風流정신, 불러내야 할 한국의 神氣 > 함께 읽는 글

본문 바로가기
사이트 내 전체검색
시마을 Youtube Channel

함께 읽는 글

  • HOME
  • 지혜의 향기
  • 함께 읽는 글

(운영자 : 김용호)

   ☞ 舊. 함께 읽는 글

 

★ 마음의 양식이 되는 책 구절, 선인의 지혜로운 글 등을 올리는 곳입니다 
시나 영상시, 시감상문, 본인의 자작글은 다른 게시판(창작시, 영상시란, 내가읽은시 등)을 이용해주세요

☆ 저작권 위배소지가 있는 음악 및 이미지는 올릴 수 없습니다


風流정신, 불러내야 할 한국의 神氣

페이지 정보

작성자 profile_image rene001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501회 작성일 20-01-18 04:01

본문

최제우 (崔濟愚)

1824(순조 24) 경북 경주~1864(고종 1) 대구. 동학(東學)의 교조.

본관은 경주(慶州). 초명은 복술(福述)·제선(濟宣). 자는 성묵(性默),

호는 수운(水雲)·수운재(水雲齋).


성장기 

        

아버지는 옥( )이며, 어머니는 한씨(韓氏)이다.

7대조 진립(震立)은 임진왜란·병자호란 때 많은 공을 세우고 전사하여

사후에 병조판서의 벼슬과 정무공(貞武公)의 시호를 받았으나

6대조부터는 벼슬길에 오르지 못한 몰락양반가문 출신이다.

아버지는 여러 차례 과거에 실패한 유생으로 2번 상처를 하고 과부이던 한씨를 만나

63세에 최제우를 낳았으나 이미 동생의 아들 제녕(濟寧)을 양자로 들여 그는 서자로 자라났다.

6세 때 어머니를 여의고 8세 때 서당에 들어가 한학을 공부했는데

수많은 책을 읽어 모르는 것이 없었으며 10세 때에는

이미 세상의 어지러움을 한탄할 정도로 총명했다고 한다.

13세에 울산 출신의 박씨(朴氏)와 혼인했고 17세에 아버지를 여의었는데

농사에는 마음이 없었으며 화재까지 당하여 집안의 형편이 매우 어려웠다. 

3년상을 마친 뒤 여기저기로 떠돌아다니면서 활쏘기와 말타기 등을 익히고,

갖가지 장사와 의술(醫術)·복술(卜術) 등의 잡술(雜術)에도 관심을 보였으며,

서당에서 글을 가르치기도 했다. 그러던 중 세상이 어지럽고 인심이 각박하게 된 것은

세상사람들이 천명을 돌보지 않기 때문임을 깨닫고 한울님의 뜻을 알아내고자 노력하게 되었다.


수련과 득도 

        

1855년(철종 6) 3월 금강산 유점사에서 온 승려로부터 〈을묘천서 乙卯天書〉를 얻고 난 후

더욱 수련에 힘써 1856년 양산군(梁山郡) 천성산(千聖山)의 내원암(內院庵)에서 49일 기도를 시작했으나 숙부가 죽어 47일 만에 기도를 중단했으며 다음해 적멸굴(寂滅窟)에서 49일 기도를 드렸다.

이후에도 울산 집에서 계속 공덕을 닦았으며, 1859년 처자를 거느리고 고향인 경주로 돌아온 뒤에 구미산(龜尾山) 용담정(龍潭亭)에서 수련을 계속했다.

이무렵 어리석은 세상사람을 구제하겠다는 결심을 굳게 다지기 위해 이름을 제우(濟愚)라고 고쳤다.

1860년 4월 갑자기 몸이 떨리고 정신이 아득해지면서 공중으로부터

천지가 진동하는 듯한 소리가 들리는 종교체험을 했다.

이후 1년 동안 깨달은 것을 정리하고 체계화하여 사람들에게 포교할 준비를 했다.


