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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산성에서] -함동진 / *[공산성 바람소리] -리헌석

페이지 정보

작성자 profile_image 함동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6건 조회 2,159회 작성일 15-11-27 19:31

본문

*[공산성에서] -함동진 / *[공산성 바람소리] -리헌석



2010.07.18 공산성에서성 059 사진/함동진
공산성으로 오르는 산책길


[공산성에서] / 함동진

6,25전쟁 서울서 떠난 피난길
엄니는 머리에 보따리를 이고 등에는 3개월 된 아기 업고
나는 돌 지난 동생을 업고, 어깨에는 미숫가루. 먹이가 든 멜방을 메고
다섯 살 여동생도
걷고 걸어 남으로남으로 내려가던 피난길
금강 가까이 이르렀다.

솔숲 가 논두렁을 지나는 데, 난데없는 쌕쌔기( 미공군 F-86 전투기)의 기총사격
우리 가족은 논가 농수로 개울창으로 재빠르게 굴러 박혔다.
한참 지나 솔숲가로 나오니 솔숲에 인민군 떼가 있었다
그들은 낙동강전선으로 가는 중 낮에는 미군 공습을 피해 쉬고 밤에만 이동했다.
개인 무기 장비도 없이 남루한 군복차림,
발은 짓물러 흘러내리는 진물을 말리고 있었다.
그들은 낙동강 전선에 이르러 전사한 인민군의 개인무기 장비를 거두어서 썼겠지
소련의 군사 지원도 시원치 않고....
또한 이미 도로, 철도, 교량들이 미군공습에 모두 파괴되어 전투장비 공급을 할 수 없었다.

가까이 보이는 금강 둑을 향해 갔으나
금강교는 폭격에 끊기고
강물 속으로 건너기 위해 얕은 곳을 찾는데
강가의 모래언덕
가뭄 속에 임자 없는 수박덩이가 줄기가 마른 채 떡 벌어져 붉은 속살을 내밀고 있었다.
우리 가족은 손으로 쩍쩍 뽀개어 목마름과 허기를 채우게 되는 하늘의 도움도 입었다.

기운을 차리고 제일 얕은 곳을 택하여 건너는데
업은 아기들의 목까지 강물의 물결이 찰름댔다.
다행히 심한 가믐으로 금강의 물이 얕게 말라들었기 때문이었다.

휴전 반세기가 흐른 지금, 공산성에 올라 금강을 내려다보며
6.25의 참담했던 피난길을 떠올린다.
금강 물 위에 떠 있듯 6.25피난시절의 가족사진 한 장을 들여다보는 심정이다.
피난길의 엄니생각에 눈물이 핑 돈다.

*우리 어머니 는 피난지에 이르러 수복(收復)을 못 보시고 타계하시었다.
피난지에서 자식들 챙겨 먹이기에 본인은 끼니를 잡수시는 척 맹물로 연명하시다가
영양실조로 얻은 병고로 단명(短命)하시었다.
(2010.07.18 공산성에서)


###########################

시집 출간을 祝賀드립니다

(시)
[공산성 바람소리] / 리헌석

작은 꽃으로 피어나도
나는 좋겠다.
공산성(公山城) 돌담 아래
푸른 향기로 세상을 적시다가
가뭇없이 사라진다 해도 좋겠다.

백제 천년의 노래가
놀빛을 불러 공복루 기왓장을 닦아내는
그리움의 역사처럼
이따금 자귀나무 잎을 어루만지다가
도토리나무를 기어오르는 칡꽃을 만나
아직 맺지 못한 사랑을
동문루 기둥에 칭칭 동여매고 싶다.

세월 건너 금강 여울소리가
깊이 잠든 나를 깨우면 다시 일어나리.
서둘러 진남루 목판 틈새로 올라
사랑은 우리에게 무엇이며,
눈물은 우리에게 무엇이냐,
왕비를 대신하여 무령왕에게 물어보리.

