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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죽음의 경계 사이에서 <수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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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김영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538회 작성일 20-09-26 0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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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삶과 죽음의 경계 사이에서 / 김영채

                 

  줄지어 움직이고 있다. 한 곳으로 향하여 걸어가는 사람들 속에 나도 서있다. 낙엽이 흩어져 뒹구는 보도를 따라 스산한 바람은 옷깃을 스쳤다. 앞에 대리석 건물이 웅장하게 버티고 있는 고려대박물관으로 밀려가 듯 들어섰다. 마치 바위산속 동굴로 들어서서 희미한 어둠 속을 걷은 느낌이었다. 비밀스런 보석을 찾고 싶은 눈빛으로 두리번거렸다.파평윤씨 모자母子 미라 및 출토 특별유물전을 보기위해 전시실 2층을 찾았다.

  유리관 안에는 잠자듯이 누워있는 여인의 미라였다. 불빛 아래 벌거벗는 미라는 얼마 전만해도 환하게 웃는 모습으로 일상에서 볼 수 있는 젊은 여인 같았다. 얼굴은 약간 눌린 듯 변형된 형태였지만 살결은 부드럽게 돋아 보였다. 유두 아래로 흐르는 곡선을 따라 음부는 흰 천으로 살짝 가린 채였다. 그리고 곱고 갸름한 손등 아래 시선이 멈췄다. 유난히 흰 손마디는 우유 빛으로 가지런히 모여 있었다. 그 순간 가는 손끝이 파르르 떨고 있지 않는가? 놀란 나머지 오싹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섬광처럼 솟구쳐 오르는 전율을 온몸으로 느꼈다. 아마, 불빛의 역광이 착시현상을 일으켜 잘못 본 것으로 판단했으나 마음 한구석엔 떨림이 잔잔한 파동으로 밀려왔다.

  미라는 파평윤씨무연고 묘역을 발굴하는 중에 회곽 목관묘 안에서 유물과 함께 수습되었다. 수습 시 발견된 병인윤시월이라는 한글묵서를 통해 430여 년 전 겨울에 사망한 파평윤씨 집안 출신의 여인이었다. 희귀하게도 이 미라는 사지가 움직일 정도로 탄력이 있었으며 살아 있는 피부 같은 부드러운 촉감으로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또한 대학병원에서 정밀 조사한 결과 출산 중에 자궁 파열로 인한 과다출혈로 죽음에 이르렀다. 남아男兒 태아도 자궁에 미라로 남아있다. 이 젊은 새색시 시신은 모자母子 미라로 세상에 다시 태어났다.

  수습된 수많은 복식服飾 유물들을 둘러보고 나서도 미라를 보고 싶었다. 오늘이 전시 마지막 날이었고 마지막 시간에 쫒기였다. 다시 미라를 찾았을 때는 많은 사람들의 시선이 집중되고 있었다. 떠나보내는 그 여인의 나신裸身을 유심히 관찰하려고 심혈을 기울였다. 그런 중에 시선이 그 여인의 손가락에 머물렀을 때, 나는 다시 놀랜 나머지 경련을 일으켰다. 혹시 떨림이 있지 않을까? 지켜보았으나 손등 피부는 엷은 갈색으로 변해있었다. 나는 너무나 당황했다. 그것은 살아있는 사람들의 피부 색깔이었다.

  그 여인과 함께하는 시간은 흘러가는데 이 순간 시간은 머물고 있을까? 시간도 쉬어 가는가? 그 여인에게는 시간이 너무나 느리게 흐르고 있었단 말인가? 또 다시 자문해본다. 미라로 수백 년이 흘렀으나 이 자리에 다소곶이 누워있는 젊은 여인. 아니 시간의 길고 짧음을 어떻게 해석할까? 나는 현재가 과거인지, 과거가 현재인지 갈음할 수 없는 꿈속에서 헤매고 있지 않은가? 지금 아무 것도 보이지 않은 꿈의 공간에서 현실은 아름다운 꽃밭으로 뒤덮였다. 한 마리 나비는 훨훨 날아 꽃술에 살포시 앉았다. 꽃향기에 취해 눈이 번쩍 떠졌다. 그 때 파르르 떨림이 내 손 끝에 다가왔다. 너울 옷자락에 감싸인 채 내민 그 여인의 손가락이었다. 나도 모르게 요동치듯 전율이 흘렀다.


  깜짝 놀라 주위를 살펴보니 전시실은 희미한 조명이 깔려있는 무대 같았다. 흐릿한 불빛아래 그 여인은 머리 위로 덮은 너울을 벗더니, 잠시 나를 올려보았다. 침묵이 흐른 후에야 허공을 응시했다. 그러다가 독백처럼 말문을 열었다.

