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잠시 발길을 멈추고 / 박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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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잠시 발길을 멈추고 / 박얼서
지난여름은 참으로 길고 지루한 성하(盛夏)였다. 염치를 모르는 무더위가 막무가내 식으로 설쳐대는 바람에 밤잠을 포기해야 하는 일이 일상처럼 이어졌으니 말이다. 오랜 기억을 더듬어 되새겨 봐도 이에 견줄 만한 폭력적 무더위는 일찍이 만나 보질 못했던 것 같기도 하다.
고온과 다습으로 중무장한 폭염과 열대야가 무지막지한 점령군이 되어 너와 나 우리의 선량한 일상을 밤낮으로 괴롭혔다. 어쩔 수 없이 이를 참고 견뎌야 했던 한여름 내내 의욕과 활력을 빼앗긴 채 납작 엎드려 일상을 최소화할 수밖에 없었다.
여하튼 그나마 다행인 것은, 계절이 잠시 중심을 잃은 채 갈팡질팡은 했어도 치명적 고장은 아니었다는 점이다. 지난밤에는 문득, 여기저기서 우리들 밤잠을 괴롭혔던 에어컨 실외기 소음이 뚝 사라졌다는 사실을 감지할 수 있었다. 이건 바로 열대야가 물러났다는 신호탄이었다.
그런 와중에 9월이 활짝 열린 셈이다. 그러나 한낮은 아직도 기나긴 여름을 떠나보내지 못하고 있다. 계절의 경계마저도 불분명한 가을을 맞고 있다. 느닷없는 집중 폭우로 큰 물난리를 겪는 곳이 있는가 하면, 또 다른 곳에선 극심한 가뭄으로 인해 제한급수를 해야 한다는 소식도 전해지고 있다.
정상 궤도를 이탈한 이상기후, 전례를 찾을 수 없는 여러 기상 이변들이 그것도 예측 불가능한 채로 불청객처럼 들이닥치는 오늘날의 상황들 대부분은 무분별한 우리의 욕망 즉 인간의 물질문명이 키워낸 부산물이라는 사실이다. 자업자득이라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다.
지구 온난화로 인하여 예상치 못한 일들이 지구촌 곳곳을 뒤흔들고 있다. 폭염과 폭우, 장마와 가뭄, 남북극 해빙 등등 수많은 기상 이변들이 인류를 향한 우리에게 재난 및 재해라는 공포와 고통으로 되돌려지고 있는 현실이 매우 안타까울 따름이다.
마냥 답답한 마음에, 무고한 허공을 붙잡고 억울한 넋두리 몇 마디 날리고 말았지만, 좀 더 찬찬히 곰곰이 숙고해 보면 볼수록 이는 분명 자연의 경고이자 하늘의 노여움이겠다는 생각이 길게 꼬리를 문다. 마치 다급한 외침처럼 말이다.
건강한 생태 자연을 끊임없이 아끼고 보존하는 일이야말로 인류의, 인류에 의한, 인류를 위한 순천자존(順天者存)의 유전자로서 공생공존을 위한 씨앗인 셈이다. 누구든 그 원리와 가치를 함부로 파괴해선 안 될 일이다. 작은 훼손마저도 신중할 일이다.
아름다움, 신비로움, 계절다움, 세월다움... 우리 사는 세상을 지탱하는 정서들이다. 인간다움을 살찌우는 근원들이다. 저들이 우리들 향해 묵묵부답으로 부르짖는 그 묵언의 가르침 또한 “순리(順理)다움” 이라는 생각이다. 하루빨리 순리를 되찾을 일이다.
어느 누구와도 계약서 한 장 서로 주고받은 적 없었어도 어김없이 찾아오는 춘하추동의 세월여행, 이처럼 큰 섭리의 흐름에 순응할 줄 아는 만휘군상들 각자가 계절의 주역들로 풍찬노숙을 함께하는 세월의 모성이라는 생각이다.
인간과 자연 환경 이들이야말로 서로 함께 의존해야 할, 서로 함께 건강해야 할, 상호 불가분의 소중한 존재 가치다. 더구나 지구촌이란 단 하나뿐인 “인류마을”이지 아니한가. 물려받은 그 모습 그대로 후손에게 되돌려주는 일, 이는 우리 모두의 위대한 소명일 따름이다.
폭우로 인해 사납게 표정 짓던 붉덩물, 강줄기의 흐름들이 오늘은 해맑은 물길을 열어 눈부신 윤슬을 만들어내고 있다. 보석알들이 모여들어 수면 위를 뒹구는 모습이다. 희망찬 아침이다. 누구나 좋아하는 윤동주의 ‘서시’ 오마주(hommage) 한 줄 공유한다,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우리 모두 다함께 생태 환경을 아끼고 사랑해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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