황토로 다진 돌길을 지나
기우는 햇살에도 눈이 부신 금서루에서
서로 속삭이며 바라던 풍경들,
잊을 수 없어 가슴에 남겨진 기억으로
그대 머릿결을 쓰다듬는데

이제 한 올 한 올 세월이 깃든
추억의 입자를 모아
새로운 노래를 지어 부루리니,
작은 풀꽃으로 흔들려도 나는 좋겠다.

*공산성: 충청남도 공주시 산성동에 있는 백제 고성. 2015년 7월에 송산리고분과
함께 유네스코 문화유산에 등재.
*공복루. 동문루. 진남루. 금서루 : 공산성 안에 있는 네 문루 .


저 자: 리헌석 지음
출 판 사: 오늘의문학사 2015.11.11.
페이지 수: 168

금강일보 [ 11면 ] 2015.11.18 최일 | choil@ggilbo.com
사회 <추억따라 노래따라 거니는 고향>

‘우리의 고향은 정겹고 따뜻한 충청도입니다.’
1951년 충남 공주와 서천에서 각각 출생한 석파 리헌석 선생과 국당 조성주 선생. 한국전쟁 중 태어난 동
갑내기로 이제 60대 중반에 접어든 이들 두 인물은 고향에 대한 사랑을 예술혼으로 불태우는 정열적인 예
술인이다.



“웅비의 땅 공주(公州)는 그리운 나의 고향입니다. 공산성(公山城)과 송산리 고분군(松山里 古墳群)
의 유네스코(UNESCO) 세계유산 등재는 형언할 수 없는 기쁨으로, 이를 기념해 소중한 시집을
상재(上梓)합니다.”
시인이자 문학평론가로 충청 문단에서 활발한 활동을 펼치는 석파(石琶) 리헌석(李憲錫) ㈔문학사랑
협의회 이사장. 충남 공주 태생인 그가 1970년대부터 최근까지 고향에 대한 그리움과 사랑으로 지은
시100편을 엮어 ‘공산성 바람소리’(오늘의문학사)라는 시집을 출간했다.
리 이사장은 “충남 부여, 전북 익산의 유적과 함께 공주 공산성, 송산리 고분군이 유네스코 세계유산
으로 등재된 것을 기리고 축하하기 위해 공주를 제재로 지은 작품들로 시집을 냈다”라며 “라고 말했다.
애향인 리헌석 이사장이 내놓은 애향가인 ‘공산성 바람소리’ 제1부 ‘그리운 달빛처럼’에는 공주의 역사와
문화유적·유물에 대한 서정적 노래가 담겨 있다. 제2부 ‘디디울나루 노래’에는 중·고교 시절 6년간 등·
하교 시 건너던, 추억이 어린 그의 서정적 보고(寶庫) 디디울나루에 얽힌 시가 수록돼 있다. 제3부
‘아버지와 어머니’에는 일본강점기 강제징용을 당했던 아버지의 고단한 삶, 사랑으로 길러주신
어머니의 사랑 등 천륜(天倫)을 승화시킨 서정시가 실려 있다.
제4부 ‘유구천의 두루미’, 제5부 ‘내 고향은 공주다’에선 고향에 대한 중심 서정으로 기능하고 있는
구체적인 사례가 시인의 추억을 통해 서정화를 이뤘고, 공주의 자연과 전통적 삶을 시인의 독자적
시각으로 담아냈다.
“공주교육대학을 졸업하고 교원으로 근무하기 위해 고향을 떠난 지 어느덧 40년이 넘었습니다.
꿈길에서도 걷는 공주의 산하(山河)여! 내 고향 공주만을 소재로 한 작품만으로 시집을 발간하게
돼 가슴이 벅차오릅니다.”
이번 시집엔 다른 시집에선 좀처럼 찾아볼 수 있는 공지가 눈길을 끈다. ‘이 책의 저저가 고향 사랑
정신으로 저작권 및 로열티를 해제합니다’라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리 이사장은 “누구나 저자의
동의 없이 이 책 낱낱의 시와 산문을 인용·복사·전재할 수 있다. 다만 저자명이나 저서명을 밝히는
조건”이라며 저작권을 스스로 반납했다. 저작권 분쟁이 빈번한 시대에 그만큼 공주를 노래한 자신
의 시가 여러 매체, 수많은 사람들을 통해 확산되길 바라는 마음이 간절한 것이다.
글·사진=최 일 기자 choil@ggilbo.co


