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ㆍ중ㆍ일ㆍ러 크루즈여행3- 기항지 일본 나가사키편 > 여행정보/여행기

본문 바로가기
사이트 내 전체검색
시마을 Youtube Channel

여행정보/여행기

  • HOME
  • 지혜의 향기
  • 여행정보/여행기

  ☞ 舊. 여행지안내

     

여행정보 및 여행기를 올리는 공간입니다

 이용자에 대한 소스제공을 위해 게시물 등록시 가급적 소스보기 박스란에 체크 해 주세요^^

☆ 게시물을 퍼가는 경우 게시자에게 간단한 인사말 을 남겨주세요^^

한ㆍ중ㆍ일ㆍ러 크루즈여행3- 기항지 일본 나가사키편

페이지 정보

작성자 profile_image 찬란한빛e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174회 작성일 19-10-30 17:19

본문



한ㆍ중ㆍ일ㆍ러 크루즈여행3- 기항지 일본 나가사키
2019.10.8.화-10.15.화 

10월 11일은 전일 크루즈에 승선하여 상해를 떠나 우리나라 남해와 제주도사이를
항해하여 일본 나가사키항(長崎港)에 10월 12일 아침에 도착했다.




아침해가 동해에서 떠오르다


태풍 '하기비스'가 점점 일본으로 향진한다는데 걱정도 되면서...


일행부부과 담소를 나누며...


나가사키항입구로 들어가는 선상에서




아! 대한민국 제주도 제주시와 한라산을 먼발치 바라보며 


나가사키항의 독크(Dock) -조선소와 크레인


객실 2352에서 바라 본 나가사키 크루즈 터미널


나가사키항에 입항한 크루즈선 코스타세레나호의 위용






평화공원으로 가는 방법
나가사키국제터미널에서 조금 걸어서 오우라해안길역(大浦海岸道驛)에서 
녹색 노면전차를 타고 신치차이나타운역에서 청색 전차로 갈아타고 
데지마(出島)-야치오마치(八千代町)-모리마치(茂里町)-평화공원역에 도착했다.
이곳은 신치차이나타운역(新地中華街驛)에서 갈아타고 있다.




나가사키 전차 평화공원역으로 가는 길 전차내부의 표정
차비는 성인 130엔(약 1,300원)


원폭낙하중심지 (原爆落下中心地)
1945년 8월9일  오전 11시02분. 히로시마에 이어 
역사상 두번째 원폭이 이곳 원폭낙하 중심지의 상공 약 500m에서 
작렬하여 순식간에 수많은 고귀한 생명을 앗아 갔습니다.




성덕사 등롱(聖德寺燈籠)
폭심지에서 남남동에 약 1,500m의 거리에 있던 天王山法輪院聖德寺는 
1626년(寬永3년)에 창건됐다. 
이 일대의 등롱은 신앙이 깊은 檀信徒로부터 헌납되었다.

1945년(昭和20년) 8월9일 오전 11시2분 원자탄이 폭발하면서 
장대한 본당은 붕괴되었고 경내의 석탑,묘석도 폭풍에 의해 도괴되었지만 
이 일대의 등롱만은 도괴되지 않고 남았다.

그후 이 등롱은 원폭의 참상을 전해주는 물건으로 성덕사로부터 
기증 받아 1949년 2월에 이 장소에 이설되었다.나가사키시는 원자폭탄에 
의해 돌아가신 모든 것에 명복을 빌며 두번도 이런 참화가 일어나지 
않도록 원하며 이 명판을 설치합니다
2004년(平成16년) 3월 나가사키시








우라카미천주당유벽(浦上天主堂遺壁, 폭심지부터 동북약 500m)
폭심지부터 동북으로 약500m의 작은 언덕에 있던 우라카미천주당은 
1895(명치28)년 부터 건축에 착수해서 신도들의 헌금과 노동봉사로 
1914년(대정3)에 헌당식을 거행하였다.
1925년에 정면의 쌍탑을 완성하고 대소의 종을 매달아 놓았다.

동양의 하나의 장대함을 과시한 천주당으로 있다가 
1945년 8월 9일 오전 11시2분 원자폭탄이 작열하면서 파괴되고 
극소수의 벽만 남겨 놓고 사라졌습니다.

