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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덕궁과 후원, 그 아름다움과 이야기에 풍덩 빠져 버린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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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찬란한빛e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4건 조회 357회 작성일 19-05-25 00:05

본문


▲창덕궁 후원에서..2019.5.23목


창덕궁과 후원, 그 아름다움과 이야기에 풍덩 빠져 버린 5월
2019.5.23.목..부부 행복나들이

오늘도 아침식사를 마치고 간편차림으로 9시에 길을 나섰다.
지하철을 이용해 창덕궁 고궁과 후원을 향해 부부 나란히 발을 맞추었다.

창덕궁은 경복궁의 이궁(離宮:궁성 밖에 마련된 임금의 거처)으로 건립되었다.
창덕궁은 조선시대 전통적인 건축으로 자연경관을 배경으로 한 건축과 
조경의 예술적 가치가 뛰어난 궁궐로 특히 왕궁의 정원인 후원(後苑)은 
한국의 대표적인 전통정원으로 1997년 12월6일 유네스코가 정한 
세계유산으로 등록된 궁궐이다.



창덕궁은 9시부터 관람이고 
후원(왕실정원)은 오전 10시부터 매시간 
문화해설사와 동행하며 해설과 함께 안내를 받는데 1회 100명까지이다.
5년전 춘삼월에 다녀오고 이번이 두번째 관람이다.
그때는 사람이 많지 않았고, 새봄이라 나무도 싹 틔우기전 허허로움이었다.
이번엔  모인 사람도 많고, 푸르름으로 후원전체가 풍성해 막바지 봄을
아름다운 정원에서 한껏 즐길 수 있었다. 

찾아가는길은 2가지 방법
*지하철 1호선 종로3가역 6번출구 도보로 10분
*지하철 3호선 안국역 3번출구 도보로 5분 

창덕궁을 먼저 관람하고 나니 11시타임을 놓쳐 12시타임에 후원을 관람했다.
여기 창덕궁부터 먼저, 그리고 후원을 거닐며 담아 온 사진 함께 볼까요?

후원은 창덕궁내에서 입장을 해야하므로 
창덕궁 3,000원, 후원 5,000원 합이 8,000원 입장료가 든다.
* 창덕궁은 경로우대,  경로는 무료입장 이므로 후원 5,000원 입장료만 내면 된다. 


창덕궁 정문 敦化門(돈화문)
후원을 가려면 돈화문으로 입장해서 창덕궁뜰을 가로질러야한다.

창덕궁의 정문인 돈화문은 1412년(태종 12)에 건립되었다. 
돈화문은 왕의 행차와 같은 의례가 있을 때 출입문으로 사용했고, 
신하들은 서쪽의 금호문(金虎門)으로 드나들었다. 
돈화문은 임진왜란때 전소되었다가 광해군이 즉위한 이듬해인 
1609년에 재건되었으며, 보물 제383호이다.

태종 이방원은 두차례의 왕자의 난으로 정도전과 이복동생을 죽이고 왕위에 올라 
그 피의 현장인 경복궁에 기거하는 것이 꺼려 창덕궁을 세우게 된 것 같다. 
조선의 궁궐체재는 경복궁이 法宮이 되고 창덕궁,창경궁,경운궁(덕수궁),
경희궁등 離宮이 되어 양궐체재가 된다.




돈화문으로 입장하면 입구 좌측으로 
천연기념물 제472호 창덕궁 회화나무 군(群)이 우거진 녹음으로
길게 서서 입장하는 관람객을 반겨준다.


회화나무 잎을 클로즈업


우리나라에서는 궁궐 이외에 학덕 높은 선비들이 사는 마을에 흔히 심었다.
그래서 회화나무를 학자나무라고도 한다.


궐내각사를 향해서 이동이다.
궐내각사는 왕실과 직접 관련이 있는 여러 관청들이 궁궐안에 설치되었는데
이를 궐내각사라 부른다.
홍문관, 내의원,규장각, 예문관 등이 중심시설이다.

궐내각사(闕內各司)는 ‘궁궐 안의 관아’라는 뜻이다. 
관청은 대부분 궁궐 밖에 있지만, 궐내각사처럼 임금을 가까이에서 보좌하는 관청은 
특별히 궁궐 안에 세워졌다. 