(1) 2010.07.18 공산성에서 062 사진/함동진
영동루(迎東樓)
공산성동문지(公山城東門址)에 의하면 공산성의 4개문 가운데 동쪽에 있는 문이다.
무너져 없어졌던 것을 1980년에 발굴 조사하여 건물의 밑부분 구조를 확인하였다.
문터 옆 양쪽에 원래의 문을 지탱하는 돌이 그대로 발견되었다. 조사 결과와 철종
10년(1859)에 편찬된 [公山誌]의 2층 3칸 건물이라는 기록을 근거로 동문의 누각을
복원하였다.


(2) 2010.07.18 공산성에서 066 사진/함동진
공산성에서 내려다 본 공주시 시가지 일부


(3) 2010.07.18 공산성에서 069 사진/함동진
광복루(光復樓) -문화재자료 제50호
원래 공산성 내에 주둔한 군대를 지휘하던 중군영(中軍營)의 문루(門樓)이다.
일제침략기 초에 일제가 공산성의 북쪽 문인 공북루(拱北樓) 옆에 있는 문루를
이곳으로 옮기고 웅심각(雄心閣) 또는 해상루(海桑樓)라 하였다.
1946년 4월에 김구선생과 이시영 선생이 와서 나라를 다시 찾았음을 기리고자
광복(光復)이라 하여 광복루(光復樓)로 고쳐 오늘에 이르고 있다.


(4) 2010.07.18 공산성에서 074 사진/함동진
임류각(臨流閣)
임류각은 서기500년(백제 동성왕22년)에 왕궁 동쪽에 지은 건물로서
왕과 신하들의 연회장소였을 것으로 보인다. 1980년 공산성 발굴조사로
임류각터를 발견하고 1993년 거의 정방형에 가까운 2층 누각을 지었다.
건물의 단청 문양은 무령왕능에서 나온 장신구 및 현실의 벽돌에 있는
무늬를 많이 활용 하였다.


(5) 2010.07.18 공산성에서 078 사진/함동진
명국삼장비(明國三將碑)
충남 유형문화재 36호로 정유재란 이듬해인 선조 31년(1598)가을 공주에 주둔하면서 공주민을
왜(倭)로부터 보호해주고 생업에 종사할 수 있도록 보살펴준 명(明)나라의 3장수 제독
이공(提督 李公),위관 임제(委官 林濟), 유격장 남방위(遊擊將 藍芳威)의 업적을 기린
사은송덕비(謝恩頌德碑)이다.


(6) 2010.07.18 공산성에서 092 사진/함동진
진남루(鎭南樓)
공산성 남쪽 문의 누각으로 토성이었던 공산성을 조선 초기에 석성으로 다시 쌓으면서 건립한 건물로 여
러 차례 고쳐지었으며, 1971년에 해체 수리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높은 돌 축대 위에 건물을 세워 2층
누각의 효과를 나타내고 있다


(7) 2010.07.18 공산성에서 096 사진/함동진
쌍수정사적비(雙樹亭史蹟碑)
공산성 진남루 서측에 위치한다. 조선 인조 2년(1624)에 왕이 이괄의 난을 피해 공주성에 머물렀던
장소에 사실을 기록하여 숙종 34년(1708)에 석비를 건립하였다. 이괄의 반란과 인조의 남천(南遷)에
대한 내력을 쓰고 공산성에 머물렀던 10일 동안의 행적, 그리고 왕이 머물렀던 공산성에 대한 내용
등이 적혀 있다. 비신은 방형의 오석이며 너비와 두께는 거의 같은 크기이다. 4면에 걸쳐 각자하였고,
비머리 위에는 보주가 있다. 비문은 우의정 신흠이 찬하고 중추부사 남구만이 서(書)하였으며,
영의정 최석정이 두전하였는데 후에 송시열의 음기(陰記)가 있다.


