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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월夏風을 타고 경북성주 기행2-회연서원과 가야산 포천구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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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찬란한빛e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791회 작성일 20-07-14 1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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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성주 가지산 포천구곡 만귀정 계곡에서..2020.7.3.금


칠월夏風을 타고 경북 성주에 내려앉다
2020년 7.2.목-7.4.토(2박3일)



2편
경북 성주 회연서원과 봉비암, 그리고 가야산 포천구곡
2020.7.2.목~7.3.금

회연서원(경상북도 지정 유형문화재 제51호)은
조선 선조 때의 문신이며 학자인 한강(寒岡) 정구(鄭逑.1543-1620)선생이 
선조16년(1583)에 회연초당(檜淵草堂)을 세워 인재를 양성하던 곳으로, 
인조5년(1627)에 선생의 높은 뜻과 학덕을 추모하기 위해 문인과 유학자들이 
초당을 헐고 건립한 서원으로 숙종16년(1690)에 회연서원으로 사액받았다.
경북 성주군 수륜면 신정리 258번지에 위치한다.

여행 첫날 회연서원까지 둘러보고 가야산은 이튿날 아침 무흘구곡을 찾아 가는 
도중에 도로옆 안내판을 보고 포천구곡을 먼저 들게 되었다.

회연서원 정문에 무흘구곡 아홉개 시편들이 전시되어 서원을 먼저 둘러 보고 
뒷편 절벽의 데크따라 오른 무흘구곡 제1경인 봉비암을  둘러본 후
정문앞 무흘구곡 시편들을 감상하는 시간으로 첫날을 마무리 하였다.
무흘구곡 현장은 3편에 둔다,

회연서원을 품에 안고 있는 연감산(硯坎山)의 조그마한 산봉우리가 봉비암(鳳飛岩)이다.
한강 선생이 지으신 무흘구곡(武屹九曲)의 제1곡이다.
회연서원 뒤편의 깍아지른 듯한 기암절벽 봉비암 숲속에는 아름다운 새들이 날아들며, 
절벽 아래에는 수정같이 맑은 대가천 물이 푸른 소(沼-檜淵)를  이루어 휘돌아 흐른다.

한강 선생은 깍아지른 듯한 높다란 절벽과 양정소의 맑은 물이 조화를 이루고 있는 
봉비암을 소재로 석양에 낚싯배를 띄우고 무심히 노니는 연하지경(煙霞之景)을 노래하였다.

첫 구비는 여울목에 낚싯배 띄우니,
실 같은 바람이 해 저무는 냇가에 돌고 돌도다.
뉘 알리오, 인간세상의 생각이랑 다 버리고,
박달나무 삿대 잡고 저문 연기 휘저울 줄을.
 









見道樓 (현도루 - 도를 밝히고 드러내는 누각)





회연서원(檜淵書院)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51호, 성주군 수륜면 동강한강로 9

회연서원은 조선 선조 때의 유학자이며 문신인 한강(寒岡) 정구(鄭逑, 1543~1620)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고, 지방민의 유학교육을 위하여 그의 사후인 1627년(인조 5)
제자들이 뜻을 모아 세운 서원이다.

서원이 위치하고 있는 곳은 1583년(선조 16) 정구가 회연초당(檜淵草堂)을 세우고
인재를 양성하던 곳이다. 1690년(숙종 16) 현판. 서적. 토지. 노비 등을 하사받아
국가로부터 서원으로서 권위를 인정받은 사액서원(賜額書院)이 되었다.
1868년(고종 5) 서원 훼철령에 따라 훼철되었다가 1970년대에 복원하였으며,
매년 음력 2월과 8월에 향사를 지내고 있다.

서원의 주향(主享)인 한강 정구는 외증조 한훤당(寒暄堂) 김굉필(金宏弼, 1454~1504)의
도학을 전수하고, 그 기반 위에 퇴계학과 남명학을 통합하여 새로운 학통을 세워
실학의 연원을 확립하였으며, 우주 공간의 모든 것을 연구대상으로 삼아 경서, 병학,
의학, 역사, 천문, 풍수지리 등 모든 학문에 관심을 가졌다. 특히 예학에 많은 관심을
기울인 대학자였다.

그는 평소 관직에 뜻을 두지 않았으나, 국가의 부름을 거절하지 못하여 부득이 관직에
나올 경우에는 주로 외직을 맡아 선정을 베풀었으며, 내직으로 우승지(右承旨),
공조참판, 대사헌(大司憲) 등을 역임하였다. 사후에 문목(文穆)의 시호(諡號)가 내리고
영의정에 추증되었다.

