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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함양여행4- 용추폭포ㆍ연암 물레방아 공원ㆍ농월정

페이지 정보

작성자 profile_image 찬란한빛e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2건 조회 525회 작성일 19-10-03 20:11

본문


2019.9.17.화요일 경남함양 용추폭포에서 필자

경남 함양기행
2019.9.16.월-18.수 (2박3일) 

2019년 9월 16일 오후에 떠나서 
9월 18일 오후에 돌아온 2박 3일의 함양여행기입니다.

국립중앙박물관 특별전이 7월 23일부터 9월 22일까지 전시되는 
"우리 강산을 그리다 화가의 시선, 
조선시대 실경산수화"에서 
김윤겸(金允謙,1711~1775)의 '영남기행화첩嶺南紀行畫帖' 그림 중 
경남 함양咸陽의 극락암極樂菴을 찾아서 떠난 여행이었다.

함양군 안의면사무소 공무원분께 친절한 안내를 받았지만 극락암은 
찾지 못하고 함양군 마천면 지리산 자락의 금대암金臺庵에서 
조선의 화가들이 많이 실경산수화를 그렸다는 이야기를 듣고 
다음날 9월 17일 아침 우선 함양읍의 상림上林을 거쳐서 지리산 금대암을 
돌아보고 벽송사碧松寺, 서암정사瑞岩精舍, 그리고 안의면安義面에 있는 
일두 정여창(一蠹 鄭汝昌, 1450~1504)의 남계서원灆溪書院, 
탁영 김일손(濯纓 金馹孫, 1464~1498)의 청계서원靑溪書院을 돌아봤다.

9월 18일에는 용추계곡龍湫溪谷,용추폭포,용추사, 
연암燕巖물레방아공원, 농월정弄月亭을 돌아보고 무사히 돌아왔다. 

이번 기행에서 안의면사무소 공무원분들의 친절한 안내에 감동 받았다.
디카 메모리카드를 잊고 갔는데 면사무소 남여직원의 아주 친절한 안내로 
군청쪽으로 곧바로 찾아가서 메모라카드을 구입 많은 사진들을 담을 수 있었다.
안의면사무소 그 두분 공무원님께 감사드립니다.

4편
경남 함양여행4- 용추폭포ㆍ연암 물레방아 공원ㆍ농월정
2019년 9월18일 수요일

함양 안의면에서 기행 마지막 밤을 보내고 
8시 숙소에서 나와 동네를 한 바퀴 돌다 만난 광풍루이다.
햇빛 눈부신 화창한 날씨가 기분을 상쾌하게 했다.


어느집 담장 안 키 큰 나무엔 붉은 석류가 주렁주렁 탐스럽게 튼실히 매달려 있었다.


안의면 광풍루앞 금호강의 풍경


광풍루
광풍루는 광풍제월에서 따온 이름이다. 
광풍제월은 중국 송나라 때 명필 황정견(黃庭堅 :1045~1105)이 성리학자 주돈이
(周敦頤, 1017~1073)의 인물됨을 '胸懷灑落 如光風霽月(흉회쇄락 여광풍제월)'
이라는 문구에서 나온 말이다.


光風樓의 柱聯(광풍루의 주련)

三洞名區別有天(삼동명구별유천)
세개의 골짜기(花林洞,猿鶴洞,尋眞洞)에 이름있는 별천지가 있다
樓風月浩無邊(일루풍월호무변)
하나의 누각(光風樓)에는 풍월이 크고 끝이 없구나
西園竹樹宜疎雨(서원죽수의소우)- 서쪽 정원의 대나무에 간간이 내리는 비
東嶺山嵐和暮煙(동령산람화모연)- 동쪽 고개의 아지랑이 산기운과 저녁의 연기
漠漠田間飛白鷺(막각전간비백로)- 아득한 밭사이에 나르는 하얀 해오라기
蠹翁去後今吾至(두옹거후금오지)- 일두 정여창옹이 가신 후 지금 내가 이르러
此樂寥寥二百年(차락요요이백년)- 이 즐거음 200년 고요하구나

甲子秋日 心口 金中錫書 箕堂 金元植刻
갑자년(1984) 가을날 심口 김중석 쓰고 기당 김원식 새김
(해석 권진순)

'胸懷灑落 如光風霽月'이란 
가슴의 품은 뜻의 맑고 맑음이 마치 비가 갠뒤 해가 뜨면서 불어오는 
청량한 바람과 같고 비 개인 하늘의 상쾌한 달빛과도 같다.






