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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밥이 맛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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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아무르박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2건 조회 1,884회 작성일 15-08-28 20:52

본문

아내가 내게 묻는다.

"콩나물 밥이 좋아요?
콩나물 국이 좋아요?"

어제 먹은 숙취가 아직
남아 있는 까닭에

"콩나물 국이 좋겠어
어묵 듬뿍 넣고"

그리고 들려오는 주방의 소리

문을 여닫는 소리,
냄비가 부딪히는 쇳소리,
물소리,
가스레인지에 불이 켜지는
따닥따닥 스파크 튀는 소리,

나는 저녁밥을 기다린다.

콩나물 한 줌에도
이렇게 행복할 수 있다면
콩나물이 국이 되든 밥이 되든
무침이 되든
어떤가?

털갈이를 하듯
화장실 하수구 뚜껑에 뭉쳐져 짚이는
한 줌의 머리카락이나

창을 마주 보고 있는 방구석에
여지없이 뭉쳐진 머리카락이 서글프다.

눈이 아리게 드문드문 보이던
흰 머리카락이
부쩍 자주 눈에 들었다.

아내의 긴 머리카락은
뽑기도 좋았는데
아내는 굳이 흰 머리카락을 뽑지 않았다.

"흰 머리를 뽑으면
그 자리에 머리가 자라지 않는데요."

그 말을 신용할 수 없었다.

세월을 속여 보려고
나는
짬만 나면 흰 머리카락을 뽑고 있었지만
머리숱은 그대로였다.

안방의 열린 창 넘어
베란다에는
아내가 키우는 화초가 자라고 있었다.

어느 봄에 보았던
노란 복주머니를 닮은 복주머니꽃,

꽃이 하도 예뻐
꽃말을 찾아보고 깜짝 놀랐다.

'나의 재산을 드립니다.'

꽃의 화려함과는 다르게
남에게 베풀어야 복이 있다는 말인지
복이 많아서 재산을 나누라는 것인지
도무지 알 수 없는 꽃이었다.

"이 꽃은 뭐야?"

"백 원이야"

아내의 대답에 황망함이라니

베고니아 꽃 이름이
내게는 백 원이야로 들렸다.

"군자란이 꽃을 피웠어요."

했을 때

나는 꽃향기도 몰랐지만
커피의 향기처럼 달콤했다.

꽃은
이름을 알기까지
내게는 그저 흔한 잡풀에 불과했다.

꽃의 이름을 부르기 시작할 때
꽃은
여러 개의 형용사로
내 서정에
새로운 생태를 보여 주지 않았던가

화분에 물을 주고
화초에 잎을 솎아내며
아내의 베란다에는
푸른 초원의 꽃밭을 일구는
마음이었을 것 같다.

밥을 기다리는 마음처럼
아내의 손길을 받아 윤이 나는
화초에 물을 주었다.

아이들을 기다린다.

저녁 밥상에 둘러앉아
함께 밥을 먹을 수 있다 해서
식구라 했다.

가족이라는 말보다
식구라는 말의 어감이 좋게 들리는 것은
외로워도 슬퍼도 노여워도
함께 밥을 먹으면 속부터 든든했다.

집밥이 주는 힘,

어머니가 그러했듯이
아버지는 언제나 이른 새벽의 출근과
늦은 저녁의 퇴근이라
밥상머리에 언제나 부재중이셨다.

나 또한,
일과가 끝나고
늦은 술자리에 얼큰해서 들어왔다.

어떤 날은 분을 참지 못해
혼잣말을 뇌까리고
어떤 날은 지독한 외로움에
말문을 닫았다.

늘 피곤함에 절어 휘청이는 오후,

집으로 돌아가는 길 만큼
식구들이 있는 집이 있다는 것이
가장 큰 행복이었는데

소소한 일상의 일들에는
마음을 주고
집으로 돌아와서는 맥을 놓는 것이었다.

머릿속에는 온통
일과 돈에 대한 걱정으로 하루를 살았다.

