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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영문학관과 연산군묘역을 찾아 나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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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찬란한 빛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3건 조회 3,300회 작성일 15-08-23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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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8.21.목.김수영문학관 전시실內 김수영서재 전시물에서 의자가 많아서 걸린다 -김수영 의자가 많아서 걸린다 테이블도 많으면 걸린다 테이블 밑에 가로질러 놓은 엮음대가 걸리고 테이블 위에 놓은 미제 자기(磁器)스텐드가 울린다 마루에 가도 마찬가지다 피아노 옆에 놓은 찬장이 울린다 유리문이 울리고 그 속에 넣어 둔 노리다케 반상 세트와 글라스가 울린다 이따금씩 강 건너의 대포소리가 날 때도 울리지만 싱겁게 걸어갈 때 울리고 돌아서 걸어갈 때 울리고 의자와 의자 사이로 비집고 갈 때 울리고 코 풀 수건을 찾으러 갈 때 38선을 돌아오듯 테이블을 돌아갈 때 걸리고 울리고 일어나도 걸리고 앉아도 걸리고 항상 일어서야 하고 항상 앉아야 한다 피로하지 않으면 울린다 시(詩)를 쓰다 말고 코를 풀다 말고 테이블 밑에 신경이 가고 탱크가 지나가는 연도(沿道)의 음악을 들어야 한다 피로하지 않으면 울린다 가만히 있어도 울린다 미제 도자기 스텐드가 울린다 방정맞게 울리고 돌아오라 울리고 돌아가라 울리고 닿는다고 울리고 안 닿는다고 울리고 먼지를 꺼내는데도 책을 꺼내는 게 아니라 먼지를 꺼내는데도 유리문을 열고 육중한 유리문이 열릴 때마다 울리고 울려지고 돌고 돌려지고 닿고 닿아지고 걸리고 걸려지고 모서리뿐인 형식뿐인 격식뿐인 관청을 우리집은 닮아 가고 있다 철조망을 우리집은 닮아 가고 있다 바닥이 없는 집이 되고 있다 소리만 남은 집이 되고 있다 모서리만 남은 돌음길만 남은 난삽한 집으로 기꺼이 기꺼이 변해가고 있다 2015.8.21.금 김수영문학관과 연산군묘역을 찾아 나서다
김수영문학관은 서울 도봉구 방학동에 위치한 아파트단지 사이에 숨어 있었다. 시인 김수영은 한국 현대시의 대표적 자유시인으로 투명하고 예리한 지성으로 끊임없이 자유를 노래한 시인이다. 도봉구는 김수영시인이 생전에 시작(詩作) 생활을 하였던 곳으로 이곳에 본가와 묘, 시비가 있다고 하는데 초행길 잘 모르고 문학관만 찾았다. 이에 김수영 시인을 기림과 아울러 600년 동안 마르지 않고 흐르는 원당샘 공원, 연산군과 정의공주 묘, 그리고 도봉산으로 이어지는 북한산 둘레길과 더불어 자연과 문학이 어우러지는 문화공간을 제공하고자 도봉구에서 김수영문학관을 건립하여 2013년 11월 27일에 개관되었다. 지하철4호선 쌍문역에서 하차후 2번출구쪽에서 06번 마을버스를 타고 김수영문학관에서 하차후 찾아가는 도중에 만난 아파트단지에 화사히 피어 있었던 목백일홍이다. 