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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묘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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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젯소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315회 작성일 21-01-01 16:53

본문

아내와 눈을 보러 가자며 나갔다 


부질없다는 생각이 똑 같이 들어 다시 차를 돌려 집으로 왔다.

요즘은 바다나 산이나, 해가 돋는 다는 어떤 곳도

전기 장판에서 나를 일으켜 세우지 못한다. 밤에는 술을 마시고

밤이 새도록 반수면 상태로 넷플릭스에 나오는 수많은 인생들을 여행하다

동이 틀 무렵 잠깐 자고, 다시 넷플릭스로 돌아갈 뿐이다.


내 하루 중 유일하고, 아주 순수하고 완전한 나의 의지로 전기 장판에서

내 몸을 분리 시키고 일으키는 일이 있다면 코에 찰리 체플린의 콧수염 같은

검은 점이 있는, 목 뒤에도 나비 넥타이 단추 같은 큰 점 네개가 찍힌

4개월령 고양이 봉달이 뿐이다. 이름을 짓는다는 것은 존재는 허락하는 일 같다.

우리 집으로 오는 골목에는 방파제의 갯강구만큼이나 많은 고양이들이

세워 둔 자동차 밑에, 집과 집의 틈 사이에, 농자재를 실어 둔 리어카 속에,

비료를 쌓아 둔 파렛트 밑에 숨어 있다. 그 고양이들 중 내가 지어 준 이름을

가진 고양이들은 일곱 마리다. 허술하고 틈새 많은 나의 영역인 마당과 지붕과

장독간과 영역이 겹치는 고양이들이다. 지금까지 내가 지어준 이름과 함께

땅에 묻힌 고양이들도 많고, 내가 지어준 이름으로 가출해서 돌아오지 않는 고양이들고 

많은데, 내가 지어준 이름으로 사는 고양이들의 공통점은 내가 주는 음식과 사료를

먹을 수 있다는 것이다. 새로운 영역, 그러니까 젓과 꿀이 흐르는 땅을 찾아 오는

덩치 크고 힘센 고양이들도 많았지만 그들은 내가 지어주는 이름과 내가 주는 밥을

먹을 수 없다. 그들이 내가 이름을 지어 준 고양이들의 생존과 평화를 위협하기 때문이다.

약 두어 달 전 내가 새로 이름을 지어 준 고양이는 봉달이와 봉순이다. 굳이 내가 어떻게 들으면

우스꽝스러운 이름들을 짓는 것은, 고양이와 눈만 마주쳐도 쉽게 머릿속에 떠올라 혀끝까지

전달 될 수 있는 있게 하기 위해서다. 엄밀히 말하자면 내가 지나다니는 마당과 내가 먹고 자는 곳을 덮고 있는 지붕과 천정 사이가 영역인 고양이들과 달리 지금부터 내가 먹고 자는 곳이 영역이 될 고양이는

봉달이다. 어느날 사흘 밤낮 내 방의 천정에서 새끼 고양이가 울어 대었는데, 도저히 잠을 이룰 수 없었던 나는 톱을 들고 천정을 뚫었다. 아파트처럼 콘크리트 천정이였다면 나는 그 울음 소리 때문에 말라 죽었을

것이다. 합판과 스치로폴과 테두리의 버팀목을 뜯어 내고 사료 냄새를 풍겨서 유인을 하고, 꺼낸 고양이는

행여 이것도 인연인가 하고 어미 대신서 우유를 먹여 내 식구를 만들까하고 무척이나 공을 들였는데 천정에서 사흘 밤낮으로 울듯이 문틈에 코를 대고 사흘 밤낮을 또 울어서, 마침 젓을 먹이는 고양이가 있는 마당으로 내보내 주었다. 다행스럽게도 새끼가 한 마리 뿐이던 어미 고양이 삼순이는 어렵지 않게 젓과 품을 내주었고, 대신 눈꼽이 심하게 끼이고 코가 질질 흐르고 재채기가 심하던 삼순이의 젓먹이 새끼는 치료를 위해 봉순이와 운명이 바뀌게 되고 말았다. 뱅갈 고양이의 피가 흐르는 것 같은 잿빛 봉순이에 비하면 비쩍 마르고 뼈대가 길고 볼품 없는 고양이였지만 고양이 역시 사람처럼 자신의 운명을 선택해가는 것 같았다. 어쩐 일인지 찰리 채플린의 수염 같은 점을 가진 하얀 고양이는 추위를 많이 타는 탓인지 마루 문을 열어 주어도 마당으로 나갈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리고  감기를 이겨 내려면 잘 먹여야 한다는 의사의 조언을 따라