궐내각사 앞 소나무정원 사이에 핀 보랏빛 붓꽃이 시선을 끈다. 아름답다. 




정치를 보좌하는 홍문관(弘文館,玉堂),
건강을 보살피는 내의원(內醫院,藥房),
정신문화를 담당하는 규장각(奎章閣,內閣)
왕의 칙령과 교서를 보관하던 예문관(藝文館)




규장각(奎章閣)
규장각은 다른 이름으로 내각(內閣) 또는 이문원(摛文院)이라고도 한다.
'규장' 이란 말은, 바로 임금의 어필과 어제를 가리키는 것이다. 
정조 즉위초에 역대 왕들의 시문과 글씨를 보관하는 왕실 자료실로 지었다.
처음에는 후원에 2층 누각으로 지었으나 (규장각, 주합루宙合樓) 너무 후미져서 불편하여
1781년(정조5)에 이곳으로 옮겼다.
서얼출신 박제가,이덕무,유득공과 정약용,이서구 등 
초계문신들을 활용하여 개혁정치를 펼쳤던 곳이다.

◑ 초계문신제의 실시 
정조는 젊은 관리들이 규장각에서 재교육을 받는 제도인 초계문신(抄啓文臣) 제도를
새로 만들기로 했다. 이것은 이미 과거를 거친 사람 가운데 당하관 출신으로 37살 이하의 
젊은 인재를 뽑아 3년 정도 특별 교육을 시키는 제도였다. 초계문신으로 선발된 이들은 
본래 직무를 면제하고 연구에 전념하게 하되, 
1개월에 2회의 구술고사인 강경(講經)과 1회의 필답고사인 제술로 성과를 평가하였다. 

정조가 친히 강론에 참여하거나 직접 시험을 보여 채점하기도 하였다. 
교육과 연구의 내용은 물론 유학을 중심으로 하였으나 문장 형식이나 공론에 빠지는 것을 
경계하고 경전의 참뜻을 익히도록 하였으며, 40세가 되면 졸업시켜 익힌 바를 국정에 
적용하게 하였다. 오늘날 공무원 재교육 제도와 유사한 이 제도의 시행을 통해 정조는 
학문적 성과를 바탕으로 한 개혁정치를 추구했다. 

초계문신제도는 1781년 시작되어 
정조가 사망한 1800년까지 19년 동안 10여 차례에 걸쳐 이루어졌으며 
총 138명이 뽑혔는데, 이들의 명단은 <초계문신제명록>에 기록되어 있다. 
초계문신제도는 정조의 친위세력을 양성하는 정치적 장치이기도 하였는데,
가장 대표적인 인물이 정약용이다. 
이 외에도 서유구, 홍석주, 김조순, 김재찬 등 초계문신을 거친 인물들은 
당대 최고의 학자와 관료가 되어 19세기 정치와 문화를 주도하였다.


검서청(檢書廳)
검서청(檢書廳)은 금천 서쪽의 규장각 부속건물이다. 
출판될 서적을 교정하고 점검하는 검서관들의 근무공간이었다




느티나무 잎 클로즈업


창덕궁 옥당(玉堂)은 국왕 자문기관 홍문관(弘文館)의 별칭이며 
옥당(玉堂)은 옥같이 귀한 문형(文衡:대제학)이 근무하는 건물’이라는 뜻이다. 

문형(文衡대제학)이 국왕의 자문에 응하여 국왕의 주요 정책 결정,정무적 판단이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게 견제하고 균형을 이루게 하는 의미로 옥당 편액의 玉을 
새겼으며 추위를 막기 위하여 문에 치는 휘장 문염자(門簾子)를 걸었다. 

홍문관(弘文館)은 조선 시대에 궁중의 경서(經書)·사적(史籍)의 관리, 
문한(文翰)의 처리 및 국왕의 자문에 응하는 일을 맡아보던 관청으로 
옥서(玉署)·영각(瀛閣)·서서원(瑞書院)·청연각(淸燕閣)이라고도 불렀으며 
학술적인 관부이면서 사헌부·사간원(司諫院)과 더불어 언론 3사(言論 三司)의 
하나로서 정치적으로도 중요한 기능을 담당했다. 

