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박3일 강원도 고성기행5-화진포해수욕장과 화진포의 성, 그리고 이승만별장 > 여행정보/여행기

본문 바로가기
사이트 내 전체검색
시마을 Youtube Channel

여행정보/여행기

  • HOME
  • 지혜의 향기
  • 여행정보/여행기

  ☞ 舊. 여행지안내

     

여행정보 및 여행기를 올리는 공간입니다

2박3일 강원도 고성기행5-화진포해수욕장과 화진포의 성, 그리고 이승만별장

페이지 정보

작성자 profile_image 찬란한빛e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2건 조회 1,683회 작성일 20-05-18 21:52

본문


고성 화진포성(김일성별장)에서 바라 본 화진포해수욕장 전경


화진포콘도를 기준으로 전면이 화진포해수욕장 후면이 이승만별장이 있는 화진포호수이다.



강원도 고성기행5-화진포해수욕장과 화진포의 성, 그리고 이승만별장
2020년 5월8일 금요일

20년 5월 8일. 2박3일의 여행 마지막 코스는 화진포 성(김일성별장)과 이기붕별장, 
화진포호수와 이승만대통령 별장을 관람하고 초도항에 들리고 그 길로 신설된 
서울-양양고속도로를 거쳐 집으로 무사히 돌아왔다. 




이른 아침, 2020년 3월8일 해돋이를 객실 베란다에서 바라보며 찍었다










화진포 앞바다에 미래를 예지하는 십장생 거북을 닮은 거북섬(金龜島)를 
바라다 보며 소원을 빌면 소원 성취 된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고성명태의 효능
고성명태는 칼로리가 적고 알레르기 발생률도 낮아 유아 이유식과 
다이어트식으로 각광받고 있으며 오메가-3 지방산의 조성비가 높아 
고혈압, 심장병, 동맥경화 예방에 탁월한 효과가 있다.


고성말린명태
말린명태는 양질의 단백질과 음식으로만은 섭취가 가능한 필수 아미노산, 
칼슘, 비타민A등이 풍부하게 함유되어 있어 간 기능을 보호하고 
신진대사를 원활하게 하여 아이들의 성장기 발육에 도움이 됩니다.

말린명태의 국물은 채내의 일산화탄소를 배출하여 주는 효능이 있어 
한약재로 쓰이기도 하는데 흡연자에게도 좋은 먹거리 입니다.

말린명태에는 세포를 발육시키는데 필요한 "리신"이라는 필수 아미노산과 
뇌의 영양소가 되는 드립도면이 들어 있어 건강유지에 좋으며 지방이 
상대적으로 적어, 비만환자나 노인들도 안심하고 먹을 수 있습니다.

말린명태에 다량 함유되어 있는 알라닌, 아스파르트산, 글리신 등의 
아미노산이 알코올이 분해되지 않고 간에 축척된 아세트알데히드의 
해독에 뛰어난 효과가 있어 숙취해소에 좋습니다.

항체와 면역세포의 바탕이 되는 명태의 단백질은 
두부의 8배, 우유의 24배나 많이 함유되어 있으며 피부의 단결을 관장하는 
콜라겐이 말린명태의 껍질에 다량 함유되어 있습니다.

말린명태는 
소화흡수가 잘 될 뿐만아니라 간을 보호와 술독을 풀어주는 효과가 
탁월하고 특히, 소변이 잘 나오지 않을 때 명태 국물을 뽀얗게 우려 마시면
곧 바로 효과가 나타난다.


화진포(花津浦)

화진포는 동해와 연전해 자연풍광이 수려하고, 광활한 호수 주위에 울창한 송림이
병풍처럼 펼쳐진 국내 최고의 석호(潟湖)이다. 해변은 수심이 얕고, 물이 맑을
뿐만 아니라 금구도(金龜島)가 절경을 이루어 해수욕장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겨울에는 천연기념물 제201호인 고니 등 수많은 철새들이 찾아와 장관을 이룬다.