(8) 2010.07.18 공산성에서 109 사진/함동진
쌍수정(雙樹亭)
공산성 쌍수정(公山城 雙樹亭)은 충청남도 공주시 금성동, 공산성 진남루 북서쪽에 있으며, 조선 영조 10년
(1734년)에 처음 세운 정자이다. 1984년 5월 17일 충청남도의 문화재자료 제49호로 지정되었다.
공산성 진남루 북서쪽에 있으며, 조선 영조 10년(1734)에 처음 세운 정자이다. 인조가 이괄이 일으킨 반란
(1624)을 피하여 공주로 잠시 피난 왔을 때, 이곳에 머물렀던 일을 기념하기 위해 세운 것이라고 한다. 이
후 여러 차례 보수되어 오다 1970년에 전체적으로 해체하여 지금의 모습으로 복원하였다. 건물은
앞면 3칸 · 옆면 2칸이며, 지붕은 옆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으로 꾸몄다.


(9) 2010.07.18 공산성에서 110 사진/함동진
영은사(靈隱寺)
공주시 공산성내에 영은사라는 절이 있다. 임진왜란 때 산신령의 도움으로 왜적을 번번이 물리쳤다는
전설로 이 절에는 신령이 숨어 있다는 이야기로 영은사(靈隱寺)라 불렀다는 전설이다.



(10) 2010.07.18 공산성에서 117 사진/함동진
공산성연지(公山城蓮池)와 누각
*연지 : 충청남도 기념물 제42호. 길이 21m, 너비 15.3m, 깊이 7.7m, 넓이 1,164㎡. 이 연지는 공산성
안의 남쪽 영은사(靈隱寺) 앞에 자리하고 있다. 연지 안의 석축은 단을 두어 쌓았으며, 밑으로
내려갈수록 넓이가 좁아지는 형태를 하고 있다. 그리고 서쪽 호안(護岸)의 남쪽에 10여 단의
계단을 설치하여 연지 속으로 출입할 수 있는 통로를 만들었는데, 이 통로는 위로부터 약 4m
되는 곳에서 다시 북편으로 90。 꺾여 연지의 밑바닥까지 내려갈 수 있도록 하였다. 바닥에는
판석을 깔았는데, 동서편의 너비 약 9m에 남북편의 너비 약 4m로 되어 있으며, 입수구는 따로
없으나 북편의 금강을 향하여 약 40㎝ 가량의 배수로가 설치되었다.
*누각 만하루(挽河樓): 또한 이 연지와 북편으로 흐르는 금강 사이의 대지에서 정면 3칸, 측면 2칸의
누각을 복원할 수 있는 조선시대의 팔각 석주들이 발굴되어 현재는 이를 복원하여 건립하였다. 1984년
복원된 것으로, 목 조 건물로 되어 있다. 1980년 공산성 내 유적 조사가 이루어지면서 공산성
만하루에 대한 건물지가 확인되었으며, 1984년 현재의 건물로 복원되었고, 2006년 보수 공사가
이루어졌다. 또한 공산성 만하루 옆의 연지도 복원되어 있다. 공산성 만하루를 통해 누정이 단순히
풍류를 즐기고 노는 공간이 아닌 군사적인 기능을 가질 수도 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공산성이 조선시대 중요한 군사적 요충지였음을 확인할 수 있다.


2010.07.18 공산성에서 118 사진/함동진
공산성연지의 모습


(11) 2010.07.18 공산성에서 124 사진/함동진
만하루(挽河樓) 앞의 금강에서는 정부의 4대강 보사업의 하나인 금강의 보공사가 한창이었다.


(12) 2010.07.18 공산성에서 131 사진/함동진
공주잠종보호고(公州蠶種保護庫)
누에씨를 보급하기 위해 만들어진 공주잠종보호고(公州蠶種保護庫)이다.


(13) 2010.07.18 공산성에서 137 사진/함동진
공북루(拱北樓)
1603년(조선 선조36년)에 건축한 공산성의 북문이다. 이곳은 원래 망북루(望北樓)가 있었던
터 였으나 금강에서 성안으로 들어오는 문 위에 누각을 세운 것이다. 아래는 성안으로 통하는
곳으로 사용하고 위는 마루로 만들어 네 면을 개방하여 강가의 아름다운 경관을 즐기는 장소
로 이영하였다 건물 안에 중수기(重修記)와 시서(詩書) 등이 걸려 있어 풍취를 더해주고 있다.