경내의 건물로는 구(舊) 사당, 강당, 동.서재, 신(新) 사당, 전사청(典祀廳), 
현도루(見道樓) 등이 있으며, 정구가 직접 조성한 서원 앞뜰의 백매원(百梅園)에는
신도비(神道碑)가 서 있다. 그 밖에 한강 정구와 관련된 유물.유품이 전시되어 있는
유물전시관과 향현사(鄕賢祠), 관리사가 있다.

사당에는 한강 정구를 주향(主享), 석담(石潭) 이윤우(李潤雨)를 종향(從享)으로
모시고 있으며, 향현사에는 신연(新淵) 송사이(宋師頤), 용재(容齋) 이홍기(李弘器), 
육일헌(六一軒) 이홍량(李弘量), 모재(茅齋) 이홍우(李弘宇), 동호(東湖) 이서(李竹+舒) 등
한강 정구와 동년배로서 지역민들의 존경을 받았던 인물들의 위판(位版)이 봉안되어 있다.






鄕賢祠 三門(향현사 삼문)


鄕賢祠(향현사)
신연 송사이(新淵 宋師頤), 용재 이홍기(容齋 李弘器), 육일헌 이홍량(六一軒 李弘量), 
모재 이홍우(茅齋 李弘宇), 동호 이서(東湖 李竹+舒) 등 한강 정구와 동년배로서 
지역민들의 존경을 받았던 인물들의 위판(位版)이 봉안되어 있다.




느티나무, 수령 약 400년, 1982년 10.26일 보호수 지정


이곳은 서원입니다.
고성방가 음주행위등을 삼가해 주시고 조용히 다녀가시길 부탁합니다.
서원관리자




회연서원은 한강 정구선생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고 지방민의 유학교육을
위하여 그의 사후인 인조 5년(1727) 제자들이 뜻을 모아 세운 사원이다.

한강은 수확기, 출사기, 은퇴기를 거치는 가운데 퇴계와 남명을 스승으로 모시면서
외직을 통해 자신의 정치적 이상을 실현하고자 했다. 그리고 많은 서적을 저술.
출판하고 340여 명이나 되는 제자를 양성함으로써 조선에 참신한 학풍을 조성하고자 했다. 


檜淵書院(회연서원)의 대강당, 景晦堂(경회당)


明義齋(명의재, 동재)


持敬齋(지경재, 서재)














석류나무에 세 쌍둥 석류가 아기자기 예쁘고 정겹다.


內三門(내삼문)과 祠堂(사당)


실한 석류 하나 달랑 매달려 있다.




회연서원 뒤편의 깍아지른 듯한 기암절벽 봉비암 절벽 아래에는 
수정같이 맑은 대가천 물이 푸른 소(沼-檜淵)를  이루어 휘돌아 흐른다.














봉비암 바위 뒤쪽으로 적힌 문구 
원래 미수 허목이 1681년 (숙종7)에 전서체로 쓴 석각이었으나,
오랜세월 동안 비바람에 깨어진 것을 무흘구곡 경관가도 조성사업의
일환으로 복원하게 되었다. 2016.6. 성주군


봉비암


文穆公寒岡鄭先生神道碑銘(문목공한강정선생신도비명) -篆書(전서)-

한강 정구 신도비(寒岡鄭逑神道碑)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412호, 성주군 수륜면 동강한강로 9

[한강 정구 신도비]는 조선중기 대표적 성리학자의 한 사람인 한강 정구
(寒岡 鄭逑, 1543~1620)의 신도비(神道碑)이다. 비석은 1633년(인조 11)
청주정씨 집성촌인 수성리 갓말마을 뒤 창평산에 조성된 한강 정구 묘소
부근에 세워졌다가 분묘를 성주읍 금산리의 인현산으로 이장하게 되면서
1668년(현종 3) 현재 위치인 회연서원(유형문화재 제51호) 경내로 옮겨 세워졌다.

신도비는 비신(碑身), 이수(螭首), 귀부(龜趺)가 완전하게 잘 남아 있다. 
이수에는 쌍룡문(雙龍文)과 여의두문(如意頭文)이 깊이 새겨져 있고,
귀부는 귀갑문(龜甲文)이 양각으로 얕게 새겨져있다. 신도비의 전체 높이는
390cm이며, 비신의 높이 230cm, 정면 폭은 106cm, 두께는 29.5cm이다.

