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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묘 일기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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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젯소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273회 작성일 21-01-05 15:55

본문

오늘은 칫과에 가기 위해서 봉달이를 마당에 내어 보냈다.

부쩍 골격이 커진 봉달이가 이제사 사람과 고양이간의 분간이 생겼는지

문이 열리면  귀를 곤두세우고 있다가 풀쩍 밖으로 뛰어 나가기 시작했다.

마당에는 지붕을 뚫고 꺼낸 봉순이와, 지붕에 함께 있다 반대편으로 도망쳐서

어미에게로 갔던 봉봉이와, 군대 갈 무렵이나 된 오빠 같은 막강이와

그 어미들과 삼촌들이 있다. 밥을 다 먹은 삼순이가 늘 그러하듯 앞발을

핥아 대고 있었는데, 그 틈을 파고 들어 젓을 먹으려고 봉달이가 다가갔지만

삼순이는 품을 내어 주지 않았다.  재작년 가을에 낳은 봉구에게 그러하듯,

고양이들은 다 자란 새끼에게 무심하게 대하는 것 같다. 만만하게 다가갈 수

있는 상대가 봉순이 같은데, 지금 봉순이는 눈에 눈꼽이 끼이고 감기 기운이

있어보여 함께 놀리기가 께름찍했다. 마당의 아이들은 한 달에 세 포대씩 10

킬로 짜리 쌀 포대만한 양의 사료를 먹어 치우는데 한 달에 고양이 병원비며

통조림, 화장실 모래까지 넉넉잡아 십만원은 족히 들어가는 것 같다. 나라고 해서

저렇게 밥을 먹여서 고양이들의 개체수를 늘리는 것이 정말 좋기만 한 일인지에

대한 고민이 없겠는가? 이 자연계의 모든 불균형을 초래하는 원흉인 인간의 역할에서

나도 톡톡히 한몫을 하고 있다. 고기를 좋아 하고, 쥐와 뱀은 싫어 하면서 예쁘게 생긴

고양이와 개는 좋아하고, 두부를 좋아하며, 식탐이 많아 사람의 식량이 되는 동물과

식물들만이 이 지구위에 번식하고, 번성하게 만든다. 만약 고양이들이 쥐처럼 생기고

뱀이나 개구리라면 피 같은 돈으로 사료를 사주고, 병원비를 쓰겠는가? 이런 편식 같은

편애가 도시의 사냥꾼인 고양이들의 개체수를 기하급수적으로 늘리고, 고양이의 앞발이

닿는 공중의 어린 새들을 멸종에 이르게 만든다. 물론 사람들에게 직간접적으로 해를

끼치는 쥐를 잡아 주어 고맙긴 하지만, 지속적으로 개체수가 불어 간다면 그 작은 공로 조차도

해로움에 가려질 것이다. 지금 지구는 이미 기울기 시작한 타이타닉이나 세월호다.

북극은 20세기 보다 무려 3도나 평균 온도가 올라갔고, 세계 곳곳의 만년설들이 한 여름 팥빙수처럼

철철 녹아 내리고 있다. 빙하나 빙산은 그 하얀 빛으로 햇빛을 반사하지만 바닷물은 90%이상

햇빛을 흡수한다. 물도 한번 끓기가 어렵지 끓고 나면 이내 닳아 버린다. 녹은 빙하와 빙산들은

냉동 장치가 사라진 지구에 확실한 온수 효과를 낼 것이다. 멀리 볼 것도 없고 길게 말할 것도 없다.

우선 우리는 코로나와 직면하고 있다. 인간의 창궐로 인해서 삶의 터전을 잃은 야생 동물들이 인간의

영역에서 숨을 쉬며 퍼뜨리는 온갖 종류의 바이러스가, 앞으로도 상상도 할 수 없이

 지구인들을 감염 시킬 것이다. 나는 내가 죽기 전에 이 마스크로 부터 벗어 나지 못할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 든다.