주변관광지
1. 이승만 대통령 별장, 2. 화진포의 성(김일성별장), 3. 화진포 해양박물관
4. 화진포 생태박물관






화진포의 성(김일성별장) 바로 앞 바다의 이끼 낀 바위와 돌














화진포 소나무 숲, 응봉, 산림욕장 종합 안내판
응봉(정상) 1.5km, 거진 해맞이봉산림욕장 4.3km




화진포 숲길에서 바라본 화진포 호수


거북섬(金龜島, 속칭 광개토대왕릉)




















Zenith(제니스) 라디오


자수정 벽난로
"벽난로에는 둥굴 속에서 채취해 온 수정암석이 쌓여 있었다. 
그는 벽난로가 얼마나 불을 잘 빨아들이는지 보여주려고 불을 붙였다. 
춤추는 듯한 불꽃은 벽난로에 붙어있는 수정에 현란하게 반사되었다."
- '닥터 홀'의 자서전 [조선회상]중에서 -


화진포의 성 옥상에서 바라본 좌측 화진포호수, 우측 화진포콘도와 모래사장








남산공원 비둘기장에서 먹이를 주는 이기붕 민의원의장 모습









화진포설화
옛날 이 마을에 "이화진"이란 부자가 살았는데 주위 사람들에게 너무 인색하고 
성격이 고약했다. 어느 날 스님이 시주를 왔는데 곡식 대신 소똥을 퍼주었고, 
스님은 소똥을 들고 말없이 돌아서 나갔다. 이 광경을 보고 있던 며느리가 얼른 
쌀을 퍼서 스님께 드리며 시아버지를 용서해 달라고 빌었다.

스님은 시주를 받으며 "나를 따라오면서 무슨 소리가 나더라도 뒤를 돌아보지
말라"고 했는데 며느리는 고총고개에 이르러 그만 뒤를 돌아보게 되었다.
돌아보니 이화진이 살던 집과 논밭은 모두 물에 잠겨 호수가 되어 있었다.
며느리는 애통해하다 그만 돌이 되어 버렸다.

마을 사람들은 착한 심성을 가진 며느리의 죽음을 안타깝게 여겨 
고총서낭신으로 모셨는데 이후로 농사도 잘 되고 전염병도 사라졌다고 한다.

"화진포"는 이화진의 이름 "화진"에서 유래되었다. 
지금도 청정한 날에는 화진포 한가운데에 잠겨있는 금방아 공이에서 
누런 광채가 수면에 비친다고 한다.


이승만대통령 화진포 기념관




南北統一(남북통일)이 씌여진 방패연

忠貫日月(충관일월 - 충성이 해와 달을 꿰뚫다)
智勇兼仁百戰百勝(지용겸인백전백승) 第二軍團長 丁一權(제2군단장 정일권)
雩南 李承晩 揮毫(우남 이승만 휘호)




鴨綠豆滿唾手完還(압록두만타수완환)
- 압록강과 두만강을 쉽게 완전히 탈환하자 -
丙申元旦 雩南(병신년,1956년 새해아침 우남 이승만)









화진포(花津浦)
송림(松林)과 해당화(海棠花)가 어우러진 철새도래지

고성군 거진읍 화포리와 현내면 초도리, 죽정리에 연접한 화진포는 호숫가에 해당화가 
만발해 붙여진 이름으로 둘레 16km의 동해안 최대의 자연호수이다. 넓은 갈대밭 위에
수천 마리의 철새와 고니가 날아들고 울창한 송림으로 둘러싸여 주변경관이 빼어나
예로부터 주변에 유명한 별장들이 많았던 곳으로 지금도 이승만 대통령화진포기념관 및 
별장과 이기붕 별장, 화진포의 성(김일성별장)이 역사안보전시관으로 운영되고 있다.

