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내게 반성하기로 했다
페이지 정보
작성자
본문
나도 내게 반성하기로 했다
현대중공업에서 이십 여명의 친구들과
퇴근하는 길, 꼴찌로 걸어가는 나를 골라
대형 자동차가 내 몸을 밟아버려
부산대학 병원에 일 년 간 눕혀져
의사가 나를 이리저리 째고 꿰맬 때
나는 나에게 반성하기로 했다
부러진 팔다리를 이끌고
고향으로 돌아와 농사를 짓자
사람들이 근심어린 눈빛으로
나를 이리저리 데리고 다닐 때
그들의 눈빛에 끌려가지 않으려고
나는 나에게 반성하기로 했다
밤에는 할 일 없는 농사
소설 시 희극 쓴다고 방구석에 박혔다가
죽음에 이르는 병을 읽고
천주교 베네딕도 수도원에 들어가
수사님들의 속옷을 빨래할 때에
자존심은 물방울에 젖지 않게
나는 나에게 반성하기로 했다
수도원에 있는 책을 죄다 읽자
그만 툭 끊어진 허리띠, 늦가을에
수도복을 책상에 올려놓고 내 옷을 입으니
수도원장이 차비하라고 준 오만 원으로
낡은 중국집에서 자장면 사먹을 때
나는 나에게 반성하기로 했다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해
먼저 할 짓은 반성을 베푸는 일이었다
이 꼭지 저 꼭지 돌리고
이 자리 저 자리에 돌아다니다가
그림자를 밤으로 잽싸게 감추는 수작을
반성하는 것이, 가장 쉬운 웃음거리였다.
추천0
댓글목록
강태승님의 댓글

여러번 숱하게 퇴고 했지만 션찮았습니다
하여 맨 처음 쓴 초고를
결국 최종본으로 결정했습니다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