홍문관직은 청요직(淸要職)의 상징이었고 조선 시대의 정승이나 판서를 지낸 
사람으로서 홍문관을 거치지 않은 경우는 거의 없다. 홍문관 관원이 되려면 
교서(敎書) 등을 기초하는 지제교(知製敎)가 될 만한 문장과 국왕에게 경전을 
강론하는 경연관(經筵官)이될 만한 학문과 인격이 있어야 함은 물론 
가문에 허물이 없어야 했다.

홍문관의 일은 본래 정종 대에 설치한 집현전(集賢殿)에서 맡아 하였는데, 
세조 초에 세조 집권에 반대한 사육신이 주로 집현전 학사들이었기 때문에 
세조가 폐지했다가 1463(세조 9)년에 홍문관이라는 이름으로 다시 설치한 것이다. 


 내의원內醫院(주로 약방藥房, 내약방이라 줄여 부름)
 의관들은 국왕의 건강을 돌보고 왕실진료를 담당하는 막중한 역할을 맡고 있다.

정면 8칸, 측면 5칸의 규모를 한 전각으로 액호는 약방이지만 내의원이 있던 
곳이기에 내의원으로도 알려져 있다. 내의원이 있던 곳이기에 궁중의 진료를 
담당했다. 허나 1920년 창덕궁의 대화재로 궁궐 내의 전각들이 불에 타 일제에 의해 
변형되면서 동궁이였던 성정각에 내의원의 기능을 뺏기고 헐렸으나 1991년에 
옛모습을 되찾기 위한 복원 공사를 시작해 2005년에 일반에 개방되었다.
 

인정문(仁政門)
창덕궁의 정전인 인정전으로 들어가는 문으로 정면 3칸, 측면 2칸의 단층으로 
1405년(태종 5)에 건립되어으며 임진왜란 당시 소실되다가 광해군 즉위초 
증건시 재건되었으나 1744년(영조 20)에 인접한 승정원에서 화재로 또 소실, 
복구되었다. 

일제강점기에는 인정문을 포함한 20여 칸의 월랑이 행각으로 대대적으로 
개조되어 판이하게 다른 모습을 가지게 되었다. 1991년에 배수로 보수 도중 
발견된 석조기단과 각종 문헌을 통해 조선시대의 모습인 월랑으로 
1995년까지 복원한 것이 지금의 모습이다.


인정전(仁政殿)
이 건물은 이궁의 정전(正殿)으로서, 
국왕의 즉위식 또는 공식적인 대례(大禮) 를 거행하던 곳이다.

창덕궁의 정전으로 정면 5칸 측면 4칸의 중층 전각이며 건립 당시에는 정면 3칸의 
작은 전각이었다. 용마루에는 다섯 개의 이화문장이 새겨져 있다. 
1405년(태종 5)에 건립되어 세종 원년에 고쳐 지어다가 임진왜란 당시 소실 되었다. 
이후 선조 때 복구공사가 시작해 광해군 원년에 재건되어 황폐화된 경복궁의 
근정전을 대신해 이곳에서 국가적인 대례를 행하는 장소가 되었다. 

대한제국 시기 순종황제가 즉위하면서 1908년(융희 2년) 창호를 황색으로 칠하고 
내부엔 노란색 천으로 장식한 천과 커튼 등이 설치되었다. 이후 일제강점기 당시 
앞마당의 박석이 걷어지고 화초가 심어지는 등 대대적으로 훼손되었다. 
해방 후 1985년에 국보 225호로 지정되었고, 1994년 앞의 잔디를 걷어내고 
박석을 다시 설치하였다. 인정전 주변의 외행각은 1991년 이후에 복원했다.










선정전(宣政殿)
창덕궁의 편전으로 정면 3칸에 측면 3칸인 단층 양식의 다포계 팔각지붕을 
한 전각으로 궁궐의 전각중 유일하게 청기와를 하고 있다. (징광루도 청기와를 
사용했을 가능성이 높지만, 1917년 소실) 건립 당시 조계청이었으나 
1461년(세조 7)에 선정전으로 개명되었다. 후에 임진왜란으로 소실되다가 
1647년(인조 25), 광해군 때 청기와를 얹어 호화롭게 지은 인경궁의 편전인
 광정전을 헐어 재건되었다. 

