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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리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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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영담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335회 작성일 20-03-24 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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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리미리!



   어떤 청년이 있다. 그는 외견상으로는 그저 그런 청년이다. 누구나 선망하는 대학교를 나오지도 않았고 조그만 중소기업에 다니고 있었다. 나이 30을 갓 넘었지만 연봉이 3천만 원에 불과하였고, 회사에서도 성실한 사람 정도로 평가받고 있었다. 키도 170cm 겨우 넘었고, 외모도 보잘 것 없었다. 다만 그는 모든 일을 미리미리 하는 습성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9시인 회사 출근 시간보다 항상 1시간 일찍 출근하였다. 그래서 사무실 열쇄도 그가 가지고 있었다.

 

   그는 출근하면 아무도 없는 사무실에서 그 날 할 일 미리 챙겨 보기도 하고, 커피를 마시면서 신문도 읽었다. 어질러진 사무실 정리정돈도 하였다. 누가 시키지도 않은 일이었다. 상급자가 나오면 인사도 공손히 하였다. 이런 시간에는 상급자와 개인적인 이야기도 나누게 된다. 자연스럽게 자기 고민도 이야기할 수 있었고 회사 돌아가는 이야기도 들을 수 있었다. 회사 일을 떠나서 상급자와 인간적인 유대감을 가지게 되었다. 다른 동료들도 그의 이러한 성실성을 인정해 주었다.

 

   어느 토요일 오후 그는 친구로부터 어떤 여성을 소개받기로 되어 있었다. 그는 생각했다. 집에서부터 약속 장소인 L호텔까지 지하철로 30분 걸리고, 지하철에서 내려 L호텔 2층 커피숍까지 가는 데 걸리는 시간 10분, 그리고 여유 시간 1시간, 그래서 약속 시간 1시간 40분 전에 집을 나서면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그는 일찍 도착하면 읽으려고 책 한 권을 들고 나섰다. 책의 제목은 ‘느림의 미학’이었다.

 

   그는 집을 나서서 지하철역에 들어섰다. 퇴근 시간이었지만 지하철역에는 사람이 많지 않았다. 요즈음은 대부분의 회사가 주 5일 근무라 그런 것 같았다. 그가 다니는 회사도 올해부터 본격적으로 주 5일 근무를 시작하였다. 작년까지는 격주로 주 5일 근무를 했었다. 그래도 주 5일 근무하는 친구들이 부럽지 않았었다. 집에서 빈둥빈둥 노느니 아무 일이건 하는 게 좋다고 생각했었다.

 

   지하철 승강장에 들어섰다. 전광판에 ‘전 역에서 방금 전동차가 출발했습니다.’라는 글자가 반짝이고 있었다. 멀리서 어떤 사람이 승강장으로 내려오고 있었다. 발걸음이 좀 이상하였다. 비틀비틀 하는 것 같았다. 그는 생각했다. ‘대낮부터 무슨 술이람!’ 그는 항상 술을 조심스럽게 마신다. 대학교 다닐 때 술에 취해 정신을 한번 잃고 나서는 다음부터 한 번도 몸을 가누지 못할 정도로 술을 마시지 않았다.

 

   그는 몸을 가누지 못할 정도로 술을 마시는 것은 돈도 버리고, 몸도 버리고, 친구도 버려지게 되고, 모든 것을 잃게 되는 것이라 생각했다. ‘술을 적당히 마시면 호인이 되지만, 술을 과하게 마시면 개가 된다.’ 그가 항상 생각하는 경구警句이다. 그는 개가 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항상 술을 조심스럽게 대해 왔다. 그런데 저 사람은 그게 아닌 것 같았다. ‘저 사람은 개가 되고 싶은 것일까?’ 그는 괜한 걱정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가 괜한 걱정을 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 사람은 승강장 앞에서도 몸을 가누지 못하고 비틀비틀 거렸다. ‘저러다가 저 사람…’하는 순간 그 사람이 보이지 않았다. 그는 달려갔다. 그 사람은 철로 위에 떨어져 있었다. 그는 생각할 겨를도 없이 철로 위로 뛰어 내렸다. 그는 그 사람 양 겨드랑이에 손을 끼워 넣고 승강장 위로 올려놓으려 했다. 그러나 그 사람은 어린아이가 아니었다. 쉽게 들려지지 않았다. 오히려 왜 내 몸에 손을 대느냐며 그의 손을 뿌리쳐 버렸다.

 

   멀리서 전동차가 들어오고 있었다. 어찌 할 수 없었다. 그는 그 사람을 안고 선로 옆 빈 공간으로 몸을 숨겼다. 사람들이 소리쳤다. “사람이 떨어졌다. 두 사람이 떨어졌다!” 그 사람은 왜 그러느냐며 계속 몸부림쳤지만 그는 그 사람이 움직이지 못 하게 꼭 안고 있었다. 그는 자기 목숨까지 걸고 그 사람을 안고 있었다. 전동차가 빠져나갔다. 지옥에서 빠져나온 느낌이었다. 그제야 그는 그 사람을 풀어 주었다. 사람들이 몰려와 그와 그 사람을 승강장으로 끌어올렸다.

