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을 명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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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박서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10건 조회 1,958회 작성일 15-08-18 16:40본문
댓글목록
시쓰는농부님의 댓글
시쓰는농부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코끼리는 죽을 때가 되면 사람들이 모르는, 자기들만이 아는 장소를 찾아가 죽는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그래서 코끼리의 무덤을 찾아 상아를 수집, 일확천금을 노리는 탐험가들이 있었다는 거죠. 사실이라기 보다는 코끼리를 둘러싼 전설이라 생각됩니다. 그러나 저는 이 이야기를 들으면서 내가 나의 죽음을 예지할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해 본 적이 있습니다. 그렇게만 된다면 어디 아름다운 산천을 찾아 조용히 죽음을 맞이 할 수 있을 터인데 하고 말입니다. 박서아님 글을 읽으며 죽음에 대해 잠시나마 생각할 기회를 가졌습니다. 감사합니다.
박서아님의 댓글
박서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시쓰는농부님~
저도 시인님 처럼 그런 바램을 가지고 있답니다. 옛 고승들은 코끼리 처럼
그렇게 하셨다는 이야기를 들은적이 있고요. 마지막 힘으로 낙엽을 끌어모아
육신을 덮고 조용히 대자연으로 돌아가는... 저도 그런 바램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만은,
이젠 그것도 민폐라는 생각이 들어서 요즘은 시신기증을 생각 중 입니다.
이미 장기기증은 시청 했습니다만, 현실에서 그 장기를 사용할 수 있는 예는 많지가 않다고
하더군요. 아무튼 마지막은 정갈히 갈 필요는 있는 듯합니다.
그리고 죽음을 너무 어둠의 그림자 처럼 생각 할 필요는 없는 듯 합니다.
주변 이들과 이별은 아프지만, 오랜동안 살아온 육신의 안식일 테니까요.
조바심 없이 매순간 행복하게 살기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것은 진리 인듯 합니다.
감사합니다. 편안한 저녁 되셔요~!!
石木님의 댓글
石木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저도 문지방 너머에 앉아 명상을 하였습니다. 방 주인의 명상을 방해하지 않으려고 미리 허락을 받는 절차는 생략하였는데 용서해 주시는 거죠?
죽음에 대하여 준비되어 있는 자세란, 언제 찾아올지 알 수 없는 그 돌발사건을 당황하지 않고 평화로운 마음으로 맞이하는 것이겠지요. 그러기 위해서는 항상 탐욕과 분노와 어리석음 같은 불순물들이 없는 맑은 마음을 유지해야 하는 것이겠는데, 그게 물론 참으로 어려운 일이지요.
숨이 끊어지는 순간은 그의 생애가 완성되는 시점이라고 하겠고, 그 순간에 밝고 평화로운 표정을 지을 수 있다면 그것은 그의 긴 여행이 아름답고 성공적이었다는 메시지가 되어 남아 있는 사람들에게 삶을 긍정하고 희망을 갖게 하는 최고의 유산이 될 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좋은 명상의 화두를 주시어 감사합니다.
용담호님의 댓글
용담호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죽음에 대한 묘사가 잘 되었네요
인생이 가장 두려운게 죽음이라지요
그러한 죽음은 나이도 관계없이 다가오지요
우리의 죽음은 누구에게 찾아오지만 죽음이라는게
저에게는 가장 평화롭고 고요하다고 봅니다.
내가 죽을 수가 있다는 것도 자연의 섭리에 따라
가는게 인생입니다
빈손으로 와서 빈손으로 가는 흙의 고향
잠시 있다가 가는게 바로 인생의 삶 그 자체가 아닌가요.
박서아님의 댓글
박서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石木님. 너무도 배려심 깊은 댓글을 남겨 주셔서
순간 뭉클 했습니다. 선생님의 말씀처럼 언제 찾아
올지 모를 죽음이란 손님을 맞이 할 준비는, 나이가
많고 적음을 따질 일이 아님을 절실히 느낍니다.
저보다 많은 세월을 사신만큼 저보다 깊이있는
통찰의 향기를 전해 주셔서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오랜동안 뵐 수 있도록 건강관리 잘 하시고요, 이 밤도
평온하시길 빕니다.
박서아님의 댓글
박서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용담호님 이제 아침 저녁으로 선선해 진듯하니, 드디어 글 쓰시기에
좋은 계절이 왔습니다. 선생님의 글 속에서도 삶과 죽음을 잊는 부분이
나오던데, 그때마다 선생님도 많은 생각이 드셨겠습니다.