정류장에서 5분도 채 안걸리는 곳에 우뚝 선 현대식건물이 바로 김수영문학관이다. 건물 옆에 김수영 詩 낭송대회 프랭카드가 걸려 있었다. 2015.9.12(토) 14:00 (본선)이 강당에서 개최한다는 내용의 프랭카드다. 1층 제1전시실에서.. 金洙英(1921~1968) 김수영은 해방후 한국시에 새로운 방향을 제시한 시인이다. 그에게 시는 일상에서 벗어난 고상한 예술이 아니라 현실과 싸우는 양심의 선물이었다. 그는 자신의 문학과 사회현실을 일치 시키기 위해 줄기차게 노력했다. 사소한 개인의 일상에서 부터 정치 현실까지 다양한 소재가 그의 시에서 새로운 표현을 얻었고, 그가 사용한 어휘는 보통 사람들의 일상어였고, 특유의 반복기법으로 독자적 리듬을 만들어 냈다. 난해하면서도 새롭고 엉뚱하면서도 현대적인 언어를 구사한 그의 시는 1960년 이후 후배시인들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 20세기 한국인이 처한 서러운 현실을 고스란히 껴안은 김수영의 시는 자유와 사랑의 세계를 꿈꾸었으며 그는 자유가 없는 현실에 분노하고 저항하였다. 그가 추구한 자유는 인류가 추구하는 이상으로서의 자유였고, 자신과 남을 속이지 않으려는 양심과 세상을 바로 보려는 그의 정직은 비속한 현실을 그리기 위해 비속어를 사용했고, 불합리한 현실을 고발하기 위해 직설적인 문장을 사용, 그의 시쓰기는 사랑의 작업이었고 자신의 시가 세계사의 전진과 함께 하기를 원했으며 내가 움직일때 세계는 같이 움직인다. 이것이 김수영이 희망한 시의 영광이자 기쁨이었다고 한다. 풀 / 김수영 풀이 눕는다. 비를 모아 오는 동풍에 나부껴 풀은 눕고 드디어 울었다 날이 흐려서 더 울다가 다시 누웠다 풀이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울고 바람보다 먼저 일어난다 날이 흐리고 풀이 눕는다 발목까지 발밑까지 눕는다 바람보다 늦게 누워도 바람보다 먼저 일어나고 바람보다 늦게 울어도 바람보다 먼저 웃는다 날이 흐리고 풀뿌리가 눕는다 시작(시작)은 '머리'로 하는 것이 아니고, '심장'으로 하는 것도 아니고, '몸'으로 하는 것이다. '온몸'으로 밀고 나가는 것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온몸으로 동시에 밀고 나가는 것이다. 사랑 "나는 사랑을 배우기 시작하는 단계에 있다. 그를 진정으로 사랑하려면 그와 나 사이에 가로놓여 있는 무서운 장해물부터 우선 없애야 한다. 그 장해물은 무엇인가. 욕심, 욕심, 욕심. -레트커의 시에서- 욕심이다. 이 욕심을 없앨 때 내 시에도 진경(進境)이 있을 것이다. 딴사람의 시같이 될 것이다. 딴사람-참 좋은 말이다. 나는 이 말에 입을 맞춘다." 산문 '생활의 극복'에서 "사랑의 마음에서 나온 자유는 여하한 행동도 방종이라고 볼 수 없지만, 사랑이 아닌 자유는 방종입니다." 산문 '요즈음 느끼는 일'에서 "혁명의 시대일수록 나는 문학하는 젊은이들이 술을 더 마시기를 권장합니다. 뒷골목의 구질구레한 목로집에서 값싼 술을 마시면서 문학과 세상을 논하는 젊은이들의 아름다운 풍경이 보이지 않는 나라는 결코 건전한 나라라고 볼 수 없습니다." 산문 '요즈음 느끼는 일' 에서 "오늘날의 시가 골몰해야 할 가장 큰 문제는 인간의 회복이다. 오늘날 우리들은 인간의 상실이라는 가장 큰 비극으로 통일되어 있고, 이 비참의 통일을 영광의 통일로 이끌고 나가야 하는 것이 시인의 임무다. 그는 언어를 통해서 자유를 읊고, 또 자유를 산다. 