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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래하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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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오영록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6건 조회 767회 작성일 18-03-05 11:40

본문

빨래하다가 / 오영록

 

 

옷장 차곡차곡 개켜진 속옷이 두툼한 일기장 같다

아직 열어보지 않은

 

아직 입어보지 않는 날

무엇이 어떻게 쓰일지 모르는

 

땡땡이 원피스를 입고 한강을 걸었던 날도 있고

정장을 입고 친구를 조문한 날도 있다

 

놀이터에서 돌아와 지그재그로 벗어던진 아이들 일기

늦은 회식 자리에서 장미꽃을 피워왔다고 찢어버렸던 일기장도 있다

 

오늘은 고단했는지

아무렇게나 벗어던진 꺾인 팔에서 ㄱ이

어디에서 넘어졌는지 구멍 난 무릎에서 ㅇ이 보이고

라운드 작업복에서 ㅎ이 보인다

 

저 얼룩들, 아물아물한 기억 속에 사는

잘 해독되지 않는 유년의 언어들이

밑그림으로 깔려있기도 하다

 

정리되지 않은 자음과 모음

다시 비비고 문질러 지운다

웃음만은 구겨지지 않도록 손바닥으로 삭삭 문질러

다림질하듯 펴서 갠다

 

어젯밤 아무렇게 써 놓은

분홍일기장이

늦은 오후인데도 아직 발치에 둘둘 말려 있다


빈터동인지 발표( 2018 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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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장남제님의 댓글

profile_image 장남제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오시인님 빨래는 빨래가 아니라
시네요.ㅎ
속옷만 일기장이 아니라
빨래가 온통 일기장이 되는
하루일을 기록하는

원피스 나오니
모르는 분들은 여자인 줄 아실라.
덤비실라.ㅎ

조경희님의 댓글

profile_image 조경희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재미있네요
나쁜 기억은 깨끗이 지우고
좋은 기억만 반듯하게 다림질하듯
차곡차곡 잘 개켜진 빨래
잘 감상했습니당

허영숙님의 댓글

profile_image 허영숙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오시인님의 시선에 닿으면 다 시가 되는군요
제 기억의 옷장에는
어떤 추억들이 쌓여 있는데 열어보고 싶어 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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