그래서 지금도 청기와를 얹고 있는 것. 이후 편전의 기능이 희정당과 중희당으로 
넘어가자 빈전, 혼전 등 왕실장례기능을 수행하는 곳으로 변모되었고 
복도각이 증설되었다. 근대화 시기에 인정전처럼 내부에 전기시설이 들어섰고 
일제강점기에 복도각이 헐어지는 등의 훼손을 겪다가 해방 뒤인 
1985년에 보물 제814호에 지정되었고 1997년에 복도각이 복원되었다.


선정전은 궁궐의 편전(사무공간)으로서 
왕이 고위직 신하들과 더불어 일상 업무를 보던 곳이다.
아침의 조정회의,업무 보고,국정 세미나인 경연 등 각종회의가 매일 같이 열렸다.


▲ 선정전 내부 어좌
어좌 뒤로는 일월오봉도(日月五峰圖)가 그려진 병풍이 놓여 있다. 
해와 달이 떠 있고 다섯 봉우리가 솟아 있으며,
바위와 소나무, 물결이 그려진 병풍(屛風)이 있다.
해와 달은 음양을 뜻하며 다섯 봉우리는 우리나라의 오봉을 가리킨다.

그 위에는 화려한 장식을 한 닫집(寶蓋)이 설치되어 있고,
 그 위 천장에는 목각으로 만든 두 마리의 봉황새가 날고 있다.
모두 왕을 상징하는 것들이요, 왕의 위용을 드러내는 것들이다.

일월오봉도(日月五峰圖)는 사방의 삶을 보살피고, 백성을 위한 정치를 하라는 
뜻이고, 또한 치우치지 않는 조화와 통합의 정치를 하라는 뜻이기도 하다. 






희정당(熙政堂), 보물 제815호
조선 후기에 국왕이 평상시에 거처하던 곳이다. 
창덕궁의 침전인 대조전(大造殿)의 바로 앞 남쪽에 있으며, 
대조전과 같은 높이의 기단(基壇) 위에 나란히 지었다. 

왕이 먹고 자고 쉬고 또 일상적으로 사람을 만나고 하는 왕의 침소를 
연거지소(燕居之所)라고 하는데 이 연고지소가 바로 희정당이다.
서울 한양은 나라의 중심이며 그 한양의 중심은 궁궐이다.
이 궁궐의 중심은 창덕궁, 창덕궁의 중심은 근정전과 희정당이라 할 수 있다.

이 건물은 1920년에 재건할 때 한식을 위주로 하면서 양식을 가미하여 
응접실과 회의실은 바닥마루, 유리창문, 문 상부의 휘장, 벽체 등을 
양식으로 꾸미고 양식 탁자를 놓았다. 

현재 응접실 좌우에 김규진(金圭鎭)의 <금강산도>·<해금강도>가 있다. 
조선 말기와 한말에 걸친 궁궐편전의 건축형태를 남기고 있는 점에서 주목된다.




희정당(熙政堂) 편액이 보인다.


희정당 뒤에서 내부를 바라본다.


▲ 희정당 내부. 응접실의 서양식 탁자가 눈길을 끈다.


왕의 침소인 희정당 뒷편으로 통하는 선평문은 대조전으로 들어가는 정문이다. 
왕비의 침소 대조전 현판이 보인다.


대조전(大造殿), 보물 제816호
대조전은 왕비의 시어소(侍御所), 즉 침전(寢殿)이다.
왕비는 궁궐에서 활동하는 여자들, 내명부(內命婦)라는 체재로 편제되어
있던 후궁과 궁녀들을 치리(治理)하는 공적인 역할을 담당하였던 공인이다.
그래서 대조전은 창덕궁에서 가장 내밀한 곳 구중궁궐(九重宮闕) 깊은 곳,
중전(中殿), 중궁전(中宮殿)이다.

