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이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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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 온다
폰에 네 살배기 손자의 영상이 떴다. 둥근 달 같은 얼굴을 폰 가까이 대고 아무말이 없다. 언제라도 영상통화를 하면 수줍어서 소파에 얼굴을 묻고 누나가 통화하는 모습을 힐긋힐긋 쳐다보기만 하던 놈이 얼굴을 갖다 대고 있으니 할애비도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게다가 믿을 수 없는 윙크까지 해대니 애비에게 얼마나 많은 훈련을 받고 전화를 했는지 안 보고도 짐작을 하고도 남음이 있다. 하기사 일 년에 한 두번씩 보는 시골 사는 머리 허연 할애비가 정이 들면 얼마나 들며 무슨 친밀감이 몸에 감겨서 전화로 고 어린 것이 반가움의 아양을 떨겠는가. 그져 저 백발의 노인이 아빠 엄마 누나 다음으로 관계 되는 인물이구나할 정도의 미미한 감정을 헷갈려할 지도 모를 물 같은 심정임에는 틀림이 없을 게다. 고놈이 아빠, 누나와 같이 시골집을 방문한다.
초등 6년에 드는 외손자는 어릴 때부터 외할비를 따라서 서울 생활 내내 무릎에 앉아 귀여움을 독차지 했다. 위로 고등의 누나가 있지만 요놈이 태어나면서부터 사랑은 완전히 한쪽으로 기울었고 밥을 먹을 때도 할애비 무릎에 앉아 먹을 정도였다. 그러면 딸내미는 버릇이 잘 못 든다고정색을 하기도 하고 아빠는 남아선호 사상을 버리지 못 하고 있다고 손녀와 비교하며 입을 삐죽거리기도 하였다. 다 큰 요즈음도 가끔 전화가 오면 아주 어른스럽게 할애비의 안부를 묻는다. 할아버지! 내일 내려가면 불멍을 할려는데요 나무는 제가 가서 할 테니 산에 위험하니 혼자 올라가지 마셔요! 하면 오냐! 하고 뿌듯해서 마시멜로랑 고구마는 미리 준비해 놓았다 하고 답을 하면 감사합니다!~ 하니 사랑을 아니할 수가 없다. 그 외손자가 엄마랑 시골집을 방문한다.
옛날에는 스승의 그림자도 밟으면 안 된다는 금언이 있던 시절도 있었는데 중등교사인 딸이 10여 년도 훨씬 넘는 학교생활에 이따금 염증을 내는 것을 보면 격세지감이 들기도 한다. 아이들이나 학부모에 대한 스트레스도 상당한 것 같고 가끔 일어나는 학교 내부의 무참한 사건들을 보면 늘 애비에게 스승의 길을 강요 당하던 딸내미에게도 그 피로감이 극대화 되어 간다는 것을 피부로 느끼는 요즘이다. 여러가지 요인이 있겠지만 고귀한 스승의 길을 잘 마무리 하기를 두 손 모아 비는 애비의 마음이기도 한 것이다. 그 딸내미가 내일 시골집을 찾아온다.
고택의 구석구석을 닦고 아침부터 창호살의 먼지를 털며 노부부가 법석을 떤다. 언 얼음을 깨뜨려 봉걸레를 빨아 마루를 닦아낸다. 솟을대문 위로 햇살은 따듯하지만 바람은 차가워 담장은 움츠려 추위에 길게 누워 있다. 동장군이 칼을 휘둘러대지만 봄바람에 제풀에 쓰러질 것이다. 그 자명한 사실을 저 햇살은 아는지 모르는지 빙긋이 웃기만 한다. 분명 봄은 오고 있다. 그들이 봄처럼 찾아온다. 노추의 마음도 양지녘 봄처럼 담벼락 머위의 새싹처럼 두근거린다.
댓글목록
들향기님의 댓글

사랑은 내리사랑이고 했습니다
손주의 사랑이 참으로 크고 다정 다감하시고
애틋합니다
부모님이 웃어른들에게 잘해야 아랫사람이
본받는다고 하는데
따님 사위되시는 분들이 잘하시는 것 같습니다
손주들 보는 재미가 정말 행복하고 감사한 일이지요
손주들하고 행복한 시간이 되시길 바랍니다
계보몽님의 댓글의 댓글

전쟁 같은 몇일이 꿈처럼 흘러 갔습니다
외손주는 떠나고 아직 친손주 남매는 남아 있습니다만
아이들이 하루가 다르게 성장하는 것을 보면
노인은 참 더디 간다고 느껴졋습니다
오랫만에 들리신 들향기님!
늘 건강하셔서 즐거운 나랄 보내시길 기원 합니다
감사합니다!
물가에아이님의 댓글

시골집으로 할아버지 할머니 뵈러 가는 친구들이
많이 부러 웠었지예~
일가친척이 단촐 하고 모두 도시에 있다보니예~
어릴적 사랑을 받은 사람과 못 받은 사람은
인성의 차이가 크다고 하지예~
요새 터진 사고를 보연 학교 생활이 우리 다닐때랑
너무 변했어예~
선생님이 일종의 직업으로만 된듯 하고
존경심은 사라진듯 하고예
치맛바람 학부모들 극성은 극에 달 하고예~
조카 내외도학생들 가르치는데 걱정 입니다~
기다리는 설레임이 행복시고
함께 하시는 시간이 더 행복 하시기를예~~~~
계보몽님의 댓글

그렇다네요, 몇일을 쉬면서 딸의 선생노릇에 대한 푸념이 태산 같습니다
선생님의 자질과도 문제이지만 아이들도 문제도 심각한가 봐요
문제가 되는 아이들의 부모를 면담해 보면 아이보다 학부모가 훨씬 문제가 많다는 것을
알 수 있다니 시대의 정서가 많이 변화한 듯도 합니다
사람이 산다는 것이 하루가 다르게 각박해짐을 느끼는 시절입니다
오늘 하루도 맘 편한 하루 되시길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