(14) 2010.07.18 공산성에서 142 사진/함동진
높은 곳에 공북루(拱北樓)가 위치하고 있다.


(15) 2010.07.18 공산성에서 143 사진/함동진
공북루(拱北樓) 근처 절벽 아래로 금강이 흐르고 있다.


(16) 2010.07.18 공산성에서 148 사진/함동진
금강을 가로질러 있는 교량들.


(17) 2010.07.18 공산성에서 155 사진/함동진
공산정(公山亭)


(18) 2010.07.18 공산성에서 158 사진/함동진
공산성 금서루(公山城 錦西樓)
서문은 본래 유지만 남아 있었으나, 최근 문루와 함께 새로운 형태로 문루의 복원이 이루어져 있다.
복원된 문루는 공산성 서쪽 성곽선에 연결되게 성선을 연결하면서 성의 입구를 개구식으로 내면서
그 위에 문루를 올린 상태이다. 더불어 본래의 문지는 성내의 출입시설로 사용되고 있으며 복원된
문루는 외형만 겸비하고 출입시설로 사용되지는 않는다. 본래 공산성 서문 문지의 복원은 이미 1975
년에 성곽에 대한 보수공사를 겸하여 실시한바 있다. 그러나 1975년의 보수에서는 양단의 기단만
축석하였을 뿐 누적은 복원되지 않은 채 남겨 놓았었다. 당시 복원된 기단부는 높이 4.4m, 너비 5-6m,
그리고 길이는 각각 17m로 조성하였는데 좌우 양단간의 간격은 7m의 범위였다. 본래 서문지의 형태는
정확한 확인이 어렵다. 문의 형태에 대하여 <여지도지>에서는 동,서문은 각각 3칸이란 기록을 남겨
놓고 있다. 서문지의 복원은 1990년에 이르러 본래의 문지에서 약간 남쪽으로 이동하여 3칸 규모의
고주 형태의 문루가 축조되었다. 비록 최근에 새로이 조성된 것이지만, 조선시대 성문의 문루 양식을
재현한 것으로 볼 수 있다.


(19) 2010.07.18 공산성에서 170 사진/함동진
제민천교 영세비(濟民川橋 永世碑)
충청남도 공주시 금성동 공산성의 서문 입구에 모아 둔 공적비 중의 하나로 제민천 영세비는 공산성
서문 입구에 있는 43개의 비석들 가운데 하나이다. 제민천 영세비는 공주의 제민천과 제민천에 놓였
던 교량의 중수에 대한 사실을 자세하게 기록하고 있다는 점에서 유별하기 때문에 그 역사적인 의의
를 지닌다. 제민천은 금학동의 남쪽 지막골에서 발원하여 공주시내를 관통하여 북으로 흘러 정지산
을 돌아 금강으로 이르는 샛강이다. 제민천 교량은 중동에서 봉황동으로 통하는 목에 놓여 있었다고
추정된다. 1817년(순조 17) 여름 대홍수로 제민천이 범람하고 교량이 붕괴되자 백성들은 그 수리를
원하였다. 그러나 공사에 필요한 비용은 3천여 금이라는 막대한 액수로 백성들에게 거둘 수 없는
매우 많은 돈이었다. 이에 비변사에 보고하여 충청수영의 군자미를 얻고 자체자금과 부여와 연기의
공전을 합하여 사업의 자금을 겨우 마련하였다. 이 다리의 복구는 8월에 마치고 하천의 둑을 고쳐
쌓는 일은 이듬해인 1818년 4월에 모두 완료되었다. 그 과정에서 공이 있는 관리와 자금의 지원에
협조한 강신환 등 원납인 10인의 이름을 기록하여 두었다.


(20) 2010.07.18 공산성에서 043 사진/함동진
계롱농협 장례식장 앞의 금강
처남의 상을 당해 장례식을 마치고 길을 묻고 걸어서 공산성을 답사하였다.
김정원 처남의 명복을 빕니다.


