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시추천 65] 보리 피리 / 한하운 (AI 낭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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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GaeWool2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1건 조회 788회 작성일 20-05-11 10:21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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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aeWool2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詩감상】
사월이면 보리가 패기 시작한다.
초록이 지천으로 팬 보리밭을 지날 적이면 보리피리가 불고 싶어진다.
보리의 싹이 나오기 전의 보릿대를 꺾어 불면 피-ㄹ- 소리가 났다.
보릿대를 적당한 길이로 잘라 손톱으로 작은 구멍을 내 요령껏 불면 피-ㄹ 닐니리 소리가 나기도 했다.
청보리밭의 소리이자 고향의 소리 피-ㄹ 닐니리. 피-ㄹ 닐니리는 향수의 소리다.
[보리피리]의 시인 한하운(1920~1975). 그의 또 다른 이름은 '문둥이'였다.
본명은 태영(泰永). 함경남도 함주에서 지주의 아들로 태어나, 1936년 17세의 나이에 한센병 진단을 받았다.
중국 베이징대학 농학원을 졸업하고 귀국해 도청에 근무하며
양양한 미래를 시작하던 25세에 다시 악화되어 직장도 그만 두고 숨어들었다.
이때 이름도 하운(何雲, 어찌 내 인생이 떠도는 구름이 되었느냐)으로 바꾸었다.
1946년 함흥학생사건에 연루되어 반동분자로 투옥되었다가 이듬해 월남했다.
구걸을 하며 연명하다 명동거리에서 시를 파는 사람으로 유명해졌다.
시는 행간을, 행간의 여백을 읽는 일이다.
이 시는 신문사에 갔다가 즉석에서 써준 즉흥시다.
한 편의 시에, 가곡이나 가요로 가장 많은 곡이 붙여진 시이기도 하다.
그의 삶이 그토록 불우하고 파란만장하지 않았더라면,
'인환'이나 '기산하' 같은 한자어를 제외한다면
동시라 해도 무방할 이 단순한 시가 그토록 많은 사랑을 받았을까.
기운생동 창끝처럼 패는 새파란 보리가, 지는 꽃처럼 문드러지는 붉은 살끝을 거느리고 있기에,
피-ㄹ 닐니리 봄의 보리피리 소리가 한층 깊고 서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