광풍루에 올라 주변을 둘러본다.


용추폭포 입구 주차장


계곡 위 돌다리 난관위에서 모델이 되어 준 용추계곡 빨간 고추 잠자리
고 눈이 내 디카를 쳐다보네요. 이쁘게 찍어달라 눈빛언어를 보내온다.


계곡에 내려 앉은 다리 그림자, 나도 그 그림자 따라 계곡에 그림자로 내려 앉았다.


버스종점, 이른 시간이라 우리 부부뿐 고요한 용추계곡 아침풍경이다.




햇빛 눈부신 날에 그림자가 새카맣게 우리 부부를 또렷이 그려 놓았다.


손님없는 빈 버스로 들어 와 타고 나갈 손님도 없어 빈 버스로 되돌아 달려간다.


유리에 비친 여행자부부의 모습이 흐릿하지만 서로에게 둘도 없는 벗인걸요.


현위치..위쪽으로 3경 용추비경 


함양8경 중 아래 3명소는 다음 기회로 돌린다.
4경 화림풍류
7경 덕유운해
8경 대봉철쭉




옛 장수사(長水寺)터
위치 : 함양군 안의면 상원리 960번지
유래
장수사는 지금으로부터 1500여 년 전인 신라 소지왕(炤智王)9년 (487년)에
각연조사(覺然祖師)에 의해 창건된 고찰로서 지리산과 덕유산에 산재한 많은
사찰들을 말사(末寺)로 거느렸으며 이 곳 심진덩(尋眞洞)계곡에만도 열개가
넘는 암자(庵子)를 둔 대찰(大刹)로서 계곡 어디에서나 낭랑한
염불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한다.

장수사 경내에는 대웅전, 산신각, 천왕문, 명부전, 서신당, 동신당, 사천왕문,
일주문 등으로 그 규모가 해인사에 버금갈 정도였다고 하며 이곳에 기거하던
승려만 해도 항상 이백여명에 달했다 한다. 그러나 강희 19년(1680)에 첫 번째
화재를 입은 이후  2번의 화(火)를 더 입었으나 그때마다 모두가 합심하여
복원을 하였으나 아쉽게도 6.25전란때 장수사는 물론 계곡마다 즐비했던
암자들은 소실되었고 일주문만이 현존되고 있으며 용추암을 복원하여
용추사로 불리우고 있다.


德裕山長水寺曺溪門(덕유산장수사조계문) 一柱門(일주문)








용추사(400m) 용추폭포(350m)로 오르는 용추계곡 입구이다.  
옛 장수사 터 좌측 계곡을 끼고 오르는 숲속 길이다.
녹음 우거진 울창한 푸른 숲속 길이 용추사까지 계속 이어져 
한 여름에도 나무그늘로 시원히 오를 수 있는 깊은  숲길이다. 


바위에 새겨진 글
삼일수심천재보(三日修心千載寶)요, 백년탐물일조진(百年貪物一朝塵)이라
3일간 닦은 마음은 천년의 보배이고,
백년을 탐하며 모은 재산은 하루아침에 먼지가 된다는 뜻.

자경문에 나오는 말로 참된 자아와 행복을 찾으려면 탐욕을 버리고,
집착을 없애야 함을 이르는 말이다.


산을 오르다 계곡 건너편 불그스름한 열매가 신기해서 내 디카 줌으로 당겼다.


숲 길을 오르면 숲 속 풍경들을 담으니 발걸음에 신명이 실린다.
아마도 산기운이 내 몸에 생기를 불어넣어 주나 보다. 푸룻한 기운이 전신에 번진다.


돌부리에 걸려 넘어질 일도 없는 편안한 길이다. 발만 떼면 그냥 걸어지는 길이다. 