이 측벽은 성당의 남측의 일부로서 1958년(소하33)년에 새로이 
천주당건설을 위하여 이 땅에 이설하였던 것이다. 
벽상의 석상은 후란시스코 자비에르라는 使徒입니다.
그러나 풍우에 점차 변화가 진행되었기 때문에 안전성을 
고려해서 현재의 형상을 한 채 내부및 표면의 보강을 행하였다. 
나가사키시는 원폭으로 사망한 모든 것들을 추도하며 두번 다시 
이와 같은 참화가 일어 나지 않을 것을 기원하며 이의 명판을 
설치한다. 2001년(평성13)년 3월, 나가사키시(원폭자료관)








폭심지직하의 참상(爆心地直下의 慘狀)
1945년(소하20) 8월9일 오전 11시2분 이곳 松山町(마쓰야마마치)상공에서 
원자탄은 작열했다. 마을의 동쪽을 흐르는 이곳 아래의 개울에는 엄청나게 
많은 사체가 매장되어있었다.
물을 구하기위해 川邊에 왔는데 그런데 기력이 다하고 질식사하였다.
 







원폭순난자위령탑(原爆殉難者慰靈塔)을 건립함에 있어서
昭和20년 8월9일 11시2분 나가사끼는 섭씨 3000도을 초월하는 熱線, 
초당 500m의 폭풍, 
불의 소용돌이 지옥에서 인간도 집도 모두 타 버렸습니다.

그날 많은 건설노동자 직원은 징용 차출되어 거리의 강제소개의 
건설철거작업 등 어뢰정만들기에 강제취로했던 자들인데 
존엄한 생명을 탈취 당했다.

아 이 고통을 보라! 
아 이 노여움을! 아 이런 비극을 보는 우리들은 결코 잊지 못하는
것이다. 그래서 세계 여러나라와 인류에게 두 번 다시 
이런 일이 없도록 하여야 한다.

피폭 43년 지금 여기에서 전국의 건설노동자직인의 총의에 의해 
원폭순난자을 영혼을 위로하고 평화와 핵폐기를 위하여 궐기하며 
不戰平和의 塔을 건립하며 영혼이시어 
평안히 잠드시기 바람니다

소화 63년(1988) 8월 8일
전국건설노동조합총연합, 장기현건설산업노동조합
























독일민주공화국 기증 우호의 상
諸國民友好의 像
평화는 인류의 행복한 미래, 그래서 제국민우호을 구하는 노력을 상징하는
도이취민주공화국으로 부터 받은 기증품
도이취민주공화국평화위원회 1981년


나가사키형무소 우라가미형무지소적(長崎刑務所浦上刑務支所跡)
1945년 8월9일 오전 11시2분 원폭에 의해 직원 18명, 관사거주자 35명, 
수용자 81명(중국인 32명, 조선인 13명 포함) 계 134명 전원 즉사함.












평화기념상 (平和祈念像)
조각가 기타무라 세이보씨의 작품으로
오른손은 원폭의 무서움을 가리키고 왼손은 평화를 상징하며,
감은 눈은 전쟁희생자의 명복을 빌고 있는 모습입니다.




평화기념상건립에 있어서

소화20년 8월9일 오전11시2분 
한 발의 원자폭탄이 이곳 지상공에서 폭발했다.
사방 5천미터 일대을 폐허화시켰다. 사망자는 73,000여명, 부상자는 또한
76,000여명에 이르렀다.

애수 비통한 생각이 오늘도 가슴을 찢어지게 한다. 
피폭 모든 영혼의 명복을 비오며, 또한 이 참화가 다시는 지상에 일어나지
않도록 막기 위하여 스스로 일어나서 세계항구평화의 사도로서 결의를 하며
그 상징으로 이 언덕에 평화기념상을 건립을 발원한다.

우리들은 평화기념상건설협찬회를 조직해서 내외의 열렬한 협찬을 모토로
소화 26년 봄 공사를 이르켜서 여기에 4년 염원의 상을 완성하고 제막식을
거행했다.

