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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너무 오래 서있거나 걸어왔다

페이지 정보

작성자 profile_image 허영숙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9건 조회 1,106회 작성일 19-11-14 15:12

본문

우리는 너무 오래 서있거나 걸어왔다

 

허영숙

 

오래 걷다 잡힌 발의 물집을 위로하자고

죽어서 누운 나무의 등뼈 한 가운데 앉는다

나무가 눕는다는 것은

생사의 금을 긋는 일

햇살과 바람의 간섭으로

틔우거나 피우거나 찬란하거나

보내거나 견디거나 하던 극복의 기록이

오히려 투쟁이었다는 듯

살아서 서 있다는 것이 형벌이었다는 듯

마른 수피 한 벌 입고 누워버린 나무는

너무 오래 서 있거나 걸어왔다

골진 자리에 하얗게 피고 있는 독버섯

죽은 나무에 햇살 구멍을 만들어 분주히 들락거리는 개미들

아직도 파랗게 날 선 풀꽃군락을 지날 때도

그늘마저 물들이기 위해 골똘히는 느티나무를 지날 때도

보이지 않았던 새로운 길이 여기 있다

닫히는 중인 줄 알았는데 한 세계가 새로 열리고 있었다

다른 종들의 거처로 먹이로 다시 쪼개지고 쪼개지다 보면

마침내 흙

물집 잡혔다고 주저앉은 내 발도 마침내 흙

봄을 알리지도 못하고

언젠가는 봄을 보지도 못할 것 끼리 거룩하게 섞이고 섞여

다음 생이 목생이라면 오백 년을 산 나무의

일 년 생 잎으로 와서 함께 펄력여 볼까

 


추천2

댓글목록

허영숙님의 댓글

profile_image 허영숙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해운대 앞바다에서 만난지  어제의 일 같은데 벌써 가을이 깊었습니다
동인님들
건강 잘 챙기시고 연말에 뵙겠습니다

金富會님의 댓글

profile_image 金富會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산행 길에 죽어서 누운 나무에 앉아있다 문득 생각나게 된 ‘나’와 주변의 ‘나’와 주변이 아닌 ‘나’를 허영숙 시인만의 독특한 문체대로 조밀하게 혹은 차곡차곡 글자를 쌓아가는 방식으로 쓴 작품이다. 작품을 소개하기 전, 먼저 허영숙 시인의 글색을 알아보는 것도 작품을 이해하는 좋은 방법이라는 생각이 든다. 허영숙 시인의 글은 딱히 모던 스타일이다. 혹은 고전적이다 혹은 사실적이다라고 논하기 어려운 지점이 많다. 좀 더 솔직하게 말하자면 강철의 알레고리를 갖고 있거나 독특한 문체의 페이소스가 있거나 이중적 구성요건을 갖고 있지는 않은 것 같다. 하지만 전체적인 시의 구성과 본문의 전개방식은 매우 자연스럽고 잠재된 힘이 넘친다. 멋진 문장이라기보다는 자연스러운 세련됨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마치 아무렇게나 걸쳐 입었는데 보기에 상당히 차려입은 느낌이라면 정확한 답이 될 듯하다. 기 발표한 ‘바코드’ ‘나비그림에 쓰다’ 및 몇 작품으로 미루어 볼 때 어떤 시적 리듬감을 타고 난 듯한 느낌을 주는 시인이다. 작품을 살펴본다.


 조근조근 이라는 표현이 어울리게 썼다. 마치 어느 산등성이에서 잠시 쉴 때 불어오는 미풍 같은 맞바람을 얼굴에 대고 있는 듯한 느낌의 작품이다. 첫 행을 따라가다 보면 아주 자연스럽게 삶과 삶의 방식과 삶만이 갖고 있는 나의 이야기를 듣는 느낌이 든다. 죽어서 누운 나무 등뼈 한가운데 앉아 나무를 보니 나무가 살아온 이야기가 들린다. (가설이다) 나무가 살아온 이야기는 내가 살아온 이야기의 어느 지점과 일치하거나 공감하고 있다.

햇살과 바람의 간섭으로
틔우거나 피우거나 찬란하거나
보내거나 견디거나 하던 극복의 기록이
오히려 투쟁이었다는 듯
살아서 서 있다는 것이 형벌이었다는 듯
마른 수피 한 벌 입고 누워버린 나무는
너무 오래 서 있거나 걸어왔다/

발에 물집이 잡혀 나무 등걸에 앉아있는 시인은 나무다. 어느 때의 햇살, 어느 시절의 바람, 씨앗이었던 초심의 계절과 수많은 계절의 밤낮을 보낸 것들을 극복의 기록이라고 한다. 어쩌면 투쟁이었을지도 모를 그 극복의 시간을 나무에게서 읽는다. 아니 나무가 시인의 기록을 읽는다. 서로 공유하며 서로를 읽는다. 살아서 서 있었다는 것이 형벌이었다는 듯이라는 표현이 의미하는 것은 구태여 설명할 필요조차 없다. 나무의 가설은 바로 나의 가설로 동질화 되고 그 지점에서 소통되어 우리에게 가감 없이 전달된다.

