀는 버루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곤란한 눈빛을 한 채 한참을 쳐다보았다. 그녀의 눈동자를 이렇게 쳐다보기는 어쩌면 처음 인 듯했다. 눈동자는 상상이상으로 맑고 투명해서 버루는 조금 놀랐다. 그녀역시 버루의 눈동자를 이렇게 한참이나 바라보기는 처음이었다.

“글쎄, 파키스탄 인이 어떻게 생겼는지에 대해서 나는 잘 알 수가 없어. 그런데 바루 넌 말이야, 확실히 한국인처럼 보이지 않는 건 분명해”라고 그녀가 말했다.

음, 하고 버루는 생각했다. 지극히 한국인처럼 보인다는 것은 자신의 착각이었는지도 몰랐다. 학교에서 배우는 모든 수업도 별로였다. 시험지에 빼곡히 매워진 한글의 활자는 보기만 하면 눈이 아파왔다.

그래서 일까.

그렇지만 파키스탄인은 좀 심하지 않은가.

“파카스탄 사람 같다고 해서 화가 난 거야? 어디서 그런 말을 들었는데?”

버루는 오면서 파키스탄 할머니를 만난 자신의 이야기를 그녀에게 해 주었다.

그녀는 쓸모없는 말을 쉴 새 없이 내뱉는 재주 말고도 타인의 이야기도 제법 자기 일처럼 들어주는 재주도 있었다. 버루는 그녀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앞으로는 여자 친구의 말에 좀 더 귀를 기울여 들어야겠다고 생각을 했다. “개구리라”라고 그녀는 읊조렸다.

“파키스탄사람이라고 해서 기분이 나쁜 건 아니야. 단지 뭐랄까, 지극히 한국인인 것처럼 생겼다고 생각하고 있었던 것에서 직격탄을 맞았다고 해야 할까. 뭐 그런 기분이야. 그냥 그래. 이젠 아무렇지 않아.”

“응, 내가 생각해보니 파키스탄에서도 미인들이 많아서 월드대회에 아주 많이 나올 정도로 예쁜 사람들이 많데.”

“그럼 파키스탄 사람들의 생김새도 알겠네?”

“우리나라 티브이의 연예인들을 보고 한국인의 생김새를 알 수는 없어”라고 그녀가 대답을 했다.

잿빛 하늘에도 거뭇거뭇 어둠이 저 멀리서 연기처럼 몰려오고 있었다.

“그래, 네 말이 맞는 거 같아. 할머니가 말한 개구리는 도대체 무엇일까.”

“나도 무슨 말인지 도무지 감을 잡을 수 없네. 바루야, 내일 같이 가줄까?”

“응, 고마워. 그리고 난 버루야. 뭐 바루라고 불러도 상관없지만.”

“난 바루라고 부르는 게 편해. 왜 그런지는 몰라도 말이야. 예전부터 죽 바루라고 불렀는데 몰랐구나”라면서 그녀는 킥킥 웃었다. 버루는 알고 있었지만 말을 하지 않았다고 말하려다 그만 두었다. 벤치에서 보이는 풍경은 언제나 똑같았다. 공원을 가득 메우고 있는 이름 모를 나무들, 그 위로 보이는 메마른 아파트는 이 도시를 더욱 말라보이게 만들었다. 아파트는 오래되었고 페인트를 덕지덕지 발라서 더욱 안타깝게 보였다. 마치 에셔의 그림을 따라 그리다 포기한 듯 보였다.

아파트 사이로 보이는 삼각형의 하늘이 버루와 그녀가 앉아있는 벤치에서 늘 보이는 유일한 풍경이었다. 바람은 없고 대기는 살얼음을 부어버린 듯 차가워져 갔다.

버루는 여자 친구를 집까지 바래다주려고 여자 친구 집과 같은 방향으로 나란히 걸었다.

“오늘은 웬일이야? 집까지 같이 걸어가고.”

“응, 내일 파키스탄에서 온 할머니를 만나러 가는데 같이 가주는 것에 미리 보답하는 거야.”

“나도 그 파키스탄에서 온 할머니를 만나보고 싶은 걸”라며 그녀는 킥킥 웃었다.