비신의 전면 상단에 전서(篆書)로 '문목공한강정선생신도비명
(文穆公寒岡鄭先生神道碑銘)' 이라 새겼는데, 글자의 크기는 가로 6cm, 세로 9cm이다.
비신의 4면에 걸쳐 가로 2cm, 세로 2.2cm 크기의 글자로 비문이 새겨져 있다.
비문은 상촌(象村) 신흠(申欽, 1566~1628)이 지었고, 글씨는 동명(東溟) 김세렴
(金世濂)이, 전서(篆書)는 수북(水北) 김광현(金光炫)이 썼다.

[한강 정구 신도비]는 조성연대 등에서 신도비 자체가 가지는 문화재적 가치가
높을 뿐만 아니라 조선 성리학사에서 확고한 위상을 가지고 있는 비석의 주인공인
한강 정구의 역사적 위상을 보여주는 문화유산이라 할 수 있다.






숭모각(崇慕閣, 유물전시관) - 문이 굳게 닫혀 들어갈 수 없었다,


글쎄 후투티 새가 날아와 담 위로 앉더니 바로 후룩~ 날아가 버렸다.
순간포착으로 요렇게나마 담으니 기뻤다.

후투티새는 인디언 추장의 머리 장식과 비슷해서 '추장새'라고 하고
오디가 익어갈 즈음 뽕나무에 앉아 해충을 잡아먹는 새라하여 
'오디새'라고도 불린다. 
풀밭의 애벌레들을 주로 잡아먹는다. 

파랑새목 후투티과에 속하는 새로 
북유럽과 아프리카 남부, 아시아의 남동부에 분포하는 새로서 
몸길이가 28cm정도이고, 머리와 어깨는 분홍빛이 도는 갈색이며 
길고 끝에 검정색 점이 있으며 머리에는 관우가 있다. 

아래로 길게 휜 부리를 사용하여 곤충류와 소형 무척추동물을 잡아먹는다.
특히 후투티새는 2008년 5월 29일 이스라엘을 대표하는 국조로 뽑혔다고 한다. 
*옮김


회원서원 정문앞에 전시된 무흘구곡 시편들.




무흘구곡圖와 구곡시
조시대 구곡문화는 유학을 바탕으로 하여 자연, 문화, 예술이 
조화롭게 혼합되어 빚어진 조선조 '유학의 꽃' 이요 진수라 할 수 있다.
다라서 온전한 구곡문화와 향유는 구곡원림과 구곡시, 구곡도를 모두
갖추는 것으로 완성된다. 

제1곡 봉비암으로부터 시작되는 무흘구곡은 한강(寒岡) 정구(鄭逑)가 은거했던 
무흘정사(武屹精舍)를 중심으로 대가천에 설정된 구곡원림으로 
1784년 영재(嶺齋) 김상진(金尙眞)이 구곡도를 그리는 것으로 온전하게 틀을 잡게 되었다.

구곡도는 모두 10폭으로 되어 있으며, 각 굽이의 그림마다
무흘구곡시의 하나인 경헌(警軒) 정동박(鄭東璞)이 지은 구곡시가 상단에 적혀 있다.








































회연서원 관람을 마치고 
무흘구곡으로 이동중 포천구곡 안내표지가 있어 포천구곡부터 둘러보기로 한다.















포천구곡(布川九曲)

포천계곡의 포천구곡은 경북 성주군 가천면 법전1리(웃범림 부락)법전2리
아전촌(牙田村)방향 법림교(法林橋)에서 시작되어 가천면 신계리 갈골 부락입구
만귀정(晩歸亭 洪開洞)까지 약 7km 걸쳐 가야산 옥계계곡 상류에 이른다.

조선 후기 응와(凝窩) 이원조(李源祚)가 만귀정을 짓고 후학을 양성한 옥계계곡의
여러풍경을 노래한 포천구곡이란 시를 지으면서 포천계곡이란 명칭으로 불리어
진 것으로 추정된다. 성주의 옛모습을 기록한 경산지(京山志)를 보면 산천조(山川條)에
옥계의 근원이 가야산 북쪽에서 나오며 동으로 십여리를 흘러 가천과 합친다고 나와
있어 옥계계곡.포천구곡이라 칭함이 옛 기록에 의한 근거이다. 이원조는 비록 벼슬길에 
올랐으나 자신의 본령은 학문에 있음을 늘 자각하고 있었다.