바람이 좋은 저녁이나
집 앞 벤치에 나무 그늘이 좋은 한밤이나
세상의 모든 고민은
도시의 십자가가
기도 소리를 들어 줄 것만 같은
고적함이 좋았다.

어쩌면 생은 혼자 걸어가는 길,

그 길에서
나를 발견하는 것은 아닐까?

"아버지, 진지 드세요."

아들이 안방 문을 열었을 때

식탁 위에는
아내의 정성이 가득했다.

콩나물 국에 오이 무침,
어제 먹은 듯 보이는 갈치조림,
노지감자의 노란 속살을 기름에 볶아
큰 접시에 담겼다.

언제나 비어 있는
아버지의 자리가 나는 좋다.

언젠가는 둥지를 비운 새처럼
아이들도
새로운 둥지를 찾아 날아가겠지만

문득문득
이렇게 사소하고 소소한 일상에서
자신의 자리를 가득 채운
식구들이 그리울 것만 같다.

막내는 콩나물 국에
청양초가 들어갔다고
국그릇에 수저가 다녀갈 때마다
타박을 했다.

"요놈이,
아버지도 하지 않는 반찬 투정을 해"

뒤늦게 몸집을 불리는
늦둥이 막내는
마냥 아이처럼 내 곁에 머물러 주었으면
좋으련만

"언제 키워서 장가보내나?"

어머니의 타박도
그저 행복한 밥상이다.

고물상에서 사 온 자전거를
함께 세차하였더니
이번에는 다리가 아프다고 타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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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몽진2님의 댓글

profile_image 몽진2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그렇지요.
젊은시절 직장에서 특수사업분야를
맡은적이 있습니다. 구매에서 영업까지
하다보니 매일 술과 외식이었습니다.
어쩌다 집에서 식사를 하면
어찌나 좋던지요.
옛날 생각이 나서 한참을 머무르다 갑니다.

아무르박님의 댓글

profile_image 아무르박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ㅎ ㅎ ㅎ
저녁은 드셨습니까?
답글이 늦었습니다.

오늘도 여지없이 늦어
저녁은 거르게 되었습니다.

"아빠, 오늘 내일만
햄버거가 원 플러스 원 이래요."

토요일이었는데
택시를 타고 빈손으로 귀가를 했구나

아차~

하는 생각에
햄버거를 식구 수에 두게 더 주문했습니다.

"당신도 같이 먹지,
햄버거 먹고 싶다고 했잖아?"

"그걸 어떻게 알고 있었어요?"

기억력이 나쁜 것인지

둘이 같이 있어도 혼자만의 세계에
갇혀 사는 것인지

도통 알 수 없었습니다.

늦은 밤,
어느 가수가 잘 간다는 남산 밑에 해방촌,

쪽방의 가파른 계단을 오르고
어디서나 흔히 볼 수 있는 옥상이었는데

길에서 볼 때는 조잡하게 보였던
오색 전구의 늘어진 조명이
근사하게 탁자를 비추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멀리 보이는 남산 N타워,

산등성이를 타고 흐르는
도시의 야경이

그 초라한 산동네의 평범했던 옥상을
낭만이 흐르는 곳으로 만들었습니다.

1층에는
요리사가 수제 햄버거에
삼겹살 바비큐를 굽고

맥주 한 잔이 잘 어울릴 것 같았는데

나도 모르게 터져 나온 아성은
그 멋진 풍경보다

매우 맛있게만 보이던 수제 햄버거였습니다.


"나도 먹고 싶다."

ㅎ ㅎ ㅎ

부부는 닮아 간다더니
아내도 햄버거에 꽂혀 있다니

아, 우리 부부의 낭만도
소크라테스를 버리고
배부른 돼지를 선택하는 나이였습니다.

우야 둥둥~

그 섭섭했던 공복을
동네 햄버거 가게의 개점으로
먹게 되었습니다.

집 밥을 써놓고
웬, 햄버거 타령인지 모르겠습니다.

저도 아내처럼,
제 얼굴만 보고 사는 가 봅니다.

몽진 2님,
건강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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