삶은 형벌이 아니다. 삶은 말 그대로 삶이다. 하지만 어느 경우 삶이라는 것이 형벌이 될 때가 있다. 그저 서 있다는 자체가 형벌일 때가 있다. 나무가 직접 내게 형벌이라 하지 않았다. 내가 나무를 형벌이라고 본 그 가설에서 나무는 그 형벌의 구체적인 것들을 보여준다.

골진 자리에 하얗게 피고 있는 독버섯
죽은 나무에 햇살 구멍을 만들어 분주히 들락거리는 개미들
아직도 파랗게 날 선 풀꽃 군락을 지날 때도
보이지 않던 새로운 길이 여기 있다

그 형벌의 의미는 희생이라는 것을 기반으로 만들어진 형벌이다. 죄를 지은 것이 아니라 다만, 내가 보는, 내가 생각하는 형벌인 것이다. 죄와벌의 개념이 아니라는 것을 유추하게 된다.

닫히는 중인 줄 알았는데 한 세계가 새로 열리고 있었다
다른 종들의 거처로 먹이로 다시 쪼개지고 쪼개지다 보면
마침내 흙

죽은 것이 아니라 죽음조차도 다른 종들의 거처, 먹이, 장작으로 쪼개지고
다시 쪼개진다는 것은 윤회를 넘어, 보시布施의 개념으로 이해가 될 수 있다. 보시와 희생은 같으면서도 다른 말이다. 준다는 것과 줘야 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의 차이는 매우 크다. 나무의 생채기가 말하는 것은 보시의 개념이며 그런 나무를 읽는 것은 시인의 가설이다. 진솔한 삶의 영역이 반영된 가설이기에 설득력을 얻는다. 이 같은 보시의 단서가 되는 문장은 ‘마침내 흙’이라는 말이다. 흙으로 와서 흙으로 돌아간다는 말이다.

물집 잡혔다고 주저앉은 내 발도 마침내 흙/

내 발도 마침내 흙/ 나무와 나의 동질성, 운명, 궁극의 목적, 등등 여러 가지 것들을 생각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가설의 종착점이 물아일체라는 것이다. 물체와 나를 동일시 한다는 것은 시를 쓰는 일에 있어 대단히 중요한 것이다. 우리는 그것을 생명이라고 말한다. 통칭의 생명은 흙이다.

金富會님의 댓글

profile_image 金富會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마침...이 작품에 대한 평을 쓰고 있었는데....해서
미발표된 평을 잠시 올려두었습니다. 오독을 양해 바라면서.......^^

허영숙님의 댓글

profile_image 허영숙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제 시를 좋은 시선으로 깊이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김부회 시인님
때로는 시 보다 평을 좋게 해주시는 분들이 많아 늘 죄송한 부분이 많습니다

바쁜 일들이 많이 생겨 시를 멀리 한 지 오래 되었는데
오랜만에 쓰다보니 잘 안되기도 하네요

감사합니다^^

서피랑님의 댓글

profile_image 서피랑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시도, 작품평도 잘 감상했습니다.
시제만 읽어도
잠시 주저앉고 싶습니다.
섬에 와서 혼자 차 한 잔 하는 시간, 멍 때리는 시간이
많아졌습니다.
바쁜 일상 속에서도 늘 건강 챙기시길요,
그래야, 또 뵙죠, 반갑게.

임기정님의 댓글

profile_image 임기정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이렇게 좋은시 들고 오시느라 이제사 오셨습니까
나무의 생 그 생속에 나의 생까지 들여다 보는것같아
읽고 읽고 또 읽었습니다
저녁 대길이와 산책길에 누런 풀을보면서
저 풀들도 한 때는 기운찻었는데 하며
셔터속에 두 편 넣어두었는데
반가운 허영숙 시인님  좋은시 읽게해 주셔서
고마워요

이시향님의 댓글

profile_image 이시향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텃밭 중앙에 기준이 되었던 나무가  생각납니다
태풍에 넘어져 누워버린
안티까워도
세워주지 못하는 크기에 졸이던 마음 내려두며
머물러봅니다

박해옥님의 댓글

profile_image 박해옥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제 나름 평한다면
참 훌륭한 시라 생각 했습니다
김부회시인님의 평도 한자도 안 빼고  읽었습니다
도움을 주신 두 분께 감사를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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