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차를 이용한 2일간의 대전기행2-우암사적공원ㆍ보문산공원 > 여행정보/여행기

본문 바로가기
사이트 내 전체검색
시마을 Youtube Channel

여행정보/여행기

  • HOME
  • 지혜의 향기
  • 여행정보/여행기

  ☞ 舊. 여행지안내

     

여행정보 및 여행기를 올리는 공간입니다

기차를 이용한 2일간의 대전기행2-우암사적공원ㆍ보문산공원

페이지 정보

작성자 profile_image 찬란한은빛소녀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2건 조회 2,969회 작성일 16-01-06 09:16

본문

▲대전우암사적공원 '남간정사'전경..2015.5.31.일
▲시마을 전문영상시방 'eclin' 영상작가님 作 "이 강산 수묵화" 기차를 이용한 2일간의 대전기행 1편:장태산휴양림➡동춘당 2편:우암사적공원(남간정사)➡보문산공원(송학사ㆍ고척사) 3편:효문화마을➡뿌리공원 길따라 풍경찾아 부부행복 旅行 2015.5.31.일-6.1.월(1박2일) 2편 우암사적공원(송시열)ㆍ보문산공원에서 힐링의 시간을 보내다 우암사적공원:대전동구 가양2동 보문산공원:대전 중구 보문산공원로 446 (대사동) 첫날 두번째 일정인 동춘당 관람을 마치고 세번째 일정인 우암송시열 사적공원으로 가기 위해 길 건너 반대쪽 버스승강장에서 311번을 타고 7정거장 가면 길옆에 위치해 있다. 동춘당➡송촌고등학교➡금성백조아파트➡가양비래공원 ➡명석고등학교 ➡한국폴리텍대학➡대전보건대학 ➡우암사적 반석-지족-노은-월드컵경기장-현충원-구암-유성온천-갑천-월평-갈마 -정부청사-시청-탄방-용문-오룡-서대전네거리-중구청-중앙로-대전역 -대동-신흥-판암(총 22개역) 도시철도를 이용해서 오는 방법은 대동역 7번출구로 나오면 바로 버스정류장이 있는데 이곳에서 311번 버스를 타시고 우암사적공원에서 내리시면 편리하게 이용할수 있다. 대전역,중앙로역,서대전역 네거리에서도 승차할 수 있다. 우암사적공원은 조선 후기 대유학자인 우암 송시열(1607~1689) 선생이 학문을 닦던 곳으로 1991년부터 1997년까지 1만 6천여 평에 장판각, 유물관, 서원 등의 건물을 재현해 1998년 4월 17일 사적공원으로 새롭게 탄생했다. 이곳은 선생이 말년에 제자를 가르치고 학문에 정진하던 남간정사, 건축미가 뛰어난 기국정, 송시열 문집인 송자대전판 등 역사적으로 중요한 문화재가 보전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공원 곳곳이 잘 단장되어 있어 도심 속 시민들의 쉼터로도 제격이다. 사적공원 안으로 들어서면 맨 먼저 왼쪽으로 대전시 유형문화재 제4호로 지정되어 있는 남간정사와 기국정 건물이 자리하고 있다. 남간정사를 살펴보고 나와 좀 더 위쪽으로 올라가면 우암선생의 유물과 일생을 살펴볼 수 있는 유물관이 있고, 유물관 앞 홍살문 사이로 멀리 명정문(明正門)이 보인다. 조선시대 서원의 형태를 재현해 놓은 곳이다. 서원 안으로 들어서면 우측에는 모든 괴로움을 참아야 한다는 뜻의 인함각(忍含閣), 좌측에는 모든 일을 명확하게 하고 마음을 맑게 하라는 뜻을 담은 명숙각(明淑閣), 정면에는 마음을 곧게 쓰라는 뜻의 강당인 이직당(以直堂)이 자리를 하고 있다. 그 뒤로 매사 심사숙고하여 결정하라는 뜻의 심결재(審決齋)와 선현의 가르침을 굳게 지키라는 견뢰재(堅牢齋)가 있으며, 가장 높은 곳에 새로 옮겨 지은 남간사가 자리잡고 있다. 다시 명정문을 나와 우측으로 돌아가면 연못과 덕포루(德布樓)가 한 폭의 그림같이 펼쳐진다. 덕포루와 더불어 고즈넉한 연못이 운치를 한층 더한다. 감탄사가 절로 나오는 근사한 풍광에 다시 한번 마음의 경계가 풀린다. 한편 사적공원 내에는 봄, 가을 우암 선생의 제향 봉행이 이루어지고 있다. 