의외로 이곳 시마을에서 만나 뵌 분들은 죽음을 두려워 하지는 않으신 듯
하여 더불어 마음이 평화로워 지는듯 합니다.
위에서 석목님이 말씀 하셨듯이 평화로운 죽음을 위해서는 탐욕과 분노를
조절하며 살아야 겠지요. 사람이 임종 후 입는 수의에는 호주머니가 없답니다.
어차피 죽으면 아무것도 가져갈 수 없음의 표현 이기도 하겠지요.
선생님의 말씀처럼 평화롭게 살다가 해방된 자유를 얻는 그날을 저도 꿈꿔 보겠습니다.
그때까지 자연이 준 섭리에 맞게 열심히 살겠습니다. 그리고 용담호님의 건승 또한
마음 깊이 빌겠습니다. 좋은 밤 되셔요~!!
대기와 환경님의 댓글
대기와 환경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제일 가까운 이별의 현장에서 바라보면서 느낀 글이 사실적으로 다가옵니다.
이미 영혼이 떠난 후 사후처리는 어쩌면 산자의 위로같이 보여집니다.
그러나 인간존엄성과 생명의 뿌리가 자신의 조상으로 부모로 부터 자신의 생명이 태어났음을
차츰 잊어가는 현대인들 입니다. 서글픈 현실입니다.
"돌아가는 곳" 이라는 글을 적고 있는 사이 서아 시인님의 글을 접하니 마음이 묘한 생각이 듭니다.
가끔식 기도하면서 생각하는 저 쪽 편의 삶을 적었는데..
새로운 죽음문화를 바라보면서.. 참 많은 생각을 하게됩니다.
박서아님의 댓글
박서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대기와 환경님 아침에 부지런히 다녀가 주셨네요. 반갑고 감사 합니다.
제가 처음 지금의 일을 선택할때는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라 순수한 마음으로
망자를 위해서 일을 하고 싶어서 선택을 했습니다. 나름의 소신을 갖고.
하지만 일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고 나서는 결국 이 장례라는 것도
산자의 일이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답니다. 그래서 항시 마음을
다잡습니다. 적어도 행사를 하는 3일동안은 절대적으로 고인의 입장에서
생각을 해보자고요. 사람들은 어찌 생각을 할지 모르지만, 장례는 죽은자가
살아있는 자에게 베푸는 마지막 잔치인 것입니다. 고인이 그것을 할 수 없으니
가족들이 대신 베푸는 것이지요. 저의 생각은 이러한데 다른분들의 생각은
아니 그러하시기도 하겠지요.
저의 바램이 있다면 살아있는 우리가 이별을 고하는 자리에서 장사꾼처럼
조의봉투만 신경을 쓰고 머리수나 세는 냉혈한 심장에 따뜻한 피가 흐르길
바래 봅니다. 진정한 아픔이 무엇인지, 이별이 무엇인지, 이제는 영원히 부재
하는 사람을 보내는 마음가짐을 내 자식에게 보여줘야 할 때라 생각합니다.
몽진2님의 댓글
몽진2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박서아님은 직업상 현장에서 뛰다보니
죽음과 생에 대한 아픔, 그리고 희안을
느껴 이처럼 생생한 글을 쓸수가 있군요.
죽음은 내가 거부한다해서 되는 것도 아닌
천명에 달린 것이지요. 때가 되면 조용히
받아들일 준비는 항상 해야 할것 같습니다.
그런데 우리 수필방이 요즘은 죽음과 삶의 고통에 대한
글들이 부쩍 늘었습니다. 인생의 깊은 면도 있어 좋지만
너무 무거운 감도 있군요.
밝은 글들도 부탁드립니다. 박서아님
건필 바랍니다.
박서아님의 댓글
박서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몽진2님 ~!! 그러고 보니 뒤로 줄줄이 어둠이 따라와 있었네요~^^;;
하지만 어둠이 있으면 빛도 있는 법. 다시 밝은 수필방이 되겠지요.
몽진2님께서 어려운 걸음을 하셔서 묵직한 충고까지 남겨 주셔서
어두운 분위기에 대해서는 일말의 책임감도 느껴지는 것이 사실입니다.
새로운 글은 밝은 빛 속으로 들어가 보도록 하겠습니다.
비가 올려고 바람이 산산하게 불어서 기분좋은 날 입니다.
남은 시간도 행복한 시간 되십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