대조전의 대조란 크게 만든다는 뜻이다.
즉 왕자, 다음 대의 왕을 가리킨다고 할 수 있따.
곧 왕과 왕비가 동침하여 아기를 생산하는 것을 가리킨다.


대조전 왕비의 침전
자개가 박힌 가구와 거울, 앉을 수있는 입식의자등 많은 것이 인상적이다.


여춘문(麗春門)은 대조전과 희정당 동쪽 중간쯤에 남향으로 난 문이다, 
1920년 경복궁의 교태전을 헐어다 지으며 집상전 자리로 물려 짓는 바람에 
현재는 대조전에 속한다.

여춘(麗春)은 
'아름다운 봄'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기도 하며 
태양을 맞이하는 동쪽의문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모란꽃이 지고 난 뒤의 잎과 씨






숙장문(肅章門)
진선문과 마찬가지로 창덕궁의 중문으로 정면 3칸 측면 2칸의 단층으로 내전으로 
통하는 문이다. 금호문과 마찬가지로 1475년(성종 6)에 좌찬성 서거정이 지어 올린 
이름 중 하나를 성종이 낙점하면서 사용되었다. 
일제강점기에 헐렸다가 1996년 시작된 복원 공사를 통해 재건되었다.






낙선제
창덕궁 인정전의 동남쪽, 창경궁과 경계를 이루는 곳에 자리 잡은 건물로, 
1847년(헌종 13) 건립되었다. ‘낙선(樂善; 선을 즐김)’이라는 명칭은 
‘인의충신(仁義忠信)으로 선을 즐기고 게을리 하지 않는 것이 천작
(天爵; 하늘이 내린 벼슬)이다’라는 《맹자》의 구절로부터 비롯되었다.

낙선재 오른쪽으로 1848년 헌종의 후궁인 경빈김씨의 처소로 건립된 
석복헌과 1848년 중수된 수강재가 옆으로 길게 이어지며 건물군을 형성하고 
있어 이 일곽을 통틀어 낙선재라 부르기도 한다. 각 건물 사이에 행랑과 
담을 설치하여 공간을 독립적으로 구성하였다. 세 건물 뒤쪽으로 
화초·석물·꽃담·굴뚝 등으로 꾸민 아름다운 후원이 있고, 
꽃담 너머로는 상량정·한정당·취운정 등의 정자가 있다.

낙선재는 왕이 책을 읽고 쉬는 공간, 즉 서재 겸 사랑채로 조성되었다. 
국상을 당한 왕후들이 소복을 입고 은거하는 공간이었다고도 전해진다. 
1884년 갑신정변 직후 고종의 집무소로 사용되었고, 일제에 국권을 
빼앗긴 이후 순종이 머문 곳이기도 하다. 

1963~1970년 영친왕 이은, 1966~1989년 영친왕의 부인 이방자가 기거한 곳으로, 
두 사람은 이곳에서 생을 마쳤다. 한편 순종의 비 순정효황후는 1926년 순종이 
영면한 후 석복헌에서 생활하였고 1966년 그곳에서 별세하였다. 고종의 외동딸 
덕혜옹주는 1968~1989년 수강재에서 기거하다 죽음을 맞았다.

여느 궁궐 내 침전 건물과 달리 단청을 하지 않고 사대부 가옥 형식으로 건축하였다. 
하지만 여러 자재들을 고도의 기술로 다듬어 섬세하고 아름답게 장식하고, 
수준 높고 다양한 창호를 설치함으로써 궁궐의 권위와 위엄을 잘 보여준다. 
백미는 누마루와 그 뒤쪽 온돌방 사이에 설치된 만월문이다.

조선 왕가의 여인들이 기거하다 생을 마친 곳으로 
국권을 빼앗긴 황실의 마지막 역사를 담고 있고, 조선 후기 장인들의 축적된 
기량을 확인할 수 있는 건축물이라는 점에서 역사적·건축적 가치가 크다. 
2012년 3월 2일 보물 제1764호로 지정되었다.
[출처] 창덕궁 낙선제|작성자 무적


























좌측은 후원입구(왕실정원), 우측은 창경궁 입구
여기서 후원입장료 5,000원 매입, 모여서 후원담당 해설사의 동행으로 안내를 받으며 
1시간30분 소요로 관람한다.