그 추운 동짓달 분만의 진통에 몸부림쳤어요. 온몸이 땀에 흠뻑 젖어 죽도록 힘을 다 쏟다가 하혈이 심해 넋을 놓아버렸다오……. 그 후 수십 길 낭떠러지 강물 속으로 떨어져 깨어보니 목관木棺 안이었어요. 수백 년의 고독은 꿈의 세계였다오. 우주에로 통하는 무수한 별무리들이 어떤 때는 꽃무리가 되어 함박 웃기기도 하고, 숲의 나뭇잎처럼 흔들어 놀라기도 하고, 수많은 나비가 되어 춤을 추다 세상사 이야기도 들려주고, 내겐 소중한 벗들이었다오. 어디선가 장자꿈에서 깬 후에야 자신이 사실 꿈을 꾸고 있던 중임을 알게 되네. <且有大覺而後知此其大夢也>’ 가만히 들려주었어요.”

잠간 옷깃을 여미던 여인은 웃음 머금은 얼굴로 앞을 주시하더니.

  “오늘은 가슴이 너무 벅차오른 날이어요. 내 영혼만 홀연히 빠져나와, 유리관에 잠들고 있는 나를 내가 볼 수 있다니 기쁘고 황홀하다고 할까. 내 나신裸身의 곡선이 저렇게 예쁠 줄이야! 한 송이 꽃처럼 아름다운 새색시……. 내 본모습을 보고 있어요. 늦게나마 나를 찾았다니? 이승을 쉬 떠나고 싶지 않아요. 그러나 때가 되면 아름다운 육신은 보잘 것 없는 허깨비, 낙엽처럼 휘날려 사라져 버릴 가엾은 존재. 내 가엾은 어린 핏덩이. 머지않아? 내 영혼도 아침 안개가 걷히듯 피안의 강을 건너 멀고 먼 여행을 떠날걸요. 그 곳은 내 영원한 본향인걸.”

그런 후 여인은 몇 걸음 걷다가 휘돌듯 노란옷고름 날리며 천천히 걸음을 멈추고.

  “당신은 호랑나비로 보여요. 숲속을 누비는 나비. 날갯짓으로 전해오는 파장을 느꼈어요. 누군가 내 곁에 있다는 것을 감지하고. 혹여 장자가 아닐까? 그런데 당신이어요. 무지개 같은 꿈을 몰고 온 나비……. 또 다른 세상에 함께 있어요. 언젠가 장자는 이 말을 들려주었어요. ‘장주가 꿈속에 나비로 변한 걸일까? 나비가 장주로 변한 것일까? <不知周之夢胡蝶, 胡蝶之夢爲周與?>’ 너무 긴 세월동안 목관 안에서 외롭게 잠들다 꿈만 꾸었다오.”

  나는 두려웠다. 여인의 삶은 짧았고 그림자 같은 꿈의 세월은 길었다니? 종잡을 수가 없었다. 불빛이 점차 어두워지자. 또 다른 경치가 펼쳐졌다. 푸른 초원은 곡면으로 드넓게 보였다. 어느새 무늬날개를 펄럭이며 날고 있다. 풀밭이 움직이듯 눈 아래 스쳐지나 간다. 옆을 나르는 노랑나비는 유난히 까불어 댄다. 뭔가 눈앞 광경을 보고 놀란 듯 노랑나비는 말을 건넨다.

  “저 수많은 꽃들을 보세요. 황홀하지 않아요.”

놀랍게도 꽃들은 저마다 사랑의 미로를 열어 놓았다. 꽃술의 아늑한 장소, 꿀샘이 있는 길을 자외선으로 볼 수 있는 눈을 갖고 있는 나비. 꿀은 쉬 얻을 수 있으나, 위험은 항상 도사리고 있는 것. 비바람이 부는 날은 꼼짝 없이 날개를 접어 움츠리고, 곁에 잽싸게 달려드는 작은 새들이 먹이로 노리기도하고. 삶은 늘 낭떠러지에서 위태롭게 생사生死의 고비를 넘나드는가? 그래도 아름다운 세상은 마음속에 피어난 한 떨기 향기로운 꽃이 아니던가! 잠시 정신을 차려보니 꿈속을 여행하듯 허망했다. 그 여인은 보이지 않는다.

  박물관의 마지막 관람 시간은 끝났다. 걸어 나오며 혼잣말처럼 읊조렸다. “인간사나 나비의 세상이나 현실과 꿈, 물질과 정신, 인간과 자연, 모든 것은 경계도 없이 통섭通涉의 길로 합일되는 물아일체物我一體가 아니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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