“그런데 바루야, 파키스탄, 파키스탄, 파키스탄하고 계속 그 단어를 말하다 보면 굉장히 친근한 느낌이 들어.”

그녀의 말에 버루도 머릿속에서 잠시 파키스탄, 파키스탄하며 생각했다. 그러자 그녀가 입으로 뱉어봐야 알 수 있는 거야,라고 해서 버루는 길을 걸어가며 파키스탄, 파키스탄, 파키스탄하고 말하다가 “몇 번을 더 말해야 해”라고 물었고, 그녀는 “그건 나도 몰라”라고 대답했다. 버루는 아무리 입으로 되뇌어 봐도 파키스탄이라는 단어는 친근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파키스탄이라는 단어는 더 멀리 자신과는 떨어져있는 폐렴 같은 것처럼 느껴졌다.

버루는 그녀를 집에 넣어주고는 자신도 집으로 갔다. 그녀는 학교에 나가지 않는다. 심각한 공황장애를 겪고 있는데 교실에 들어서면 극심하게 몸이 가려워 참지 못하게 된다. 학교를 다니는 동안 심하게 몸을 긁어서 살갗이 전부 벗겨져 병원에 옮겨진 적도 여러 번이었다. 병원에서는 왜 공황장애가 그렇게 나타나는지 원인을 알지 못했다. 집에서 쉬면서부터 그녀는 공황장애를 겪지 않았고 그 뒤로는 학교를 나가지 않게 되었다.

한번은 버루와 벤치에 앉아있는데 이것 볼래,라며 자신의 상체를 배위로 걷어 올렸다. 손톱에 긁힌 자국이 흉터가 되어 그녀의 배와 등에 굳게 박혀 있었다.

“긁으면, 그것도 심하게 긁으면 너무 시원해. 내 고민이나 걱정이 다 날아가 버릴 것처럼 시원해. 하지만 너무 고통스러워. 아프다는 말로는 표현이 안 돼. 말 그대로 끔찍한 고통이야. 뱀을 피해 다니다가 구석에서 꼼짝 못하는 개구리가 된 기분이야. 결국엔 개구리는 그 뱀의 눈빛에 현혹되는 거지. 그리고 다리부터 서서히 뱀의 아가리에 쳐 박히면서 쾌감 같은 걸 느끼는 거야. 그러면서 개구리는 생명을 잃어가지. 극단의 양극화를 동시에 느끼면서 말이야. (큭큭 웃었다) 이 이야기는 어딘가 책에서 읽은 거야. 딱 나의 이야기거든. 쾌락과 동시에 고통도 동반되는 거지. 가려움은 참을 수 없고 긁는 행위는 멈출 수는 없었어. 이젠 안 그러지만 말이야. 또 모르지 다시 학교에 가게 된다면 그렇게 되지 말라는 법이 없잖아.”

버루는 그녀의 말라있는 살가죽에 혈흔의 자국을 한참이나 바라보았고 그녀는 버루가 오래도록 볼 수 있게 윗옷을 조금 걷고는 한참이나 있었다.

“이것이 공황장애인지 확실하지 않지만 아이들이 많은 곳에 가면 어쩐지 불안해져. 그 똑같은 머리모양에 똑같은 교복을 입고 아이들 특유의 젖비린내 같은 것이, 교실 안으로 들어가는 순간 나를 죄여 오는 거야. 눈만 겨우 보이는, 같은 머리모양의 아이들이 나에게 말을 걸어 올 때면 말을 걸어오는 것이 아니라 나를 돌아가면서 감시 한다는 느낌이 들어. 나도 알 수는 없어. 결과가 있으면 원인이 있기 마련인데 그 원인이라는 게 전혀 없다는 거야. 우습지?”

대략 반년 전에 그녀가 버루에게 공원의 벤치에서 했던 말이었다.