주합루와 어수문 (宙合樓와 漁水門)
어수문 옆의 조그만 좌,우 협문은 신하들이 드나들며 가운데 문은 
임금님이 드나들었다. 
정조즉위 초에 주합루 아랫층은 규장각(奎章閣), 옆에는 서향각(書香閣) 등
왕실 도서관으로 한 때 사용하기도 하였다.

연못인 부용지는 300평 넓이에 네모진 호안은 장대석으로 쌓고 한가운데
동그란 섬을 만들어 소나무를 심었다. 전형적인 방지(方地) 형태의 연못이다.

천원지방(天圓地方)
'하늘은 둥글고 땅은 네모나다'는 전통적인 우주관을 표현한 것이다. 
연못이 존립하려면 반드시 물이 들어오는 入水와 出水가 있어야 하는데
이곳 부용지는 물이 땅속에서 솟아 난다는 것이 그 비밀이다.

어수문(漁水門)

漁水- 물고기와 물. 물고기란 신료들을 가리키고 물이란 왕을 가리킨다.
물고기가 물을 떠나서 살 수 없듯이 신료들도 왕의 뜻 안에서 활약하라는 뜻이다.
연못의 동남쪽 모퉁이에 연못 호안을 쌓아 올린 장대석이 지면 위에 하나 더
놓여져 있는데 그 장대석에 돋을새김으로 물고기가 높이 뒤어오르는 모양으로 새겨져 있다.

어수문은 기둥 두 개로 지붕을 받치는 일주문 형태를 띄고 있다.
팔작 지붕 형태에 겹처마, 단청이 화려하다.
청룡,황룡 한쌍이 문미(門楣:문의 상인방)를 휘감고 있다.
즉 왕만이 다니는 문이며 그 작은 문은 신하들이 드나들었다.

주합루(宙合樓)
주합루는 정조가 즉위한 1776년에 창건한 2층 누각이다.
宙合樓란 '천지 우주와 통하는 집'이라는 뜻이다.
이 주합루의 아랫층은 규장각이라 하여 왕실 직속 도서관이었다.
규장각(奎章閣)이란 
'문장을 담당하는 하늘의 별인 규수(奎宿)가 빛나는 집'이란 뜻이다.






부용정(芙蓉亭)
부용지의 정자로 정면 5칸, 측면 4칸, 배면 3칸의 十자형 전각이다. 
배면 한 칸은 연못에 높은 석주(石柱)를 세우고 수중누각(水中樓閣)이 되게 
하여 수상과 지상의 조화를 추구하였다. 1707년(숙종 33)에 택수재라는 
명칭의 정자였으나 1792년(정조 16)에 개축하면서 명칭 또한 지금의 
부용정으로 고쳤으며 1795년(정조 19)에 있던 혜경궁 홍씨의 회갑을 맞아 
종친들과 신하들을 초청해 낚시와 뱃놀이를 즐겼다고 한다. 














영화당(暎花堂)
부용지 동쪽에 있는 전각으로 정면 5칸, 측면 3칸의 이익공의 팔작지붕을 
하고 있다. 광해군 때 처은 건립되었으나 현재의 전각은 1692년(숙종 18)에 
재건된 것이다. 부용정 일대에서 내력이 제일 오래된 건물이다. 

정조 이전까지 왕과 신하들이 연회를 개최하거나 활을 쏘는 곳이고 이후 
시험장으로 활용되었다. 영화당 앞 마당은 현재 모습과는 달리 창경궁 춘당지 
바로 앞까지 넓게 열린 공간이었는데, 이 마당을 '춘당대春塘臺'라 불렀다. 

공간이 매우 넓어 문과/무과시험 가리지 않고 왕이 직접 행차하여 
과거시험을 지켜보고 관장했으며 이곳에서 치는 과거시험을
 "춘당대시春塘臺試"라고 부르기도 했다.












