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장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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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장미
/장 승규
길섶에 붉게 핀 장미—
너의 웃음을 닮고 싶은
어느 봄날
닮는 법을 몰라 손끝으로 만지다 가시에 찔렸다
만지기만 했는데
찔린 통증이
이토록 오래 남을 줄이야
그냥 지나야 했을까—
그날 이후, 나는 너를 닮아
늘 웃는 얼굴을 하고 있지만
어쩌면 내 마음에 가시까지도 여럿 돋아났나 보다
내 안은 문득
네 생각이 스치기만 해도 점점이 붉어진다
(요하네스버그 서재에서 2025.1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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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승규님의 댓글
〈흑장미〉 감상문
장 승규 시인의 「흑장미」는 사랑의 상처를 한 송이 장미의 이미지로 형상화한 시이다.
그러나 이 시가 특별한 이유는, 그 상처가 단지 타인으로부터 받은 고통이 아니라,
자기 마음속에서 돋아난 가시에 스스로 찔리는 통증으로 확장되기 때문이다.
시인은 장미의 아름다움과 위험을 통해, 사랑의 본질이 곧 자기 내면의 변형이자 숙명적 닮음임을 응시한다.
첫 연의 “길섶에 붉게 핀 장미”는 자연의 아름다움을 드러내지만,
“손끝으로 만지다 가시에 찔렸다”는 구절에서 이미 사랑의 본질이 드러난다.
사랑은 만지는 순간 상처를 남기는 존재, 즉 접촉과 통증이 동시에 태어나는 감정이다.
이어 “찔린 통증이 이토록 오래 남을 줄이야”라는 고백은
단순한 육체적 아픔이 아니라, 세월이 흘러도 사라지지 않는 감정의 잔향을 암시한다.
“그냥 지나야 했을까—” 이 행은 시의 정조를 잠시 멈춰 세운다.
그것은 사랑이라는 선택이 필연적 고통을 동반했음을 아는 자의 내적 탄식이다.
이 대목을 지나면서 시는 대상의 세계에서 자아의 세계로 천천히 이동한다.
후반부의 전환은 더욱 인상적이다.
“나는 너를 닮아 / 늘 웃는 얼굴을 하고 있지만 / 어쩌면 내 마음에 가시까지도 여럿 돋아났나 보다.”
여기서 시인은 이미 ‘너를 닮은 자’로 변모해 있다. 사랑의 경험이 남긴 상처가 내면의 일부로 자리 잡으면서,
그는 더 이상 상처받은 존재가 아니라 아픔의 본질까지도 닮아버린 존재로 서 있다.
‘가시까지도’라는 표현은 사랑의 모방을 넘어, 그 아픔의 성질까지 자신 안으로 받아들인 자의 체념과 통찰을 드러낸다.
사랑이 깊을수록 그 가시는 많아지고, 그만큼 자기 마음의 표면은 더 예민해진다.
마지막 연은 그 심리의 결말이다.
“내 안은 문득/ 네 생각이 스치기만 해도 점점이 붉어진다.”
여기서 상처는 외부 자극에 의해 생긴 것이 아니라, 내면의 가시에 스스로 찔려 번지는 자각의 색이다.
‘점점이’라는 부사는 ‘가시가 여럿 돋아났다’는 앞의 이미지와 수미상응하며, 상처의 자국들이 마음 깊은 곳에서 천천히 퍼져나가는 모습을 그린다.
「흑장미」는 사랑의 고통을 노래한 시가 아니다.
그것은 사랑이 지나간 뒤에도 마음속에 남아 자라난 자기 인식의 시,
그리고 ‘아픔을 품은 나 자신’을 발견하는 내면의 초상이자 성찰의 시이다.
장승규님의 댓글
Black Rose
by Sankei Jang
A crimson rose bloomed by the roadside—
One spring day,
I longed to resemble your smile.
Not knowing how,
I brushed it with my fingertips and the thorn struck me.
I only touched—
yet the pain has lingered so long.
Should I have just passed by?
Since that day,
I have come to resemble you:
I wear a smiling face,
yet perhaps thorns have grown inside my heart as well.
And within me, at times,
even the faint passing of your thought tinges my heart crimson.
(From the study in Johannesburg, October 18 202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