조선 후기 이 땅에 유교사상을 꽃피운 우암 송시열 선생의 뜻을 기리고 보존하기 위해 조성된 우암사적공원. 대학자 우암의 숨결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네이버지백과 정문으로 들어서면 남간정사가 바로 좌측에 위치해 있었다. 남간정사 공원의 왼쪽 편에 있는 남간정사이다. 앞쪽에 연못 위로 솟아오른 바위와 거대한 고목나무가 변함없는 오랜 세월을 이야기하듯 제 자리를 지키고 있다. ‘남간’은 주자의 시구 ‘운곡남간’에서 따온 것으로 ‘볕바른 곳에 졸졸 흘러가는 개울’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이 점에서 일생을 주자학 연구에 몰두한 우암의 주자에 대한 사랑을 엿볼 수 있다. 우암은 제자들을 가르치기 위해 소제(현 소제동)에 살면서 흥농촌에 서재를 세워 ‘능인암’이라 하였고 그 아래에 남간정사를 세웠다. 뒷산 샘으로부터 내려오는 물이 건물의 대청 밑을 통해 연못으로 흘러가도록 만든 남간정사는 그 내관이 더없이 아름다운 독특한 양식으로 우리나라 건축조경사에 큰 영향을 주었다. 오른쪽을 바라보니 패랭이꽃이 우릴 보고 방실대며 반기지 않은가 패랭이 꽃은 석죽이라고도 부른다. 옛날 중국에 힘이 센 장사가 있었는데, 그는 인근 마을에 밤마다 사람들을 괴롭히는 석령(石靈)이 있다는 말을 듣고 산으로 올라갔다. 그는 화살을 겨누어 그 돌을 향해 힘껏 쏘았는데 너무나 세게 쏘아 화살이 바위에 깊숙이 박혀서 빠지지가 않았다. 그 후, 그 돌에서 대나무처럼 마디가 있는 고운 꽃이 피었는데 사람들은 바위에서 핀 대나무를 닮은 꽃이라 하여 ‘석죽’이라 불렀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도 옛날에 서민들이 쓰던 패랭이 모자를 닮았다고 하여 패랭이꽃으로 불렀다고 한다.(꽃말: 순결한 사랑, 재능, 거절) 음, 양의 조화를 이룬 집 봉산에서 흘러내리는 계천가에 있는 남간정사는 숙종 9년(1683년)에 세워졌고, 정조 때 한 차례의 중건과 이후 여러 번의 중수를 거쳐 현재에 이르고 있다. 이곳에서 우암은 기호학파의 유림들과 제자들에게 주자학을 강론했으며, 병자호란 때의 치욕을 씻기 위한 북벌책의 산실이 되기도 했다. 우암은 성리학과 예학의 대가로 당대에 그 학문을 따를 자가 없었으나 성격이 올곧고 지극히 자연주의자였다고 전해진다. ‘기국정사실기(紀菊亭事實記)’에 따르면, 우암은 자신의 성격과는 상반된 버드나무의 유연함을 좋아했고, 국화와 연꽃의 향기를 가까이 했다고 한다. 이 같은 우암의 자연관은 남간정사에서도 그대로 묻어난다. 남간정사앞 연지로 흘러드는 도랑물이 아기자기 정겹다. 남간정사의 특징은 물 위에 집을 지은 점이다. 물에 접한 주추(기둥 밑에 괴는 돌 따위의 물건)의 높이가 제각기 다른데 이는 물의 수량을 고려하여 그 높이를 각기 달리했다. 양을 뜻하는 ‘물’과 음을 뜻하는 ‘땅’을 모두 받아들이기 위한 우암의 마음을 담은 집이다. 자연을 벗 삼다 앞쪽에서 바라보면 마치 허공에 떠 있는 듯하다. 작은 폭포 옆과 연못 한복판의 섬에는 수백 년 묵은 왕버들이 이리저리 몸을 비틀고 아름다운 자연의 소리를 내고 있다. 메마른 땅을 뚫고 솟아오르는 새싹들과 꽃망울을 터트린 자연의 생명력, 그리고 시간에 순응하며 허리를 굽히는 고목들의 위엄함이 이상하리만치 잘 어우러지는 곳. 그곳을 바라보고 있으니 마치 선비들의 글 읽는 소리가 저만치서 들려오는 것 같다. 졸졸 흐르는 계곡 물과 생명이 움트는 흙이 만나는 숲속의 별장, 남간정사. 수많은 후학들이 이곳에서 자연을 벗 삼아 학문에 정진했을 터이다. 나라를 바로 세우기 위한 조선의 인재들 또한 이곳에서 배출되었으리라. 남간정사에 깃든 우암의 정신과 그 후손들의 혼이 수백 년이 지난 지금에도 자연과 하나 되어 후손들의 마음을 흔들고 있다. *글쟁이 바키 블로그에서 글 옮김 남간정사의 현판 송시열이 谷雲 김수증(金壽增, 1624~1701)에게 부탁하여 김수증이 쓴 현판이다. 