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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함양여행3- 남계서원ㆍ청계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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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찬란한빛e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2건 조회 1,101회 작성일 19-10-03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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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9.17.화요일 경남함양 청계서원에서

경남 함양기행
2019.9.16.월-18.수 (2박3일) 

2019년 9월 16일 오후에 떠나서 
9월 18일 오후에 돌아온 2박 3일의 함양여행기입니다.

국립중앙박물관 특별전이 7월 23일부터 9월 22일까지 전시되는 
"우리 강산을 그리다 화가의 시선, 
조선시대 실경산수화"에서 
김윤겸(金允謙,1711~1775)의 '영남기행화첩嶺南紀行畫帖' 그림 중 
경남 함양咸陽의 극락암極樂菴을 찾아서 떠난 여행이었다.

함양군 안의면사무소 공무원분께 친절한 안내를 받았지만 극락암은 
찾지 못하고 함양군 마천면 지리산 자락의 금대암金臺庵에서 
조선의 화가들이 많이 실경산수화를 그렸다는 이야기를 듣고 
다음날 9월 17일 아침 우선 함양읍의 상림上林을 거쳐서 지리산 금대암을 
돌아보고 벽송사碧松寺, 서암정사瑞岩精舍, 그리고 안의면安義面에 있는 
일두 정여창(一蠹 鄭汝昌, 1450~1504)의 남계서원灆溪書院, 
탁영 김일손(濯纓 金馹孫, 1464~1498)의 청계서원靑溪書院을 돌아봤다.

9월 18일에는 용추계곡龍湫溪谷,용추폭포,용추사, 
연암燕巖물레방아공원, 농월정弄月亭을 돌아보고 무사히 돌아왔다. 

이번 기행에서 안의면사무소 공무원분들의 친절한 안내에 감동 받았다.
디카 메모리카드를 잊고 갔는데 면사무소 남여직원의 아주 친절한 안내로 
군청쪽으로 곧바로 찾아가서 메모라카드을 구입 많은 사진들을 담을 수 있었다.
안의면사무소 그 두분 공무원님께 감사드립니다.


3편
남계서원ㆍ청계서원편 
2019년 9월17일 화요일

함양 남계서원(咸陽灆溪書院)

경상남도 함양군 수동면 원평리, 
2019년 7월, '한국의 서원'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

1552년(명종 7)에 지방 유림의 공의로 정여창(鄭汝昌)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창건하여 위패를 모셨다. 1566년(명종 21)에 ‘남계(藍溪)’
라고 사액되었으나, 1597년(선조 30) 정유재란(丁酉再亂)으로 소실되었다. 
1603년에 나촌(羅村: 현재 함양군 수동면 우명리 구라마을)으로 옮겨 
복원하였다가 1612년 옛 터인 현재의 위치에 중건하였다.

1634년(인조 12) 별사(別祠)를 건립하여 강익(姜翼)을 제향하고 
1642년(인조 20) 유호인(兪好仁)과 정온(鄭蘊)을 병향하였다. 그 뒤 
1677년(숙종 3)에 정온을, 1689년(숙종 15)에 강익을 본사(本祠) 올려 
배향하고, 1820년(순조 20) 정홍서(鄭弘緖)를 별사에 모셨다. 

이후 1868년 별사는 훼철(毁撤)되었다. 이 서원은 소수서원(紹修書院)에 
이어 두 번째로 창건되었으며,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에도 훼철되지 
않고 존속한 47개 서원 중 하나이다.

경내 건물로는 사우(祠宇)·전사청(典祀廳)·명성당(明誠堂)·양정재(養正齋)·
보인재(輔仁齋)·애련헌(愛蓮軒)·영매헌(詠梅軒)·풍영루(風咏樓)·
묘정비각(廟庭碑閣)·고직사(庫直舍) 등이 있다.

