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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학열차 <수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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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김영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645회 작성일 20-02-23 05:45

본문

          

                                   통학열차 / 김영채

                                                        

   증기열차는 메아리를 몰고 왔다. 기적소리가 울릴 때마다 짧고 강하게 울려 퍼지는 소리는 둔탁하게 메아리쳤다. 이른 아침을 깨웠다. 플랫폼에는 통학열차를 기다리는 학생들로 붐볐다. 검정 모자를 눌러 쓴 남학생들보다 검은색 스커트에 흰 블라우스를 입은 여학생들이 스며들어오는 햇살에 해맑게 돋보였다. 몸을 실 자, 통학열차는 하얀 증기를 힘들게 쏟아내다 굉음과 함께 곧 출발했다.

 

   바람은 산들산들 불어왔다. 아침이슬 머금은 보리밭은 차창 밖으로 초록 물결처럼 넘실거렸다. 넓은 보리밭은 햇빛에 반사되어 은빛으로 반짝였다. 산모퉁이를 돌아 열차는 부용역을 향하여 보리밭 사이로 초록 물결을 가르듯 달려가고 있었다. 그때 갑자기 열차는 몇 번 심하게 덜컹거리다 급브레이크를 잡고서야 멈췄다. 놀란 학생들은 황급히 뛰어내려 기관차 쪽으로 달려갔다.

 

   우람한 기관차 바퀴를 지나치니 바로 철로 옆에 피투성이로 쓰러진 노인은 사지가 절단된 채 심호흡을 하고 있었다. 숨 쉬는 것이 아니라 헛바람 빠진 듯 헐떡이며 눈동자는 초점을 잃어버렸다. 철로를 건너가려다 변을 당하였다. 나는 큰 충격을 받아 온몸이 떨렸다. ‘저렇게 의식을 잃고 죽어가는 사람도 호흡을 이어가다니?’ 과연 생명력이란 잡초같이 끈질기게 살아가는 힘이란 말인가?’ 의문은 뇌리를 스쳤다. 그리고 그 노인 곁을 지키고 앉아있던 누렁이 개는 끙끙거리는 소리로 앞발을 허우적거리다 우리를 보고 꼬리를 흔들었다.

 

    여전히 계절이 바뀌어도 학생들은 증기열차에 몸을 실었다. 무더운 여름이었다. 폭염이 내리는 더위 속에서 특히, 남학생들은 달리는 열차의 출입문에 곡예 하듯 매달려 맞바람이 온몸으로 부딪쳐올 때 시원함과 스릴을 동시에 느꼈다. 증기열차가 쑥고개 언덕을 올라갈 때면 푹푹 힘들게 증기를 뿜어내다 갑자기 속도가 절반으로 줄어들게 된다. 이런 구간을 천천히 달릴 때는 앞칸에서 뛰어내려 맨 뒤 칸에 올라타는 위험스러운 장난에 빠져들게 된다. 위험과 스릴에 쉽게 빠져든 녀석들은 간이 더 커져 대담하게 일을 저지른다.

 

   쑥고개 주변에는 참외, 수박밭이 넓게 자리 잡고 있었다. 간 큰 녀석은 모험심이 발동되어 느리게 달리는 열차 앞칸에서 뛰어내려 참외밭으로 곧장 내달렸다. 참외를 따다가 원두막에서 이를 지켜보던 주인에게 들켜 쫓기는 신세가 되었다. 녀석은 몽둥이를 휘어잡고 뒤쫓는 어른한테 놀래서 꽁무니를 빼고 열차로 향하여 도망치고 있다. 차창 너머로 지켜보는 학생들은 잡힐까?’ 하는 스릴과 안타까움이 생동감 넘치는 듯 손 뼉을 치기도 하고 아우성을 지른다. 마침내 “탔!” 큰 소리로 전갈이 오면 환호성이 터졌다.

 

   그 무렵 여름방학이 가까이 다가오면 통학열차에도 은밀히 흰 비둘기가 찾아든다. 비둘기는 러브레터가 되어 여학생 책가방에 숨어든다. 통학생들에게 여름방학은 길었다. 여름 방학동안 볼 수 없고 스치듯 만날 수 없는 불안감이 가슴 속에 숨겨놓았던 여학생에게 고백록 같은 사연을 품고서 전해줄 기회만 엿보기도 하였다. 한번은 누군가가 하굣길에서 며칠간 기다리다 기회를 포착하고 승차하는 여학생에게 거룩한 러브레터를 전해주려다 떨어트린 의외의 사건이 발생했다. 그것을 장난꾸러기 학생이 주워 열차 안에서 비밀 같은 고백을 낭독하고 애절하게 읽고 소곤거리는 소리는 웃음 속으로 번졌다. 그 아련한 정이 담긴 사연은 어처구니없게 다른 학생들 손에서 손으로 날아다녔다.

 

   지루한 여름방학이 끝나자 통학열차는 수많은 학생들로 다시 생기를 되찾았다. 하루하루 지나다 보니 벌써 가을로 접어들었다. 가로수 잎은 떨어져 흩날렸다. 열차는 석양빛을 받으며 조심스럽게 이리역 플랫폼을 출발했다. 넓게 펼쳐진 들녘은 누런 벼 이삭으로 뒤덮었다. 불어오는 바람에 벼 이삭은 황금 물결로 출렁이고 있었다. 잠시 차창 밖으로 붉은 노을빛에 정신이 팔려있는 사이 앞쪽에 앉아있던 아주머니들이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어매! 산긴가 보네......” “시상에 이 색시를 어쩐 데야?” 열차 안 분위기는 순식간에 얼어붙었다. 그사이 아주머니들이 뭐라고 수곤거리다가 나이 든 아주머니가 큰소리로 외쳤다. “시방! 남학상들은 얼른 다른 칸으로 가구. 여학상들은 자리를 비켜줘야 겠구만.” 그리고 황급히 아주머니들은 치마를 벗어 앞뒤좌석에 커튼처럼 칸막이를 만들었다. 뭔가 서둘러 움직이지만 순서에 따라 진통하는 산모를 안심시키며 순산을 도와주었다. 이 소식을 접한 승무원은 부산하게 찾아와 상황을 파악한 후 급히 나갔다. 잠시 후 열차는 느린 속도로 움직이고 있었다. 기다리던 신생아 울음소리는 열차 안에서 크게 들려왔다. 학생들 얼굴빛은 다시 환해졌다. 나에겐 달리는 열차 안에서 생명의 탄생이 참으로 경이로운 사건으로 다가왔다. 기적소리도 기쁜 듯 여러 번 울려 퍼졌다.

 

   바뀐 계절 속으로 열차는 눈 내리는 들판을 가로질러 목적지를 향해 달려가고 있다. 눈 덮인 평야에서 검은 연기를 휘날리며 묵직하게 철로를 따라 움직이는 증기열차는 흑백영상 속으로 사라져가는 파노라마였다. 끝없이 평행선 철길로 이어진 궤도는 영원히 만날 수 없겠지만, 추억 속 평행선 철길에서는 언제나 만날 수 있는 증기열차였다. 수많은 학생들이 열차에서 만나고 또 헤어졌다. 함께 승차했던 공간도 해가 바뀔 때마다 떠남이 있고 새로운 학생들이 빈 공간을 차지했다. 그 통학시절 우렁차게 달리던 검은색 증기열차는 기억의 무지개로 나에게 비춰졌다. 잃어버린 시간 속에서 무지개색마다 하나하나 간직하고 싶은 추억을 그려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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