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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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녀
/장 승규
나는 1952년에 왔다
오기 전에
하늘은 여전히 무지개를 걸고
강물은 여전히 바다로 흘렀을 터
사는 동안
내 삶은 물질이었다
나는 2047년에 떠난다
떠난 뒤에도
하늘은 여전히 무지개를 걸고
강물은 여전히 바다로 흐를 터
이 세상은 바다
물질은
딱 자기 숨 하나만큼만 해야하는 거라서
(요하네스버그 서재에서 2025.08.22)
댓글목록
장승규님의 댓글
장 승규 시인의 「해녀」를 읽고-감상문
장 승규 시인의 「해녀」는 개인의 생애와 우주적 흐름을 하나로 겹쳐내는 시적 선언이다.
시는 “나는 1952년에 왔다 / … / 나는 2047년에 떠난다”라는 두 시간의 좌표를 나란히 놓음으로써,
한 사람의 생애를 우주의 무수한 순환 속에 위치시킨다.
인간의 유한한 삶과 세계의 무한한 지속이 이 시의 근간을 이루는 것이다.
첫 연에서 제시되는 무지개와 강물, 그리고 바다의 이미지는 단순하지만 탁월하다.
무지개는 하늘과 땅을 잇는 징검다리이자 생의 약속이며, 강물은 끊임없는 흐름으로써 세계의 운동성을 드러낸다.
그것은 마침내 바다로 흘러들어가는데, 이 바다가 바로 해녀의 삶과 세계가 포개지는 자리다.
시인은 “사는 동안 / 내 삶은 물질이었다”라고 간결히 선언한다.
이 대목은 설명적이면서도 압도적이다.
한 인간의 삶 전체를 한 단어 ― 물질(海女의 잠수 행위) ― 로 환원시킴으로써, 해녀의 존재가 곧 삶의 본질임을 드러낸다.
마지막 연은 이 시의 정점이자 울림이다.
“이 세상은 바다 / 물질은 / 딱 자기 숨만큼만 해야하는 거라서.”
여기서 ‘숨’은 해녀의 실제 호흡인 동시에 인간 존재의 한계를 은유한다.
아무리 바다를 사랑하고, 무지개와 강물이 영원히 이어진다 해도, 한 사람의 호흡은 결국 자기 몫만큼뿐이다.
그러나 이 유한성은 결핍이 아니라 지혜로 제시된다.
삶을 욕심내지 않고, 오직 자기 숨만큼만 잠수할 때, 인간은 비로소 세계와 조화를 이루는 것이다.
이 시는 ‘해녀’라는 구체적 삶의 은유를 통해, 인간 존재 일반의 진리를 말한다.
무지개–강물–바다의 순환과, 해녀의 물질–숨–죽음의 궤적은 서로 맞물려 수미상응의 구조를 이룬다.
시를 덮고 난 뒤, 독자는 한 해녀의 삶을 넘어서, 자신의 숨 또한 한정되어 있음을 새삼 깨닫게 된다.
그러나 그 한정성 안에서 우리는 더욱 귀히 사랑하고, 더욱 치열히 살아야 한다는 의지를 얻는다.
장 승규 시인의 「해녀」는 개인의 일생을 바다의 질서와 겹쳐냄으로써, 우리에게 묻는다. ―
“그대의 숨은 지금 어디까지 닿아 있는가?”
장승규님의 댓글
Haenyeo
/Jang Sankei
I came in 1952.
Before I arrived, in this world,
the sky had ever hung its rainbow,
the river had ever flowed into the sea.
All through my years,
my life was haenyeo—
diving deep into the sea
and finding what is precious.
I shall leave in 2047.
And after I am gone, in this world,
the sky will still hang its rainbow,
the river will still flow into the sea.
This world is the sea.
Diving is allowed
only for the span of one’s own breath.
香湖김진수님의 댓글
아흔 다섯이라
더 쓰세요.
10년 은 쓰셔도 될 거 같습니다.
저도 그리 해 볼려고 노력합니다.
저랑 앞으로 30년 더 여기서 버텨보기로 손가락 겁시다요.
손가락질 당하더라도 ㅎㅎ
혹시 압니까
백수 잔치라도 해줄지 ㅎㅎ
그러니 건강관리 잘하세요
골프도 열심히 치시고
임기정님의 댓글
누구나 왔다 가는 세상
어떻게 살다 가는 것이 중요하죠
그 삶이
자신이 만족한 삶이라면 더더욱
귀한 시 잘 읽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