 

   사람들이 어떻게 된 일이냐며 물어왔다. 그는 자초지종을 설명하였다. 그 사람은 아직까지 횡설수설 하고 있었다. 그제야 그 사람으로부터 술 냄새가 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아주 역한 냄새였다. 잠시 후 어떤 사람이 그의 어깨를 치며 잠깐 보자고 했다. 왜 그러느냐고 물었다. 무엇을 잘못 한 게 있느냐고 물었다. 그게 아니라고 했다. 자기는 신문기자라고 했다. 자초지종을 듣고 싶다고 했다.

 

   그는 사실 그대로 말해 주었다. 신문기자는 목숨을 구해 준 사람이 아는 사람이냐고 물어 왔다. 모르는 사람이라고 대답했다. 지하철 선로에 뛰어들 때 무슨 생각을 했느냐고 물어 왔다.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고 했다. 그저 그 사람을 구해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고 말해 주었다. 신문기자는 집요하게 추궁하고 있었다. 들어오는 전동차가 무섭지 않느냐고 물어 왔다. 그때는 전동차가 보이지 않았다고 대답했다. 사람을 구해 낸 소감이 어떠냐고 물어 왔다. 아무 소감도 없다고 했다.

 

   그는 그 자리를 벗어나고 싶었다. 그러나 신문기자는 그를 쉽사리 놓아 주지 않았다. 이것저것 꼬치꼬치 캐물었다. 지금 어디 가는 중이냐고도 물었다. 사실대로 말했다. 별 걸 다 물어 왔다. 조금 있으니 카메라를 맨 사람들이 달려들었다. ‘이것 때문이었구나. 나를 붙잡아 둔 이유가….’ 예쁘장하게 생긴 리포터가 똑같은 것을 물어오기 시작했다. 오늘의 미담 사례로 TV에 나올 것이니 잘 대답해 달라고 했다. 그까짓 것, 시키는 대로 해 주었다. 몇 차례 NG가 난 끝에 겨우 OK 사인이 떨어졌다.

 

   그제야 겨우 그는 그 자리를 벗어날 수 있었다. 그는 약속 장소로 향했다. L호텔 커피숍에 도착했을 때 아직까지 약속 시간이 20분이나 남아 있었다. 친구도 여자도 아직 오지 않았다. 그는 화장실로 가서 옷매무시를 다시 고쳤다. 세수도 했다. 정신이 맑아졌다. 지하철역에서 있었던 일들이 다시 떠올랐다. ‘대낮부터 술 취해 다니는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잠시 생각했다가 지워버렸다.

 

   그는 자리로 돌아가 책을 펼쳤다. 집에서 가지고 온 ‘느림의 미학’이라는 책이었다. 책에서는 느림을 찬양하고 있었다. ‘그렇지, 급하게 하다가는 실수하게 마련이야. 느릿느릿 천천히 해야 실수하지 않는 법이거든….’ 그건 그의 생활철학이었다. 잠시 후 친구가 왔다. 곧 이어 여자도 왔다. 여자는 아주 예뻤다. 그가 생각하기에 자기에게는 너무 과분하다는 생각을 했다. 자기는 퇴짜 맞을 거라고 예측했다. 그래도 최선을 다하자. 그게 그의 생활철학이었다.

 

   그 여자의 질문은 겉돌고 있었다. 아무 의미 없는 질문만 되풀이되고 있었다. 그다지 그에 관하여 알고 싶은 게 없는 것 같았다. 그러나 그는 최선을 다해 대답해 주었다. 그 때 커피숍 종업원이 TV를 켰다. TV에서는 뉴스 속보가 나오고 있었다. 갑자기 친구가 소리쳤다.

“야, 저거 너 아냐?”

그제야 그는 TV를 쳐다보았다. 그 여자도 TV를 쳐다보았다. TV에서는 그가 인터뷰 하고 있었다. TV 속의 그는 아주 수줍음을 많이 타는 것 같았다. 아까 인터뷰한 내용이 그대로 나오고 있었다. 아까 마주 했던 예쁘장한 리포터가 그를 과장해서 칭찬하고 있었다. TV로 보니 리포터가 더 예뻐진 것 같았다.

 

   “야, 너 저거 언제 찍었어?”

   “응, 여기 올 때.”

   “그런데 왜 아무 말 안 했어?”

   “뭐 대단한 일 했다고 떠벌이고 다녀…”

   “그래도 대단한 일 하신 것 아니에요?”

    그 여자가 칭찬을 해 주었다.

   “이 친구는 능히 그럴 친구랍니다. 얘가 다니는 회사는 아직 중소기업이지만 발전 가능성이 무척 크구요, 얘도 회사에서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답니다.”

   친구도 신이 나서 떠벌였다.

   “저는 해야 할 일 했을 뿐이구요, 누구라도 그렇게 했을 겁니다.”

   “너무 겸손하시네요. 그거 아무나 못 하는 일이에요. 요즈음 세상에 다 자기 혼자 잘 살기 바쁜데 어떻게 그런 일을 선뜻….”

   그 여자는 감격한 눈치였다.

   친구가 못을 박았다.

   “오늘은 이 친구 피곤할 테니 간단하게 끝내고 다음에 둘이서 다시 만나도록 하시지요?”

   그 여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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