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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태진의 길 위에서] 보길도 海潮音은 몽돌의 연주로 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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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약초 농부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1,294회 작성일 16-02-18 0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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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길도 海潮音은 몽돌의 연주로 듣는다
: 오태진 / 조선일보 수석논설위원

보길도 예송리 바닷가는 1.4㎞ 해변이 검푸른 조약돌
4년 만에 받은 보옥민박 밥상, 삿갓조개 된장국에 15찬
농식품부가 명소로 키우는 '찾아가는 양조장' 해창주조장



오태진 조선일보 수석논설위원
보길도 동남쪽 갯돌 해변은 악기(樂器)다. 차르륵차르륵, 사그락사그락. 파도가 몽돌을 굴려 쉼 없이 연주한다. 갯돌밭을 쓸며 물러갈 땐 길게 "치이~" 한다. 컵에 따른 사이다가 공기 방울 터뜨리는 소리를 똑 닮았다.

예송리 바닷가는 활처럼 부드럽게 휘었다. 1.4㎞ 해변이 검푸른 조약돌이다. 바다가 깎고 저희들끼리 비벼대 모가 없다. 마을 사람들은 '깻돌'이라고 부른다. 아끼고 예뻐하는 마음이 배 있다.

해변을 '우리 님 고운 눈썹' 같은 숲이 에워쌌다. 삼백 살 넘은 후박나무·구실잣밤나무·붉가시나무·생달나무·감탕나무가 사철 푸르다. 해송과 해장죽이 녹색을 더한다. 마을 지켜주는 방풍림이자 고기 떼 불러들이는 어부림(魚付林)이다.

설 연휴 앞둔 주말, 해남 땅끝까지 달려 노화도 가는 배를 탔다. 싣고 간 차로 보길대교 건너 섬 동쪽부터 돌았다. 그 끝이 예송리다. 겨울 바닷가는 텅 비었다. 하지만 쓸쓸하지 않다. 몽돌 소리 상쾌하고 상록수림 따스하다.

지나가던 할머니가 "뭐 볼 게 있다고 예까지 왔느냐"고 말 붙인다. "뜯어다 말린 다시마가 있는데 보겠느냐"고 한다. 마을로 가는 길에 이런저런 얘기를 하신다. 자식들이 말려도 여든셋 되도록 물일 하다 허리 수술까지 받았다. 그러고도 몸 놀리기 싫어 다시마와 청각 거둬 소일한다.

할머니는 다시마 세 묶음에 1만원이라고 했다. 아내가 "고생하신 것을 이리 싸게 주시면 어쩝니까" 한다. 할머니는 "알아줘서 고맙다"며 오히려 한 묶음 더 담아 건넨다. 따로 얼마간 쥐여 드렸더니 향긋하게 말린 청각도 한 대접 퍼준다.

섬을 거꾸로 한 바퀴 돌아 남쪽 끝 보옥리로 갔다. 4년 전 이맘때 처음 보길도에 와 묵었던 보옥민박에 들었다. "집 떠나면 고생인디…." 안주인이 반기는 첫마디가 4년 전이나 똑같다. 그 사이 민박채에 이층 올려 깔끔한 방 넷을 들였다. 이 집 밥상이 소문나면서 손님이 는 덕분이다. 안주인이 "손님이 다 세련됐는데 나도 세련돼야지" 하며 웃는다. 외진 곳까지 찾아오는 손님을 반듯한 방에 모시고 싶었다는 얘기다.

안주인 밥상엔 정(情)과 손맛이 그득하다. 쌀과 두부 빼곤 죄다 마을에서 나는 먹을거리다. 갯바위에서 뜯고 뒷산에서 캐고 포구에서 받아 온다. 멸치도 부부가 찌고 말린다. 이날 저녁상엔 '배말'이라고 부르는 삿갓조개 된장국에 15찬이 올랐다.


일러스트=이철원 기자.

