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묘(失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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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묘(失墓)
서울에 사는 죽마고우가 오형제중 삼형제를 데리고 영지못이 있는 선산에 추석 성묘를 왔다.성묘를 마치고 추적거리는 추석에 비를 맞으며 입술이 시퍼래서 오랫만에 나의 사랑채를 찾아 왔다. 친구나 나나 고희를 훨씬 넘긴 나이라 어쩔 수 없이 무너진 삭신이나 얼굴의 팔자주름을 훈장처럼 달고 있었고 서울에서의 그 오년 전 기백은 찾을 수가 없었다. 주량이 비슷해 소주 한 병이면 세상만사 헤매던 그 알량한 주량때문에 영등포 일대를 밤이 늦도록 쥐잡듯이 헤매던 기억에 히죽한 웃음을 띄우며 서로를 바라 보는 세월은 이제 너무 멀리 와 있었다.
먼 거리에 아우들을 데리고 한 번 씩 내려오는 것도 그렇고 해마다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산소의 벌초때문에 고초를 겪고 있으니 이 일을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모르겠다는 것이 친구의 변이었다. 그리고 불과 일년만 지났는데도 산풀이 우거져 산소에 오르는 길도 오리무중이고 천신만고 끝에 산소를 찾았다하더라도 무성한 풀숲에 선조의 산소인지 타인의 산소인지도 헷갈려 참배를 해도 의뭉스러워 개운치 않아 일거에 해결책을 기대하는 눈치였다. 어렵게 산소를 찾아 파묘를 하자니 불충을 저지르는 것 같아 양심이 허락치 않고 그렇다고 매년 풍습대로 참배를 하자니 늙은 나이에 아우들 눈치 보며 강행하기도 거북살스럽고 그야말로 진퇴양난의 처지에 놓인 자신의 입장을 열변처럼 토하고 있었다. 한마디로 시대가 쌍전벽해로 진화하고 삭신도 무너져서 늙은 몸으로 하기 힘드니 해결책을 내어 놓아달라는 눈치였다. 그런 친구의 눈치를 살피며 내가 한마디 하였다. 나도 30여기나 되는 산소를 관리하고 있으니 자네가 한번 시원한 해결책을 내어 보게나 라고 다그쳐 캐어 물었다. 동쪽으로 열린 창호문 밖을 씁쓸히 바라보는 친구의 얼굴이 10년이나 더 늙어 보였다.
전 국토에 산재해 있는 저 수 많은 산소들,그 산소들마다 무거운 이야기들이 스며 있고 절벽처럼 진화된 사람들의 인정은 더 이상 죽은 사람들의 편은 아닌 것 같다. 태산 같은 무거운 주제들을 우리들 세대는 누구나 주머니에 담고 있고 그 해결책을 만지작거리는 수 많은 자식들이 고민에 쌓여 있다. 그저 수면하에서 그야말로 가가예문의 방식으로 처리하는 모습들을 보면서 과연 우리가 윤리를 따지고 손가락질을 할 수 있을까 하는 것이 시대적 담론이기도 하다.
祭酒가 남아 종짓잔으로 홀짝거리던 술이 제법 불콰하더니 친구가 느닷없이 정답은 없어 하고 푸념처럼 허공에 뇌까렸다. 자포자기한 표정이 역력하고 어떻게 되겠지 하며 긴 한숨을 쏟아냈다. 철없는 가을비가 주책도 없이 처마에 주르륵주르륵 고통처럼 흘러 내렸다.
우리 모두 옛적의 아버지의 모습이 되었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지만 우리는 아버지의 길을 가고 있다. 친구의 아버지 모습이 떠올랐다. 참 인심 좋고 효성스러운 사람이었다. 어머니가 치매로 세상을 버릴때까지 그의 아버지는 지극정성으로 어머니를 모셨다. 그의 얼굴을 하고 있는 자식의 모습은 불충을 눈앞에 둔 불효의 모습으로 앉아 있다. 시대가 사람을 버려 놓았을까. 사람이 시대를 버려 놓았는가. 제주에 취한 외로운 시절의 남자들이 세월을 꾸벅거리고 있었다.
많은 지인들이 이 문제를 놓고 무거운 토론을 하고 있다. 하지만 결론은 없다. 그져 이심전심이다. 옳고 그른 것도 없는 것 같다.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른 것일까. 윤리와 양심은 무엇일까. 또한 예의염치는 무엇일까. 과연 우리는 예의염치를 지키며 살고 있는가.
먼 길 떠나는 친구의 어깨가 천근만근으로 무겁다. 언제 또 만날지는 모르겠지만 뒤돌아 잡은 손에 갸냘픈 힘이 주어지고 눈시울이 붉어져 서로 눈길을 피한다. 조심해서 올라 가시게. 작별인사가 흐려졌다. 가을비가 추적추적 끝도없이 내린다.
댓글목록
안박사님의 댓글
#.*계보몽* 詩人`隨筆家님!!!
秋夕節에 省墓하시고,親舊와 情談을 나누시는..
本人도 秋夕節에 省墓以後에,種親會員들과 茶談을..
種親會長職을 10餘年間 했기에,國軍墓地`式으로 合議를..
말씀하신데로 祖上님들의 墓地管理는,어려움이 많고`또 많지如..
슬기롭게 對處하며,祖上님들을 잘 모셔也.."계보몽"任!늘,康寧해要!^*^
계보몽님의 댓글
이른 새벽 안박사님께서 동석을 하고 계시네요
추상 같던 선조님의 산소가 이렇게 전 뒤집듯이 논쟁에 오르는 것이 서글픕니다
안박사님 께서도 산소를 국립공원 형태로 바꾸신다니 저희 문중의 입장에서 보면
아주 신박한 방법이 아닐 수 없네요
이래저래 산소문제는 현 시대의 화두가 되어 핑퐁게임하듯 서로 주고 받지만
세대간 정서의 차이를 극복하지 못하고 갈팡질팡 하고 있습니다
늘 건강하시고 행복하세요 안박사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