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제 소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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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가 되면 지낸다 해서 시제라 그러기도 하고 이곳 남쪽에서는 어릴 적부터 어른들이 묘사라고 해서 묘사로 듣고 자랐다. 이 두 낱말을 합쳐서 요즈음은 성묘라 하기도 한다. 다 그말이 그말이니 시대따라 지방따라 다 다른 듯 하다. 해마다 음력 7월 말이 되면 관습처럼 반도의 온 산야가 예초기 소리로 들썩인다. 오랫만에 객지에 나간 후손들이 모이고 낯설고 삶에 찌든 얼굴들을 서로 힐끗힐끗 위로하며 혈육의 정을 확인하는 날이기도 하다. 운이 좋아 객지에 사는 젊고 새로운 종친이라도 벌초에 나타나기라도 하면 누구 자손인지 몇세손인지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제주로서 공연히 기분이 좋아진다. 금상첨화로 상석에 새겨 있는 후손들의 계보를 꼼꼼히 추적하고 내게 물어오면 나는 뛸듯이 기뻐 손을 이끌어 종이에 붓펜으로 그려가며 계보를 알려 주고 자신의 현재 서 있는 자리를 정확히 알려주기도 한다. 그러면 그 종친은 예초에 임하는 자세가 엄숙해지며 까꾸리로 산풀을 한아름 안아 풀숲에 버린다. 그것이 나의 큰 보람이기도 하다.
잡풀에 쌓여 있던 무덤이 시원하게 제 모습을 들어내고 상석에 주과포와 맑은 술 두 잔을 올린다. 올해는 유세차로 시작하는 축문도 우리 글로 전부 바꾸고 새로이 처음 참배하는 종친을 불러 읽게하니 축관도 벼슬이라 축문을 읽는 내내 너무 엄숙해서 여기저기서 피식 웃음이나기도 했다. 옛적 같았으면 엄숙한 자리에서 감히 희죽거린다고 불호령이 떨어지고도 남을 일이나 우리네 제례문화의 크나 큰 진화의 시기니 그냥 잔치처럼 지내자 하는 제주의 양심이 돗자리 밑으로 숨어든다. 산소주인의 피 같은 후손들이 길게 늘어 선 파란하늘에는 유난히도 하얀 뭉게구름이 날아 다니고 제주는 달떠 신령스러운 산신제도 산신과 잔을 주고 받으며 음복주에 얼큰하다.
자고로 제사의 하일라이트는 음복의 시간이다. 모든 후손들이 둘러 앉아 서로의 혈연을 바라보며 조상의 음덕을 나누어 갖는 시간이 음복행사이다.술이 한 두어잔 들어가면 마음에 담아 두었던 이야기들이 술술 나오는 법이라 제유사가 한 마디 한다. 지금까지 이 산소 선조님의 3형제 집안의 나이든 제관들이 하나 둘씩 떠나시고 예전엔 20여명도 넘는 종친들이 이제는 10명도 채 나오지 않으니 앞으로 벌초문제나 제수문제를 어떻게 했으면 좋을지 말씀들 해 보시오 하고 눈치를 본다. 눈치를 가만히 둘러 보면 다 귀찮다는 표정이 역역하다. 돈을 관리하는 재무가 한 말씀 하신다, 나도 내년이면 80이라 직을 내려 놓고 싶고 젊은층 종친중에서 재무를 맡아 주시면 좋겠소 한다. 시골에서 묘제때마다 시장을 보는 것도 번거롭고 사산묘제 시장도 동시에 보자하니 나이 80에 좀 버겁다는 넋두리였다. 풀냄새 자욱한 사방은 조용하고 초가을 늦매미가 악을 쓰고 울고 있었다. 누구 하나 거기에 선뜻 대답을 나서는 이가 없었다.
그래서 지역 농협에 벌초를 맡기고 제수는 주과포로 간단히 하자는 쪽과 산소 가까이 사는 종친 한 분에게 벌초와 지금의 20만원을 30만원으로 올려 제수를 맡기자는 쪽이 한참을 난상토론으로 이어졌다. 결과는 나만 아니면 된다는 결론이었다. 그리고 영원히 편하고 싶어서였다. 시대정서이기는 하나 앞이 막막하였다. 나 같은 종신형도 있는데 해마다 한 번하는 행사인데도 이렇게 설이 분분할까 하는 생각에 엄숙하게 선조님께 엎드리던 종친들의 얼굴을 하나하나 뜯어 보게 만들었다. 내가 있어 다행이다라는 종친은 찾기 어려웠다. 그러자 오늘 처음 참석한 종친이 일어섰다. 저는 오늘 처음 이자리에 참석했습니다만 저는 종친들을 보고 많은 감동을 받았습니다.50대 후반이면 문중에서는 청년이라 종친의 다음 말에 모두가 귀를 쫑긋했다. 저는 객지에 오랫동안 외롭게 살면서 혈족은 생각지도 못하고 살았지요.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시간나면 꼭 고향을 찾아보라는 유언에 오늘 이렇게 이 자리에 섰습니다만 저는 이런 문화가 참 좋은 것 같아요. 힘드셔도 하는데 까지 옛날부터 해왔던 우리네 방식대로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입니다. 내년에는 제 자식도 데려 오고 싶습니다. 영원히 편함을 꿈꾸던 종친들이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다. 불콰하던 술도 어느새 소나무향 따라 사라져 버렸다. 제주가 어렵게 말을 꺼냈다. 제주인 제가 얼굴이 부끄럽소. 좀 더 신중하지 못한 점 미안합니다. 뒷통수를 한 방 맞은듯 하오. 저 젊은 종친의 말씀대로 내년에도 뜻 있는 종친들이 모여 우리의 문화인 풍속을 지켜 가도록 하시지요. 우리는 형제들이니까요. 의의 없습니까? 하니 80의 재무가 고개를 길게 꺾는다.
산길을 내려오는 차창에는 무성한 산풀들이 내년에 또 보자고 푸른 손을 흔들어 댄다. 그래 죽지 않는 이상 삶의 최선을 다 하자. 그리고 인간이기에 도리를 지키다 사라지자. 이 게 모두 사람의 일이니까, 옛 어른들이 목숨처럼 지켜온 풍속이니까. 가을 하늘이 저리도 푸를까,
댓글목록
안박사님의 댓글
#.*계보몽* 詩人`隨筆家님!!!
"계보몽"任이 擔아주신,"時祭`訴懷"를 探讀을 합니다..
先`祖上님들을 기리는,"時祭"의 中要함을 記憶합니다`如..
本人도 安氏`種親會(8寸種孫)의,會長職을 10餘年을 修行하고..
祖上을 모시는것이,後孫들의 義務이죠!"계보몽"任!늘,康`寧하세要!^*^
계보몽님의 댓글
날로 희미해져 가는 풍속의 끄트머리에서 모두가 갈팡질팡 합니다
그래도 먹고 살만하고 나이가 들면 윤리의 출발점인 가족문화는
지켜져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중 한 사람입니다
안박사님도 종친회장을 하시면서 많은 곡절을 겪으셨겠지요
향념이 사라진 세월, 진화의 끝은 어디일지 500년 주인의
소회는 깊어만 갑니다
늘 편안하시고 강녕하십시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