뒷면에 "崇禎紀元後丁卯 五月 日"(1687년,숙종 13년 5월 일)이란 陰刻이 있다 남간정사의 주련 危石下崢嶸(위석하쟁영)-위태로운 돌이 높고 가파른 산에서 굴러 내려온다 高林上蒼翠(고림상창취)-높은 수풀이 청록색을 뛰우고 높이 올라가고 中有橫飛泉(중유횡비천)-가운데는 폭포가 가로 놓여져 있으며 崩奔雜奇麗(붕분잡기려)-바쁘게 무너져 내리면서 여러가지 뛰어나게 아름답다 뒷뜰에서 배롱나무를 보다 宋夫子手植樹 팻말이 꽂혀있다. 남간정사로 흐르는 물의 원천지 남간정사 앞 연못의 이끼가 옛 정취를 돋운다. 계곡에 있는 샘에서 내려오는 물이 건물의 대청밑을 통해 연못으로 흐른다. 옛 사당으로 오르는 문 남간정사 뒤 산기슭에 위치하고 있는 옛 사당으로 오르는 문이다. 우측으로 팔각정이 보인다. 팔각정은 기국정,남간정사의 박물관 사이에 있다. 뒤에는 산을 등지고 있고 앞에는 시냇물이 흐르고 있어 경관이 좋다. 南澗祠,송시열의 사당, 홍살문 우암사적공원 조성기 이곳은 우암 송시열 선생이 강학하시던 곳이다. 선생은 흥농촌에 서재를 세워 능인암이라 하셨고 숙종 9년 능인암 아래에 남간정사를 지었다. 선생은 이곳에서 많은 제자를 길러내는 한편 학문을 대성하였고 효종의 뜻을 받들어 병자호란때 후학들의 귀감이 되었으며 선생이 수명하신 후 후학들이 선생을 우러러 사모하는 뜻에서 종회사를 세우고 주자,우암,수암 삼선생을 배향하였다. 그 후 종회사는 대원군때 훼철되고 1936년 사림과 후손이 남간사를 건립하여 우암 수암 석곡을 배향하고 제향을 받들어왔다. 나라를 되찾은지 반세기... 우리는 선생의 거룩한 정신을 배우며 제 새안민의 도를 닦아야 함을 자각하게 되었다. 따라서 대전시에서는 시민의 마음을 모아 이 유서 깊은 곳에 선생의 높은 뜻을 기리고 후손들에게 우리의 전통문화를 배우고 익히며 그 맥을 이을 수 있는 명소로 보존코자 우암 사적공원 조성계획을 수립 대역사를 착수하였다. 여기에는 7개년에 걸쳐 총 이만여명의 인력이 참여하였고 수많은 중기가 투입되었으며 공사는 오개업체가 맡아 시공하였다. 조성구역은 문화재보호 구역으로 지정된 16,000평으로 그 중 일만여평은 매입하였고 오천여평은 종손 및 유희의 사용승낙을 받아, 운평집에 수록된 내용을 토대로 문화재위원 사계학자 등 각계권위자의 고증과 자문을 받아 유물관전시관 장판각 동을 건립하였고, 소나무 외 24종의 수목 13,000여본을 식재 조경공사를 완료하였다. 이와같은 사업은 1991년 대전시에 의하여 계획 착공되었으며 그 후 1995년 7월 1일 민선자치 시대를 맞이 하면서 본격적으로 추진되어 총 공사비 110억을 투입, 1997년 12월31일 완공하였다. 우암 사적공원이 우리고유의 전통윤리를 바탕으로 대전정신을 창조하는 역사의 참교육장이 되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선생의 도는 천지와 더불어 영원할 것이며 이 사업 역시 선생의 도와 더불어 영원하리라 1998년 무인 4월 16일 이직당(以直堂) 강당으로 '솔직하고 곧아야 한다는 뜻'이 담겨 있다 인함각(忍含閣) '모든 괴로움을 참고 또 참아야 한다'는 뜻으로 선비들의 공부방 명숙각(明淑閣) '모든 일을 명확하게 하고 마음을 밝고 맑게 하라'는 뜻으로 선비들의 공부방 명숙각에서 하룻동안 여정의 발 피로를 풀어주기 위해 신발벗고 마루보다 높은 '누'에서 잠시 쉬어간다. 참 편안하다. 내집같이.. 가는 곳마다 앉은 곳이 내집처럼 느껴짐이다. '누'에서 바라 본 풍경 명숙각 앞 소나무엔 까치 한마리가 올라오는 손님을 마중하고 있었다. 현도문으로.. 우암 사적공원의 가장 높은 곳에 있는 사당인 남간사 사당, 남간사의 내삼문이다. 심결재(審決齋) '매사를 심사숙고하여 결정하라'는 뜻으로 선비들의 공부방 견뢰재(堅牢齋) 우암선생의 마지막 교훈을 받들고 선현의 가르침을 굳게 지키라는 뜻으로 선비들의 공부방 연지와 덕포루풍경 연당지(蓮塘池) 풍경 연지의 연꽃들이 머지않은 날에 만개할 것 같다. 