1970년대부터 겨울 철새이면서 천연기념물 제201호인 고니와 청둥오리 등 철새가 많이
날아와 호수일대에 장관을 이루고 있다. 초도리 앞 500m해상에는 3,300여 제곱미터의
금구도(金龜島)라 이름 붙여진 이곳은 신라시대 수군의 기지로 사용하였던 곳으로
섬의 북쪽에 석축 일부가 남아 있고 대나무 숲으로 이루어진 섬의 중심부에서 와편
(瓦片)과 주춧돌이 1997년 4월 문화재연구소 학술 조사반에 의해 발견되기도 했다. 

화진포의 아름다운 경치
화진포는 특히 모래빛이 하얗고 모나즈(monaz)성분이 많아 모래를 밟으면 감촉이 
부드럽다. 또한 개미 등 곤충류(昆蟲類)가 살지 않으며 맑은 동해의 해수가 화진포 
담수(淡水)와 교차에 해수욕장으로도 최적지이다. 호수 주위의 경치가 좋아 
죽정(竹亭), 모연(暮煙), 풍암(楓岩), 귀범(歸帆), 장평(長坪), 낙안(落雁),
가평(加平), 야종(夜鐘)을 화진팔경(花津八景)이라고 한다.





焉敎花與月 無晦又無秋(언교화여월 무회우무추) 
- 봄과 달이, 그믐되고 또 가을이 없을 수 있다면
花月長春國 人無白髮愁 春日戲題(화월장춘국 인무백발수 춘일희제)
- 영원한 꽃피고 달밝은 봄나라, 사람은 백발의 걱정 없으리라, 봄날 노래하다.


樑燕嘲翁懶(양연조옹라) - 집 제비는 게으른 늙은이를 조롱하고
庭花笑客忙(정화소객망) - 뜰앞 조롱이나 꽃의 비웃음도
燕嘲花笑裏(연조화소리) - 제비의 조롱이나 꽃의 비웃음도
各自弄春光(각자농춘광) - 각기 다 봄빛을 희롱하는 거라네 
晩春偶唫(만춘우음) - 늦은 봄 우연(偶然)히 읊음






이승만 박사 연보
1875년 황해도 평산에서 부친 이경선(李敬善)공과 
모친 김해김씨의 3남매 중 외동 아들로 태어남
1877년 서울로 이사, 염동(鹽洞), 낙동(駱洞) 그리고 도동(桃洞)으로 옮겨 살며 성장
1879년 퇴직대신 이건하(李建夏)의 낙동서원에 입학
1885-1894 양녕대군의 봉사손 이근수(李根秀)의 도동서원(燕巢亭)에서 한문학을 공부
1895-1897 배재학당 영어과 졸업
1898년 <협성회회보> <매일신문> <제국신문>을 발간하며 러시아의 이권침탈을 비판,
독립협회의 만민공동회 총대위원으로 활약하다 보부상들에게 피격




1910년 로스엔젤스에서 <독립정신>초반본 출판
1910-1912 귀국하여 서울 YMCA학감으로 교육과 계몽 활동
1912년 일제의 체포를 피해 미국으로 출국/윌슨 민주당 대통령후보를 만나 
일제의 학정을 알림
1913-1939 하와이를 근거지로 민족교육과 외교 및 홍보활동을 주관하여 
한국독립운동을 전개
1913-1917 주간지(태평양잡지), <한국교회핍박>, <청일전기>를 출간
1918년 한인기독학원과 한인기독교회를 설립/파리 평화회의에 한인대표로 선출됨
1919년 서재필과 함께 필라델피아 한인대표자대회에서 한국의 독립을 선언하다./
3.1독립운동 후 서울에서 선포된 <한성>임시정부에서 집정관총재로 추대됨/
대통령자격으로 일본과 열강에 한국의 독립정부수립을 통고하다./
워싱턴에 집정관총재부와 구미위원회를 설치하고 독립공채를 발행하다./
노령, 상해와 서울에서 선포된 세 임시정부가 하나로 통합,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임시대통령으로 선출됨