용추폭포가 나무사이로 몸을 드러 내었다.


맨 위 2번이 용추사, 바로 그 아래 1번이 용추폭포이다.


곧장 50m 더 오르면 용추사, 용추폭포는 오른쪽 계곡에 위치해 있다. 


그럼 용추폭포를 향해 오른족 계곡으로 내려가 볼까요?


지금까지 걸어 온 평평한 길과 달리 큰 돌 박힌 좀 험한 길이지요. 조심조심요.




용추폭포, 우리가 첫 손님인 듯..


함양 심진동 용추폭포(咸陽 尋眞洞 龍湫瀑布)
이 폭포는 주변의 울창한 산림 속에서 암반과 잘 어우러진 명승으로
높이는 30m, 용소(龍沼)의 직경은 25m이다.


龍湫瀑布(용추폭포)
長水寺龍深隱湫(장수사룡심은추)- 장수사의 용이 깊이 용추에 숨어
吐雲吐玉繼春秋(토운토옥계춘추)- 구름과 옥을 봄 가을로 토해내네
蠹魚放殖泉流上(두어방식천류상)- 일두어를 상류에 방류한 일두선생
足食惠民君子遊(족식혜민군자유)- 식량 증식 백성 혜택 군자의 여행


용추사로 오르는 길


요것이 내 앞을 가로 질러 가는데 하 신비스런 예쁜 빛이 날 사로 잡아 찰칵! 담았다.
이름은 모른다. 가을빛으로 날 유혹해 '가을레(가을벌레)'라고 이름 지어 보았다.


용추사 경내로 들어선다.


용추사 (龍湫寺)
전통사찰 제86호 (등록 1973. 11. 3) 

용추사는 신라 소지왕 9년(487년)에 각연대사(覺然大師)가 창건한 
옛 장수사와 4대 부속 암자 중에서 현존하는 유일한 사찰로서 
대한불교조계종 제12교구인 해인사(海印寺)의 말사(末寺)이다.

6.25때 소실되어 1953년 안의면 당본리에 있는 봉황대에 별원을 
차려 놓았다가 옛터의 복원을 추진하여 1959년 재건하였다. 주변 경관이 
수려한 자연 속에 위치하고 있으며 옛 장수사의 흔적을 간직한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54호인 『덕유산장수사일주문(德裕山長水寺一柱門)』을 
비롯한 많은 문화재가 보존 되어 있다. 
장수사 시절 설파상언대사(雪坡尙彦大師)가 전국의 승려들을 모아놓고 
화엄경(華嚴經)을 강의 했던 유명한 곳으로 전해지고 있다.

용추사 뒤편 용추계곡 상류에는 
기백산 군립공원과 용추자연휴양림이 있고 서북쪽 산 정상에는 
정유재란때 왜구와의 혈전이 벌어졌던 황석산성(사적 제322호)이 있다.


대웅전 주련 해설
佛身普遍十方中(불신보편시방중)-부처님의 몸은 온 세상에 두루 계시니
三世如來一切同(삼세여래일체동)-삼세의 여래가 모두 같은 한 몸이네.
廣大願雲恒不盡(광대원운항부진)-크나큰 원력은 구름같이 항상 다함이 없어
汪洋覺海渺難窮(왕양각해묘난궁)-넓디넓은 깨달음의 세계 아득하여 끝이 없네






연암 물레방아 공원






연암(燕巖) 물레방아 공원
용추계곡에서 용추사와 용추폭포를 만나보고 내려오는 길에 연암 물레방아 
공원이 있었다. 백성의 행복을 먼저 걱정하고 백성이 필요로 하는 것이 
무엇인지 고민했던 연암 박지원 선생을 생각하는 시간이었다.

연암선생은 나이 쉰이 넘어 안의현감을 하면서 물레방아를 만들어 냈다. 
고을 백성들이 겨울에 보리 찧을 방아를 구하지 못해 애를 태우는 것을 
보고 연암은 그들의 시름을 덜어주고자 
청나라의 수차를 본 떠 물레방아를 개량했던 것이다.

