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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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사랑은 사랑인줄 몰라 첫사랑이 지나고 한참이나 후에 그 것이 사랑이었나 하고 추억하는 바보가 있었다. 열병도 그런 열병은 처음이었다. 고등을 갓 졸업하고 잠시 중소기업 실험실에 근무한 적이 있었다. 실험실에는 실장님이 계셨고 주임이 한 분 계셨으며 피벳팅하는 미스 리와 미스 손이 있었는데 그 아래 직원으로 내가 배치가 됐다. 실장님은 창녕분이었고 주임은 서울 분이었고 미스리는 나와 동향이었다. 나이는 동갑인가 한 살 아랜가는 아직도 궁금하지만 여중을 졸업하고 실험실에서 몇 년을 근무했다니 나의 나이 그 언저리쯤인 건 분명했다.
면접을 보고 실험실에 들어서자 새침한 얼굴에 자기 하급 직원이 온다는 소문을 들었는지 얼굴에 찬바람이 돌고 칼라팻기 주변의 레시피 화일을 이리 치우고 저리 던지고 해서 초급 직원의 첫 직장에 대한 불안함을 가중시키기에 충분했다. 실장께서 실험실 분위기를 설명해 주었고 내가 맡을 소임을 자세히 일러주며 미스리가 고참이니 일을 잘 배우라고도 하며 미스리의 손을 끌어 세부적 사항들을 아르켜주라고까지 했다. 보조개가 참 이쁜 사회 초년병이었는데 나 보다 2년이나 고참이니 도리 없이 시키는데로 배울 수 밖에 없는 것이었다. 현장에서 작업할 내용들을 실험실에서 사전에 데이터를 내서 실험을 해보고 그 레시피로 현장에서 큰 기계에 걸어 생산을 해 내는 일들이라 일견 단조롭지만 중요한 일임엔 틀림이 없었다. 미스리의 세밀한 지도아래 피벳팅도 원할해지고 말귀를 조금씩 알아 듣는 신입 직장인이 되어 가고 있었다. 한 일년 간은 이 보다 더 행복한 직장생활이 있을까하고 꿈 같은 세월을 보내고 있었다.
주말이면 실험실은 실험실대로 생산과는 생산과대로 관리실은 관리실대로 팀이 이루어져 뚝도에 있는 선착장을 찾아 배를 타고 강남으로 야유회를 갔다. 도곡에 있는 배밭골로 놀러를 간다던가 혹은 봉은사의 넓은 잔디밭 위에 펼쳐져 있는 석상에 올라 파란 하늘 아래 두 팔을 벌리고 사진을 찍는다던가 뽕밭의 오디를 입이 시커멓게 따 먹는 일이 그렇게 재미있을 수가 없었다. 드넓은 강남벌은 우리의 미래였고 희망이었다. 미스리와 나도 오랫만에 고된 직장에서 벗어나 두 마리 새처럼 날아 다녔다. 먼 타향에 올라와 자신의 미래를 개척하려고 야간학교를 다녀가며 동생들의 뒷바라지도 마다 않는 돈독한 처녀였다. 우리는 수건돌리기라도 하면 서로에게 놓기도 하고 술래잡기도 하며 해가 지는지도 모를만큼 꿈 같은 시간들을 보냈다. 동향에서 올라와 먼 타향에서의 교감 그 것은 뭔가 색 다른 느낌으로 다가오기에 충분한 분위기였다. 이심전심이었다.우리는 누가 누나인지 누가 오빠인지도 모르게 남매처럼 꿈 같은 직장생활을 이어갔다.
낮에는 직장을 다니고 밤에는 대학을 위해 학원을 다녔던 주경야독의 시절이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 어린나이에 당돌하고 무모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그 때는 그렇게 살았다. 미스리도 응원을 해 주었고 실장님도 응원해 주었다. 다 어렵던 시절 다 내일처럼 걱정하고 내일처럼 손을 잡아주던 시절이 있었다. 학원 다니던 한 일년은 저녁은 아예 꿈도 못 꾸는 시절이었다. 저녁 먹을 시간이 없었던 것이었고 회사에서 가불을 해가며 학원을 다니던 시절이라 저녁 사먹을 돈이 없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혹독하고 처참한 시절이었다.
어느 추운 겨울날 학원이 끝나고 쓰러질 듯한 몸을 이끌어 회사근처의 숙소로 돌아오니 늘 싸늘했던 두 평 남짓한 자췻방엔 온기가 돌고 아랫목에는 보자기 덮힌 황당한 밥상이 놓여 있었다. 추운 겨울날 방까지 따듯하게 뎁혀 놓고 보자기로 덥어 놓은 밥상을 보며 필시 미스리의 손길임을 어렴프레 짐작하며 오랫만에 어머니가 지어주시는 밥상처럼 꺼이꺼이 울며 밥그릇을 긁어댔다.
주말이 되어 동료들과 엄마 같고 누이 같고 동생 같은 미스리와 북한강이 흐르는 청평으로 여행을 떠났다. 기차가 종종거리며 달리는 내내 차창가에 흐르는 의문들,나 몰래 다녀 간 자췻방도 그렇고 정성어린 음식들도 그렇고 감정이 묘하게 얽히고 섥혀서 어디서부터 실마리를 풀어 가야할지를 몰랐다. 남녀의 관계성도 몰랐고 사랑이 어떤건지도 몰랐던 때였던터라 더욱더 어쩔바를 몰랐다. 그져 잘 아는 고향지기 정도라 할까 뭔가 규정의 기준도 없었다. 그져 그녀의 눈치만 바라보고 있었다. 이따금 쳐다보는 모습이 야릇하기만하고, 차창을 바라보는 시선도 쓸쓸해 보여서 마음은 천길만길 나락으로 떨어져 가고 있었다. 바보 바보만 차창가에 흩어지고 있었다. 북한강 여행은 기억이 나지 않았다.
토요일 저녁 일찍 그 녀가 자췻방에 들렀다. 흠칫 놀랐으나 아무렇지도 않은 듯 안 추워 하며 슬며시 아랫목 이불 속으로 손을 집어 넣는 그 녀의 손길이 내 손에 잡혔다. 가슴에 물결이 조금씩 일더니 넘실넘실 파도가 일기 시작했다. 누가 한 번도 가르쳐 준 것도 아닌데 우리는 불덩이가 되었더라. 처녀의 입술이 그렇게 뜨거운지는 처음 알았다.타오르는 불길은 잡을 수 없었고 굳이 끌 생각도 없었더라. 한참을 타던 불길이 제풀에 사그라들자 차가운 현실이 도사리고 우리를 쳐다보고 있었다. 헝크러진 마음을 재정비하고 나서야 바깥 공기가 엄동설한임을 그제서야 알았다.지금 생각해도 가슴이 뛰는 일이었다. 사랑의 세월은 멈춰 있었고 엄동인데도 봄의 꽃동산이었다. 그 해 겨울은 참 따듯했다.
노송의 백발이 비탈진 언덕에 싸늘하게 서 있다. 말라터진 가슴에는 향기도 없다. 일으켜 세우는 삭신에는 인정도 열정도 사랑도 다 식었다. 삭신을 다 태우고도 뼈만 앙상한 가지마다 쓸데 없는 욕심만 주렁주렁하다. 아마 관속에 들어갈 때까지 이어질 것이다. 한줌의 먼지로 우주로 흩어질 때 후회하면 무엇하겠나. 지금 사랑하고 감사하고 살아야지. 남도 어디쯤 살아가고 있다는 첫사랑을 찾아 긴 시간을 허적댄다. 가을 날씨가 흐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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