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카드와 연하장 교환을 금한다!' 1961년 5·16쿠데타로 집권한 군사정부가 연말을 맞아 전 공무원에게 내린 '허례허식 금지 훈령' 4항 중 첫 번째다. 이 엄포가 통했는지 그해 12월 20일부터 23일까지 우체국이 취급한 카드는 전년도의 절반도 안 되는 14만2829통이었다. 이보다 앞서 1960년 4·19혁명 후 출범한 장면 정부도 '공무원들은 누구에게도 성탄카드-연하장을 보내지 말라'고 지시했다. 허리띠 졸라매던 시절엔 크리스마스카드도 사치와 낭비의 대표적 사례로 지탄받았다.
▲ 크리스마스카드 등 연하 우편물이 한 달간 1억6000만 통쯤에 이를 것이라고 추산한 1980년 기사(조선일보 1980년 12월 6일자).
1949년 12월, 체신부가 '크리스마스를 축하하고 국민의 신앙 정신을 드높이고자' 최초로 관제(官製) 크리스마스카드 2종을 내놓았을 때만 해도 이 카드는 지극히 소박한 인사장이었다. 하지만 1954년 말부터 크리스마스카드 주고받는 게 크게 유행하기 시작하면서 눈살 찌푸리게 하는 일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 업자 저 업자가 마구 찍다 보니 성탄 카드에 '이도령과 춘향의 러브신' '크리스마스트리 옆에서 기생이 춤추는 장면' 같은 엉뚱한 그림도 들어갔다. 이런 일은 웃어넘기면 그만이지만 문제는 호화판 카드였다. 전쟁 후 어려운 시기인데도 어떤 고위 공무원들은 금가루로 자기 이름을 찍은 카드를 만들어 '어중이떠중이'들에게까지 몇백 장씩 뿌렸다. 조선일보는 '명절이란 원래 돈 없는 사람에게는 설움을 돋우는 법이지만, 예수와 상관없는 사람까지 휩쓸고 들어가는 크리스마스 소동에, 빈한한 가정에는 또 여러 가지 걱정이 첩첩'이라고 혀를 찼다(조선일보 1954년 12월 25일자). 한 목사는 '공직자 사회의 호화판 크리스마스카드 뿌리기는 소위 '사바사바(은밀한 뒷거래로 떳떳하지 못하게 일을 조작하는 짓)'를 위한 수단으로 삼는, 성탄의 악질적 이용'이라고 목청을 높였다. 이승만 정권 때 국회의장을 지낸 이기붕은 우리나라 인쇄술이 나쁘다며 일본에까지 크리스마스카드를 대량 주문했다가 카드에 국회 배지 모양이 잘못 찍혀 법석을 떤 일도 있었다(경향신문 1960년 12월 16일자).
그래도 오랜 세월 우리에게 크리스마스카드 발송은 연말의 필수 행사였다. 1980년에는 12월 10일부터 한 달간 우체국에 쏟아진 연하 우편물이 1억6300만통으로 추산됐다. 오늘날에도 여전히 성탄 카드가 살아 있지만 인기는 전성기에 비할 바 아니다. 2009년 설문조사에서 우리나라 남녀 직장인이 크리스마스 선물로 가장 받고 싶지 않은 물건으론 '책 또는 CD(38.7%)'에 이어 '크리스마스카드(17.9%)'가 2위에 뽑혔다.
필자 약력 - 김명환
사료연구실장 E-mail : wine813@chosun.com 문화부 기자로 15년간 활동하며 문학·영화·연극·뮤지컬을 취재하고 수백 편의 영화와 연극을 비평. 해리슨 포드, 케빈 코스트너 등 세계적 톱스타들을 할리우드에서 인터뷰했으며. 1995년엔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을 국내 최초로 단독 인터뷰했다.'할리우드 혁명'(1994년) '세계의 문화도시'(2000년)등 해외 현장 취재 시리즈를 기획 보도해 주목 받았다. 1996년 kmtv '김명환의 영화이야기' 진행. KBS라디오 '안녕하십니까 황인용·금보라입니다'등 다수의 방송 프로그램에 출연해 영화 해설과 토크. 서울대 국어국문학과 졸업 조선일보 수습 21기 입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