사우에는 정여창을 주벽(主壁)으로 하여 좌우에 정온과 강익의 위패가 
봉안되어 있다. 명성당은 강당으로 중앙의 마루와 양쪽 협실로 되어 있는데, 
왼쪽 협실은 거경재(居敬齋), 오른쪽 협실은 집의재(集義齋)라 하며, 
유림의 회합 및 학문의 강론 장소 등으로 사용되었다. 동재(東齋)인 
양정재와 서재(西齋)인 보인재에는 각각 연못과 애련헌·영매헌이 있다.

이 서원은 1974년 2월 16일 경남 유형문화재 제91호로 지정된 후, 
2009년 5월 26일 사적 제499호로 지정되었다. 매년 2월과 8월 중정(中丁)에 
향사(享祀)를 지내고 있다. 소장 전적은 『어정오경백편(御定五經百編)』
·『고려사(高麗史)』 등 59종 317책이 있으며, 
재산으로는 전답 1만 4500여 평, 대지 6000평, 임야 1.5정보 등이 있다.

함양의 남계서원은 
2019년 7월 “한국의 서원(Seowon, Korean Neo-Confucian Academies)”
이라는 명칭으로 다른 8곳의 서원과 더불어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되었다.
(다음 카페에서 인용)

文獻公 一蠹 鄭汝昌先生 追慕碑
(문헌공 일두-한마리의 좀- 정여창선생 추모비)

정여창(鄭汝昌, 1450~1504)
본관은 하동(河東), 자는 백욱(伯勗,맏백,힘쓸욱), 호는 일두(一蠹)
일찍이 아버지(鄭六乙)를 여의고 혼자서 독서에 힘쓰다가 金宏弼과 함께 金宗直의
문하에서 수학, 1483년 사마시에 합격 8월에 성균관에 들어감.1490년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 예문관검열을 거쳐 시강원설서가 되어 동궁인 연산군을 보도했다.

1495년 연산군1년 안음현감에 임명되어 백성들의 질고(疾痼)가 
부렴(賦斂:조세 따위를 매겨서 거둠)에 있음을 알고 편의수십조(便宜數十條)를 
지어 시행한지 1년 만에 정치가 맑아지고 백성들로부터 칭송을 들었다.

1498년 무오사화에 연루되어 함경도 종성鍾城으로 유배, 1504년에 죽은 뒤 그 해
갑자사화가 일어나 부관참시剖棺斬屍되었다. 중종임금때 우의정에 증직되었고
1610년(광해군2) 문묘에 배향되었다.








전면 風咏褸(풍영루), 후면 遵道門(준도문)
경상남도 함양에 있는 남계서원의 정문, 외삼문(外三門)

풍영루(風咏樓)
풍영루는 유생들이 공부를 하거나 손님이 오면 학문을 토론하고 정담을 
나누기도 한 누각이다. 창건 당시 '준도문(遵道門)'이라고 하는 출입 
삼문이었으나 후에 다락집을 올려 현재에 이르고 있다.

논어의 내용 중 
'기수에서 목욕하고 무우에서 바람을 쏘이고 노래하며 돌아오겠다.'
라는 증점(曾點)의 뜻을 바로 여기서 느낄 수 있다하여 풍영루라 이름 
지었다. "琪樹기수"와 "舞雩무우"는 춘추시대의 전설 속에 나오는 곳이다.

출입은 사당의 내삼문과 함께 
동쪽으로 들어가고 서쪽으로 나가는 형태로 기문은 정여창선생의 후손인 
조선 말기 문장가 오담(梧潭) 정환필(鄭煥弼)이 지었다.