생각만 해도 아름다운 풍경이 연상되어 가슴이 뛴다. 연지와 덕포루.. 연꽃이 만개했을때 덕포루에서 바라 본 풍경은 바로 夢 자체일테지. 우암 송시열의 유물관 우암(尤菴)의 초상화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 (1) 宋時烈 簡札 답하는 편지 생각하는 마음이 주야로 간절한데, 갑자기 인편을 통하여 내려주신 이 편지를 받았습니다. 적료寂廖함은 어쩔 수 없는 형세이지만, 울적한 심사가 없을 수 있다면 괜찮겠습니다. 이곳의 나는 단지 지난날과 같습니다만, 병은 더 더해졌습니다. 서울의 소식은 들를 길이 없고, 다만 갑인년(1674:현종 15) 일에 대해서만 들을 뿐입니다. 무슨 까닭으로 개의 어금니를 두려워하지 않고 거기에 몸을 던지는 것입니까? 나에게 역시 애를 먹이는 바가 없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미 끝난 일은 어찌할 수가 없습니다. 보내주신 침복沈鰒은 대단히 감사합니다. 이만 쓰겠습니다. 을묘년(1675:숙종 1) 5월 8일 춘성春城 유배인流配人 갑인예송 이후 함경도 덕원德源에서 유배생활을 하고 있던 송시열이 보낸 편지 888888888**8888888888**8888888888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 (2) 宋時烈 簡札 경능景能에게 답장하여 올림 그리워하던 중에 여러 인편을 거쳐 보내온 편지를 받고 보니, 마치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는 뜻하여 이 마음이 매우 위로되는구나. 나는 지난달부터 식음을 전폐하였으니, 거의 단식하는 스님에 가깝게 되었다네 또 듣건데, 영남嶺南의 소장蔬章이 올라갔다니, 미록麋鹿과 같은 나의 목숨이 또 거기에 달려 있게 되었다. 평생을 되돌아 보건데, 끝내 무엇을 하였단 말인가.시사時事는 들을 바가 아닌데, 듣자하니 무숙懋叔 어른께서 여러차례 곤욕을 당하셨다니 탄식스럽고 탄식스럽네. 듣건데 군평君平과 윤체원尹體元이 방문할 뜻이 있다 하는데, 만약 갑자기 문 안으로 들어오는 일을 보게 된다면, 참으로 해상에서 안기생安期生을 만나는 격이리라. 경능景能은 근일의 일이 어찌한가. 세월이 아까우니, 모름지기 맏형과 더불어 지조를 지키면서 독서를 하시게. 이것이 붕우로서 바라는 바이네. 이만 줄이겠네 무오년(1678:숙종 4) 4월 18일, 유배된 사람 시열時烈 씀 유배지에서 제자 김만증(金萬增 1635~1720)에게 보낸 편지 목마르게 기다리는 나의 바람에 부응하라 / 以副如渴之望事 1658년(효종 9) 3월 송시열은 효종의 특지特旨로 가선대부嘉善大夫 예조禮曺 참판參判에 제수되었지만 상소하여 이를 사양하였다. 예조참판은 과거 시험을 거치지 않은 음관蔭官이 할 수 있는 벼슬이 아니기 때문에 그의 스승이었던 김집金集도 예전에 예조 참판의 벼슬에 제수되었으나 사양하여 체직된 사례가 있었다. 그러나 효종은 김집의 사례를 후회하고 있으니 빨리 올라오라는 비답을 내릴 뿐이었다. 다시 효종의 부름이 있자 같은 해 6월 송시열은 상경 길에 올랐지만, 청주淸州에 이르러 병으로 지체하며 효종에게는 병을 무릅쓰고 올라가지만 병세가 심해져서 죽게 되는 염려가 생길까 두렵다는 내용의 상소를 올려 처벌하여 줄 것을 청하였다. 이 상소를 받은 효종은 즉시 승지를 불러 본인의 뜻을 전달하였다. 1658년 6월 21일 승정원의 승지는 즉시 청주에 있는 송시열에게 유지有旨를 내려 보내 그를 기다리는 효종의 뜻을 전달하였는데, 그때 작성된 유지가 바로 이 문서이다. 88888888888**88888888888**88888888888 유지 有旨 우부승지右副承旨 김金 며칠전에 예조의 낭관郎官이 돌아와서 이르기를, 경이 이미 상경길에 올랐으나 병으로 인해 도중에서 푹 머무르고 있다고 하였으므로, 내가 놀라기도 하였지만 한편으로는 기쁘기도 하였다. 