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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1964년 겨울 수기3 - 김승옥, 서울 1964년 겨울 오마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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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교관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383회 작성일 19-02-22 1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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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와는 재작년에 결혼을 했습니다. 우연히 알게 됐습니다. 난 처갓집이 어딘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할 수 없었어요.

 

저는 할 수 없었다는 말을 해야만 했습니다. 그 말이 중요한 말이니까요. 그 말이 저의 죄악의 온상인 것입니다. 속죄할 수 있는 유일한 말이 할 수 없었다는 말입니다. 서적 월부판매 외판원인 저는 그럴 수밖에 없었습니다. 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 죄악스러운 돈을 받은 덕분에 아내는 학생들의 해부실습용으로 톱으로 머리가 두 동강이 나고 칼로 배를 찢어서 내용물을 마구 드러낼 것입니다. 길거리에서 쇠통에 장작을 태우는 것만 봐도 저는 아내가 보입니다. 아내가, 아내가 머리를 풀어 헤치고 머리를 박자기처럼 이렇게 왔다 갔다 하는 모습이 보입니다.

 

두 분? 이 돈을 오늘 밤에 어떻게 다 써버릴까요? 이 돈을 다 써버릴 때까지 함께 있어 주시겠어요? 함께 있어주십시오. 멋있게 한 번 써 봅시다. 저는 웃었습니다. 내내 어두운 표정이 그들의 호쾌한 동조를 끌어내지 못했는데 멋있게 이 많은 돈을 써버리기를 바라며 나는 큰 소리를 내며 웃었습니다. 웃고 말았습니다. 인간은 슬픈 일을 당해서 웃을 수 있는 그런 존재입니다.

 

돈이 있다면 상쾌하지 않았던 아침이 상쾌해지는 걸까요. 정말 그런 것일까요. 돈이 있다면 괴로움에서 해결이 될 수 있는 것일까요. 요컨대 배를 채우면 해갈이 되는 괴로움 같은 것들 말입니다. 불면이었던 밤이 푹 잠을 잘 수 있게 바뀔 수 있는 것일까요. 외판원 생활을 겨우 하면서 알게 된 사실은 저는 인간을 아주 경멸하고 두려워한다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인간을 곁에 두지 않고는 못 버틴다는 것도 알았습니다. 말랑말랑하고 경쾌한 불신이 저의 깊은 곳에 가득하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불신은 인간에 대한 공포를 생성시켰고 그것은 내 몸에서 나도 모르는 새 점점 성장해갔습니다. 공포는 배고픔처럼 격렬하게 위장을 쥐어짰습니다.

 

저는 그들에게 아직 문을 닫지 않은 양품점에서 넥타이를 바로 사 주었습니다. 알록달록한 넥타이로 하나에 삼백원씩이나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안에서 넥타이를 고르라고 하고 저는 이 넥타이는 내 아내가 사주는 거라고 호통을 쳤습니다. 소리를 지르고 싶어서 질렀던 건 아니었습니다. 그저 호통이 불신과 공포 때문에 입 밖으로 튀어나와 버린 것입니다. 양품점을 나와서 귤 장수가 있기에 그들에게 귤도 사줬습니다. 64년의 겨울에는 귤도 비쌉니다. 돈이 있어야만 사 먹을 수 있는 과일입니다. 저는 또다시 저도 모르게 아내는 귤을 좋아했다,라고 소리를 질렀습니다.

 

저는 외판원을 하면서 적극적으로 고독했었습니다. 하지만 외판을 하면서는 그걸 숨겨야 했습니다. 제가 아닌 제가 되어야 했습니다. 서적을 판매하는 곳에 입사할 수 있었던 건 제가 글을 위트 있게 적었기 때문입니다. 인간과 인간 사이에 여러 개의 보이지 않는 문이 있습니다. 그 문을 수월하게 열 수 있는 건 위트입니다. 위트가 있으면 외판원 생활도 그럭저럭할 수 있는 것입니다.

[내일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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