1920년 두 명의 미 상원의원을 움직여 한국독립 안을 미 의회에 상정함
상해에 가서 임시정부의 대통령직무 수행
1921년 하와이에 귀환하여 대한인동지회를 조직/워싱턴 군축회의에 한국독립을 요구
1932-1933 제네바 국제연맹회의에서 한국독립을 요구
1934년 뉴욕에서 프란체스카 도너 여사와 결혼
1939년 독립운동의 활동 근거를 워싱톤 D.C로 옮김
1941년 태평양전쟁을 예언하는 영문저서발간/
재미한족연합위원회 외교위원장직 맡음/대한민국 임시정부 주미외교위원부
위원장직 맡음/12월 태평양전쟁이 발발하자 미국정부에 임정의 대일 선전포고를
알리고, 임정의 국제승인을 요구하다.
1942년 워싱턴 D.C에서 한인자유대회를 개최/미국의 소리, 방송(VOA)을 통해 
동포에게 자유의 소식을 전하고 대일항쟁을 촉구




1950년 맥아더장군 초청으로 일본 방문/농지개혁 시작/북한군의 남침으로 
6.25전쟁이 일어남. 수원에서 맥아더장군을 만나 대책을 협의/
국군과 UN군이 북한으로 진격하자, 평양을 방문
1951년 트루먼 대통령에 휴전반대 표명/한만국경까지 진격할 것이며 
그 전에는 정전불가라고 담화

1952년 일본어선의 침범을 막기 위해 평화선 선포/대만을 방문하여 반공연대를 다짐
1953년 일본을 방문, 요시다 수상과 한일관계 개선 가능성을 협의/독도영유 재확인/
경제재건 7원칙 책정/ 미국정부에 휴전반대 입장을 통고/휴전 전에 한미상호방위 
협정을 체결할 것을 미국에 요구/반공포로 석방/경제부흥 5개년계획 발표/한미
상호방위조약 조인/한미경제협정 조인/대만을 방문하여 장개석 총통과 반공통일
전선 결성 공동설명

1954년 독도에 영토표시 설치/농어촌 전화(전화)사업 추진/베트남에 
국군파견을 제의/국제반공십자군 창설 제의/미국을 방문하고 상하원 
합동회의와 뉴욕 UN본부에서 연설, 한일회담 개최조건으로 일본의 반성을 촉구/
INS기자 질문에 대한민국은 휴전이 없다고 언명

1955년 UP기자회견에서 한국군 해외파견 용의를 표명/40개 사단 확보 필요를 역설
1956년 미국의 극동정책이 공산주의에 대한 패배와 유화정책으로 전락하였다고 비난




願與三千萬(원여삼천만) - 내 소원 삼천만이랑 함께
俱爲有國民(구의유국민) - 나라 있는 백성이 되고지고
暮年江海上(모년강해상) - 늙으막엔 시골로 돌아가
歸作一閑人(귀작일한인) - 한가한 사람으로 지내련다




오른쪽 끝이 서당 시절의 이승만, 가운데가 아버지 경선(敬善)공이다.
우남은 서당내 종합경시인 도강에서 늘 장원을 차지했다. 소년기 서당교육을 
통해 훗날 동서양 학문을 겸비한 학자이자 언론인, 시인, 서예가로서의 업적을 
두루 갖춘 탁월한 '문인' 정치가로 성장하였다.






이승만의 한성감옥생활

대한제국을 근대적 자유민주국가로 개혁할 것을 꿈꾼 청년 이승만은 고종 
폐위를 통한 혁신정부 수립기도에 가담한 혐의로 체포.수감되었다. 그는
민중공동회 운동을 재개하고자 감옥을 탈출했으나 다시 체포되어 
재수감되었다. 모진 고문과 사형을 기다리는 죽음의 공포속에서 
<신약성서>를 탐독하던 중심 기독교인으로 거듭나는 체험을 하였다. 
동료죄수들과 함께 더욱 성경곰부에 몰두하던 이승만에게 종신형이 
선고되었다.