기구를 이롭게 써서 한 사람이 열사람 몫의 일을 해내고 
백성의 생활이 윤택해진다면 그것이 바로 백성의 행복이 아닌가를 
알았던 연암 박지원 선생의 정신이 깃든 물레방아 공원은 
연암의 동상과 물레방아가 소박한 모습으로 돌아가고 있는 곳이다.








한창 공사중으로 어수선 하였다.










물레방아는 1780년 사신의 일행으로 중국(당시 청나라)을 다녀 온
연암 박지원(연암 박지원 1737-1805년) 선생이 중국의 사상과 문물에
관해 쓴 열하일기를 통해 국내에 처음으로 소개 되었습니다.

물레방아가 얼마나 서민들에게 필요했고 소중했는지는
입으로 전해지는 민요를 봐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함양 산천 물레방아 물을 안고 돌고,
우리집 서방님은 나를 안고 도네...'라는 민요도 생겨났단다.


마지막 일정인 농월정에서
주차장에서 농월정(弄月亭)을 찾아가는 길은 유원지로 변한 농월정계곡 
앞의 가게를 지나 농월교에서 시작된다. 계곡물이 많이 말라서 시원하게
흐르는 모습은 볼 수 없지만 그래도 지리산과 덕유산 사이의 
황석산 자락에 있으니 나무색부터가 달라 보인다.














弄月亭橋(농월정교)..농월정을 가기 위해선 이 다리를 건너가야 한다.












弄月亭 柱聯(농월정 주련)

山蒼水烟洞天幽(산창수연동천유)
산은 푸르고 물안개 자욱히 하늘만 보이는 이 골짜기 그윽할사
知足遺風此地留(지족유풍차지유)
지족당이 남기신 풍류 이 곳에 남아 있구나
碧草空階春色暎(벽초공계춘색영)
파아란 풀 인적없는 반석 길엔 봄빛이 어려 있고
白雲深處野心浮(백운심처야심부)
흰구름 잦아진 곳 촌로의 마음도 구름되어 흐르네
主人已遂重新志(주인이수중신지)
정자의 주인장은 새로운 포부 그 옛날 철석같이 가다듬었음이라
翫客偏尋古渡頭(완객편심고도두)
오늘도 방문객은 반석 징검다리 이리저리 찾고 있고
石面至今三字刻(석면지금삼자각) 
반석위엔 지금도 석자 이름 이리 저리 남았는데
莓苔小蝕洗淸流(매태소식세청류)
꽃 이끼 피어난 반석이 시쳐 흘러 맑았어라
* 역사의 향기를 찾아서(현계정晛溪亭) 농월정 주련에서 인용




농월정(弄月亭)
조선 중기때의 학자인 함양 안의면 성북마을 출신인 지족당 박명부
(知足堂 朴明榑, 1571~1639)공께서 광해군때 영창대군의 죽음과 인목대비의 
유배에 대해 부당함을 직간하다가 파직되자 고향에 돌아와 은거생활을 하시면서 
방대한 너럭바위(넓은 바위)와 주변 경관이 수려한 이 곳에 서당을 짓고 심신을 
수련하셨습니다. 

인조 반정후 예조참판과 강릉 도호부사등을 지내셨으며 말년에는 왕이 불러도 
벼슬길에 나가지를 않고 1637년 농월정을 짓고 후학을 가르치면서 쉬던 곳으로 
몇 차례의 중수를 거쳤습니다. 1899년에 현재의 모습으로 건립되었으며 정자 앞 
오른 쪽 암반에 선생께서 지팡이를 짚고 노닐던 곳이라는 뜻의 
지족당장구지소(知足堂杖屨之所)라는 글자를 후손들이 힘있게 새겨 놓았습니다. 

달 밝은 고요한 밤에 
암반위의 냇물에 비친 달빛은 
한잔의 술로 달을 희롱한다는 선비들의 풍류와 멋을 
함축하고 있으며 계곡의 위쪽으로 황석산 등산로가 시작됩니다.