風咏樓記 (後孫 鄭煥弼)
灆院之創設久矣(남원지창설구의)- 남계서원이 창설된지 오래되었다. 
始於周茂陵竹溪之後(시어주무릉죽계지후)
- 주무릉이 죽계에 백운동서원을 세운 뒤에 
而創之者惟介菴姜先生也(이창지자유개암강선생야)- 
이 서원을 창설한 자는 개암 강선생이다.
介菴生于文獻公五十載之下(개암생우문헌공오십재지하)
- 개암은 문헌공보다 50년 뒤에 태어나서
慕先生之德講先生之道(모선생지덕강선생지도)
- 선생의 덕을 사모하고 선생의 도를 강론하였다. 
與鄕士若干人同心協贊(여향사약간인동심협찬)
- 향사 약간 명과 마음을 함께하여 협찬해서
立祠宇講堂東西齋及前門數十餘間(입사우강당동서재급전문수십여간)
- 사우,강당,동재,서재 및 전문 수십여 칸을 세워서
以爲尊先賢牖後學之地(이위존선현유후학지지)
- 선현을 존숭하고 후학을 계도하는 터전을 삼았다.
而仍以命名焉各有義(이잉이명명언각유의)
- 이어 명명한 것이 각각 의의가 있었으니
若明誠居敬集義之類是也(약명성거경집의지류시야)
- 명성당,거경재,집의재와 같은 부류가 바로 이것이다.
且夫曰愛蓮曰詠梅者(차부왈애련왈영매자)
- 또 애련헌이라 하고 영매헌이라고 한것은
齋前鑿塘塘外築塢(재전착당당외축오)
- 재사앞에 연못을 파고 연못가에 언덕을 쌓아
蓮可賞而梅可賦也(연가상이매가부야)
- 연꽃을 감상할 만하고 매화를 읊을 만하였기 때문이다.
曰遵道者由是(왈준도자유시)
- 준도문(遵道門)이라고 한 것은 이로 말미암아
而行道在斯焉(이행도재사언)- 행하면 도가 여기에 있기 때문이다.
於是乎院之制始大備矣(어시호원지제시대비의)
- 이에 서원의 제도가 비로소 크게 갖추어졌다.
然而學者於講論游息之暇(연이학자어강론유식지가)
- 그러나 학자들이 강론하고 유식하는 여가에
不可無暢敍之所(불가무창서지소)
- 마음을 후련하게 풀 곳이 꼭 필요했지만
先父老圖惟經始之(선부로도유경시지)
- 선부로(先父老)들이 공사를 시작할 겨를이 
未遑者數百年于玆矣(미황자수백년우자의)
- 없는 지가 지금 수백년이 되었다.
迺於庚子秋儒議(내어경자추유의)
- 이에 경자년(1840,헌종6) 가을에 유생들의 의논이 다시 일어나
復起屬家兄煥祖幹其事(복기속가형환조간기사)
- 가형 정환조에게 그 일을 주관하라고 부탁하였으니
蓋以其尊賢衛道夙(개이기존현위도숙)
- 가형이 현인을 존중하고 도를 보호하는 데 일찌기
有誠力故耳于(유성력고이우)- 성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以營繕百務實檢擧是(이영선백무실검거시)
- 이에 건립하는 모든 일을 실제로 점검하여 거행하였고
盧君光表姜君大魯族弟煥龍亦與有(노군광표강군대로족제환룡역여유)
- 노광표군과 강대로군과 족제 정환룡도 참여하여 도왔다.
相焉咸以謂與其創立層榭(상언함이위여기창립층사)
- 모두들 이르기를 "여러 층의 누를 창립하여
徒取觀美曷若因舊貫增(도취관미갈약인구관증)
- 한갓 외관을 아름답게 하기보다는 옛것을 인하여
新制恢拓我胸次也(신제회탁아흉차야)
- 새로 지어 우리들의 가슴속을 시원하게 하는 것이 낫다. 라고 하고,
遂就遵道門上葺之以小樓(수취준도문상즙지이소루)- 
드디어 준도문 위에다가 소루를 지으니
樓凡上下十許間(누범상하십허간)- 누가 상하 모두 10여 칸이다.
以翌年辛丑六月二十日落之(이익년신축육월이십일낙지)
- 다음해인 신축년 6월 20일에 낙성하였는데
遠近章甫濟濟趨賀主守姜侯彛文(원근장보제제추하주수강후이문)
- 원근의 선비들이 많이들 달려와 하례하고 군수 강후 이문도 참석하여
亦來會揖讓之風進退之節蔚然可觀也(역래회읍양지풍진퇴지절울연가관야)
- 읍양의 모습과 진퇴의 절차가 성대히 볼만하였다.
夫樓之爲制也不甚宏傑(부루지위제야불감굉걸)
- 누의 제도가 매우 크거나 빼어나진 않지만 장대하고