감옥에서 이승만은 엄청난 양의 독서와 번역.저술 및 신문논설을 집필.
기고하는 한편 옥중학교와 도서실을 개설, 감옥에 수용된 아이들과 
동료 죄수들에게 신.구학문을 가르치며 바쁘게 보냈다. 러일전쟁이 
일어나자 그는 집필 중이던 우리나라 최초의 <신영한사전>을 중단하고, 
국민계몽서인 [독립정신]을 집필했다.

[독립정신]은 이승만의 세계관.국가관.시대인식을 총 정리한 대작으로, 
개화기선각자들이 펴낸 저술 중 단연 으뜸가는 저술로 꼽히고 있다.

옥중에 콜레라가 발생했을 때는 솔선하여 죽어가는 죄수를 돌보고, 
사망자들의 시신을 수습하였다. 이때 자신이 콜레라에 감염되지 
않은 것은 하나님의 은혜라 믿고, 더욱 열심히 기독교 복음을 전파하여 
월남 이상재(李商在) 등 무려 40여 명의 간수와 죄수를 기독교로 개종시켰다.














1920년 말, 이승만은 임시정부의 대통령직을 수행하고져 일제가 자신에게 
30만 달러의 현상금을 걸고 납치 및 암살을 노리는 위험한 상황에서 
임시정부 청사가 있는 상해로 몰래 여행하였다. 그는 중국인 시체를 나르는
배 밑 창고에 숨어 상해에 도착하였다.
그는 1921년 6월까지 임시 대통령직을 수행하다가 미국으로 돌아왔다.










초대 대통령 취임(Taking His Oath as First President)
1948년 7월 17일에 제헌국회 의장 이승만은 "대한민국 헌법"을 공포하였다.
그리고 이승만의장은 헌법에 따라 제헌국회에서 의원 절대다수의 지지로
대통령에 당선되어 7월24일, 초대 대통령에 취임하였다.

이승만 대통령은 취임연설을 통해 민주국가의 국민 된 책임이 중요하다는 
것과 새나라 건설을 위해 새로운 정신으로 협심 협력 할 것을 강조하였다.


대한민국의 수립과 선포(Republic of Korea Declared)
대통령에 취임한 초대 내각을 조직하고, 해방 후 만 3년이 되는 
1948년 8월 15일에 한반도 유일의 합법정부인 대한민국의 수립을 
세계에 선포하였다. 이 대통령은 기념식사에서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 그리고 국제친선을 말하며 북한과 통일을 이루지 못한 책임이 
소련에 있음을 명확히 하였다.

삼권분립으로 대통령 이승만, 부통령 이시영, 국회의장 신익희, 
대법원장 김병로 취임했다.
















교육 대통령(사진 설명)
통일에 대비하여 국군의 증강과 현대화를 위해 1953년 3월 22일 미육군 
보병학교로 유학가는 150명 장교들을 격려 환송하기 위하여 몸소 
인천항부두로 나가신 이승만 대통령 내외분과 유학생을 인솔하는 대표 
박경원 중령(1963~1969 강원도지사 역임)




진정한 한국인, 프란체스카 영부인
(First Lady Francesca Donner Rhee, a Real Korean)

가끔 지사관저 뒷마당 빨랫줄에 때국물이 덜 빠진 남방셔츠가 널려있어도 
물이 귀해 손봐줄 수가 없었다. 여기저기를 깁거나 올이 다 낡아 구멍이 
나기 직전의 빨래들이었다. 너무나 딱한 건 팬츠였다. 헤지기 직전의 
천 조각에 불과했다. 나는 노불 참사관이 갖다 준 침대시트를 침모와 함께 
밤새껏 말라 팬츠를 여러 장 만들었다. 
이 팬츠를 조 지사부인에게 주어 직원들 숙소에 갖다 놓도록 했다.
- 영부인의 6.25비망록, 1950년 8월8일 일기 중에서 -

오스트리아의 유복한 사업가의 딸인 프란체스카는 33세 때 어머니와 함께 
여행하는 도중 국제연맹회의가 열리는 제네바에서 58세의 저명한 동양인 
이승만을 만나 사랑에 빠졌다. 
날계란 하나로 때로는 사과 한 개로 식사를 대신하며 평생을 
조국독립을 위해 동분서주하는 가난한 독립운동가의 아내가 되었다.