지금 막 경을 권유하여 올라오도록 할 참이었는데, 보내 온 소장疏章을 지금 읽어보고 비로소 경의 병이 이러함을 알게 되었으니, 수일 내에 만날 일이 기쁜 한편 병이 아직도 시원하게 되복되지 않은 점이 놀라운 것이다. 또 이르기를 '긍휼히 여기는 윤허를 못 받는다면, 참으로 억지로라도 한 목숨을 걸고 잠시나마 여로에 올라 서울로 가야 한다.'고 하였으니, 이는 지극한 정성이 발동한 바이다. 내가 어찌 경으로부터 이러한 정성을 입게 되었는지 나도 모르게 눈물이 마구 쏟아지는데, 이는 바로 비통한 일을 겪은 뒤 마음이 약해져서 그러한 것이다. 바라건대 경은 이러한 나의 심경을 헤아려서 발길을 쉬지 말아라. 그리한다면 비록 한번 걷고 아홉 번 쉰다 하더라도 한나절 날이 있을 터이니, 어찌 물러나 가버리는 사람과 똑같이 비교할 수 있겠는가. 경은 그대로 계속 올라와서 목마르게 기다리는 나의 바람에 부응하라. 오후6시 5분전, 6시가 관람마감시간이라 알려준다. 시간가는 줄도 모르고 전시물에 몰두해 있었다. 유물관을 나온다. 우암사적공원앞 도로옆 건물앞에 피어난 석류꽃을 마지막으로 첫날 하루일정을 마무리하고 하룻밤 둥지틀 유성온천으로 버스와 지하철로 이동 지하철 유성온천역 나와 바로 바라보이는 vip모텔에서 하룻밤둥지 튼다. 안주인은 자랑이다. 청결과 위생을 제일인 숙소라면서..자랑할 만했다. 수질이 좋아 살갗이 보들보들해 졌다. 저녁식사를 숙소앞에서 또 냠, 맛있게 들었다. 대전 도시철도운행 노선도를 참고적으로 게시 이튿날 아침이다. 첫일정이 보문산 공원이다. 중앙로역 3번출구로 나와서 보문산행 버스정류장인 대흥동성당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는 동안 대전에서 제일 유명한 빵집 성심당건물이 길건너 보였다. 전날아침 서울에서 대전역에 도착했을때 속이 출출하여 대전역 구내에 마련된 분점에 사람들이 매입하기 위해 줄을 선 성심당 빵집에 들려 우리도 맛있는 빵을 아침겸 해결했는데 정말 맛있었다. 성심당(聖心堂)의 대표빵은 튀김소보루와 부추빵이다. 6개세트 만원, 우리 5천원주고 3개를 샀다. 802번 버스를 타고 보문산공원입구에 내렸다. 보문산 입구 메타쉐콰이어 숲길이다. *보문산의 유래 보문산은 보물이 묻혀있다하여 '보물산'으로 부르다가 보문산으로 되었다 한다. 옛날 노부모를 모시고 있는 착한 나무꾼 한 사람이 살고 있었다. 그는 효성이 지극하여 그 소문이 이웃 마을까지 퍼졌는데 이 나무꾼에게는 술만 먹고 주정을 부리는 형이 하나 있어 부모와 동생을 몹시 괴롭혔다. 어느 날 나무꾼은 나무를 한 짐 해가지고 내려오는 길에 조그마한 옹달샘 옆에서 쉬게 되었는데 그때 샘 옆에서 물고기 한 마리가 따가운 햇볕을 받으며 죽어가고 있는 것을 발견한 나무꾼은 물고기를 샘물속에 넣어 주었고 물고기는 고맙다는 인사를 하는 듯 사라졌다. 조금 후에 눈을 돌려 보니 물고기가 놓여 있던 곳에 하나의 주머니가 놓여 있었다. 주머니를 집어보니 그곳에 '은혜를 갚는 주머니'라고 적혀 있었다. 신기해서 나무꾼은 집에 돌아와 주머니에 동전 하나를 넣었더니, 순식간에 주머니에 동전이 마구 쏟아지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나무꾼은 큰 부자가 되었다. 이러한 사실을 안 형이 보물주머니를 빼앗을 욕심으로 동생에게 주머니를 한번만 보여달라고 했다. 착한 동생이 주머니를 형에게 보여주자 형은 주머니를 가지고 도망치려고 하나 동생이 알아차리고 형을 쫓아 주머니를 도로 찾으러 옥신각신하는 가운데 주머니가 땅에 떨어지고 말았다. 화가 난 형이 주머니를 발로 짓밟는 통에 그 주머니 안에 흙이 들어갔다. 그러자 주머니에 흙이 걷잡을 수 없이 계속 쏟아져 나와 쌓이고 쌓이게 되었다. 이렇게 쌓인 흙이 드디어 큰산을 이루고 그 산속에 보물주머니가 묻혀 있다 하여 보물산이라 하였고 그 후 "보문산"으로 고쳐 부르게 되었다 한다. 