 

버루는 파키스탄 할머니를 만난 그날 밤 꿈을 꾸었다. 르완다의 어느 사막에 그녀와 함께 걸어가고 있었다. 사막에는 처음 와 보았다. 사막이라고 해서 영화에서처럼 황량하고 물이 없고 서글플 줄만 알았는데 사람들이 터빈 같은 걸 동여매고 삼삼오오 모여서 이야기를 나누거나 동물들과 함께 휴식을 취하고, 비록 고물이지만 택시 같은 것들이 사막으로 버젓이 다니고 있었다. 파라솔 밑에서 일광욕을 즐기는 이들도 있었고 칼스버그 따위의 맥주를 마시는 모습도 보였다. 무엇보다 저스틴 비버나 찰리 푸스 같은 유행하는 팝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녀는 버루 옆에서 따라오며 끊임없이 이야기를 했는데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전혀 알아들을 수 없었다. 가만 들어보니 한국어가 아닌 묘한 말을 하면서 버루 옆에서 걸어가고 있었다. 버루는 그렇군, 하며 묵묵히 앞으로 갔다.

사막을 얼마 쯤 걸었을까.

목이 말라서 하얀색의 천장이 낮은 집 앞에 섰다. 그곳에는 얼굴은 햇볕에 그을린 60살 쯤 되어 보이는 남자가 하얀색과 검은색의 긴 수염을 하고 앉아서 자신의 염소를 쓰다듬고 있었다. 남자의 수염은 회색 빛깔을 자아내고 있었는데 한국인들의 몸이나 얼굴에서는 도저히 만날 수 없는 기이한 색이었다.

버루는 목이 마르다는 말을 르완다의 언어로 했다. 자신의 입에서 나오는 르완다의 말은 그야말로 충격적이었다. 언어라고 할 수 없었다. 버루의 옆에서 그녀 역시 르완다의 말로 읽었던 팩에 대해서 말하고 있었다. 너무 자기중심적이라는 것이 그녀의 말이었다. 그녀가 르완다의 말로 이야기하고 버루는 알아들었다. 버루는 다시 그 남자에게 르완다의 말로 물을 좀 얻어갈 수 있겠느냐고 했다.

버루는 말을 하면서도 정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것은 바다 밑의 침묵 속에 살고 있는, 학명도 없는 괴상하게 생긴 눈 없는 물고기가 내뱉는 말과 같았다. 흡, 착, 톡, 콱, 응 같은 단어들이 마구 버루의 입에서 튀어 나왔다. 그녀도 옆에서 그 비슷한 말을 쏟아내고 있었다. 회색의 긴 수염의 남자는 한참을 버루와 그녀를 쳐다보더니 손가락으로 그녀를 가리켰다.

“너의 딸이냐? 나의 염소 세 마리를 주겠다. 교환하는 게 어때?”라고 말했다.

버루는 뜬금없는 남자의 말에 당황을 했고 1, 2초 정도 지나니 조금은 화가 났다. 딸이라면 나의 나이를 도대체 어떻게 봤던 말이야?라는 생각이 들었다. 버루는 남자에게 한발 다가가서는 이렇게 이야기했다.

“우리 집은 예로부터 가난을 물려받았다. 이 가난에서 벗어나는 길은 이 아이를 시집보내고 시집보낸 그 돈으로 빚을 전부 갚아야 하니 염소 세 마리로는 어림도 없다”라는 말을 아무렇지 않게 내뱉어 버렸다. 남자는 그녀의 얼굴을 한참이나 바라보더니 이내 심각한 표정을 짓고는 “정 그렇다면”이라는 대단한 결심을 하고는 “집에 있는 소를 주겠다. 더 이상은 양보 할 수 없다”라고 하는 것이었다.

버루는 이 상황에 빠져들어 가는 자신이 좀 우스웠지만 소 몇 마리 가지고도 어림없는 소리라고 큰 소리를 치고 그녀의 손을 붙잡고 그곳을 벗어나려고 했다. 그러자 회색수염의 남자얼굴이 붉게 변하고 실룩거리는 표정을 하더니 저주를 거는 주문이라고 하며 그녀를 쳐다보고 웅얼웅얼 거렸다. 남자의 얼굴은 몹시 험상궂게 변했고 말을 걸었다가는 큰일이라도 날 것 같았다. 시종일관 이야기를 하던 그녀가 가만히 있기만 했다. 버루는 그 모습을 보면서 그녀를 데리고 그곳을 벗어났다.