이 날은 원폭 10주년의 날의 전날입니다. 
우리는 30만 시민들과 함께 이 평화기념상이 만인에게 
우러러보며 세계평화의 보장에 크게 공헌할것임을 믿습니다.

소화30년(1955) 8월 8일
나가사키 시장 田川 務(다가와 츠토메루)


이번 크루즈여행의 도반道伴님들 평화기념상앞에서




평화기념상제작가의 말씀
<전략>
男性의 건강미, 全長 32尺여, 오른손은 원폭을 표시하고, 왼손은 평화를,
얼굴은 전쟁희생자의 명복을 기원해서, 인종을 초월한 인간, 시간의 부처,
시간의 신, 지금 인류최고의 희망을 상징한다.
소화30년(1955)춘일  北村西望




아메리카 데이지(엉거시과의 다년생 식물)

브라질 원산의 落葉高木, 江戶시대에 도래, 
높이 6m, 가지에는 예리한 가시가 있으며 추위와 더위에도 강하다. 
붉은색의 꽃을 6월부터 9월까지 핀다




화평(和平)
1985년 7월 호요방(胡耀邦, 후야오방, 1981년 국가주석)
이 상은 중화인민공화국에서 중국일본우호협회를 통하여 기증된 
작품 [乙女의 像]이다






平和의 泉(평화의 샘)
소화20년(1945년) 8월 9일, 
원폭때문에 체내까지 타들어가는 피폭자들은 물을!,
물을! 달라고 절규하다가 죽음을 맞이 하였다 
이 고통을 영혼의 물을 받들어 명복을 빌고, 세계항구적평화를 기념하여 
핵병기금지세계평화건설국민회의와 나가사키시는
전국에서 淨財를 기본으로 이곳에 [平和의 泉]을 건설했다.

분수지 직경 : 18m
분수의 높이 : 0.5~6m






출도남서단(出島南西端, 데지마 남서단, Southwestern Extremity of Dejima)

여기는 데지마남서부의 하치장부근에 있습니다. 보도위에는 서측에 연이어져 착색된
라인이 하치장의 부분입니다. 이 간판의 위치가 出島築造當初에 건축했던 石담장과의
取付가 비슷하다. 그러나 남측에 연이은 라인이 격형(鬲形)의 出島의 남서부에
있으며, 현재는 국도의 아래에 석담장(石垣)의 일부가 남아 있습니다.


데지마의 거리 풍경
앉아 있는 사무라이 복장을 한 무사, 기모노입은 여성이 걷는 거리






천칭대(天秤量, Balance)

이 천칭대는 네덜란드선이 운반한 수입품중 설탕등을 계량하기위한 것입니다.
천칭의 하나로 설탕 빽을 하나의 팬에 올려 놓고 다른 물건과 같이 무게를 재는
저울이다.


옛 일본 사무라이(侍)와 함께










네덜란드에서 소개된 데지마의 景觀(The Blomhoff Model of Dejima)
네덜란드에서 大人氣, 
홀란다 商館長 Blomhoff는 착임후 곧바로 출도에 대규모 창고를 지었다.
데지마의 축조(出島築造)
1636년, 도쿠가와 바쿠후(德川幕府)의 명령으로 나가사키의 유력 상인 25명이
출자하여 데지마가 축조되었습니다. 포르투갈인을 수용하고 무역 장악 및
크리스트교가 퍼지는 것을 막기 위한 시스템이 완성되었지만, 이듬해 1637년
시마바라의 난으로 인하여, 1639년부터 포르투갈의 내항을 금지되었습니다.

이후 히라도(平戶)의 네덜란드 상관이 데지마로 옮겨졌고, 데지마는 일본과 
유럽 간의 유일한 무역지이자, 난학(蘭學) 및 일본 근대화에 필요한
정보의 발신지로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 시마바라의 난(島原의 亂), 
1637년 12월 11일, 농민들이 징세관을 살해하는 사건으로 일어났다.
37,000여명이 세 가지 이유, 즉 세금강제징수, 농번기에 성쌓기 동원,
몰락한 낭인 사무라이들과 박해받는 천주교도들이 합세하여 4개월간 
항쟁하다가 진압되었다. 
이 여파로 포르투갈 상인은 철수하고 네덜란드상인이 데지마에 들어왔다.