사료 대신 삼천원이나 하는 이유식 통조림을 먹였더니 내 발만 졸졸 따라 다니는 것이였다. 그 후에도 뱅갈 고양이의 피가 흐르는 것 같은 봉순이는 녀석이 먹는 약과 통조림을 함께 먹였지만, 두 녀석이 함께 있으면

우리의 눈길을 압도하는 눈부신 미모의 봉순이는 먹을 것을 다 먹고 나면 다시 문틈에 코를 대고 울리 시작했고, 한 쪽 눈이 붓고 눈꼽이 끼여 곧 애꾸눈이 될 것 같은 말라깽이 봉달이는 내가 읽던 책의 가름끈이나

실타래를 발로 건드리며 우리들 곁을 떠나려 하지 않았다. 우리 부부는 봉순이를 먹튀라 불렀지만 물그릇에

물이 얼어붙는 혹독한 추위에서 잠시라도 피해 있으라고 봉달이와 같은 식사를 허락해 주곤 했다. 그렇게 일주일이 지나고 보름이 지나더니 봉달이도 점점 살이 오르고 눈꼽과 눈물 범벅이 되어 있던 눈의 붓기가 빠지더니 어느새 맑고 커다란 황금빛과 연두가 섞인 듯한 눈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봉달이는 눈섭 부터 귀 사이까지 검고 커다란 점이 찍혀 있어 머리에 가르마를 탄 듯 했는데 그 검은 점들을 제외한 모든 털이 눈처럼 새하얗다. 처음에는 좀 못생기면 어떤가, 우리를 좋아하면 되지라고 우리들 자신을 위로해야 했지만

지금은 고양이의 이름을 봉달이라고 지은 것을 후회하게 되었다. 사대가 늘씬하게 뻗었고, 목이 길고 눈이 커서, 봉달이를 부르려고 쳐다보면 사슴아! 라고 부르게 된다. 봉순이가 발랑까진 스페인 공주 같다면 봉달이는 청순하고 우아한 몰락한 귀족의 딸 같은 애조가 느껴진다. 봉순이는 발바닥이 새까만 한 쪽 발로 밥그릇을 딱 차고 서서 옹골차게 먹이를 지키고 먹는데 비해 봉달이는 봉순이의 기세에 밀려 입맛만 다시듯이 먹는다. 그래서 봉달이가 식사를 다 끝낸 후에 봉순이를 불러 먹이기도 한다. 날이 갈수록 털에서

윤기가 흐르고 팔과 발에 살이 오르자 쥐꼬리처럼 길고 볼품 없던 봉달이의 꼬리는 어떤 명필이 일필로 그어놓은 자획처럼 봉달이의 존재를 살아서 꿈틀거리게 만들어 주었다. 코끝에서 먹이 번진듯한 봉달이의 콧수염을 흰색으로 염색을 하면 어떨까하는 생각도 잠깐 했지만 고양이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이해하며사랑해야할 존재가 아니라 내 일상의 액세서리나 장난감으로 대하는 것 같아 매우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우리 부부는 감기만 나으면 마당으로 내보냈겠다고 약속한 고양이와 침대를 쓰게 되었다. 어쩐 일인지 봉달이는 봉달아! 하고 부르면 나를 보지 않지만, 사슴아! 라고 부르면 나를 돌아 본다. 인디언들이 그 사람의 행동이나 외모의 특징을 보고 이름을 지은 것처럼 봉달이처럼 내 편리를 위해서 지은 이름보다

진정으로 자신의 개별성을 담은 이름에 본능적으로 더 끌리는 것일까? 동물과 친구가 되면 자연스럽게

그의 행동이나 특성들이 의인화 되는 것 같다. 오늘은 우리 사슴이의 육아 일기는 이쯤에서 끝낼까 한다.

이제부터 이 일기의 주인공에 대해서 너무나 많은 이야기들을 만들어 가야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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