깊은산골(長山)
함동진
http://hamdongjin.kll.co.kr/
http://cafe.daum.net/hamd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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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마음자리님의 댓글

profile_image 마음자리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딱 한번 공주 출장길에 공산성을 둘러본 적이 있습니다.
사진들이 그때의 기억을 되살려주네요.
리현석 시인님의 새 시집 출간을 축하드립니다.

큰샘거리님의 댓글

profile_image 큰샘거리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공산성에 대한 자료 정말 감회가 깊습니다
국민교 5학년 때인가 진남루 앞 경사로에 쌓여있던 기와파편들 속에서
좀 특이하게생긴 기와조각들을 들고 박물관으로 가서
백제시대 기와 가져왔으니 사례를 하라고했던 기억하며
박노식 문희주연 공산성의 혈투라는 영화를 찍는데
문희여사가  밧줄에 꽁꽁 묶여 진남루에 매달리던 장면...
계집아이는 뜨게질하고 까까머리 소생은 하모니카불던
누각아래 양지바른터 너무 삼삼하고 눈에 밟히는 그리운 그 곳
너무 감사히 보았습니다.
역사학과 조교이시던 친구형님이 연지발굴에 땀흘리시던 것...
이루헤아릴 수 없는 많은 사연이 있는 곳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제민천에 관한 자료는 처음 보는 것으로 무척 소중한 자료 같습니다.
금강교 그 장례예식장........
너무나 사연이 많으나 이쯤에서 반가운 소회를 접어야 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건강하십시오

고지연님의 댓글

profile_image 고지연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소상히 적으신 공산성의 역사 자료
정성 가득한 글귀와 사진들
감사함으로 봅니다
함동진 시인님 처남의 상을 당하시고도
빈손으로 돌아 오지 않으시고
이렇게좋은 정보 함께 공유 하시니
참 부지런 하십니다
한겨울로 접어든 날씨 건강 하세요

저별은☆님의 댓글

profile_image 저별은☆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공주에 들어서면서 저 금강 다리를 넘어서면
곧바로 눈앞에 보이는 높은 산성과 누각
그곳이 바로 공산성이리라 생각합니다
단 한번 저곳을 돌아 보긴 햇지만 세세한것을
함동진 선생님께서 자세히 설명 주시어 다시 읽어보며 돌아 봅니다
시댁이 공주고 친정이 조치원 이다 보니 공주는 자주 갑니다
금강천이 아름답게 흐르고 그곳에 바로 보이는 공산성
다시 한번 찾아보고 싶습니다
너무도 애쓰신 공산성의 역사와 리헌석 시인님의
시집 출간을 축하드립니다 늘 건강하세요~

물가에아이님의 댓글

profile_image 물가에아이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전쟁을 직접 겪어시고
고단함을 아시는 어른들 세대가 자꾸 줄어드는 세월입니다
지금 즒은이들 아무것도 모르고 가끔 빨간사람들에 동조하는 예사롭지 않은 사건도 있었습니다
공주 아직 미지의 세게입니다 물가에 한테는
시간내어  다녀 오고 싶은 곳이 많아졌습니다
금강 휴게소에버스를 멈추면 휴게소 뒤의 금강을 본게 전부입니다
늘 건강 하시고 좋은날 되시어요 함동진 선생님

함동진님의 댓글

profile_image 함동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마음자리 님 / 큰샘거리님 / 고지연 님 / 저별은 님 / 물가에아이님.
부족한 사진과 자료글에 과분한 격려의 칭찬을 주시니 감사드립니다.
공주의 [공산성]을 답사하시고 나면
그뿐만 아니라 인근에 모두 걸어서 답사할 곳이 더 있습니다.
가시게 되면 모두 답사하시기를 권해봅니다
[무령왕릉(송산리고분군).
[공주박물관(문화공원)]
[순교성지공주황새바위]
[공주정지산유적(公州珽止山遺跡)] 등입니다.
저는 이 모두를 같은 날에 답사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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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화의 소원 댓글+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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접시꽃 댓글+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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