그래서 언젠가 자신이 좋아하는 자연으로 돌아가 학문과 더불어 생을 마감할 생각을 
잊지 않았다. 그랬던 그는 오랜 준비 기간을 거쳐 철종(哲宗) 2년(1851) 마침내 가야산
북쪽 초천계곡 상류에 만귀정을 짓고 은거했다. 

이원조는 이렇게 남들이 맛보지 못한 것을 맛본 포천에 주자(朱子)를 사모하는 마음으로 
포천구곡을 설정하고 경영했다. 그가 설정한 구곡의 명칭은 1곡 법림교(法林橋), 2곡
조연(槽淵), 3곡 구로동(九老洞), 4곡 포천(布川) , 5곡 당폭(堂瀑), 6곡 사연(沙淵),
7곡 석탑동(石塔洞), 8곡 반선대(盤旋臺), 9곡 홍개동(洪開洞)이다.




































조선 후기 문신인 선비 응와 이원조(凝窩 李源祚)선생이 만년을 보낸, 
포천구곡 제9곡 홍개동(洪開洞)에 지은 정자, '萬山一瀑樓(만산일폭루)'

"일만 산의 물이 하나의 폭포로 내려온다"는 뜻으로 보인다.


















만귀정(晩歸亭)

* 만귀정 현판에 걸린 詩 - 응와 이원조

牙田次狹竹村深 (아전차협 죽촌심) - 아령산 외지고 좁은 터 대숲 마을 깊은 곳에
葛谷前溪晩心 (갈곡전계만심) - 갈곡의 시내가 앞으로 흘러 만년에야 마음에 쾌한 곳 얻었다네.
雙瀑分流三面石 (쌍폭분류삼면석) - 삼면의 암석 간에 쌍폭포 나뉘어 흐르고
四山環罐一邱林 (사산환관일구림) - 사방이 산으로 빙 두른 곳에 하나의 작은 산 숲을 끼고 있네.
某言秘千年久(모언비천년구) - 하늘이 천년의 긴 세월동안 아끼고 비장해 둔 곳이라고 말하지 말게
自是經營十戰今 (자시경영십전금) - 예부터 지금껏 십년을 경영하여 얻은 곳이라네.
好去金剛遊債了(호거금강유채료) - 반드시 금강산에 가서 놀고 싶은 빚은 다 풀었고
歸來閑臥水雲 (귀래한와수운) - 이제는 돌아와 흐르는 물 떠가는 구름가에 한가로이 누웠다네.




만귀정 아래 살림채










故判書凝窩李先生興學倡善碑(고판서응와이선생흥학창선비)
- 옛 판서 응와 이원조선생께서 학문과 선행을 일으켰음을 기념하는 철비(鐵碑)

學貫天人 業著家邦(학관천인 업저가방) 
- 학문은 천인을 관통했으며 업적은 집과 나라에 드러내셨다
晩節藏修 寓樂仁智(만절장수 우락인지) 
- 늦게 절개를 지키고 수양을 감추어서 어짐과 지혜를 즐기셨다
刱我儒禊 牖我峽俗(창아유계 유아협속) 
- 우리의 계사(禊事-不淨을 씻기 위한 행사)를 만들어주시고
우리의 협속을 인도하여 주시었고
高行景行 百世仰德(고행경행 백세앙덕)
- 높고 밝은 행위는 백세에 그 덕을 우러러 봅니다







만귀정(晩歸亭)
만귀정은 응와 이원조(李源祚,1792~1871)선생이 1851년에 이 곳 포천구곡의 끝자락에 
건립하였다. 선생께서는 평소 자신의 학문과 후학 양성에 정진코자 하였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시다가 만년에 본 정자를 건립하여 만귀정이라 이름하니 늦게야 학문으로 돌아왔음을
뜻함이다. 

특히 만산일폭루(萬山一瀑樓)는 자연과의 융합속에서 참다운 인격과 학문이 이루어진다는 
선생 염원의 결정체이며 정자 입구의 흥학비(興學碑)는 선생이 돌아가신 뒤 선생의 학문과 
인품을 기리고자 후학들이 쇠로 만들어 세운 것이다.
이 곳은 유학(儒學)의 도통(道統)이 전하여진 유서깊은 곳이다.

관동암(冠童巖), 호어기(濠魚磯), 분함폭(分含瀑), 세심지(洗心池) 등 곳곳에 선생의
오롯한 자취가 완연하다.


































포천구곡에서 바라본 드넓은 벼농사, 풍년을 바라보며...


이로써 경북 성주 회연서원과 무흘구곡 2편을 마치며 
독용산성(禿用山城)으로 이어지겠습니다.



찬란한 빛/김영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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