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단보도에서의 단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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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박용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4건 조회 1,763회 작성일 15-08-20 17:21본문
횡단보도에서의 단상
동서남북을 종잡을 수 없는 도심에서 나의 나침판은 방향감각을 잃었다. 빌딩 그림자에 짓눌린 삼거리, 하늘은 노상 구정물 색인데 가로수 몇 그루 병든 보도 따라 늦가을 고추잠자리 같은 나는 횡단보도 앞에서 신호를 기다린다.
횡단보도 옆에 대기 중인 장애인용 휠체어가 나를 유혹한다. '한번 타 보시지 않을래요.'하고, 때로는 나를 휠체어에 맡기고 싶다. 더듬이로 감을 잡을 나이가 오면 횡단보도를 더듬어 가는 내 모습을 상상한다. 반짝, 햇살 놓쳐버린 황혼에도 당당한 걸음이어야 할 텐데? 어눌한 운신으로 신호 타임을 지키지 못한다면 살아도 살아있음이 아닐 것이다.
알 만한 사람 한둘 횡단보도 앞에 서성댄다. 신호가 바뀌면 그냥 스쳐 지날 수밖에 없는 아는 사람. 횡단보도를 건너다 마주칠 때 반가이 손을 잡고 내 방향 쪽으로 되돌아갈 수 있는 그런 사람 있을까? 가족도 뿔뿔이 흩어지는 산업사회, 저 잘난 친구들이 내 못남을 반겨 준다는 건 기대하지 못할 현실이니 말이다.
사람다워야 하고 사람과 사람 사이에 사람 냄새 물씬한 사람의 마을에서 피고 지는 풍경 같은 존재이고 싶어도 그 마음이 나 하나이면 외로움은 반드시 찾아오는 것. 숲처럼 어깨를 맞대고 향기를 교감하는 자연 같은 그런 삶, 허리 굽지 않게 먹는 나이가 부럽고, 먹은 만큼 무거워지지 않게 끊임없이 비워졌을 때 맑은 물 조잘대는 시내 같은 삶이 되리라.
횡단보도는 문명의 이기들을 제어하는 허용된 통로다. 문명을 가로지르는 유일한 이 횡단로가 인간의 물결 같은 흐름을 실어 나르고 있다. 목숨을 삼켜 가는 수레들의 질주 앞에 속수무책이 되는 사람은 날이 갈수록 운신이 위태로워진다.
단절을 풀어주는 소통구간에서 신호가 열리자 개 한 마리가 횡단보도를 건넌다. 신호의 약속을 기억하는 개를 보며 짧은 단상을 접는다.
댓글목록
몽진2님의 댓글
몽진2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횡단보도를 건너는 그 짧은 시간의
생각이 이처럼 길수도 있구나 하는 감탄을
드립니다.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좋은글 잘읽고갑니다.
용담호님의 댓글
용담호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횡단보도를 건너는 사람들을 보면서 나는 어떠한 생각을 하였을까요?
참 재미 있는 부분에 귀가 솔깃해지는데요
박용님 고맙습니다 고운 글 잘 보고 갑니다
박용님의 댓글
박용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몽진2 선생님, 걸음 하여 주셔서 감사합니다.
박용님의 댓글
박용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용담호 선생님, 횡단보도가 주는 짧은 사유의 시간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