독어.영어.불어와 속기.타자에 능숙했던 프란체스카는 이승만 박사의 비서로, 
독립운동 동지로 그리고 아내의 일인삼역을 훌륭히 감당했다. 하야 후 
하와이 체류기간에는 남편의 병상을 지킨 어느 한국 여인처럼 헌신적인 아내였다.

이승만 박사의 별세 후, 
5년간 오스트리아에 머물다 영구 귀국한 프란체스카 여사는 틀니를 하기 위해 
3천 달러를 가지고 왔다. 기술이 더 좋은 외국에서 틀니를 하고 오시지 않았느냐는 
며느리 조혜자씨의 물음에 "너희 아버님이 독립운동 할 때는 1달러도 
아까워하셨는데 어떻게 몇 천달러를 외국에서 쓰느냐"고 되묻는 프란체스카 여사.

그녀는 자신이 죽으면 남편이 독립운동 할 때 사용했던 태극기와 성경책을 
관에 넣고 관뚜껑에는 남편의 친필휘호인 '남북통일'을 덮으라고 했다. 
통일이 될 때까지는 우리가 독립된 것이 아니니까 절약하는 생활을 해야 
한다며, 자신이 가난한 독립운동가의 아내였다는 사실을 늘 자랑스러워하던 
프란체스카 여사.

이 박사 말년의 외로움과 마음의 고통 속에서도 자신들을 미워하던 사람들을 
향해 용서를 몸소 실천했던 그녀는 진정한 한국인이었다. 
그녀는 항상 
"용서하라! 잊어버리라! Forgive and Forget!" 라고 말하였다.






이승만, 위대한 생애의 마감(Farewell To A Great Man, Syngman Rhee)
1920년 일본이 현상 수배 중임에도 임시대통령으로서 상해를 방문하려는 
친구 이승만에게 밀항을 주선해 주었던 보스윅 씨, 
관 앞에 다가선 그는 고인의 얼굴을 덮은 베일을 젖히고 
이승만의 이미를 짚고는 울부짖었다.

"I Know you! I Know you! 내가 자네를 안다네! 
내가 자네를 알아! 자네가 얼마나 조국을 사랑하고 있는지, 
자네가 얼마나 억울한지를 내가 잘 안다네! 친구여!
그것 때문에 자네가 얼마나 고생을 해왔는지, 바로 그 애국심 때문에 
자네가 그토록 비난받고 살아온 것을 내가 잘 안다네! 
네 소중한 친구여..."
- 이승만 하와이 영결식에서

해방 후 70 노구를 이끌고 좌우 이념으로 갈라진 민심을 "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는 구호로 단결시키며, 
한반도 공산화 음모인 신탁통치와 좌우합작을 극복한 건국 위업,
외세를 등에 업은 북한의 6.25남침을 막아내어 자유를 수호하고, 
전쟁으로 파괴된 국토재건에 온 힘을 다했던 이승만 박사는 
하와이 체류 중 벌써 90을 바라보며 심신은 지칠대로 지쳐 있었다.

1962년 3월 17일, 평생을 바쳐 사랑한 이 민족과 강토를 다시 보는 것이 
소원이었던 이승만 박사는 더 있으면 비행기 여행이 불가능하다는 
의사의 권고를 따라 귀국길에 나섰다. 그러나 당일 아침 총영사가 찾아와 
정부의 귀국만류 의사를 전하자, 충격을 받은 이 박사는 
그날 이후로 휠체어에서 두 번 다시 일어설 수가 없게 되었다.