14세기 패스트가 창궐해서 유럽인의 삼분의 일이 죽었지만, 그 때만 해도 지구에는 숲이나 빙산이나, 맑은 물 같은

정화 장치가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인간이 만든 얇팍한 발명품들 외에 지구를 정화 시킬 믿을만한 장치가 없다. 영화 타이타닉을 다시 보았다. 빙산과 부딪혀서 배는 이미 좌초 되어 가고 있는데, 신분을 가르고, 빈부를 가르고, 죽고 나면 아무것도 아닌

무의미한 암투들을 벌이며 모두가 몰살될 재난에 대해서는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다. 지금 이 지구에서 지구의 옆구리가 이미

쪼개졌고, 물이 새고 있는 것에 관해 주의를 집중하고 진정하고 상황을 바꾸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대부분은 이 지구에 별다른 문제가 생기지 않았을 때의 사소한 이권다툼에 빠져서, 지구가 더 나빠지는 일 조차 서슴치 않고 하고 있다. 사실 고양이 밥을 주다 보면, 세상 사람들은 고양이 밥을 주고자 하는 사람과 고양이 밥을 주지 않고자 하는 사람으로 갈린다. 그 문제는 보수와 진보,동성애 찬성과 동성애 반대, 진화론과 창조론, 민주주의와 사회주의, 등 세상의 모든 쟁점과 이념과

행동과 운동들을 아우르고 있다. 아무리 하찮고 작은 생명체라도 이 지구에서 살아갈 권리가 있고, 타고난 행복과 안락을 누릴

권리가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소수 인권을 옹호 할 것이고, 죄많은 우리가 죄의 벌을 받아 종국에는 파멸할 것라고 믿는 사람들은 신의 가장 완벽하게 창조한 피조물이 다른 불완전한 피조물의 생멸을 결정할 권리를 부여 받았다고 믿을 것이고, 우연히

생명이라는 불꽃이 튀어, 더 나은 방향으로 번지고 번진 것이라 믿는 사람들은 우리 모두 이 엄청난 진화의 과정을 순례하는

순례자들이라 여기며 그 어떤 사소한 생명체도 함부로 짓밟히고 죽어서는 않된다고 말할 것이다. 나는 성서에서 인간의 죄를 속죄하는 방법이 참 마음에 들지 않는다. 물론 신의 의지 앞에서 내 마음 따위가 아무것도 아닌줄은 안다. 하지만 사람이 지은 죄는 사람이 죽든지 살든지 알아서 할 일이지 아무 죄 없는 양을 죽여서 인간의 죄를 갚는 것인지, 양의 피를 인간의 죄를 닦는 락스나 세제 정도로 여기는 것이 불합리하게 느껴진다. 지금 세계 인구의 삼분의 2를 차지하는 여호와 유일신의 성도들은 이 끔찍한 동물 학대의 교본을 성경으로 삼고 있다. 그것은 명백한 책임 회피이며 책임 전가다. 이 관점에서 동물은 단지 식용이거나

인간의 모순과 탐욕을 닦는 걸레에 지나지 않는다. 이 관점은 인간에 대해서도 그대로 적용 된다. 다윗왕은 자신이 사랑하는 유부녀와 공식적으로 간통하기 위해서 그 유부녀의 남편을 전쟁터에 내보내서 죽게 만든다. 그래도 다윗왕은 이스라엘의 별이다.

신의 선택을 받으면 무슨 짓거리를 해도 용서 되고 신의 선택을 받지 못하면 어떻

게 죽어도 상관 없는 것이다. 그런 관점이 아프리카 흑인들을 노예로 끌고 왔을 것이고, 21세기 초반 까지만 해도 노아의 세아들 중 노아에게 작은 수치감을 느끼게 한 함의 후손들이라고 마음대로 추정한 흑인들을 백인들과 같은 버스를 탈 수도 없게 만들었을 것이다. 그러니까 모두 신의 창조물이라고 창세기에 못 박은 것은 개뻥, 순구라고, 창조물도 창조물 나름이라는 차별과 불평등을 창조주가 공인하고 있는 불평등의 교과서가 성경인 것이다. 오히려 우리가 어느날 우연히 어떤 인연에 의해 발생 되었고

그것은 점차 더 나은 방향으로 살아가고 있다고 믿으면 그나마 동물들과 우리의 발생론적인 갭이 줄어든다. 심지어 땅속의

지렁이 한마리와도 인척간이라는 생각에 까지 이르게 만든다. 고양이 밥을 주는 사람과 고양이 밥을 주지 않는 사람간의 견해 차이는 일상 생활에서도 얼마든지 발생한다. 고양이가 내 돈을 털어서 뭔가를 먹여야하는, 그러니까 나 처럼 배가 고픔이 심각한 문제이고, 나처럼 새끼를 낳고, 나처럼 그 새끼가 잘 못 되면 삶이 온통 무너지는 존재라고 믿고 상상하는 힘이, 고양이 밥을

