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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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오영록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3건 조회 687회 작성일 18-12-05 11:08본문
유령
사후 떠나는 줄로만 알았던 영혼은
죽음의 자리를 떠나지 않고 그 자리에 그대로 천 년을 유령으로 살았다
자정을 넘긴 이슥한 밤
안개 자욱한 47번 국도, 홀로 고향 집에 가던 중
유령을 볼 수 있다는 몇 가지 조건이 충족되어 있었다.
이미 고속도로에 진입했으므로
포기할 수도 없는
첫째 동승자가 없었고
둘째 자정을 훌쩍 넘겨 새벽으로 초침은 가고
셋째 안개가 자욱하여 한 치 앞 구별도 힘들고
넷째 지는 초승달이나 뜨는 그믐달인 날
다섯째 사고 지점과 사고 원인을 정확히 숙지하고 있어야 한다는
조건 모두를 충족하고 있다
첫 번째 유령은 새벽시장에 갔다오다 교통사고로 직사했다는 그 젊은 사장이었는데 공사장 마네킹으로 위장하고 차를 세우고 있다
하마터면 설 뻔했다
브레이크를 밟는다는 것이 액셀러레이터를 밟았으니 망정이지 하마터면 따라갈 뻔했다
바퀴를 잡고 늘어지는지 밟아도 차가 나가지 않았다
뒷머리를 잡아당기는지 차 안에 강풍이 일었다
두 번째 유령은 혼자서 콩쿠르 갔다 오다가 다리 밑에서 겁탈당하고 목 졸려 숨진 바로 그 다리였다 다리에 도착하기도 전에 그럴 것이라는 예감이 지배적이었다. 예감은 적중했다. 핏기 하나 없는 얼굴에 빨간 스카프에 목에 칭칭 동여진 생전 모습 그대로 앳되고 예뻤다. 일순 엉큼한 생각에 하마터면 왜 여기에 있느냐며 친절히 태울 뻔했다. 마침 집에서 기다리던 마누라가 건 전화벨 소리 아니었으면 이번에도 여지없이 당할 뻔했다. 이번에도 꽉 닫힌 차 안에 강풍이 일었다
죽음의 곳곳마다 우글거리는 유령들
얼마나 거리를 헤매고 다녔는지
생전의 모습에서 많이 늙거나 추하게 된 사람도 아니 유령도 보였다
바퀴를 칭칭 감고 도는 웃음들
힐끗 룸미러로 보이는 내 몰골도
이미 유령이 된 지 오래였다.
2018 겨울 탄천문학
댓글목록
성영희님의 댓글
성영희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한겨울 낮에 듣는 유령이야기에
등골이 오싹하네요.
흠... 당분간 밤 운전 금지^^
임기정님의 댓글
임기정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마음이 허 하면 불현듯 나타나는 유령
어머나,
깜짝이야
후들거리는 다리 간신히 붙들고
휴, 거울을 보는 순간
쿵,
기절초풍
가끔 저도 그래요 제 모습보고
소스라치게 놀라거든요
오영록 시인님 시
잘 읽었습니다.
서피랑님의 댓글
서피랑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바퀴를 칭칭 감고 도는 웃음들,,
그게 유령이었네요,
생사를 한자리로 불러모았습니다.
멋진 감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