1965년 7월 19일 0시 35분
프란체스카 여사와 아들 이인수씨가 지켜보는 가운데 이 박사는 
하와이의 마우나라니 요양병원에서 숨을 거두었다. 향년 만 90세, 
봉건시대인 조선조 말에 태어나 자유롭고 근대화된 대한민국을 
건국하고 지켜낸 거목 이승만, 구한말에는 개혁가, 일제하에서는 독립운동가, 
해방 후에는 자유와 민주의 투사였던 건국 대통령 이승만은 이 땅에
거대한 발자취를 남기고 위대한 생을 마감했다.


















배재학당 졸업장


조지워싱톤대학 학사학위 졸업장


하바드대학 석사학위 졸업장


프린스턴대학 박사학위 졸업장(Syngman Rhee, Philosophier Doctoris)


이화장(梨花莊)
서울특별시 종로구 이화동 1번지, 서울특별시 기념물 제6호

이화장은 
대한민국 건국대통령 우남 이승만(雩南 李承晩, 1875~1965)박사와 영부인
프란체스카여사의 사저이다. 1919년 3.1운동 후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초대 대통령으로 한국독립운동에 헌신한 이박사는 1945년 해방된 조국에 
돌아와 돈암장과 마포장에 기거하다가 1947년 10월에 이 집에 정착하였다.

이곳에서 이 박사는 
평생을 바쳐 일해온 "나라 세우기"의 대업을 마무리 하였다.
제헌국회를 소집하기 위해 5.10선거를 치루었고, 우리나라 최초의 
민주헌법을 제정공포 하였으며 초대 대통령에 선임되어 취임과 동시에 
초대 내각을 조직하여 정부를 수립선포하였다.

대통령이 되어 경무대(지금의 청와대)에서 생활을 하게된 이박사는 
가끔 이 집에 들러 정원과 뒷산길을 산책하였다. 조각당(組閣堂) 건물은 
대한민국 최초의 내각이 구성된 유서 깊은 장소이며 1987년 7월17일 제헌절에 
제헌의원들이 이대통령의 친필을 집자한 조각당의 현판을 달았다.

전통 한옥인 본체 건물에는 
이대통령과 영부인의 검소한 생활모습을 보여주는 유품이 남아있다.


桃園故舊散如烟(도원고구산여연) - 도원 옛친구들 서로 연기처럼 흩어져
奔走風塵五十年(분주풍진오십년) - 오십년 풍진속을 돌아 다니다
白首歸來桑海變(백수귀래상해변) - 흰머리로 돌아오매 모두 변하고
東風揮淚古祠前(동풍휘루고사전) - 사당앞 봄바람에 눈물만 짓소

丙戌春訪桃渚洞舊居(병술춘방도저동구거) - 1946년 봄, 도저동 옛집를 찾아서

一身泛泛水天間(일신범범수천간) - 물따라 하늘따라 떠도는 이몸
萬里大洋幾往還(만리대양기왕환) - 만릿길 태평양을 몇번 오간고
到處尋常形勝地(도처심상형승지) - 어느곳 가서든지 보잘것 없고
夢魂長在漢南山(몽혼장재한남산) - 꿈속에도 내나라 한남산에 있네

乙亥暮秋在太平洋舟中作(을해모추재태평양주중작)
- 을해년 1935년 늦가을 태평양 배애서 지음


父主前 上書(부주전 상서)
1905년 12월 30일자로 미국에서 한국에 계신 아버지께 올린 편지




대한민국 건국대통령 흉상
우남 이승만박사(雩南 李承晩博士, 1875~1965)
















화진포 거북섬(금구도金龜島)






두 밤을 잘 보낸 콘도를 나오는 인상적인 숲길을 빠져 나오며 여행을 잘 보낸 
후련함이 온 몸을 감돈다. 건강이 받쳐주기에 이 모든 행복을 누림이다.
그래서 항상 감사의 마음을 놓지 않는다.


