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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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사랑
내가 서울에서 반세기를 살고 귀향할 때 모두들 걱정을 했다. 태생이 시골이라하지만 생활방식과 시골 환경에 그리고 주변 이웃과 조화롭게 잘 살아내느냐의 문제가 최대 관심사였다. 특히나 내자가 서울사람이라 시골생활에 어떻게 적응해 나갈까가 또한 지대한 관심사였다. 남편따라 시집이 있는 시골을 따라 가긴 한다지만 천애고아처럼 막막한 시골구석에 서울에서의 인간적 네트워크를 버리고 창살 없는 감옥 같은 시골생활을 해 낼 수 있느냐는 것이었다. 그동안 서울에서 수십 번의 이사를 했지만 어디를 가도 지하철이나 버스를 타면 친구나 인척들을 쉽게 만날 수 있어 마음이 가벼울 터였다. 그런 서울을 버리고 귀향을 한다고 했을 때 모두들 염려를 했고 시골 고택이야 가끔 들러 휴식이나 취하고 관리만 잘하면 되지 굳이 내려가 살 필요가 있나 하는 것이 중론이었다. 하지만 나야 시골 태생의 DNA가 있는지 사실 그리 큰 거부감이 생각을 짓누르지는 않았다. 문전옥답이 있고 조상이 물려준 문화재나 지키며 전원생활이나 즐기며 여생을 보내자는 게 로망처럼 뭉게뭉게 피어 올랐다. 내 생각과는 달리 완강히 거부하는 아내때문에 그 후 법원까지 드나들며 냉전과 휴전을 번갈아 가며 내자와 피튀기는 싸움이 오래도록 이어졌다. 저간의 사정이야 필설로는 다 옮기지는 못하지만 참으로 전쟁 같은 삼년을 보냈다.
이곳에 살다보니 시골사람들의 서울 사랑은 생각보다 높다는 것을 생활하며 알았다. 예를 들어 허리수술이라도 할려면 서울에 있는 병원을 우선 예약을 해야 그 허리가 온전해질 수 있다는 생각이 짙다. 시골 작은 도시의 의사들을 믿지 못하는 것 같다. 어떤 이는 간단한 백내장 수술이나 임플란트 시술도 서울에 가야 온전한 줄 안다. 물론 치명적 암이나 위 뒷쪽에 붙어 있다는 췌장암수술 같은 난해한 수술은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하지만 가벼운 수술이나 시술은 서울이나 시골도시나 별반 차이가 없다고 나는 생각한다. 수시로 세미나등을 통해 학술 발표회가 있고 의학정보를 공유하기 때문에 대도시나 시골 소도시의 의술과 그렇게 차이가 날까하는 것이 내 생각이다.
재 너머 서울에서 나보다 먼저 귀향한 노부부가 살고 있다. 그제는 산책길에서 돌아오는 길에 들렀더니 두 부부가 고민어린 표정으로 검은 고양이의 등을 쓰담으며 함께 마루에 앉아 있었다. 쟁반에 방금 딴 입이 벌어진 석류와 붉어진 햇홍시를 서너개 담아 내어 놓으며 남편은 임플란트, 아주머니는 백내장 수술을 해야 하는데 서울에서 할려니 늙은 나이에 차를 타고 이동하는 것이 번거롭고 임플란트나 백내장은 한두 번 가서 끝날 일이 아니니 이걸 어떻게 해야 좋을지에 대한 진퇴양난의 넋두리가 길게 이어졌다. 나이 들어가며 서울에서 오랫동안 정기검진과 건강을 관찰을 해 왔기에 당연히 서울에 가서 진료를 받았으면 하는데 복병이 늙음이고 무너지고 있는 몸이었다. 그래서 내가 저도 그런 번거로움 때문에 어금니 임플란트를 시험삼아 여기에서 했는데 서울에서 하는거나 별 차이가 없던데요, 시설도 괜찮고 간호사들이 서울보다 더 친절한 것 같더라고요. 집사람도 며칠 전에 스케일링을 했는데 만족하더라고요. 의심스러우면 수시로 찾아가 의사와 상담을 하기도 하고 가까워서 참 편하더라고요 하니 결과가 괜찮아 하신다. 괜찮아요 제 잇빨 같은데 했더니 부부가 한참을 마주 본다. 한숨을 푹 쉬며 서울행을 포기하려는지 약간의 의심을 갸웃하며 병원 위치와 진료의의 이름을 알려달라 하신다.
시내에 살고 있는 아는 형님 한분도 허리시술로 반년이나 서울을 오르락 내리락 하는데 오고가는 고행에 허리가 덧나는 것 같다고 하소연을 하신다. 그래서 아후터서비스는 이곳에서 받는데 별반 차이가 없다고 했다. 이것이 다 지나친 서울사랑 때문인 것 같다. 나는 여기서 여러 병원을 다니지만 시골의원은 조금은 여유로와서 좋다. 내가 다니는 외과 전문의는 나이가 그리 많지 않은데도 나와 죽이 잘 맞다. 이제야 나이가 지긋하니 진료의가 진료후 무슨말을 하려는지는 거의 8,90프로는 맞춘다. 그래서 나 같은 경우는 진료의와 상담해가며 같이 진료를 논하고 같이 처방전을 내린다. 당료 같은 것도 이따금 미심쩍으면 내가 피검사를 해보자하고 권해 채혈을 해 놓고 오기도 한다. 이 나이가 되면 거의가 반의사쯤은 될 것이다.
서울은 참 멀다. 물론 고속열차를 타면 금방이지만 시골에 있어 보면 심리적 거리감이 훨씬 더 멀다. 요즈음은 내가 정말 서울에 살다 온 사람인가 하고 생경한 생각이 들 때도 있다. 내겐 피비린내 나는 전쟁터이기도 했지만 행복과 사랑이 풍요로왔던 서울이기도 하다. 그래서 아직도 나는 서울을 사랑한다. 사랑이 조금씩 식어 가지만 그래도 나는 서울을 사랑한다.
댓글목록
안박사님의 댓글
#.*계보몽* 詩人`隨筆家님!!!
"서울"에서 半`世期 동안을,居하고 지내셨군`如..
남다른 感懷와 "서울사랑"하시는,詩人님의 心情을..
本人은 요즘도 "서울"이 그리워,母校를 찿고는 한답니다..
"계보몽"詩人님!朝`夕쌀쌀한,날씨에 感氣조심!늘,康寧하세要!^*^
(追申: 즐겁고`보람찬 "秋夕節"을 지내시고,健康+幸福하시기를..)
계보몽님의 댓글
안박사님 안녕하시죠?
뼈가 굳으면서 시작한 서울생활
생각해 보면 참 열정적인 서울생활이었습니다
희노애락의 말미에 큰 병을 얻어 대수술을 하고 서울생활을 철수했습니다만
만감이 흩어져 있는 서울생활이었습니다
풍요로운 보름달 같은 추석이 되시고
늘 건강한 나날 이어가시길 빕니다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