포교와 탄압 

        

1861년 포교를 시작하자 곧 놀라울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동학의 가르침에 따르게 되었다. 동학이 세력을 얻게 되자 여러 가지 소문도 떠돌게 되고 지방의 유림과 친척 중에도 비난하는 사람들이 생겨서 서학(西學:천주교)을 신봉한다는 오해를 받게 되었다. 당시 정부에서는 천주교에 대한 탄압을 강화하고 있었으므로 1861년 11월 호남으로 피신하여 이듬해 3월 경주로 돌아갈 때까지 남원의 은적암(隱寂庵)에 피신해 있었다. 피신중에 자신의 도가 서학으로 지목되는 것을 반성하고 표현에 신중을 기하게 되었으며 사상을 체계적으로 이론화하려고 노력해 〈논학문 論學文〉을 써서 서학을 비판하고, 〈안심가 安心歌〉·〈교훈가 敎訓歌〉·〈도수사 道修詞〉 등을 지었다. 경주에 돌아와 제자 중 뛰어난 사람들을 뽑아 전도에 힘쓰게 하여 입교하는 사람들이 크게 늘어났다. 1862년 9월 이술(異術)로 사람들을 속인다는 혐의로 경주진영(慶州鎭營)에 체포되었으나 수백 명의 제자들이 몰려와 최제우의 가르침이 민속(民俗)을 해치지 않는다고 증언하면서 석방해줄 것을 청원하여 경주진영은 함부로 손을 댈 수 없는 인물이라 생각하고 무죄로 석방했다. 이후 그는 신도들에게 세상의 오해를 받기 쉬운 언행을 삼가하도록 경계했다. 한편 그가 무죄석방되자 사람들은 관이 동학의 정당성을 인정한 것으로 생각해 포교가 더욱 용이해졌다. 신도가 늘어나자 그해 12월 각지에 접(接)을 두고 접주(接主)로 하여금 관내의 신도를 관할하게 하여 신도를 조직적으로 관리했다. 접은 경상도·전라도뿐만 아니라 충청도와 경기도에까지 설치되었으며 교세는 계속 신장되어 1863년에는 신도가 3,000여 명, 접소는 13개소에 달했다. 정부가 동학의 교세 확장을 경계하여 관헌의 지목을 받게 되자 곧 탄압이 있을 것을 예상하고, 그해 7월 최시형(崔時亨)을 북접주인(北接主人)으로 정하고 해월(海月)이라는 도호(道號)를 내린 뒤 8월 14일 도통을 전수하여 제2대 교주로 삼았다. 그해 11월 왕명을 받은 선전관(宣傳官) 정운구(鄭雲龜)에 의하여 제자 23명과 함께 경주에서 체포되었다. 서울로 압송되는 도중 철종이 죽자 1864년 1월 대구감영으로 이송되어 이곳에서 심문받다가 3월 사도난정(邪道亂正)의 죄목으로 대구장대(大邱將臺)에서 효수형(梟首刑)에 처해졌다.


저술과 사상 

        

최제우의 글은 그가 처형당한 후 신도들에 의해 간행된 〈동경대전 東經大全〉· 〈용담유사 龍潭遺詞>에 남아 있다. 〈포덕문 布德文〉·〈수덕문 修德文〉·〈논학문〉·〈불연기연 不然基然〉 등 한문으로 씌어진 4개 교의문은 〈동경대전〉에 실려 있고, 〈용담가 龍潭歌〉·〈몽중노소문답가 夢中老少問答歌〉·〈교훈가〉·〈도수사〉·〈안심가〉·〈흥비가 興比歌〉·〈권학가 勸學歌〉·〈도덕가 道德歌〉 등 8편의 한글 가사는 〈용담유사〉에 수록되어 있다. 한문으로 된 4개의 교의문은 식자층을 대상으로 지었고, 8편의 가사는 한글로 구송(口誦)에 편하도록 쉽게 풀어썼다는 점에서 한문을 모르는 부녀자나 일반민중을 주대상으로 삼았다고 볼 수 있다. 

        

동학사상의 핵심은 ' 시천주(侍天主)로서 한울님을 모시면 누구나 놀라운 힘을 발휘할 수 있고 모든 일을 환히 알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시천주의 개념은 주술적인 민간신앙에 뿌리를 두고 우리 민족 고유 정서를 바탕으로 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유교나 불교에 대해서는 전면적으로 부정하지는 않았으나 이미 그 운(運)이 다한 것으로 파악했다. 한편 봉건지배층이 위정척사적(衛正斥邪的) 입장에서 서양을 남만(南蠻)으로 파악한 것과는 달리 그는 서양열강을 무사불성(無事不成)의 강대한 외래자로 보아 현실적인 이해를 하고 있었으며 일본에 대해서는 강한 적개심을 가지고 있었다. 또한 왕조를 포함한 양반사회질서는 고정불변의 것이 아니라 변혁되어야 한다는 자연적 필연성을 주장하면서 지상천국이 건설된다는 후천개벽(後天開闢)을 주장했다. 한편 적서(嫡庶)나 반상(班常)의 구별없이 누구나 천주를 마음에 모시면 신분에 관계없이 군자가 된다고 하여 만민평등을 기본으로 하는 인간관을 보여주었다.