토왕성폭포전망대에서 담은 반듯하고 정갈한 다람쥐도 생각난다.




화진포의 성에서 오르는 응봉 1.2km 거리를 절반거리인 600m까지 오르다
시간 촉박과 서울까지 라이드에 지장 받을까봐 발길을 아쉽게 돌려야했다.
여름날 해수욕을 즐기려 오면 그땐 응봉까지 오르리라! 다짐한다.

고성 화진포의 성, 이승만 별장, 초도항을 끝으로 2박3일간 
고성군, 속초시 설악산 여행기를 모두 마칩니다.

감사합니다.


찬란한 빛/김영희
추천0

댓글목록

아름다운Life님의 댓글

profile_image 아름다운Life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우리초등학교~다닐때 초대 대통령~이승만~새롭습니다
그리고 해파랑길 걸을때 추억도 ~~아련히  즐감합니다
아름다운 발길 되십시요~~^^*

찬란한빛e님의 댓글의 댓글

profile_image 찬란한빛e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아름다운님 댕겨가심을 감사드립니다.
이제서야 마주하며 반갑게 뵙습니다.
더운 여름 건강히 잘 보내시고 늘 행복하세요.

Total 722건 1 페이지
여행정보/여행기 목록
번호 제목 글쓴이 조회 추천 날짜
722 찬란한빛e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91 1 03-14
721 찬란한빛e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11 1 03-12
720 찬란한빛e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35 1 02-28
719 찬란한빛e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54 1 02-19
718 찬란한빛e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20 1 02-17
717 찬란한빛e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17 1 02-15
716 찬란한빛e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44 1 02-14
715 찬란한빛e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20 1 02-11
714 찬란한빛e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20 1 02-08
713 찬란한빛e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41 1 02-06
712 찬란한빛e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86 1 01-21
711 찬란한빛e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84 1 01-18
710 찬란한빛e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00 1 01-02
709 찬란한빛e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85 1 12-29
708 찬란한빛e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00 1 12-24
707 찬란한빛e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91 1 12-22
706 찬란한빛e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60 1 12-18
705 찬란한빛e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90 1 12-16
704 찬란한빛e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06 1 12-14
703 찬란한빛e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72 1 12-10
702 찬란한빛e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77 1 12-07
701 찬란한빛e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06 1 12-05
700 찬란한빛e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81 1 12-03
699 찬란한빛e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22 1 11-29
698 찬란한빛e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74 1 11-24
697 찬란한빛e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88 1 11-19
696 찬란한빛e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77 1 11-19
695 찬란한빛e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64 1 11-17
694 찬란한빛e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29 1 11-12
693 찬란한빛e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87 1 11-11
692 찬란한빛e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65 1 11-10
691 찬란한빛e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86 1 11-08
690 찬란한빛e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07 1 11-07
689 찬란한빛e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60 1 11-05
688 찬란한빛e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70 1 11-04
687 찬란한빛e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84 1 11-03
686 찬란한빛e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07 1 11-02
685 찬란한빛e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50 1 11-01
684 찬란한빛e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92 1 10-29
683 찬란한빛e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66 1 10-28
682 찬란한빛e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22 1 10-27
681 찬란한빛e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10 1 10-25
680 찬란한빛e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96 1 10-25
679 찬란한빛e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64 1 10-23
678 찬란한빛e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64 1 10-22
677 찬란한빛e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61 1 10-20
676 찬란한빛e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64 1 10-19
675 찬란한빛e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71 1 10-18
674 찬란한빛e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82 1 10-15
673 찬란한빛e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29 1 10-13
게시물 검색

  • 시와 그리움이 있는 마을
  • (07328) 서울시 영등포구 여의나루로 60 여의도우체국 사서함 645호
  • 관리자이메일 feelpoem@gmail.com
Copyright by FEELPOEM 2001.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