사게 만들지만, 고양이는 그저 본능뿐인 생존 기계이고, 아무런 정서적인 의미가 없고, 쓰레기 봉투를 뜯으며 늦은 밤 어둠이

찢어지도록 울어대며 연애를 하는 인간의 삶에 걸리적거리는 귀찮은 존재라고 여기는 힘이 고양이 꼬리에 불을 붙이고, 고양이 머리에 화살을 쏘게 만들며, 고양이 밥에 쥐약을 타는 것이다. 지금까지 고양이에 대한 관점과 돈과 물질에 대한 관점이 정확하게 일치하는 사람들을 나는 무수히 만나왔다. 대체로 동물에 대해 우호적이고, 그들의 생명에 대해 연민과 동질감을 가진 사람들은 사람과 사회에 대해서도 정신적인 가치와 사랑과 공존공생과 공감을 더 많이 느꼈던 것 같다. 반대로 고양이, 강아지는 질색 입니다. 제가 동물 알르레기가 있거든요. 개 고양이랑 한 이불을 덮고 자는 사람들은 소름 끼쳐요! 라고 말하는 사람 중에서

돈과 물질에 대해 콘크리트 같은 욕심과 집착을 보이지 않는 사람을 별로 보지 못했다. 물론 이것도 편견이지만, 이 편견은 처음부터 있었던 편견이 아니고, 경험을 통해 형성 되어 온 편견이다. 동물과 자신은 전혀 이질적인, 별개의 존재라고 믿는 사람은

매사를 인간의 입장에서 바라보고 판단한다. 사람이 모든 가치와 판단의 중심인 것이다. 사람이 먼저다 라는 말도 좋은 말인데

사람이 사람을 중심으로 판단하고 살아가는 것이 뭐가 나쁜가? 맞다. 하지만 결코 균형잡힌 생각은 아니다. 사람만 살아야 한다고 생각했으면 창조주께서 사람만 만들었을 것이다. 사람만 살아가게 얼마든지 만들었을 것이다. 말만 하면 되니까. 그러나 우리는 함께 살아가며,함께 라야 살아 남을 수 있다. 꽃이 있어야 벌 나비가 있고, 벌, 나비가 있어야 우리들의 식물(喰物)이 되는

식물들이 씨를 퍼뜨리고 자랄 수 있으며, 새들 또한 열매를 먹고 배설을 하며 식물을 퍼뜨리고, 그 식물을 먹은 토끼나 초식 동물들을 잡아 먹고 호랑이와 사자와 늑대가 살고, 호랑이도 지렁이도 개미도 각자

먹고 사는 일 자체로 이 자연에 무엇인가 기여를 한다. 어떤 멘토들은 혼자 살거라며 깊은 숲속으로 들어가지만, 그 또한 이모든 생명체들이 어우러져 관리하는 이 지구의 소산을 먹어야 살므로 엄밀하게 혼자 살아가는 것은 아니다. 인간이 존엄하지 않다는 말을 하고 싶은 것이 아니라 인간만 존엄한 것은 아니라는 말을 하고 싶다. 고양이에게 밥을 주고 싶은 마음은, 배고픔을 느낄 수 있는 모든 존재에게 밥을 주고 싶은 마음이다. 고양이에게 절대로 밥을 줄 수 없는 마음은, 배고픔은 인간만의 것이라고 인지하는 마음이다. 인간을 위해서 이 세상 전체가, 골수를 빨린 숫거미처럼 말라 죽어도 내 알바 아니라는 마음이다. 모두가 함께 살아야 나도 살 수 있는 것이고, 살아도 산 것이다. 개체가 많이 불어서 어떻해요? 맞다. 그러나 우리 비좁은 식견으로 살 가치가 없다고 생각해도 살 가치가 없는 존재는 살아야 하는 이 세상에 태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닥치는 데로 파리나 모기나 다 먹이고 살려 놓고 보자는 말이 아니라 신중하고 진지하게 존중하자는 말이다. 그리 멀지 않은 우리의 세기에도 우생학은 범죄자와