여기에 시의 새로움이 있고, 또 그 새로움이 문제되어야 한다. 시의 언어의 서술이나 신의 언어의 작용은 이 새로움이라는 면에서 같은 감동의 차원을 차지하게 된다. 따라서 우리의 생활현실이 담겨 있느냐 아니냐의 기준도, 진정한 난해시냐 가짜 난해시냐의 기준도 이 새로움이 있느냐 없느냐에서 결정되는 것이다. 새로움은 자유다. 자유는 새로움이다." 산문 '생활현실과 시'에서 詩作공간 전시실의 한쪽 벽면, 김수영 시인이 자주 사용하던 시어들을 모아놓고 그 낱말들로 시를 지어볼 수 있는 공간이다. 김수영의 첫 시집 '달나라의 장난' 6월15일, 밤 11시10분경 귀가하던 길에 구수동 집 근처에서 버스에 부딪혀 서대문 적십자병원에 이송되어 응급치료를 받았으나, 의식을 회복하지 못하고 다음날(16일) 아침 8시50분에 숨을 거두다. 6월18일, 예총회관 광장에서 문인장으로 장례를 치르고, 서울 도봉동에 있는 선영에 안장되다. 2층 제2전시실 (좌)김수영 문학상 상패 1981년 민음사가 제정한 김수영 문학상 수상자에게 수여하는 상패 (우)김수영 두상 조각상 제5회, 제6회 김수영 문학상 수상에 사용된 상패 1985년 조각가 이해주 제작 *김수영의 문학상 김수영 문학상은 1981년 <김수영 전집>이 발간되면서 제정되었다. 그의 이름을 딴 이 상은 두세 번에 걸친 심사과정을 공개하고 각 심사위원의 심사평을 발표하는 등 당시의 문학상 심사로는 파격적인 절차를 거쳤다. 이 과정 자체가 치열한 양심의 시인이었던 김수영 시인의 시정신을 이어받았다 하여 후보에 오른 자체만으로도 영광스러운 것이었다. 김수영 문학상은 다른 문학상에 비해 상금이 많지 않았으나 젊은 문학인들 사이에서 가장 권위 있는 시인상으로 간주되었다. 김수영 형 김수영 형 지금 우리는 김형을 마지막 보내고 김형은 우리 앞을 마지막 떠나려 합니다. 그러나 아직도 우리는 이 사실 김형과 우리의 이 마지막 고별을 믿을 수가 없습니다. 김형도 그러시겠지요. 너무나 갑자기인 너무나 가혹한 너무나 애석하고 아픈 이 충격을 우리는 감당할 수가 없습니다. 죽음을 당한 것이 아니라 김형은 우리의 현실의 어떤 난폭한 무질서에 의해 강탈을 당했고 이별을 고해야 할 아무런 이유도 없이 우리는 김형을 강제로 빼앗김을 당하는 것입니다. 높은 지성, 순정한 인간성, 훌륭한 시로써 현실을 살아오던 김형은 그 너무도 순정한 인간성과 깨끗한 시 정신 때문에 가련한 현실의 잔인과 무지한 기계의 난폭에게 그 섬약한 생명의 희생을 강요당한 것입니다. 김수영 형 우리는 그러나 김형의 생애, 비록 억울하고 짧았으나 김형이 걸어온 바르고 진실하던 길, 깨끗하고 높은 시인으로서의 공적과 지향을 분명하게 기억합니다. 진실에 투철하려는 지성인으로서의 양심, 시대악과 현실의 불의와 투쟁하여 온 문학인으로서의 성실, 그 한계와 제약성을 잘 알면서도, 그렇기 때문에 도리어 그것의 생명력을 믿고 정진했던 우리의 현대시에 있어서의 새로운 이념의 실천에 김형은 누구보다도 못지않게 용기가 있었고 또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사상과 행동과 문학적 지향에 있어서 언제나 김형은 전진적이었고 고루와 암매와 타성과 정체를 싫어하는, 고식과 투안을 배격하는 젊고도 치열한 저항의 투사, 내일의 언덕을 향해서 달리는 용감한 기수였습니다. 김수영 형 마흔 일곱살의 한 평생 가난한 백성, 불우한 민족, 기구한 역사 뼈저린 우리의 상처를 지녀온 당신의 생애는 이제 착착 생활과 문학, 인생과 사상의 안정의 토대를 마련하여 인간과 문학의 대성을 기하려던 즈음에 있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기려 기억할 것입니다. 