애련정(愛蓮亭)
애련지에 위치한 전각으로 정, 측면 1칸에 익공계 사모지붕을 하고 있다. 
1692년(숙종 18)에 세워졌고 액명은 중국 송나라 때 주돈이가 쓴 애련설에서 
빌린 것이다. 본래는 연못 한가운데 섬을 만들어 그 위에 세웠다고 했지만 
현재는 연못가에 자리한 상태다.








연경당(演慶堂)
창덕궁 후원에 위치한 전각으로 정면 6칸, 측면 2칸의 단층팔작지붕이다. 
1828년(순조 28) 효명세자의 대리청정 기간에 순조의 진작례[29]를 올리기 위해 
진장각(珍藏閣) 옛터에 세워져 당시 효명세자의 왕권강화의 의지를 엿볼 수 있는 
전각이다. 궁궐의 다른 전각들과 달리 궐내에서 유일하게 민가 형식으로 지어졌는데,
사대부가를 모방했다고 하지만 일반적인 사대부가의 상한선이 99칸인 것에 비해 
연경당은 그 규모가 120칸에 달해서 일부에서는 왕자나 공주의 사저인 궁가(宮家)를 
모방했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사대부가 형식의 전각이지만 안채와 사랑채가 합쳐져 있어 마당을 좌우로 
가른 담을 기준으로 공간을 구분하며, 안채의 경우 일반적인 안채와 달리 
부엌이 존재하지 않고 별채에 있다. 
1865년 고종 때 새로 증축되거나 권역이 넓어져 오늘날까지 보존되고 있다. 
참고로 효명세자의 사후 순조가 말년에 보낸 곳이다.


















존덕정(尊德亭)
관람지에 속해 있는 정자로 동시대의 정자들과 달리 이중지붕 구조의 육각지붕으로 
만들어진 독특한 구조를 하고 있어서 육우정(六隅亭) 또는 육면정(六面亭)이라고도 
불렸다. 

정자의 마루도 안쪽과 바깥쪽으로 구분되어 2중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24개의 기둥이 
지붕을 받치고 있다. 천정은 우물정자로 구성되고 보개 천정과 같이 화려한 장식으로 
구성되었으며 가운데에는 황룡과 청룡이 장식되어 있다. 
1644년(인조 22)에 세워졌다. 정자 내에는 정조가 만천명월주인옹이라고 쓴 글귀가 
남아있으며 이에는 모든 하천에 달이 뜨지만 하늘에 떠있는 달은 하나고 
그 달이 나니까 왕권은 지엄하다는 뜻이 담겨 있다.












천정은 우물정자로 구성되고 보개 천정과 같이 화려한 장식으로 
구성되었으며 가운데에는 황룡과 청룡이 장식되어 있다. 




1830년 이후에 만들어진 승재정 정자


관람정과 관람지


취규정(聚奎亭)
옥류천 산마루 언덕 위에 위치한 정자로 정면 3칸, 측면 1칸 규모에 
사방이 트인 초익공 홑처마 팔작지붕 형태다. 1640년(인조 18)에 세워졌으며 학자들이 
모인다는 뜻을 가진 취규정이란 액호로 보아 휴식과 독서를 위한 정자로 보인다.




태극정(太極亭)
창덕궁 후원의 옥류천에 의치한 정자로 굴다리를 엮은 정, 측면 1칸의 겹처마 
사각 지붕 형식을 하고 있으며 내부에 마루를 깔고 퇴를 달아 평난간을 둘렀다. 
천정은 우물천정이고, 지붕 꼭대기는 절병통을 얹어 마무리하였다. 

1636년(인조 14)에 운영정(雲影亭)이란 명칭으로 세워졌으나 후에 오늘날의 
이름으로 개칭되었다. 소요정, 청의정과 함께 삼림삼정이라고 불렸다.


청의정(淸漪亭)-맑고 잔 물결이 이는
창덕궁 후원의 옥류천에 위치한 정자이며 정, 측면 1칸으로 궁궐에서 유일하게 
초가 지붕을 하고 있다. 익공계 사모 형식을 하고 있으며 1636년(인조 14)에 
세워졌다. 정자 앞으로 논을 만들어 벼를 심고, 수확 후에는 볏짚으로 정자의 
지붕 이엉을 잇게 하였는데 이는 농사의 소중함을 백성들에게 일깨워주기 
위함이었다고 한다. 