되살아난 전통공법

1번창고, 2번 창고의 복원, 전통적 목조건축의 기술을 계승, 나무나, 대나무,
흙을 사용하였다. 이 모든 일은 나가사키시민의 협력아래 이루어졌다.


되살아난 데지마(出島復原事業)

계획의 목표 : 데지마 和蘭商館址 복원정비사업은 19세기초의 데지마의 모습을
재현하는 것입니다. 주요한 건물의 복원과 남측및 동측의 호안석담장을 복원이
단중기계획이며 장기계획은 사방에 수면이 돌아가는 형태의 섬을 복원하는 것입니다.

지금까지의 성과는 
日蘭交流 400주년인 平成12년(2000)에 제1기공사로 방, 요리방,
1번선 부두방, 1번.2번창고를 복원 완성하였고, 2006년에는 제2차공사로 
水門, 乙名部屋, 3번창고, 2016년에는 16번창고,14번창고, 
乙名詰所 등을 복원하였다.


출토품으로 말하는 데지마(발굴조사)


발굴된 유구(發掘遺構)

데지마의 발굴조사는 1984년에 이루어졌으며 出島의 경계확인과 
범위확정을 목적으로 조사하였다. 1996년부터 시작하여 오늘날까지 
이어져 건조물복원정비사업을 동반하여 섬의 모습을 
확실하게 하는 호안석원정비사업을 수반 조사 하였습니다.
건물 등 생활의 흔적
홀랜드인의 주거, 일본인 직원의 詰所 등 건물의 초석 기초유적이 
보였다. 또한 건물에 개설된 上水遺構 등 用水池 등이 있었다.








횡승(橫繩 : 요코나와, 흙으로 붙이고 새끼로 옆으로 묶었다)
































총동원된 배우겸 엑스트라, 19세기 데지마 상관거리를 재현


시비가 붙어 두 사무라이가 칼 빼기 직전의 모습을 재현


삼번장(三番藏, 제3창고, No.3 Warehouse)
'카네이션 웨어하우스 Carnation warehouse'라 부르는 설탕 창고






배례필자난인부옥(拝禮筆者蘭人部屋, Head Clerk's Quarters)
네덜란드인 서기장의 주택


출도의 난학(出島 데지마의 蘭學, Western Learning on Dejima)
난학은 鎖國時代에 出島을 통하여 서양의 과학, 기술, 문화 등을 대상으로 하는
학문으로 후에 일본의 근대화에 큰 역할을 이바지하였다. 난학관에는 네덜란드
商館부터 들어와 서양의 과학.문화를 일본에 소개하였다




난학을 소개했던 사람들
네덜란드 통역원 중에는 번역자뿐만 아니라 스스로 연구하면서 난학에 공헌했던
인물이 있습니다.


난학사시(蘭學事始, 明治2년,1869년 己巳新刻,天眞樓藏版)
삼전현백(杉田玄白,스기다)이 文化12년(1815)까지 종합하여 모은
蘭學에 관한 회상록. 福澤諭吉(후쿠자와 유키치)과 현백의 자손이 
명치2년(1869)에 상하 2권을 출판했다.




아마카와(天川)유구와 매장된 그릇
이 유구는 건물내부에서 일하던 작업용 시설의 일부, 아마카와(天川)은 
오랜지색의 점토와 석회를 섞어서 만든 흙으로 만든 물을 담아 두는 곳




計量秤(계량기, Measuring Apparatus)
동장(銅藏, 銅 창고)에 수납된 도동(棹銅: 막대형 구리)는 네덜란드선박에 
선적하기전에 한번 그의 중량을 계량하였다. 이 작업은 네덜란드상관원과 
일본인 작업인의 입회하에 하였습니다.계량에는 네덜란드제 계량칭으로 사용했다.




노적유구(爐跡遺構, 화로토 유구, Fireplace Remains)
동장의 출입구의 서측에서 床面을 굴착하니 불을 피운 흔적이 보였다.




도동입상(棹銅入箱, 동괴銅塊가 들어있는 상자, Packing of Copper Bars)
수출용의 동괴는 같은 크기의 木箱에 담았다. 銅藏속에 일시 보관하였다.
보통 상자의 무게는 100斤(약60kg)으로 1본의 중량은 반근(300g)의 동괴가
200본을 채웠다. 