한 시대를 바르고 진실하게, 순정하고 양심의 지시대로 살아 보려던, 김형의 예리한 지성, 성실한 행동력, 참다운 시인으로서의 자세와 그 찬연한 업적을 우리들의 우정과 우리의 문학사는 길이 기억하고 전승할 것입니다. 영복을 누리소서 1968년 6월 18일 문우 박두진 문학의 현실참여 문제를 둘러싸고 문학평론가 이어령과 논쟁을 전개함. 조선일보에 실린 이어령의 '애비'가 지배하는 문화에 대한 비판을 '사상계'에 게재하였다. 1968년 1월호 김수영시인의 좌우명이 적힌 액자가 서재공간 벽면에 걸려있다. '常住死心(상주사심)' 늘 죽음을 생각하며 살아야 한다는 의미이다. 의자가 비었어요. 잠시 앉아 쉬어 가세요.. (좌)금연(禁煙) 금주(禁酒) 금다(禁茶) 메모 '합법적인 도적들'에게 자진해서 납공을 하지 말아라' 라는 글귀가 적혀있다. 글에서 결의에 찬 시인의 다짐이 느껴진다. (우)하루 일과를 적어놓은 노트 글쓰기 아침 네시간, 책읽기 아침과 오후 도합 네시간, 밥벌기 오후 혹은 밤 네시간이라고 적혀 있다. 여기서 밥벌기는 번역일. 문학과 일상 생활 모두에 성실했던 시인의 모습을 엿볼 수 가 있다 영상을 보면서 찰칵!찰칵! 2층 전시실 내부 3층은 작은 도서실 문이 잠겨 있어 유리를 통해 찰칵! 4층 강당으로 시낭송대회가 열리는 곳이다. 옥외쉼터로 양쪽으로 아파트가 숲을 이룬다. 관람을 모두 마치고 나오니 바로 앞 아파트담벽에 무궁화꽃이 무리지어 피어 있었다. 어디보자, 요 무궁화가족을 찰칵! 때 맞춰 벌까지 날아 와 행복을 건넨다. 넓은 차도로 나오니 세종대왕의 둘째딸 정의공주 무덤이 보였다. 연산군묘가 이 곳으로 부터 150m 라고 하니 멀지 않은 곳이다. 찾아가기 위해 또 뚜벅걸음이다. 걷다가 황금빛 금송화꽃도 만나고 그런데 목표지점이 보이지 않는다. 시장기는 오고. 시계를 보니 오후 2시, 마침 맛있게 보이는 식당을 만나 늦은 점심으로 속을 채운다. 설렁탕 일반 1인 8천냥, 특별식은 1만1천냥인데 일반설렁탕으로 냠! 인상좋은 부부쥔님의 넉넉함까지 덧된 곰삭은 탕맛이 좋아 맛있게 들었다. 쥔님께 연산군묘를 물으니 찻길건너 되돌아가란다. 저의공주묘역에서 길건너 이정표가 있었던 것을 못보고 지나쳐서 못 찾았지만, 대신 맛있는 점심을 편안히 앉아 먹게 된것은 좋았다. 창옆에선 코스모스가 가을이야기를 펼쳐내고 있었다. 설렁탕집에서 차도건너 오던길로 다시 발길돌려 정의공주묘 버스승차장까지 가니 이정표가 있었다. 여기서 110m 이니 엎드리면 코 닿을 지척이다. 아래는 방학동 은행나무, 언덕 위로는 연산군묘역으로 나란히 위치한 곳이다. 연산군묘로 올라가는 입구 연산군(燕山君) (1476년 11월 23일 (음력 11월 7일) ~ 1506년 11월 20일 (음력 11월 6일), 재위 1494년 ~ 1506년)은 조선의 제10대 임금이다. 성은 이(李), 휘는 융(漋), 본관은 전주(全州). 성종의 장남으로 폐비 윤씨의 소생이며, 비는 영의정 신승선(愼承善)의 딸이다. 모후 폐비 윤씨의 폐출 이후 정현왕후의 손에 자랐으나, 자신의 생모가 폐비 윤씨임을 알았다. 그 뒤 어머니 폐비 윤씨를 왕비로 추숭하려 하자, 성종의 유명을 내세워 왕비 추숭을 반대한 사림파 문인들과 충돌하다가 무오사화와 갑자사화를 빌미로 사림파를 제거했다. 