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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들, 참 잘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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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싣딤나무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319회 작성일 20-09-26 16: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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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하다. 시는 짧은데 산문보다 열 배는 시간이 걸린다.


한달음에 글이 풀리는 날도 마찬가지다.


이렇게 많이 쓴 시간이 독자의 마음에도 그만한 감동을


주어야 하는데 (독자라는 말이 참 웃긴다) 감동은 커녕


기본적인 독해도 어려울 때가 많다.(그러니까 내가 독자일때)


글을 다듬기 위해 시간이 걸리는 것이 아니라 이번 최우수작


심사위원님 말처럼 시가 될만한 정황을 포착 해내고, 시가 될 만한


시각을 확보하는 일에 시간이 걸린다. 이도 저도 않되는 날엔


억지로라도 시를 쓰는데 칼날을 갈아 두는 것과 같다. 


그래서 무엇을 썰어 볼 것인지, 찔러 볼것인지도 없다.


담배처럼 술처럼, 밥처럼, 반복적으로 하지 않으면


손이 떨리고, 목이 마르고 배가 고프다. 다른 중독처럼 끊어야지


할 때도 많다. 그러나 분이 머리 끝까지 오르는 순간, 담배를


피우는 5분이 살인을 면하게 하듯, 시가 나와 옆에 있는 사람을


살리는 순간도 있다. 내가 쓰는 시가 졸작이라도, 시가 되는 정황,


또 시가 되게 하는 조건들을 오래 찾고 엿보아왔던 습관이


나와 이웃을 용서하게 만든다. 낯설기 같은 형식적인 것보다


다르게 보고 다르게 인식하기가 적용이 되는 것이다. 시의 행에는


기술적인 부족함으로 삽입이 되지 않던, 전혀 다른 제 삼, 제 사의


눈이 어느새 내 발등에 떨어진 현실을 조절하기에 이른 것이다.


가령 늦은 나이에도 여자 친구 하나 없는 아들이 신경 쓰이다가도


절에 스님도 있고 성당에 신부들도 있고, 독신주의자들도 많은데


꼭 집에 사람들을 거느리고 살것이 무엔가? 인구가 차고 넘치는데


내 동물적인 후손까지 보태야 하는가? 가령 친구들은 크게 잘나가지


않아도 집 한 채는 다들 가지고 사는데 나는 왜 이런가 싶다가도


마지막 연의 반전처럼, 이 삶 자체가 주인이 비워달라면 언제든지


비워 주어야 하는 전세인데, 정해진 계약 기간조차 없는 일방적인


주인 마음대로의 전세 조건을 바꿀 수 있는 법이 이 세상에는 없는데,


싶으면 내 가난이 묻어가는 것이다. 흔히 우리가 알고 있는


인생은 어차피 시한부인데, 하는 식상한 구절도 한번만 더 곱씹어 보면


그 시대로서는 엄청난 발견이고 반전인 것이다. 이렇게 팔릴 데 없는


시를 쓰다보면, 나 한 사람 쯤은 구제한다는 생각이 든다. 시를 많이


읽어보지 않았지만 시는 아직도 사람을 틀 속에서 꺼집어 내려고 하는


세상의 마지막 안간힘 같은 것이 남아 있다. 시를 쓴다는 사람들이


착각을 하고 있는 것은 내 시가 인정받지 못하는 것이 내가 쓰는


시어들이 특이하고 비틀리지 않아서라고 자위를 하는데 사실은 그렇지


않고, 내 눈이 핀홀 카메라 렌즈에도 미치지 못하기 때문이다. 거꾸로 찍혀야


바로 나오는 사진기처럼 내가 대상의  본질을 뒤집어 보지 않기 때문이다.


언어는 재료일 뿐이지 음식이 아니다. 밀가루 반죽의 모양을 특이하게 


하는 것도 아이들과의 식사를 재미 있게 하지만 결국은 간이고, 맛이다.


가끔 신춘문예 시들을 보면 왜 내가 새해 첫날의 지면을 장식하지 못하는지


답이 나온다. 아직도 내 눈은 낡고, 내 머리는 식상하고, 내 언어는 보풀이


피고 숨이 죽은 구제옷인 것이다. 늘 내가 부족하다고 여기는 건 자학이나

비관이 아니고, 희망적인 습관이다. 부족하다는 생각이 드니까 자꾸 노력하게 되고

내 마음에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만한 진정성이 없나 돌아 보여져서 1초 1분

내 삶에 진정성을 기울인다. 이 마음을 간직할 수 있다면 죽을 때까지 등단하지

않는 것이 내 정신에 이로울 것 같다. 포도를 먹을 수 없다면 포도가 시다고 생각

하는 것도 나쁘지 않은 것 같다. 그러나 포도의 어디가 시다고 하는지는 다른 문제다.

포도의 껍질이 시다고 나는 생각해 버리고 싶다. 저 많은 포도들, 저 안쪽의 

과육은 물이 많고 달다. 그러나 그 껍질은 시다고 믿어버리고 싶다. 오늘도 내가

시다고 믿는 포도의 껍질을 까고, 내가 달다고 믿는 포도의 알맹이를 먹는다.


모두들, 참 잘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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