교피(鮫皮, 상어가죽, Sharkskin)
교피는 수입품의 하나로 남지나해나 인도양에서 여러가지 물고기의 가죽을 
총칭하는 것이다. 일본에는 주로 칼집이나 자루의 장식에 사용하였다.






데지마에서 세계로 수출된 일본 동
出島의 銅貿易(데지마의 동무역)
江戶시대, 일본의 銅山에서 산출된 銅은 오사카에 집결해서 그 지방의 
제련소에서 정련, 주조하였다. 이후 해외로의 무역용으로 생산된 동은 
御用棹銅이라 불렀는데 나가사키의 데지마등이 중국무역일으키는 
新地荷藏에 납품되어 이곳에서 아시아, 유럽에 수출하게 되었다.

일본의 銅은 
화폐를 비롯해 선박등 건축,무기,조리기구등 여러 제품의 재료가 되었다.






출토품으로부터 밝혀진 무역사
데지마에서는 해외에 수출하기 위해서 만든 국산도자기가 많이 출토되었다.
수출을 향한 도자기의 양식의 변천과정을 이해할 수 있다. 네덜란드상관의
주문에 맞는 물품을 생산하고 서양인이 필요로하는 물건을 분별할 수 있었다.


색회화수문륜화발(色繪花樹文輪花鉢)
유전(有田,아리다), 17세기후반


금란수양식(金襴手樣式, Kinrande Porcelain)
금란수양식의 특징

染付(襴下)에 있어서는 藍色을, 
襴上에는 붉은 금 등의 色繪具로서 문양을 
묘사해서 加飾했습니다.










염부화훼문육각개부발(染付花卉文六角蓋付鉢)
19세기전반기, 영국


동양도자와 서양도자(東洋陶磁와 西洋陶磁, East Asian and European Ceramics)
17세기 시작하여 일본은 모모야마에서 에도시대 초기에 네덜란드와 
영국은 대항해시대를 앞장서서 갔던 포르투갈은 스페인을 압도하고 
해외에 진출해서 세계각지에 활동거점을 설치하여 폭넓은 교역을 행하였다. 
이미 16세기 후반에는 유럽에는 중국으로부터 양질의 景德鎭窯를 중심으로
 染付磁器가 대량으로 들어와 17세기 중기에는 일본의 有田製의 염부자기가 
더붙여졌다. 17세기 후반에 제작된 유전(아리다)의 色繪磁器는 
유럽의 왕후귀족이다투어 수집하여 궁전 저택을 장식하였다. 

동양의 자기에 대하여 높은 관심을 18세기 전기에는 유럽 제국에도 
자기의 제작이 시작하여 순백의 생지에 염부등 색회을 시행했던 
동양의 자기에 필적하는 경질자기의 소성이 시작되었다.

마이센(드레스덴), 윈 등지의 도자공방이다. 
왕후들의 비호로 예술성의 고급제품을 만들어 내보냈다. 
그러나 희소해서 고가로 판매됐기 때문에 서민은 입수하기 어려웠다.

18세기 중엽에는 영국의 우수타에서 자기의 유약의 하에 부루의 
전사프린트를 행하는 기법이 작용하기 시작하였다. 도자기에 
프린트기법을 사용하여 여러가지를 개량하게 되어1784년에 
지오사이아.수보트의 수보트 요에서 본격적 도입에 성공하였다.


염부동양풍경도발(染付東洋風景圖鉢)
19세기중기


색회화훼문대명(色繪花卉文大皿)
19세기전반기


나가사키와 데지마를 이어주는 다리 도계교(桃溪橋) 설계그림




발굴하여 전시한 도계교의 부품








출도수(出島樹, 데지마 나무)
동남아시아에 분포하는 난요우주기과의 常綠高木으로 
학명은 Agathis dammara라고 합니다.
日蘭交流의 귀중한 기념수입니다.