부랑아와 창녀들이 이 세상을 함께 살아갈 가치가 없는 존재들이라고 판정 짓고, 그들을 끌고 가서 강제로 동물들의 중성화 수술 같은 것을 받게 만들었다. 개나 고양이 같은 동물들과의 교류와 교감은 주변에 대한 우리들의 이해와 사랑을 넓힌다. 이 규격화 되고 구획화 된 인간들끼리의 생존전쟁에서 빠져 나갈 틈을 준다. 사람들 끼리가 아니라 산 것들 끼리를 고민하다 보면, 숲이 보이고 산이 보이고, 강과 바다가 보이고 하늘이 보인다. 같이 먹고 살아야 할 식구들이 보이면 내가 하나 더 먹으려고 주머니에 숨겨 놓았던 것을 꺼내게 되고,  같이 나눠 먹어야 할 식구가 보여 한 개라도 덜 먹게 되는 것이다. 하나님이 쌍둥이로 태어난 에서와 야곱 중에서 야곱만 편애 하신 것은, 세상의 모든 편애, 편집, 편파, 편견, 편협을 정당화 시키는 것 같다. 어디라도 쏠리고 치우치면 배는 뒤집어 진다. 나눠주면 될 것을 어느 한 쪽에만 주니까 분쟁이 생기고, 전쟁이 생기고 불화가 생긴다. 하잘것 없는 피조물인 내가 어떻게 신의 공의를 이해하겠는가? 그러나 사랑과 연민을 가지면 우리의 눈과 마음은 자연스럽게 평등에 이른다. 물론 마당 고양이들 보다 나랑 침식을 같이 하는 봉달이에게 술 안주로 시킨 치킨 다리 살을 한 점 더 주긴 하겠지만, 결국 마당의 고양이들에게도 남은 가슴살과 목살을 주게 되는 것이다.  내 아이에게 학비를 대고 평생을 지원 하겠지만, 그러기 위해서 남의 집 자식들의 행복과 안락을 해치거나 빼앗지는 않는다. 내 아이만큼 부모나 사회의 혜택을 받지 못하는 아이에게도 내 아이에 대한 사람이 밑거름이 되어, 작은 따뜻함이라도 되어 주려고 하는 것이다. 어떤 관점도 의견도 완전한 것은 없다. 일단

젓꼭지들을 출렁이며 쓰레기 봉투를 향해 달려가는 고양이를 보면 먹을 것을 주고 싶다. 배를 채운 고양이가 젓이 돌아, 어느

후미진 틈새에 숨어서 어미를 기다리는 새끼 고양이들에게 젓을 물릴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 고양이들이 다 살아서 또 짝짓기를 하고, 또 더 많은 새끼를 낳고, 동네 쓰레기 봉투가 다 뜯겨서 골목이 쓰레기장이 된다면,  산 목숨의 배고픔과 죽음 보다 나은 대안을 찾아야 할 것이다. 그래보고도 않된다면, 우리는 피치못하는 선택에 이르러도 늦지 않을 것이다. 일본이나 대만의 어느 도시처럼 고양이 마을을 만들어서 관광객을 유치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함께 살아가는 것에 대해 깊이 고민하고 머리를 맞댄다면 분명히 함께 죽지 않는 길이 있을 것이다. 지금 지구가 기울어져 가고 있는 것은 단언컨대, 우리가 고양이들의 밥을 주지 않기 때문이다.


이라는 것이 없으면 내가 죽을 수도 있다는 생각 조차 해보지 않았다. 없어져 보아야 그 필요를 뼈저리게 느끼게 되는 것들,

썩은 이를 뽑고 나사를 박아 새 이를 심기로 했고, 떼우고 씌우고, 내가 앞으로 얼마나 음식이 필요할 지도 모르면서, 언제 망할지도 모르는 식당에 도마와 칼을 새로 사듯이 했다. 우리는 어쩌면 현재보다 미래를 더 믿고 사는지도 모른다. 지금 우리에게

가장 확고한 미래가 있다면 그것은 지구다. 다른 무엇이 없어도 미래는 있지만, 지구가 없으면 미래는 정말 없다. 고양이에게 밥을 주는 것은 이 세상에 살아 있는 모든 생명체들의 밥을 뺏지 않으려는 마음이다. 고양이에게도 밥을 주는데 지구 저편에서

밥이 없어 죽어가는 눈이 새까만 아이들에게 밥을 주지 않겠는가? 고양이에게 밥을 주는 마음은 굶주림 때문에 죽어가는 모든 이웃에 대한 마음이다. 고양이에게 밥을 주려는 마음을 모아서, 사람에게도, 사람이 살아가야할 이 지구에게도, 그 지구를

지키는 모든 생명체에게도 밥을 주어야 하는 것이다. 고양이 머리에 화살을 쏘는 마음들이 만년설과 빙하를 박살 내었고

고양이 꼬리에 불을 붙이는 마음들이 아마존과 세상의 숲들을 파괴 했으며, 고양이에게 밥을 주지 않는 마음들이 이 세상의

모든 밥들을 독점하고 약탈하고 착취해온 것이다.  지금이라도 이 좌초 되어가는 지구를 살릴 수 있는 방법은 고양이에게 밥을 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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