정자 앞 오른 쪽 암반에 
선생께서 지팡이를 짚고 노닐던 곳이라는 뜻의 
지족당장구지소(知足堂杖屨之所)라는 글자를 
후손들이 힘있게 새겨 놓았다고 한다. 

농월정(弄月亭)은 
옛사람이 지은 글에서 '밝은 달이 바다 밑에서 나오는 것 같다.'는 의미의
'明月出海底'의 구절에서 따온 것이다. 계곡과 이름도 월연암(月淵巖)인 
바위 위에 세워진 정자를 계곡물에 비친 달과 바라보면 일품인가 보다.

예부터 큰 인물을 낳은 땅으로 한양 입장에서 경상좌도에선 안동을,
경상우도에선 함양(咸陽)이라고 할 만큼 많은 인물들이 나왔다.
황암사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1914년 안의군이 폐지될 때까지 
안의는 함양의 중심이었다.

농월정을 짓고 계곡을 거닐며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살고 싶었던
지족당(知足堂) 박명부(朴明榑)선생은 1571년(선조4년) 안의에서
태어났다. 그가 태어난 곳은 아래에 있는 월림리 성북 마을이라는 
곳이다. 선생의 조상은 진주에 살았는데, 증조부 때 이곳 안의로 
이주해 정착하였다 한다.
























다람쥐나 청솔모 등, 산 진승이 요 도토리를 맛있게 먹고 갈 것 같다.
아니 어쩜 물고 쪼르르 재빨리 달려가서 어디엔가 꼭꼭 숨겨놓을 것 같다.


너럭바위가 시원하고 인상적인 농월정 주변, 그래서 그 자릴 오래도록 누리고 싶었다.


스승의 방








중건기(重建記)
弄月亭은 선조 知足堂선생이 지으신 것이다. 선생의 종관從官 이력과 도학절의
道學節義는 전현前賢들의 서술에 상명詳明하였으니 불초 민수民秀 어찌 감히
췌설贅說하겠는가 인조 병자호란때 선생이 남한산성에서 호가扈駕하셨다가
익년 정축丁丑에 화의가 이뤄졌으므로 기관棄官 환향還鄕하사 시년是年 9월에
此亭을 종담鍾潭 西 月淵上에 세우셨다. 월연이란 이름도 우연치 않으며 선생이
唐人의 詩에 노련특고묘명월출해저魯連特高妙明月出海低라는 뜻을 느껴 亭名을
농월弄月이라 하셨다. 노련의 치진대의恥秦大義가 오직 明月이 可當한 즉
선생이 此亭에서 淵上明月을 보시고 魯連의 志意를 천재광성天載光盛하셨음을
百世下에서도 가히 짐작하겠도다

오호라 수백년 내에 此 亭의 廢興도 여러번이었다.
前日의 重修한 것이 금일에 다시 퇴패頹敗되어 중수가 시급한지라 
함양군수의 특별보조금과 후손들의 성금으로 重修完役 하였으니 
동우익연棟宇翼然하고 정란환연亭欄煥然하며 산은 더 높고 물은 
더 맑은 듯 선생의 방촉芳躅이 완연宛然한지라 옛날 이찬황李贊皇의 
진심위계盡心爲戒라도 평천장平泉庄을 전하지 못했고 배진공裵晉公의 
정신여음精神餘蔭도 녹야당綠野堂을 지키지 못했으니 그 保守의 道는 
오직 자손의 誠不誠에 있는 것이니 우리 후손들은 항상 先德을 닦아 
永世無替한다면 門運이 復盛할 것이요

此亭도 평천녹야平泉綠野와 같이 않고 시산시수是山是水와 동전同傳할 
것이니 어찌 서로서로 힘쓰지 않겠는가 
참망僭妄을 불규不揆하고 대략이 이 같이 삼가히 쓰는 바이다.
정축丁丑 서기1997년 7월 일
先生 十六代 주손胄孫 民秀 謹記