또한 폐비 윤씨 사사 사건을 빌미로 발생한 갑자사화에서는 사림파와 양대 파벌을 이루던 훈구파와도 절연하여, 사림파를 적대세력으로 훈구파를 비호감세력으로 만들어 독단정치에 접어들었다. 그 뒤로 사림파의 간쟁을 일절 무시하고 훈구파의 공적을 과거로 치부해 정사를 독단적으로 처리하였다. 국왕 보좌기관이던 사간원, 사헌부, 홍문관, 예문관 등을 대폭 축소하거나 감원하고, 유가와 불가의 대표적인 기관인 성균관과 원각사 (圓覺寺)를 기생 양성소와 유흥장으로 만들어 국초(國初)의 여러 제도를 폐지하고 욕보였다. 그 밖에 민간 여자들과 반가의 사대부가의 여자들을 자의 혹은 강제로 입궐시켜 성관계를 갖는 등 치세 후반에는 방탕한 생활을 하였다. 종친을 두고도 파격적인 언행을 일삼아 생모 폐비 윤씨의 사사에 관여된 성종의 후궁들을 몽둥이로 때려 숨지게 한 뒤 그 시체를 들판에 짐승의 먹이로 내다버리게 하였으며, 인수대비의 초상 때는 인수대비가 3년상을 받을 사람이 못 된다 하여 3년상 대신 25일로 장례를 마쳐 유학자들의 비난을 초래했다. 사림파의 증폭되는 불만(不滿)과 훈구파의 부당(不當)하다는 여론 속에 중종 반정으로 폐위되었으며 강화군 교동도(喬桐島)로 유배되었다가 곧 그해 11월에 사망했다. 폐위되었기에 시호가 없으며 생존 때 받은 존호는 헌천홍도경문위무대왕(憲天弘道經文緯武大王)이다. 진성대군(중종)의 이복 형이자 처고모부가 된다. 조선왕조의 대표적인 폭군으로 지목되고 있다. 모후인 폐비 윤씨가 폐위되기 전에 태어나 세자로 책봉되었으므로 대군으로 강등되어야 했으나 중종 반정 직후 후궁 소생 왕자들에게 부여되는 군으로 강등당했다. 허침, 조지서, 정여창의 문인이다. * 위키백과에서 쌍분(雙墳)으로 각자 비석(碑石)과 상석(床石)을 만들어 놓았고 그 중앙에 향로석(香爐石)을 놓았다. 장명등(長明燈) 역시 각자 무덤앞에 따로 세웠다. 연산군묘역(燕山君墓域) 맨 위에 연산군과 그의 부인 신(愼)씨의 묘가 있고 그 밑에 태종의 후궁이었던 의정궁주(義貞宮主) 조(趙)씨의 무덤이 있고 맨밑에 연산군의 딸 휘순공주와 그의 남편 구문경(具文璟)의 묘가 있다. 좌측은 문신상(文臣像)이다. 맨 밑에 있는 휘순공주와 구문경의 묘 휘순공주는 연산군이 총애하던 큰 딸로 아버지가 쫓겨난 후 서인(庶人)으로 강등되었으며 구문경은 그의 남편이다. 맨 위에 있는 연산군 내외의 묘 쌍분(雙墳)으로 되어 있다. 보이는 왼쪽이 연산군이고 오른쪽이 신씨의 묘이다. 묘역시설로는 대군(大君)의 예우(禮遇)로 장례하여 곡장(曲牆)ㆍ묘비(墓碑)ㆍ혼유석(魂遊石)ㆍ장명등(長明燈)ㆍ향로석(香爐石)ㆍ 문인석(文人石)ㆍ제실제실(祭室) 등이 갖추어져 있으나 병풍석(屛風石)ㆍ 석마(石馬)ㆍ석양(石羊)은 보이질 않는다. 비석뒷면 연산군 묘 뒷면에서 내려다 본 풍경 가운데 의정궁주의 묘소는 이곳 묘역에 제일먼저 자리를 잡았던 묘소로 강화도에 있던 연산군의 묘를 후에 그의 부인인 신씨가 중종에게 간청하여 이곳으로 묘를 옮기게 되었고, 그래도 왕이었던지라 의정궁주(義貞宮主) 묘보다 위에 묘를 쓰게 되었다 한다. 가시돋힌 초록 밤송이가 가을로 가고 있었다. 묘 입구로 다시 내려오니 방학동 우람한 은행나무가 떡 버티고 있었다. 수령 830년이다. 방학동 은행나무 서울시 지정보호수 제1호로 지정된 방학동 은행나무는 높이 24m,둘레 9.6m 수령 830년 된(지정일자:1968년 2월26일) 서울에서 가장 오래된 나무다. 이은행나무는 그 모습이 매우 고상하고 아름다우며 예부터 많은 사람들이 신성시하였고, 이곳에 불이 날때마다 나라에 큰 변이 생겼다고 하는 일화가 전해지고 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서거하기 일년 전에도 불이 나서 소방차가 동원되어 진화했다고 한다. 