보문산공원 등산 안내도를 보기 위해 도로를 가로지른다. 송학사대웅전 대한불교 조계종 송학사는 고 비구니 慧願堂 寶德 禪師께서 창건하신 사찰이다. 1948년에 창건하시어 올해 2015년은 67년의 역사를 갖게 되었으며, 대웅전은 신도안 기존의 건물을 옮긴 것으로써 100년 가까이 되었다고한다. 우측으로 미륵부처님.. 송학사 대웅전 주련 理事冥然無分別(이사명연무분별)-분별이 없는 어두운 사물을 다스리며 十佛普賢大人境(시불보현대인경)-열부처 넓고 현명한 큰어른의 경지에 이르러 能仁海印三昧中(능인해인삼매중)-능인(부처),해인(부처의 슬기)의 삼매(오묘함)에 빠져 繁出如意不思議(번출여의불사의)-번뇌에서 벗어나서 불사의(신묘함)같이 되소서 노란꽃이 고와서.. 위로 올려다 본 튼실한 메타쉐콰이어의 위풍당당한 모습 꿈이라면/ 만해 한용운 사랑의 속박이 꿈이라면 출세의 해탈도 꿈입니다 웃음과 눈물이 꿈이라면 無心의 광명도 꿈입니다 一切萬法이 꿈이라면 사랑의 꿈에서 불멸을 얻겠습니다 모델을 달리해서 찰칵! 눈처럼 하얗게 소복히 내린 하얀 꽃, 꽃명을 몰라서.. 망향탑 망향탑 입구 옆 벤취에서 나비를 만났다. 날아가지 않고 기어 다니며 여러포즈를 잘 취해 주었다. 그리곤 내 머리위를 한참이나 뱅뱅 돌며 내게 메세지를 전해주는 듯 했다. 생각있는 나비 같았다. 고촉사를 오르는 돌계단에서 만난 꽃이다. 학교법인 건양학원 고촉사(高燭寺) 건양학원 설립자이시며 건양대학교총장이신 김희수씨가 건립하였다. 김희수어머님은 독실한 불교신자이었는데 어머님의 발원으로 지금의 고촉사가 되었다 한다. 노란 금계국 올라 온 길을 되돌아 보니 다시 계단을 오른다. 한창 공사중 어수선이다. 알록달록 아기자기한 예쁜꽃들이 대웅전 앞 뜰을 곱게 수놓았다. 고촉사 대웅전 주련 天上天下無如佛(천상천하무여불) : 하늘위 하늘아래 부처같은 분은 없다 十方世界亦無比(시방세계역무비) : 시방세계 또한 견줄 분이 없다 世間所有我盡見(세간소유아진견) : 세상사이 가지고 있는 것 나는 다 보았으나 一切無有如佛者(일체무유여불자) : 모든 것이 있고 없는 것은 부처님뿐이네 莫謂慈容難得見(막위자용난득견) : 부처님에 이를수 없으니 뵙기도 어렵구나 不離祇園大道場(불리지원대도량) : 기원정사 대도량과 떠날 수도 없다 고촉사 대웅전 오르는 돌계단에 핀 꽃 대적광전(大寂廣殿), 대부분은 大寂光殿이라고 쓴다. 비로사나불(毘盧舍那佛)을 중앙에 모시고 왼쪽에 문수보살(文殊), 오른쪽에 보현보살(普賢) 비로사나부처님은 '진리' 그 자체를 상징하며 법신불이라고 부른다. 즉 "遍一切處, 光明遍照(부처의 광명이 어디에나 두루 비친다는 뜻)" 등으로 번역되며 화엄종의 주존불이시다. 금낭화 떨어진 불두화 꽃잎들 약사여래상 아래부터 복련(伏蓮), 앙련(仰蓮)의 대좌위에 앉으셔서 오른손은 시무외인(施無畏印 :부처가 중생의 모든 두려움을 없애고 위안을 준다는 뜻)의 수인(手印)을 하고, 왼손에는 약탕 혹은 약봉지를 들고 계신다. 고촉사관람을 모두 마치고 하산길이다. 고촉사 사찰을 내래오다 만난 하얀꽃창포 귀하게 핀 한송이다. 노란꽃창포는 많이 피어 있었지만, 하얀 꽃창포는 처음 보았다. 요선정(樂仙井 : 신선들이 즐겨 마시던 약수) 요선정에서 약수를 마시면서 이 곳 고촉사에서 만난 도반님과 함께 그 분의 승용차를 이용하여 마지막여정인 뿌리공원과 효문화 마을까지 가는 시내버스 정류장까지 친절하게 도움을 받았다. 덕분에 313번 버스를 타고 다음 일정인 효문화마을에 수월하게 도착할 수 있었다. 여정길에서 만난 道伴님에게 이 자리를 빌려 감사를 전합니다. 보문산 공원으로 2편을 마치고 3편은 효문화마을부터 이야기는 전개되겠습니다. 길따라 풍경찾아 '부부행복 旅行' 사진ㆍ글: 권진순ㆍ김영희(찬란한 빛)
추천0

댓글목록

Total 722건 6 페이지
여행정보/여행기 목록
번호 제목 글쓴이 조회 추천 날짜