弄月亭重建記(농월정중건기)
唐人詩曰 魯連特高妙(당인시왈 노련특고묘)
중국 사람의 시에 이르기를
 "노련(중국 초나라 의사 노중련)은 우뚝하게 높고 신묘하였다.
繼而曰 明月出海底 蓋以魯連之大義 特高處
(계이왈 명월출해저 개이노련지대의 특고처)
이어 말하기를 "밝은 달은 바다 밑에서 나왔다."고 하였으니 
이것은 대개 노련의 큰 절기가 우뚝하게 높은 곳에,
惟明月可以堂之 爲此詩者其知魯連乎(유명월가이당지 위차시자기지노련호)
오직 밝은 달이 짝이될만 하였다는 말이니 
이 시를 지은 사람은 노련을 잘 알았다고 하겠다.
安陰縣故判書知足堂朴先生寒岡鄭先生高弟也
(안음현고판서지족당박선생한강정선생고제야)
안음현의 예날 판서 지족당 박명부(朴明榑)선생은 
한강 정구(鄭逑)선생의 높은 제자였다.
已自少日 經學文章爲斯文所推重(이자소일 경학문장위사문소추중)
이미 젊은 시절에 경학, 문장이 사림의 추중하는 바가 되었으며,
及出而需用於世 偉蹟嵬烈 赫赫在史乘
(급출이수용어세 위적외열 혁혁재사승) 
세상에 나가 크게 쓰여져 위대한 자취와 높은 공훈이 역사에 빛나,
至今塗人耳 目吾何必贅疊爲也(지금도인이 목오하필췌첩위야)
지금까지 사람들의 이목에 젖어있으니 
내가 어찌 덧붙여서 중첩으로 말하겠는가.
方公之扈駕在南漢也 和議已成 事不可爲矣
(방공지호가재남한야 화의이성 사불가위의)
바야흐로 공이 병자호란에 남한산성에서 왕의 행차를 호위할세 
강화조약이 이루어져 어이할 수 없게 되었다.
棄官而南 爲亭於縣西月淵巖上(기관이남 위정어현서월연암상)
이에 공이 벼슬을 버리고 남쪽으로 내려와 
고을 서쪽 월연암 위에 정자를 세워놓고,
與弟樂汝軒爲終老之計 以弄月亭三字特銘於巖者 是何意也
(여제낙여헌위종로지계 이농월정삼자특명어암자 시하의야)
아우 낙여헌과 더불어 여생을 마칠 계획을 하면서 농월정
이라는 세글자를 바위에 우뚝하게 새긴 것은 어떠한 뜻이 었을까.
與桐溪鄭先生所秉義理 又是今日魯連也
(여동계정선생소병의리 우시금일노련야)
공은 동계정선생과 더불어 지킨바 의리는 참으로 오늘날의 노련이었다.
未知公之登斯 而望月也(미지공지등사 이망월야)
짐작컨대 공이 여기에 올라 밝은 달을 바라 볼적에
無乃以淵上明月把作 魯連看耶(무내이연상명월파작 노련간야)
소위에 비쳐있는 밝은 달로써 노련으로 본것이 아니었는가.
魯連一明月也 明月一魯連也(노련일명월야 명월일노련야)
노련은 한 개의 밝은 달이요 밝은 달은 한 사람의 노련이었다.
嬴秦以後一幅神州 種種陸沈腥塵彌然
(영진이후일폭신주 종종육침성진미연)
진 시황 이후로 한 폭의 중국 땅이 종종 몰락하여 비린내 나는 풍진이,
滿眼更不見出海面目 今公東海上人也
(만안경불견출해면목 금공동해상인야)
눈에 가득하였으나 바닷가에 나타난 얼굴을 보지 못하였다. 
지금 공은 중국이 아닌 동쪽나라 사람인데도,
乃能以尊周大義 又復明月之於東海(내능이존주대의 우부명월지어동해) 
능히 명 나라를 높이는 큰 절의를 지켜 또 다시 동해 위의 밝은 달이 되었으니,
于魯連有光焉 何其壯也(우노련유광언 하기장야)
노련에 비하여 더욱 빛났다. 어이 그리 장하였는가.
余嘗出宰長水 路過安陰縣 得見所謂三洞者
(여상출재장수 로과안음현 득견소위삼동자)
내가 일찌기 장수 현감이 되어 안음현을 지날 적에 이른바 삼계동을 보았으니,
儘嶠南泉石之絶勝也 彷徨乎猿鶴花林之間
(진교남천석지절승야 방황호원학화림지간)
그 천석이 영남의 절경이었다. 잔나비와 백학, 꽃과 숲 사이를 방황하다가,
因上弄月巖 拚餘光 而仰末照以寓羹墻之慕矣
(인상농월암 변여광 이앙말조이우갱장지모의)