而奐輪翬革倏然改(이환윤휘혁숙연개)
- 아름다운 휘혁이 면모를 일신하고 
觀不百尺而逈臨有四望之(관불백척이형임유사망지)
- 백척이 안 되지만 높이 솟아 사방을 한눈에 볼 수 있다.
攸同郊坰平曠川澤縈洄(유동교경평광천택영회)
- 교외가 평평하고 넓으며 천택이 감싸 흐르고 
遙林蔥蒨晩靄依霏(요림총천만애의비)
- 멀리 있는 숲이 짙푸르게 무성하며 저물녘의 노을은 성대하다.
巖山數黛入暮雨而半隱(암산수대입모우이반은)
- 백암산의 몇몇 짙푸른 봉우리가 저녁 빗속에 들어 반이 숨었고
氵雷溪一面帶朝旭而全露(뇌계일면대조욱이전노)
- 뇌계의 한 방면이 아침 해를 띠고 온전히 드러난다.
竹柏前村啼鳥催春(죽백전촌제조체춘)
- 대나무와 잣나무 우거진 앞쪽 촌락에선 우는 새가 봄을 재촉하고
禾罷禾亞古巷老農知秋(파아고항노농지추)
- 농사짓는 옛 마을에선 늙은 농부가 가을철을 안다.
風月呈美煙霞獻技(풍월정미연하헌기)
- 풍월은 아름다움을 바치고 연하는 기교를 부리니
瞥千奇恍惚難狀(일별천기황홀난상)
- 눈 깜짝할 사이의 온갖 기이한 모양을 황홀하여 형용하기 어렵다.
登斯樓也則心廣神怡(등사루야칙심광신이)
- 이 누에 오르면 마음이 넓어지고 정신이 즐거워지며
涵泳灑落悠然有自得(함영쇄락유연유자득)
- 함영하고 쇄락하여 유연히 이러한 의사를 자득하게 된다.
這意矧乎頭流萬疊之峯(저의신호두류만첩지봉)
- 더구나 두류산의 만 겹 봉우리와
花林九曲之流(화림구곡지류)- 화림천의 아홉 굽이 흐르는 물에서
庶可以覽先生之淸風仰先生之氣象(서가이람선생지청풍앙선생지기상)
- 선생의 청풍을 보고 선생의 기상을 우러러 볼 수 있어서
恰若列侍函筵有點也(흡약열대함연유점야)
- 흡사 강석(講席)에 나란히 모시고 증점(曾點)이 
鏗爾舍瑟之趣(갱이사슬지취)
- 쟁그렁 비파를 내려놓고 대답한 아취가 있는 듯함에 있어서이겠는가
故因名之風詠樓(고인명지풍영루)
- 그러므로 인하여 풍영루라고 명명하였다.
若遵道舊楣則介菴之賜號(약준도구미칙개암지사호)
- 준도문의 옛 현판은 개암이 명명하고
梅菴之心畵列揭于門上(매암지심화열게우문상)
- 매암이 쓴 글씨이므로 문위에 나란히 걸어서
以示不泯先賢遺蹟之意(이시불민선현유적지의)
- 선현의 유적을 민멸시키지 않는 뜻을 보인다.
噫曾點夫子之徒也(희증점부자지도야)- 아 증점은 부자의 문도이고 
吾儕先生之徒也(오제선생지도야)- 우리들은 선생의 문도이니
學夫子而有風乎(학부자이유풍호)
- 증점이 부자를 배워 무우(舞雩)에서 바람 쐬고 읊조리며
詠而之趣則學先生者(영이지취칙학선생자)
- 돌아온 아취가 있었고 보면 선생을 배우는 자가
烏可無一船這箇想耶(오가무일선저개상야)
- 어찌 증점과 똑같은 생각이 없을 수 있겠는가.
遂援瑟而爲之歌曰(수원슬이위지가알)
- 드디어 비파를 당겨 다음과 같이 노래한다.
麗景遲遲兮(여경지지혜)- 봄의 해가 길고 길어
增乎春服(증호춘복)- 봄옷을 입었도다
無小無大兮(무소무대혜)- 작은이 큰이 통틀어
冠童五六(관동오륙)- 관자와 동자 대여섯일세
鳳凰高騫兮(봉황고건혜)- 봉황이 높이 날아오르나니
盍余游息(합여유식)- 어찌 내가 유식하지 않을 쏜가
優遊厭飫兮(우유염어혜)- 실컷 한가롭게 노닐어
使自得(사자득)- 스스로  터득하게 하노라
已見大意兮(이견대의혜)- 이미 대의를 보았으니
融理而蛻慾(융리이세욕)- 이치를 알아 욕심을 벗어나리
灆水之洋洋兮(남수지양양혜)- 넓디넓은 남계의 물은
可以浴(가이욕)- 몸을 씻을 만하고
高臺之屹屹兮(고대지흘흘혜)- 높디높은 외로운 대는
可以風(가이풍)- 바람을 쐴 만하도다
玆樓之適成兮(자루지적성혜)- 이 누가 마침 이루어지니
吾將詠歸渢渢(오장영귀풍풍)- 내 장차 읊조리며 노닐리라
(카페 "역사와 야생화" 천부인권님의 풍영루기를 참조하였습니다)