 

꿈을 꾸지 않는 버루로서는 자면서 꿈을 꾸었다는 것도 신기했지만 내용면에서는 그렇게 반갑지 않았다. 이렇게 선명하게 기억이 나다니. 게다가 딸이라니.

흥.

다음날, 공원의 벤치에 앉아서 담배를 피우고 있으니 그녀가 왔다. 둘은 나란히 앉아서 담배를 한 대씩 피웠다. 어제와 비슷한 담배를 들고 어제보다는 이른 시간에 둘은 벤치에 앉아 있었다. 그녀는 어제와 다르게 말이 많지 않았다. 버루는 그녀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하루사이에 그녀는 조금 수척해 진듯 보였다.

얼굴의 옆모습은 피부가 많이 건조했고 마른버짐 같은 것도 얼굴에 피어 있었다.

“그동안 사라진 줄 알았던 가려움증이 어젯밤에 나타났어. 다시 한 번 공포에 떨어야했어. 다행이 밤새도록 지속되던 가려움증이 오전이 되면서 부터는 나아졌지 뭐야. 잠이 쏟아졌지만 누워있을 수가 없었어. 가려워 긁은 곳이 상처가 깊어 아파 누워있을 수 없어서 응급실에서 치료를 받고 수면제를 먹고 조금 자다가 이제 일어나서 그래. 걱정하지 마”라고 말하고 그녀는 담배를 깊이 있게 들이마신 후 하고 고통을 내보내듯이 연기를 뱉어 냈다. 좁은 어깨가 한껏 더 작아보였다. 그녀는 이제 파키스탄에서 온 할머니를 만나러 가자고 했고 버루는 알았다며 담배를 비벼 끈 후 일어났다.

메마른 도시는 더욱 메말라 성냥을 쓱 그으면 바로 불이 붙어 버릴 것 같았다. 도심의 먼지가 코 안으로 밀려들어와서 코 안은 그야말로 건초더미처럼 푸석한 느낌이었다. 어제보다 기온이 떨어졌고 나무들은 더욱 앙상하게 변모해서 땅 밑의 자양분을 흡입하지 못 하고 추위에 떨고 있었다.

버루는 말없이 걷고 있는 그녀를 위해서 손이라도 잡을까 생각했지만 그대로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은 채 걸었다. 모든 것이 어제와 다름없는 풍경이었고 사람들도 고개를 숙인 채 빠르게 걷고 있었다. 시간의 흐름이라는 게 느껴지지 않는 풍경들이었다. 앞으로 나아가는 시간에 대해서 초조함이라고는 사람들에게서 찾아 볼 수가 없었다.

금복당이라는 금은방 앞에는 어제와 다르게 가로수 밑에 버려진 곰 인형이 안타깝게 누워있었다. 사람들은 버려진 곰 인형을 향해 분풀이라도 한 듯 발길질을 했던 모양이었다. 하얀색의 곰 인형은 버려진지 하루도 안됐지만 인간의 다양한 신발자국이 찍혀 있었다.

생명이 없는 곰 인형은 버려져서 이제 어디로 가는 것일까.

곰 인형은 세상으로의 첫 시작을 알리며 어느 한 아이의 기쁨을 충족시켜 주었을 것이다. 이제 버려진 낡은 곰 인형의 존재를 아는 사람들은 어느 곳에도 있지 않았다. 버려진 곰 인형은 이제 기호도 그 무엇도 아니었다. 초겨울의 먼지가 날아다니다가 곰 인형에 들러붙으면 사람들은 걸어가면서 발길질로 그 먼지를 다시 곰 인형에게서 떼어내고를 반복했다. 초겨울의 곰 인형 근처의 먼지는 그렇게 춤을 추었다.

 

“저기 저 할머니야?” 그녀가 앞을 가리키며 말했다. 버루는 그녀의 손가락을 끝을 따라 앞을 보니 정말 어제의 그 할머니였다. 그 할머니는 어제와 같은 곳에 그렇게 서 있었다. 할머니 역시 어제보다 좀 더 야윈 듯 보였다.

“할머니, 정말 파키스탄에서 오신 게 확실하세요?”라고 버루가 물었다. 할머니는 그렇다고 힘겹게 말했다.