그런데 어딘가 서운하다. 생생한 찬은 병어조림쯤이다. 말린 간자미찜, 전복 장조림 같은 갈무리 음식이 많다. 토박이도 난생처음 보는 폭설이 이틀 전까지 쏟아졌다던데. 날이 험상궂어 갯바위에 못 나가고 배들도 못 뜬 탓이려니 했다.

일흔 바라보는 부부는 별 욕심이 없다. 그간 식사만 하게 해달라는 전화가 많았지만 다 거절했다고 한다. 민박 손님에게만 차려준다는 나름의 원칙을 지켰다. 그 선을 넘으면 더 이상 '보옥민박'이 아니기 때문이란다. 부부는 짬나면 마주 앉아 어선 주낙용 낚시를 매단다. 한 통 100개를 달아 품값 3500원을 받는다. 하루 몇십 통 하면 돈이 아쉽지 않다고 했다.

돌아오는 길 해남 해창주조장에 들렀다. 서울 부부가 술도가 이어받아 막걸리 빚은 지 10년째다. 3년 전 초여름 처음 갔을 때 초록으로 우거졌던 백 년 정원은 스산한 겨울 풍경이다. 바닥 덮은 이끼만 신통하게 푸른빛이다.

해창주조장은 그 사이 농식품부가 뽑는 '찾아가는 양조장'이 됐다. 시설 개선비를 대주고 지역 관광 프로그램과 연결해 명소로 키우는 사업이다. 덕분에 양조 건물을 새로 짓고 단장했다. 그러기 전부터 이 집 정원은 열려 있었다. 멀리서도 알음알음 사람들이 찾아든다. 부부는 막걸리에 신 김치 한 쪽이라도 내놓는다.

일본 NHK가 소개하면서 일본인 네댓 팀, 100여 명도 다녀갔다. 이날도 목포 총각이 자전거를 타고 왔다. 2년 전부터 한 달에 두 번 50㎞ 길을 달려온다. 운동 겸해 막걸리 한 상자를 트레일러에 실어 간다.

부부는 맛있고 건강한 막걸리 빚는 데 몰두했다. 떫은맛 없애려고 0.00005% 넣던 인공감미료도 드디어 뺐다. 대신 햅쌀과 찹쌀을 반반 섞어 깊은 맛, 감칠맛을 살렸다. 찹쌀이 삭으면서 내는 단맛이 막걸리를 풍성하게 해준다.

부부는 이제야 온전히 해남 물과 쌀과 바닷바람으로 빚은 천연 막걸리라고 즐거워했다. 다만 찹쌀이 비싸 한 병 값을 3000원으로 올리게 됐다. 그래서 논두렁에서 목 축이는 2.7L 병 농주(農酒)는 예전대로 담가 예전 값을 받을 참이다.

처음 만났을 때 부부는 말했다. "막걸리를 싸고 천하게 빚으면 싸고 천한 대접을 받는다"고. 초심(初心)을 잃지 않는 부부의 자존심과 자부심에 감복했다.

필자 약력 - 오태진
논설위원실 수석논설위원
1981년 조선일보에 입사했다. 사회부·문화부·경제부 기자와 LA특파원, 문화2부 부장을 거쳐 수석논설위원으로 일하고 있다. 기억에 남는 취재 현장으로 1985년 멕시코 대지진과 콜롬비아 화산폭발, 1990년 평양에서 처음 열린 남북총리급회담, 1992년 LA폭동이 있다. 1990년대 후반부터 두 차례에 걸쳐 4년 남짓 ‘맛 기행’을 연재했다. 사진과 여행을 좋아해 주말이면 카메라 메고 길을 나선다. 오피니언면에 쓰고 있는 에세이 ‘길 위에서’는 그 주말 여행의 기록이다. 책은 ‘오태진·이동진의 시네마 기행’(2002년·공저) ‘내 인생의 도시’(2011년) ‘사람 향기 그리운 날엔’(2013년), 세 권을 썼다. 신문엔 고담준론뿐 아니라 독자가 잠시 숨 돌리고 쉬어갈 수 있는 글도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출처 : 조선일보 2016.0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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