애련헌(愛蓮軒)과 애련지(愛蓮池)
지금 애련헌과 양정재(養正齋)는 보수중이라 관람하지 못했다


영매지(咏梅池)와 문간채, 관리사




함양남계서원 묘정비(咸陽灆溪書院廟庭碑)
남계서원에 일두 정여창(一蠹 鄭汝昌), 
동계 정온(桐溪 鄭蘊, 1569~1641),
개암 강익(介庵 姜翼, 1523~?)선생 세 분을 향사하여 제사올리고 있음에도
이를 찬양하는 송덕비가 없어 안타까워하다가 남계서원 건립 후 200여 년이
지난 1779년에 묘정비를 세우면서 글을 새겼다.
비문은 조선 후기 정조 때 문관 김종후(金鍾厚)가 지었다.






남경서원 
좌: 집의재(集義齋), 가운대:명성당, 우: 居敬齋(거경재) 


강당(講堂, 명성당明誠堂)
강당은 경敬과 논論을 연구하고 학습하는 곳으로 명성당明誠堂이라고 하며,
중용中庸의 '참된 것을 밝히는 것을 가르침이라 하니, 참되면 밝아지고 
밝아지면 참되게 된다,' 라는 뜻이다. 강학영역을 구성하는 중심 건물로 
1559년에 완성되었으며, 정면 4칸, 측면 2칸으로 구성되어 있다. 

중앙 2칸은 대청마루이고, 양쪽 각 1칸은 온돌방으로 되어 있다. 
오른쪽 방은 '거경居敬'이라 하며 경敬에 거居해서 이理를 깊이 
연구한다.'는 뜻이고, 동쪽 방은 '집의集義'라고 하며 호연지기는 
도道와 짝이 되는 의義를 축적해야 생기는 것이다.'라는 뜻이다.


기해팔월십구일남계서원추향제관분정기
(己亥八月十九日灆溪書院秋享祭官分定記)

초헌관 양재생, 아헌관 강임기, 종헌관 서영재, 
기해팔월 십팔일(2019년 8월18일), 남계서원


명성당의 가구배치(架構配置)






















사당앞을 밝히는 정료대(庭燎臺)와 손을 씻는 관세대(盥洗臺)


사당(祠堂)에서 바라 본 명성당과 정여창추모비, 원평리 들판




사당앞 배롱나무


탁영 김일손(濯纓 金馹孫, 1464~1498)를 기리는 청계서원




청계서원의 홍살문(紅箭門)과 외삼문(外三門)인 취도문(就道門)


청계서원(靑溪書院)
본 서원은 이 땅에 역사의 준엄함과 史官의 역활이 무엇인가를 일깨워 준 
탁영 김일손(濯纓 金馹孫)선생의 位牌를 모신 곳이다.