“할머니, 안색이 안 좋아 보이는데 괜찮으세요?”라고 물으니 할머니는 딸이 걱정되어서 잠이 들지 못했다고 했다.

버루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녀를 쳐다보았다. 그녀는 버루 뒤에서 할머니를 바라보고 있었다. 한마디도 하지 않고 올곧게 서서 할머니에게 시선을 고정한 채 바라보고만 있었다.

“저 그런데 할머니, 개구리는 구하지 못했어요. 시장에 팔고 있는 황소개구리밖에 없어요.”

그러자 할머니는 주름진 얼굴에 더욱 주름을 만들어내며 웃었다.

“아니야, 개구리는 여기 있잖아.” 손가락으로 버루 뒤를 가리켰다. 버루는 뒤를 돌아봐야 그녀밖에……라고 생각했는데 그곳에 그녀는 없고 사람의 다리만한 개구리가 앉아있었다. 할머니는 개구리를 집어 들었다. 뒷다리 두 개를 잡아드니 큰 개구리는 힘없이 포획되었다. 파키스탄에서 온 할머니에게 들려진 개구리의 몸은 긁힌 상처로 가득했다.

 

혹시 개구리가?

 

순간 파키스탄에서 온 할머니는 개구리의 뒷다리를 죽 찢더니 한쪽 다리를 입에 넣고 씹어 먹는 것이었다. 버루는 믿을 수가 없었다. 할머니!라고 말을 하려고 했지만 말이 나오지 않았다. 파키스탄에서 온 할머니는 그 자리에 서서 개구리로 변한 그녀를 한 치의 남김도 없이 전부 먹어 치웠다. 버루는 울상이 되었다. 할머니는 얼굴에 묻은 피를 닦아가며 이제 파키스탄을 구할 수 있겠다고 말을 했다.

역시 넌 파키스탄에서 온 아이가 맞았어. 내 짐작이 틀리지 않아. 하면서 할머니는 바루를 남겨둔 채 걸어가서 사라져 버렸다. 버루는 그 자리에 앉아서 머리를 감싸고 상황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었다.

 

그녀는……. 그녀는.

 

누군가 어께를 두드렸다. 버루가 고개를 드니 그녀가 어느새 와서 벤치에 앉아 고개를 숙인 버루의 어깨를 두드리고 있었다.

“뭐 하는 거야 바루야.”

“이봐, 너, 너.”

그녀는 버루에게 담배를 하나 달리고 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공원이었다.

“바루야, 지금 몇 시인지 아니? 도대체 왜 여기서 줄곧 기다린 거야. 오늘은 못 나온다니까. 날이 춥고 어두워졌잖아”라며 그녀는 담배연기를 후 뱉었다.

“응, 미안. 우리 식사라도 하러 갈까?”

“갑자기 밥은. 바루야 너 배고파?”

“응, 뭐 딱히 그런 건 아니고 밝은 조명 아래에서 너의 이야기를 좀 더 오랫동안 듣고 싶어서 그래. 너의 그 쉴 새 없이 떠들어대는 이야기가 너무 듣고 싶었거든.”

그녀는 웃으며 “어제도 그렇게 들어 놓고선. 마음에 없는 소리라도 들으니 기분이 좋은 걸.”

그녀는 넓고 어두운 막막한 세계에 대항이라도 하듯 담배연기를 뱉어냈다. 공원의 대기를 밝혀 주던 벤치위의 가로등이 깜빡깜빡 거리다가 어느 순간 뚝 하며 빛이 끊어져 버렸다.

고요하던 공원은 더욱 만질 수도 없고 볼 수도 없는 거대한 공백이 되어서 두 사람의 어깨위에 내려앉았다. 그렇지만 무게감이라는 것은 느껴지지 않는 어둠의 공백이었다.

버루는 손을 내밀었고 그 손을 그녀가 잡아 주었다. 그녀의 손이 이렇게 작고 따뜻하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뭘 먹을 거야?” 그녀가 물었다.

“글쎄, 맛있는 거.” 버루가 대답했다.

“이를테면?”

“음, 개구리요리?”

버루는 그녀의 작은 손을 꼭 잡고 막막한 어둠 속을 헤쳐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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