오늘날에도 문화재청과 농촌진흥청에서 가을마다 벼베기 행사를 진행해 
전통을 유지하고 있다.


옥류천 소요암에 새겨진  어필암각서 (御筆岩刻書)
숙종임금이 지은시

飛流三百尺(비류삼백척)- 폭포수 삼백 척을 날아 흘러
遙落九天來(요락구천래)- 아득히 구천에서 내려 오누나
看是白虹起(간시백사기)- 보고 있노라니 문득 흰 무지개 일어나고 
飜成萬壑雷(번성만학뢰)- 일만 골자기에 우뢰 소리 가득하다




소요정(逍遙亭)
창덕궁 후원의 옥류천에 위치한 정자로 정, 측면 1칸의 익공계 사모지붕 형식을 
하고 있다. 1636년(인조 14)에 탄서정(歎逝亭)이라는 이름으로 세워졌다가 후에 
오늘날의 이름으로 개칭되었다. 

숙종·정조·순조 등의 임금들이 이곳에서 보이는 경치에 대한 시를 남겼고 
청의정, 태극정과 함께 삼림삼정(三林三亭)이라 불렸다.








옛 대보단(大報壇) 자리의 신선원전(新璿源殿) 지붕


붓꽃과 비비추


창덕궁 향나무 천연기념물 제194호






작약꽃과 비비추






모란꽃 지고 난 자리에 씨가 맺히고 잎은 푸르고 무성하게 자라고 있었다.


입구로 내려와 회화나무군에서 포즈를!



창덕궁의 정문인 돈화문을 향해 걸으며 하루 나들이를 마감한다.
잘 몰랐던 왕궁역사를 알게 되는 기쁨이 있었다.
다녀온 흔적들을 게시물로 꾸미면서 인터넷 검색으로 많은 이야기를 알게 되어
뿌듯하기 이를데 없다.
어느날  다시 탐방하면서 이번엔 속속들이 그 이야기속으로 들어가서 
그 시대를 살다 오고 싶다. 잠시만이라도 혼탁한 세상속을 벗어나서
아름다운 전통정원도 감상하며 이야기속으로 빠지다 보면 
새로운 에너지 생성으로 힘이 불끈 솟겠지!
축복받은 하루 감사드립니다.


찬란한 빛/김영희
.
추천1

댓글목록

소슬바위님의 댓글

profile_image 소슬바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선생님은 참 재미있는 인생을 사십니다
얼마나 좋으까요?
좋은곳 찾아다니시면서
중생들에게 보시하시는 모습
보기좋습니다
그리고 보기 좋으십니다
복 받으실거여요
선생님

찬란한빛e님의 댓글의 댓글

profile_image 찬란한빛e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소슬바위시인님, 감사합니다.
여기 '일월오봉도' 설명을 덧댑니다.


해와 달, 일월과 다섯봉우리,
오봉을 표현한 그림입니다.

여기서 해와 달은
각각 왕과 왕비를,
다섯봉우리는 국토를 상징해요.

또한 일월오봉도에 그려진 것들은
좌우대칭이며,십장생들 중 하나입니다.
이런그림이 있었던 이유는
조선왕조의 번성 건강 행복을
기원한 것입니다.

일월오봉도는
왕의 상징이기 때문에
왕이 있는 곳이면
어디든지 있었다고 합니다.

만원자리 지폐,
세종대왕 뒷편에 그려진
일월오봉도 보셨지요?
세종대왕도 왕이시기에
그 뒤에 일월오봉도가 있지요.

안박사님의 댓글

profile_image 안박사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찬란한빛`김영희* 紀行作家님!!!
"昌德宮"에 散在한,"世界文化遺産"들을~感動으로,즐感하며..
  朝鮮時代의 一代記를,詳細히 說明해주신~"김영희"任께,感謝를..
  雄壯하고 아기자기한,宮闕의 貌襲에~자랑스러운 肯志와,祖上님들의..
"찬란한빛`김영희"作家님! 거듭`거듭 感謝드리오며..늘,健康+幸福하세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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