구 출도신학교(舊出島神學校, 옛 데지마 신학교)
명치8년(1875)에 창립된 데지마교회에 인접해서 1878년에 영국학교로서 
건립되었는데, 1883년에는 데지마 성공회신학교로 되었읍니다. 
일본에서 최초로 설립된 그리스도교 프로테스탄트의 신학교입니다. 
1893년에 증축해서 현재에 이름






나가사키의 중심지 차이나 타운의 패루(霸樓)가 우리를 맞이한다.






나가사키 짬봉을 점심으로 먹기위해 차이나타운 왕학(王鶴)에 들렸다.


나가사끼 짬봉으로 점심을 먹었다. 국물이 하야니 맛있게 먹었다.




추방신사(諏訪神社: 물어서 의논하는 신사)
오우라천주당(大浦天主堂)으로 가는 길








오우라 천주당(大浦天主堂)
오우라 천주당은 
일본에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성당이며, 국보로 지정되어 있다.
일본이 19세기에 개국하자, 일본에 거주하는 외국인들은 신앙의
 자유를 보장 받게 되었고, 이들을 위해 일본에 온 선교사에 의해 
1864년에 세워졌다.
1865년에는 약 250년간 비밀리에 신앙을 계승해 온 신자들을 발견하였고,
이 사건은 "신도발견"이라 불리며 전 세계에 놀라움과 감동을 주었습니다.





이것으로 7박8일간 크루즈여행기(3) - 일본 나가사키(長岐)-3편을 마치며
끝으로 7박8일간 크루즈여행기(4) - 러시아 블라디보스톡으로 마무리 하겠습니다.


찬란한 빛/김영희

추천1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Total 272건 1 페이지
여행정보/여행기 목록
번호 제목 글쓴이 조회 추천 날짜
272 찬란한빛e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84 1 11-12
271 찬란한빛e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88 2 11-08
270 찬란한빛e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02 1 11-04
269 찬란한빛e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67 1 10-31
열람중 찬란한빛e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75 1 10-30
267 찬란한빛e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63 1 10-30
266 찬란한빛e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85 1 10-27
265 찬란한빛e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54 2 10-05
264 찬란한빛e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39 0 10-05
263 찬란한빛e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03 1 10-04
262 찬란한빛e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10 1 10-04
261 찬란한빛e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78 1 10-03
260 찬란한빛e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83 1 10-03
259 찬란한빛e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05 1 09-28
258 찬란한빛e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27 0 09-23
257 찬란한빛e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07 1 09-21
256 찬란한빛e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09 0 09-20
255 찬란한빛e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328 1 08-18
254 찬란한빛e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316 1 08-16
253 찬란한빛e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329 0 08-11
252 찬란한빛e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317 0 08-10
251 찬란한빛e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352 1 08-07
250 찬란한빛e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95 0 08-04
249 찬란한빛e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301 0 07-31
248 찬란한빛e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310 1 07-27
247 찬란한빛e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95 1 07-26
246 찬란한빛e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344 0 07-18
245 찬란한빛e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370 1 07-14
244 찬란한빛e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368 1 07-09
243 찬란한빛e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319 1 07-07
242 찬란한빛e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363 0 07-03
241 찬란한빛e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334 1 07-03
240 찬란한빛e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372 1 07-02
239 찬란한빛e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96 0 06-29
238 찬란한빛e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395 1 06-24
237 찬란한빛e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451 1 06-19
236 찬란한빛e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398 1 06-17
235 찬란한빛e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390 1 06-07
234 찬란한빛e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379 0 06-07
233 찬란한빛e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400 0 06-05
232 찬란한빛e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505 1 05-25
231 찬란한빛e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465 0 05-22
230 찬란한빛e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342 0 05-19
229 찬란한빛e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399 1 05-13
228 찬란한빛e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443 0 04-10
227 찬란한빛e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415 0 04-09
226 찬란한빛e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551 1 04-03
225 찬란한빛e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442 0 04-03
224 찬란한빛e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559 1 03-31
223 찬란한빛e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376 1 03-16
게시물 검색

  • 시와 그리움이 있는 마을
  • (07328) 서울시 영등포구 여의나루로 60 여의도우체국 사서함 645호
  • 관리자이메일 feelpoemtop@hanmail.net
Copyright by FEELPOEM 2001.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