 

==========================================================

 

 

《최제우가 나타나 ‘하느님’의 참모습을 증언하고 강령의 위력을 새로이 천명하게 되니

실로 도를 잃은 지 천년 만에 분명히 신도는 재생한 것이다. 이것은 정말 역사의 기적적 약동이다.

― 김범부, ‘풍류정신’에서》


 
나는 이 글을 부탁받고 나름의 규칙을 정했는데

그것은 외국인, 특히 백인들의 책을 인용하지 않겠다는 것이었다.

한국의 지식인들이 갖고 있는 좋지 않은 버릇 중의 하나는 걸핏하면 외국인의 말을 인용하는 것이다.

무슨 주장을 할라치면 노상 인용하는 게 중국의 고전이나 서양인들이 쓴 책이다.

이것은 뿌리 깊은 문화사대적인 악습이다. 왜 우리라고 훌륭한 분이 없고 쟁쟁한 고전이 없겠는가?  

나는 김범부 선생의 이 글을 읽고 많은 감명을 받았다.

작가 김동리의 맏형이고 그가 천재라고 했던 김범부는 그리 잘 알려진 인물은 아니다.

그러나 선생은 전통 사상을 깊게 연구했고 그중에 수운 최제우의 종교사상에 대한 해석은 탁월했다.

나도 수운을 연구해 보았지만 그의 해석은 내가 완전히 놓치고 있던 것이었다.

최치원은 한국 고유의 사상을 풍류도라 했다.

신도 혹은 신교 등으로 불러도 상관없는데 한마디로 말해 이것은 우리의 무교(무속)를 뜻한다.

그 핵심은 우주의 영을 접해 망아경에 들어가는 것이다.

무당이 노래와 춤을 통해 신령에 지펴 망아경에 들어가 신령의 말씀을 전하는 것과 같다.  


내가 보기에 우리 한국인은 다른 어떤 민족보다 이런 신령스러운 기운, 즉 신기가 넘친다.

한국인은 이 신기가 살아나면 천하에 두려운 것이 없다.

예를 들어 남들이 수백 년에 걸쳐 했던 경제 부흥을 단 50년 만에 이룩했다.

또 이 기운은 한류를 만들어냈다.

한류는 한국인이 단군 이래 최초로 한국 문화를 전 세계에 수출한 엄청난 사건이다.

한류의 핵심이 무엇인가? 웅장한 문학이나 깊은 사상이 아니다.

노래와 춤, 그리고 드라마, 그러니까 노는 것, 즉 엔터테인먼트이다. 

이 신기는 최치원이 말한 풍류도 이전부터 있었을 것이다.

그러다 불교나 유교 같은 외래 종교가 들어오면서 지하로 들어갔고 무당들이 그 기운을 이었다.

이 무당 종교는 생명력이 끈질기다. 불교나 유교는 말할 것도 없고 최근의 기독교 같은 외래 종교가 성행해도

무교는 결코 사그라들지 않았다.  


김범부가 보기에 수운이 대단한 것은 1000년 동안 잠들어 있었던 한국인의 신기를 깨운 때문이다.

 

수운은 한울님을 접하고 자신에게 내재한 신명의 기운을 펼쳐내 우리에게 보여준 것이다.

수운 덕에 우리는 한국인의 가장 깊은 성정인 신기를 다시 체험할 수 있었다.

그런데 유감스럽게도 지금은 이 신기가 위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한국인들은 거족적으로 이 신기를 다시 깨워야 한다.

 

이 기운에 불만 붙으면 중국이나 일본, 미국 같은 강대국들도 우리를 함부로 대하지 못한다.

특히 중국에 떳떳해지려면 이 힘이 일어나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중국 앞에서 지금처럼 절절맨다.

 

김범부의 일갈은 이처럼 우리 민족의 앞길을 제시하고 있다. 