472 찬란한빛e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635 1 10-19
471 찬란한빛e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565 1 10-19
470 찬란한빛e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627 1 10-16
469 찬란한빛e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659 1 10-15
468 찬란한빛e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681 1 09-27
467 찬란한빛e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647 1 09-24
466 찬란한빛e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567 1 09-14
465 찬란한빛e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617 1 09-03
464 찬란한빛e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648 1 09-02
463 찬란한빛e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815 1 09-02
462 찬란한빛e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615 1 08-29
461 찬란한빛e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661 0 08-29
460 찬란한빛e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623 1 08-24
459 찬란한빛e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618 1 08-24
458 찬란한빛e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969 1 08-14
457 찬란한빛e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709 1 08-11
456 찬란한빛e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673 1 08-11
455 찬란한빛e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725 1 08-05
454 찬란한빛e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815 1 08-02
453 찬란한빛e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622 1 07-09
452 찬란한빛e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634 1 07-01
451 찬란한빛e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643 1 06-26
450 찬란한빛e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603 1 06-24
449 찬란한빛e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672 0 06-23
448 찬란한빛e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743 0 06-14
447 찬란한빛e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602 1 06-09
446 찬란한빛e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662 0 06-04
445 찬란한빛e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633 1 05-29
444 찬란한빛e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738 0 05-27
443 찬란한빛e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581 0 05-25
442 찬란한빛e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596 0 05-13
441 찬란한빛e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650 0 04-28
440 찬란한빛e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674 1 04-21
439 찬란한빛e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628 0 04-21
438 찬란한빛e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729 0 04-15
437 찬란한빛e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643 1 04-10
436 찬란한빛e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660 0 03-17
435 찬란한빛e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708 0 03-13
434 찬란한빛e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887 1 03-07
433 찬란한빛e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066 1 03-05
432 찬란한빛e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705 0 02-26
431 찬란한빛e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868 1 02-18
430 찬란한빛e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106 1 02-17
429 찬란한빛e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887 1 02-11
428 찬란한빛e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928 0 01-29
427 찬란한빛e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951 1 01-18
426 찬란한빛e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173 1 01-08
425 찬란한빛e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183 1 01-02
424 찬란한빛e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809 0 12-18
423 찬란한빛e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093 1 12-13
게시물 검색

  • 시와 그리움이 있는 마을
  • (07328) 서울시 영등포구 여의나루로 60 여의도우체국 사서함 645호
  • 관리자이메일 feelpoem@gmail.com
Copyright by FEELPOEM 2001.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