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 만물상
페이지 정보
작성자 성영희.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6건 조회 963회 작성일 17-06-29 16:59본문
이동 만물상
성영희
한적한 마을에 만물트럭이 지나간다
늙수그레한 남자와 동승한 여자 목소리는
옆자리에 앉지도 않고
평생 늙지도 않는다
젊은 여자의 목소리만으로도 설레는
바깥노인들
아이가 없는 집에서 우유를 사고
남편이 없는 집에서 국수를 산다
사탕 한 봉지를 사는 할머니는
일주일 동안 입안을 굴리며 말 상대를 대신할 것이다
마시멜로는 손주들의
달콤한 말맛이어서 좋고
잇몸의 사정을 잘 헤아리는 두부는
부를수록 부드러워서 좋다
사탕은 평생을 통틀어
가장 달달한 대답 같다
늙은 마을에
어린 입맛들
농번기에는 모두 흙 묻은 손들이다
트럭이 돌아나가는 저녁처럼 어둑한 손끝들
외상은 몇 달이 지나도
이자를 늘리지 않는다
그러고 보니
벌써 2주째 보이지 않는 얼굴이 있다
거슬러 주지 못한
잔돈 같은 소식들
이 마을에선
묻지 말아야 할 안부도 있다
2017 <서정 시학> 여름호
댓글목록
임기정님의 댓글
임기정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마지막 연이 가슴 아프게 다가오는 것은
매일같이 자투리땅이라도 놀리지 않으려고
분주히 움직이던 할머니
요 근래 뵙지 못해 안부 여쭈어 보니
근 한 달 전에 돌아 가셨다는
요즘 서로 안부조차 물어보기
힘들다는 생각에 마음이 아프더군요.
잘 읽었습니다.
활연님의 댓글
활연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오늘은 내리 시를 읽어 오다가
자주 멈칫멈칫 짓눌리는군요.
그늘을 양지로 끌어당기는 힘이랄까,
서정이 현(弦)을 뜯어 사무치게 하는 솜씨랄까,
한밤중에 질식할 듯, 동공이 삼만 평
확대되다가, 소스라치게 자지러집니다.
시엘06님의 댓글
시엘06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할말 없음.
위 활연님 말씀과 동일.
이제 자겠음(꿈에 분명히 만물상 소리가 날 것임)
김용두님의 댓글
김용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고령화 사회의 단면을 잘 환기시켜 주는 것 같습니다.^^
호모 사피엔스가 종말을 앞두고 있는 느낌입니다.
늘 좋은 표현들과 정연한 구조,,,,
풍덩풍덩 시 잘 낳으시는 것이 전 부럽습니다.
좋은 시란 형상화가 잘 된 시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시인님의 시는 좋은 시의 기본(교과서) 같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늘 건안하시고 시 많이 쓰소서^^
이종원님의 댓글
이종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정갈한 맛이 돋아서 입맛의 오감을 자극하도도 남는 것 같습니다
매끄럽게 읽히는 것 또한 성 시인님 시의 장점 아닌가 합니다
한편의 단편이 파노라마처럼 흘러가다가 어느덧 "끝"이라는 엔딩을 달고 올라와 허전하게 만드는 것,
그렇게 마음을 읽다 갑니다. 건강하시길요..
허영숙님의 댓글
허영숙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이동만물상은 이동 마술상이듯 필요한 것은 뭐든
생겨나는 것 같습니다
글이 참 정겹습니다. 그렇지요 때론 묻지 말아야 할 안부를
접할 때도 있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