농월암에 올라 남아 있는 빛을 받들고 유풍을 우러러 추모하는 마음을 붙였었다.
亭廢不修 距今百有餘年(정폐불수 거금백유여년)
정자가 허물어져 중수하지 못한 것이 지금까지 백여년이 되었다.
其嗣孫東陞與諸宗 同誠鳩財(기사손동승여제종 동성구재)
공의 사손 동승이 여러 종친과 더불어 정성을 함께하고 재정을 모아,
克重新之以增 舊制翼然棟宇宛然 如昨日
(극중신지이증 구제익연동우완연 여작일)
중건하여 날으는 듯한 정자의 모습이 완연히 옛날과 같았다.
遂令溪山重輝遺芬未沫 興廢雖謂之有數
(수령계산중휘유분미말 흥폐수위지유수) 
드디어 강산이 다시 빛나고 끼친 향기가 인멸되지 않았으니 
흥망이 비록 운수가 있다고 하나,
亦不可謂之不肯搆也(역불가위지불긍구야)
역시 선대의 유적을 잘 이어가지 않으면 안된다고 말하겠다.
以倫以晦以煥北 走屢百里過余江上
(이륜이회이환북 주루백리과여강상)
이륜, 이회, 이환이 북쪽으로 수 백리 길을 달려와 
강가에 살고 있는 나를 찾아,
顧余謂先契之重 屬余記重修(고여위선계지중 속여기중수)
선대 세의 중함을 말하면서 중수기문을 부탁할세.
余非其人 塵腔俚辭 或恐累及於明月分上
(여비기인 진강리사 혹공누급어명월분상)
내가 그 일을 감당할 사람이 아닌 만큼 하찮은 속된말로 
혹시나 밝은 달빛같은 공의 절의에 누가 미칠까 두려웠으나,
旋思之 若以是 而自附於往昔名碩之後
(선사지 약이시 이자부어왕석명석지후)
다시 생각해보니 만약 이러한 일로써 선현의 뒤에 스스로 붙이는 것,
亦某之幸也 敢爲明月之說 以歸之多見其僭妄也已
(역모지행야 감위명월지설 이귀지다견기참망야이)
또한 나의 다행함이겠기에 감히 밝은 달의 말을 서술하여
돌려보내니 참람된 점이 많이 보여진다.
癸酉之黃華節上浣(계유지황화절상완)
계유년(1873년) 국화계절(10월) 상순에
大匡輔國崇祿大夫行判中樞附事致仕奉朝賀
(대광보국숭록대부행판중추부사치사봉조하)
대광보국숭록대부 행 판중추부사로 관직을 물러나 봉조하
豊山后人 柳厚祚 謹記(풍산후인 류후조 근기)
풍산후인 류후조(1799~1876)가 삼가 기록
* 역사의 향기를 찾아서(현계정晛溪亭)에서 인용


둘로 잘라 게시해 두었다. 아래와 이어지는 글이다.














弄月亭橋(농월정교)

이것으로 경남 함양여행기(4) - 광풍루, 용추계곡, 농월정을 마치며  이 4편으로
중앙박물관 특별전 '우리 강산을 그리다'에 나오는 실경산수화중 함양일대의 
극락암, 금대암을 찾아서 떠난 함양여행기를 모두 마칩니다.


찬란한 빛/김영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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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찬란한빛e님의 댓글의 댓글

profile_image 찬란한빛e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소슬바위님, 잘 보아 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
다음이야기는 한중러일 크루즈여행 다녀와서 뵙겠습니다.
그때 다시 반갑게 뵙도록 하지요.
건강하시고 이 아름다운 가을을 행복하게 보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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