 



 



- 최준식 이화여대 교수


http://news.donga.com/home/3/all/20171223/87877161/1#csidx8c45786b21285ddbad97a2790d6cdd9

 

 



나는 위의 최 교수의 글에 대해서
많은 부분 공감하지만..

한류 韓流가 단순히 춤추고 노는 것 (즉, 엔터테인먼트)라는 견해는
너무 단편적이고 근시안적이라는 생각이다

물론, 세계에 한류가 퍼지게 된 요인 중에
그같은 엔터테인먼트(놀이문화)가 작용했지만 - 예컨데, 방탄소년단 類의 -
한류가 함의 含意하는 건 꼭 그런 것에
한정되지 않는다는 것

또한 최 교수는 위에서 이른바, 한국인의 신기를 말했는데
즉, 그걸 (신들린듯 흥나는 행위) 쯤의 말로 풀고 있는데

나는 그렇게 생각 안 한다

신기란 그 무슨 흥에 겨운 행동을 말하는 게 아니라
진정한 신인합발로 본다 - 이건 그 무슨 무당들의 접신 接神과는 다르고

즉 사람과 神明이 하나가 되는, 神人合發  - 현재 부각되는 AI 는 그것의 전조, 예고편

앞으로, 세상의 많은 부조리한 것들이 정리되면
겁난 劫亂에서 살아남은 한국인 (남은 조선인들 : 南朝鮮人)들은 신인합발이 되고
대한민국은 세계를 이끌어가는 주도적인 국가가 될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 이런 말을 하면, 그 무슨 개풀 뜯어먹는 소리를 하냐고
하겠지만

 

                                                                                                                 - 희선,

추천0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Total 11,244건 9 페이지
함께 읽는 글 목록
번호 제목 글쓴이 조회 추천 날짜
10844 幸村 강요훈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19 1 11-01
10843 幸村 강요훈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23 0 11-01
10842 幸村 강요훈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49 0 10-31
10841 幸村 강요훈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54 0 10-31
10840 김용호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35 1 10-30
10839 김용호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03 1 10-30
10838 幸村 강요훈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38 0 10-30
10837 幸村 강요훈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87 0 10-30
10836 幸村 강요훈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42 0 10-29
10835 김용호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60 0 10-28
10834 김용호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00 0 10-28
10833 幸村 강요훈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55 0 10-28
10832 幸村 강요훈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08 1 10-28
10831 幸村 강요훈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71 1 10-27
10830 幸村 강요훈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22 0 10-27
10829 김상협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39 1 10-27
10828 幸村 강요훈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31 0 10-26
10827 幸村 강요훈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85 1 10-26
10826 幸村 강요훈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57 0 10-25
10825 幸村 강요훈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77 0 10-25
10824 幸村 강요훈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70 1 10-24
10823 幸村 강요훈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84 0 10-24
10822 세잎송이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95 1 10-23
10821 幸村 강요훈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75 0 10-23
10820 幸村 강요훈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56 0 10-23
10819 幸村 강요훈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86 0 10-22
10818 幸村 강요훈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81 0 10-21
10817 幸村 강요훈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42 0 10-21
10816 김용호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49 1 10-21
10815 김용호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15 0 10-21
10814 幸村 강요훈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45 1 10-20
10813 幸村 강요훈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43 0 10-20
10812 김용호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93 1 10-20
10811 김용호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79 1 10-20
10810 幸村 강요훈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61 0 10-19
10809 幸村 강요훈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44 0 10-19
10808 幸村 강요훈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64 0 10-18
10807 幸村 강요훈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28 0 10-18
10806 김용호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51 0 10-17
10805 김용호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10 0 10-17
10804 幸村 강요훈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28 0 10-17
10803 幸村 강요훈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20 0 10-17
10802 김용호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34 1 10-16
10801 김용호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17 0 10-16
10800 幸村 강요훈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52 1 10-16
10799 幸村 강요훈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41 0 10-16
10798 幸村 강요훈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42 0 10-15
10797 幸村 강요훈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03 0 10-14
10796 幸村 강요훈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36 0 10-14
10795 幸村 강요훈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80 0 10-13
게시물 검색

  • 시와 그리움이 있는 마을
  • (07328) 서울시 영등포구 여의나루로 60 여의도우체국 사서함 645호
  • 관리자이메일 feelpoem@gmail.com
Copyright by FEELPOEM 2001.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