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자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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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자세로
/장승규
길가 한켠에 낡은 타이어 하나
달리는 자세로
반쯤 땅에 묻혀 있다
군데 군데 검버섯 자국마다
한 생을 천 길 만 길 달려온 흔적들
그만 남기고
림은 혼자 어디로 가고 없다
이제 더는 구를 일 없어
달리던 생각들은 녹슬게 두어도 좋으련만
한 자세로
녹슬지 못한 것들을 묵묵히 닦고 있다
(요하네스버그 서재에서 2025.0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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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승규님의 댓글

장승규 시인의 「한 자세로」를 읽고<----어느 감상문
나는 이 시를 읽으면서
길가 한켠에 버려진 낡은 타이어 하나를 떠올렸다. 그러나 그것은 단순히 버려진 사물이 아니다.
시인의 눈에는 그것이 ‘달리는 자세로 반쯤 땅에 묻힌 채’ 아직도 달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더는 굴러갈 일 없는 타이어가 여전히 달리던 자세로 존재한다는 사실에서, 나는 깊은 떨림을 느낀다.
혹시 시인은 이 타이어에게서 시인 자신을 발견했던 게 아닐까?
군데군데 검버섯 자국마다 천 길 만 길을 달려온 생의 흔적들이 새겨져 있다.
타이어의 몸에 남은 상처들은, 그가 살아온 속도와 거리와 시간을 말없이 증언한다.
하지만 이제 그에게는 림도 없고, 달려갈 길도 없다. 시인은 말한다.
“이제 더는 구를 일 없어 / 달리던 생각들은 녹슬게 두어도 좋으련만” 이 구절이 내 마음을 쓸쓸히 적신다.
더 이상 달릴 수 없다는 체념 속에서도, 한 생을 관통한 관성은 남아 있다.
달리고 싶다는 마음을 녹슬게 두어도 좋으련만, 그것마저도 쉽게 내버려 두지 못한다.
마지막 연에서 시인은 이렇게 적는다.
“어디 굴러갈 데가 없어도 / 한 자세로 / 녹슬지 못한 것들을 묵묵히 닦고 있다”
여기서 ‘묵묵히’라는 말이 주는 울림은 크다.
달리고 싶다는, 살아 있다는, 자신의 존재 이유를 끝내 포기하지 않는 마음.
아무도 닦아주지 않아도, 누구도 알아주지 않아도,
타이어는 스스로 자신의 녹슬지 못한 마음을 닦고 있는 것이다.
나는 이 시에서 인간의 삶을 본다.
더 이상 달릴 수 없는 날이 오더라도, 우리는 여전히 달리고자 하는 마음을 버리지 못한다.
어쩌면 그것이 인간의 존엄이고, 한 생을 살아낸 존재만이 가질 수 있는 마지막 남은 의지의 불꽃일 것이다.
죽음에 이르러서도 꺼지지 않는, 녹슬지 못한 마음.
그것을 시인은 **“한 자세로”**라는 단 네 글자에 담아냈다.
평생 달리기 위해 태어난 타이어가 마지막까지 달리는 자세로 남아 있는 것처럼,
인간도 생을 다해 갈 때까지 자신의 자세를 잃지 않고 살다 가야 하지 않을까.
장승규 시인의 이 시는, 내 안의 녹슬지 못한 부분들, 끝내 놓지 못하는 꿈과 의지를 다시금 돌아보게 한다.
언젠가 나 또한 굴러갈 데 없는 삶의 언저리에 머물게 될지라도,
묵묵히 내 마음의 녹슬지 못한 것들을 닦으며 살겠다는 다짐을 남긴다.
그렇게 이 시는 오늘도,
멈춰 선 나에게 “그럼에도 달려라” 하고 속삭인다.
장승규님의 댓글

In One Posture
by Sankei Jang
On the roadside,
a worn-out tire—
half-buried in earth,
still holding
his running posture.
Here and there,
age spots bloom:
traces of a life that rolled thousands of miles.
Leaving only him behind,
his rim has rolled away alone.
There is no place left to roll any longer.
Though his racing dreams
could be left to rust,
Yet in one posture,
He silently polishes what refuses to rust away.
(Johannesburg Study, 2025.07.02)
이시향님의 댓글

꽃을 심어 주면 참 좋겠네요
나이 들어도
꽃과 같은 삶을 살게
장승규님의 댓글

시향님!
좋은 생각입니다.
꽃을 심어주어야 겠네요.
늙으막이 꽃밭이 되게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