인근에 위치한 원당샘은 수백년 동안 이곳 마을사람의 식수로 이용되었다고 하며 일명 '피양우물' 이라고 불리워졌다. 이 우물은 풍부한 수량으로 심한 가뭄에도 마른적이 없고, 일정한 수온을 유지하여 혹한에도 얼어붙는 일이 없었다고 한다. 주변의 연산군묘 및 은행나무와 연계하여 2011년에 자연 친화적 공원으로 조성되었다. 샛노란 황매화꽃이 은행나무 옆에서 노오란 미소를 보내며 반긴다. 그 옆 원당천에서 물 한모금으로 목을 축인다. 원당샘물은 갈지 자 홈을 따라 연못으로 흘러든다. 초가지붕 밑 원당샘으로 목축이려는 학생들로 붐빈다. 연못가 분홍빛 베츄니아 꽃이 사랑이다. 연못 아래로 축 늘어진 수양버들의 하늘거림이 또한 사랑이다. 닭 벼슬같은 연못가 붉은 맨드라미꽃은 나에게 정겨움으로 닿는다. 다 둘러보고 발을 되돌려 나가는길에 붉은 벽돌을 의지한 푸른 담쟁이를 본다. 굴곡진 우람한 은행나무 밑둥의 푸른 이끼를 보노라니 내마음도 푸르러지는걸. 다닥다닥 열린 사랑스런 열매들, 나무명을 알아야 불러주지. 이렇게 해서 하루 나들이를 마치고 다시 김수영문학관쪽으로 내려와 마을버스 06번을 타고 쌍문역에 도착해서 지하철4호선에 오른다. 담양에서 소쇄원을 보다가 / Lamo 작품감상도 하시면서 쉬어 가세요 역사와 문학 두가지를 알차게 살핀 일일기행을 흐뭇함으로 마친다. 김수영문학관 4층 강당으로 오르는 엘레베이터 내부 거울에 비친 모습을 담다 방학동에 위치한 김수영문학관 도로명 주소: 서울특별시 도봉구 해등로 32길 80 대중교통안내 버스 130번, 1144번, 1161번. 정의공주 묘 하차 지하철 4호선 쌍문역 하차 2번 출구, 06번 마을버스 환승 김수영문학관 하차 사진ㆍ글: 찬란한 빛 /김영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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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아름다운Life님의 댓글

profile_image 아름다운Life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북한산둘레길~~도봉산에서 걷다보면 우이동 북한산 동네아래 자리잡은
연산군묘지를 지나칩니다~~님덕분에 멋진사진으로 묘역을 봅니다
8월의끝자락~~무더위를 가져가겠지요
9월 가을의시작~~~아름다운여행길의 멋진사진 글 기대합니다~~~건강과랭복이 함께하시기를~~~♬

찬란한 빛님의 댓글

profile_image 찬란한 빛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아름다운님, 반가워요.
이제서야 마주 대하네요.
가을엔 활발한 활동을 기대합니다.
언제나 건강한 산행길 되시길 바란답니다.
가을이 바람결로 기별이 오더군요.

시앙보르님의 댓글

profile_image 시앙보르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서울에 살면서 쌍문동을 많이 오갔는데도
풀, 풀, 풀거리기만 떠들었을 뿐 미처 몰라서 부끄럽습니다.
지극 정성에 감사드립니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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