원래 이곳은 탁영선생이 1495년 청계정사(靑溪精舍)를 창건하고 수학하던 
곳이었으나 1498년 선생이 무오사화(戊午史禍)에 연루되어 그 해 7월 5일 
이곳에서 被逮되어 참형을 당하신 후 廢舍되었다. 그러나 선생을 추모하는 
영남 유림들과 관찰사 조민희(趙民熙)등이 발의하여 1906년 정사의 재건을 
숙의하고 모금운동을 전개하였다.

1917년 남계서원으로부터 본대지를 기증받아 묘우(廟宇)를 비롯하여 
강당과 부속건물 그리고 유적비 건립을 착공하여 1921년에 준공하였다. 
그 해 2월16일 선생의 위패를 奉安하고 청계서원이라 현액(懸額)하였으며 
매년 2월과 8월 中丁日에 향사(享祀)를 받드니 사후 416년 만에 비로소 
선생의 확고한 史觀과 遺志가 찬연하게 빛을 발하게 되었다. 

1947년에 重修공사가 있었으며 1983년 8월6일 경상남도 문화재 제56호로 
지정되었다.1986년 문화관광부에서 묘우를 중수하고 1987년 부터 
함양군에서 비각을 중수하였으며 廟宇와 內三門 및 경내 조경 사업을 
실시하여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서기 2001년 4월 23일 청계서원보존위원회


(윗)중앙에 청계서원의 講堂 애락당(愛樂堂), 
오른쪽 동덕재(同德齋), 왼쪽 래의재(來義齋)
(아래) 왼쪽 구경재(久敬齋), 오른쪽 역가재(亦可齋)


역가재(亦可齋)와 비각(碑閣) 앞의 당지(塘池)


탁영김선생유허비각(濯纓金先生遺墟碑閣)


탁영김선생유허비(濯纓金先生遺墟碑)


청계서원 비각 담장밖에 핀 배롱나무












애락당 강당에 걸린 현판
聚星亭賦(취성정부) - 별들이 모이는 정자의 노래
弘治戊午秋七月甲午先生在此舍而作(홍치무오추칠월갑오선생재차사이작)
-홍치무오, 1498년, 연산군 4년, 
추 7월 김일손(1464~1498)선생이 이 집에 머물며 지은 노래-


水廻山轉釀和柔(수회산전양화유)
- 물이 휘돌고 산이 움직여 순화하고 부드러워
淳古儒風百世秋(순고유풍백세추)- 옛 선비의 순박한 바람이 백년에 이르러
院含尊崇五道在(원함존숭오도재)- 서원의 존숭이 합쳐 다섯 道에 있으며
源從鄒魯海東流(원종추로해동류)
- 추로(맹자,공자)의 고향에 근원을 찾아 동쪽으로 흐르고
靑泉混混灆源深(청천혼혼남원심)
- 푸른 샘이 섞이고 섞여서 맑고 넓은 근원이 깊으며
以德爲隣古亦今(이덕위인고역금)
- 덕으로써 이웃을 위하고 옛날이나 지금도
萬疊頭流遙入望(만첩두류요입망)
- 만가지 겹친 두류산(지리산)이 멀리 바라보고
更看眞面好相尋(경간진면호상심)- 다시 진면목을 보며 서로 좋아 찾으리

後學河東鄭在櫓謹稿(후학하동정재로근고)- 후학 하동 정재로 삼가 지음
(해석 권진순)
















청계서원 內三門(내삼문)


청계서원 祠堂(사당), 靑溪祠(청계사)


사당앞 庭燎臺(정료대)와 盥洗位(관세위)





이것으로 경남 함양여행기(3) - 함양 남계서원, 청계서원을 마치며 마지막
제4편으로 광풍루, 용추계곡, 농월정으로 마무리하겠습니다.


찬란한 빛/김영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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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란한빛e님의 댓글의 댓글

profile_image 찬란한빛e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길게 보여드린 여행기록물 보시느라
그 또한 고생하셨습니다.
여행기록 마다 잘 보시고 정성까지 두시니
여간 고맙지 않답니다.
제겐 신명이지요.
건강과  행복을 기원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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