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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가을날에떠난 남도천리 전남기행1..소쇄원ㆍ가사문학관ㆍ식영정ㆍ서하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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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찬란한빛e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2건 조회 2,729회 작성일 16-02-28 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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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양 식영정 바로 곁 서하당棲霞堂에서..2015.9.1.화. 둘이서
eclin作 '가을의 노래' 초가을날에 떠난 남도천리 전남기행에서 2015.9.1.화-9.2.수(1박2일) 초가을날에 떠난 남도천리 전남기행..담양,남원 소쇄원▶한국가사문학관▶식영정▶서하당▶송강정▶면앙정▶죽녹원 ▶메타세콰이어길▶남원 광한루▶운봉의 황산대첩비▶산내의 백장암▶실상사 2015년 9월1일부터 9월2일까지 모처럼 집안 일이 잘 정리되고 한가한 기분으로 떠난 남도천리, 가사문학의 성지인 전남 담양의 소쇄원, 한국가사문학관, 식영정,서하당, 송강정, 면앙정, 죽녹원, 메타세콰이아길을 찾아서 하루를 보내고 다음날 남원의 광한루, 운봉의 황산대첩비, 산내의 백장암, 실상사를 역사탐방하고 돌아왔습니다. 그간 묵혀 두었다가 이제서야 펼치게 되었습니다. 지금 계절과 어울리진 않지만 지난 가을이야기속으로 안내합니다. 1편 담양 소쇄원과 가사문학관, 그리고 식영정과 서하당 담양(潭陽)의 역사 전라남도의 북단에 자리한 담양은 호남 평야의 젖줄인 영산강의 시원지이다. 군의 모양은 남북이 긴 형세인데 남쪽은 평지형, 북쪽은 산악지역이다. 동쪽으로는 곡성군, 서쪽은 장성군, 남쪽은 광주광역시 및 화순군, 북쪽은 전라북도 순창군과 경계를 이루고 있다. 이곳은 구석기 시대나 신석기 시대의 유적이 뱔견되지 않지만 청동기 시대의 고인돌 등이 있는 사실로 미루어 마한 소국이 자리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백제 시대의 담양을 보면 근초고왕이 전남 지방을 아우를 당시 지금의 담양읍과 무정면 일대에 추자혜군, 금정면 일대에 울지현, 창평 지역과 고서면 일대에 굴지현이 있었다. 통일신라 시대에는 경덕왕 대에 추자혜군이 추성군으로 바뀌어 그 아래 지금의 금성면 일대인 율원현(율지현)과 곡성군 옥과면인 과지현을 두었으며, 굴지현(군지현)은 기양현으로 바꾸어 관할하에 두었다. 고려시대에는 태조 당시 기양현이 창평현으로, 율원현은 원율현으로 바뀌어 추성군. 창평현. 원율현이 함께 무주의 관할에 들었다. 그후 현종 9년(1018)에 추성군이 담양군으로 바뀌면서 담양이란 이름이 첫선을 보이는데 담양군은 나주목의 다섯 개 속군 중의 하나요, 원율현과 창평현은 나주목의 열 한 개 속현의 하나가 되었다. 고려 후기 공양왕 3년(1391)에 담양의 감무가 원율현을 겸하여 다스리게 함으로써 담양 지역에는 창평현과 담양군만이 존속하게 되었다. 조선시대에는 지리적 위치상 군사적 중요성이 크게 강조되는 등 여러 이유로 태종 13년(1413)에 군에서 부로 승격되어 담양도호부가 되었는데 얼마 후 현으로 강등되기도 하였으나 영조 47(1771)에 다시 복구되었다. 창평현은 성종5년(1474)에 현이 없어지면서 광주에 예속되기도 하였으나 다시 복구되어 한말까지 존속되었다. 근대에 접어들어 담양은 지방 관제의 대폭적인 개혁의 영향을 받았는데 담양과 창평은 남원부 산하 20개 군에 소속되었다. 그후 부제가 없어지고 13도 제가 시행되어 담양군과 창평군은 전라남도의 관할에 들었다. 1914년 일제에 의해 창평군은 인근 지역인 곡성과 장성, 그리고 담양 등으로 분할 소속되더니 계속된 개편으로 담양. 장성. 곡성. 광주간에는 읍면의 통폐합이 있었다. 1943년 담양면이 담양읍으로 승격됨으로써 담양군은 고서면. 금성면. 남면. 대덕면. 대전면. 무정면. 봉산면. 수북면. 월산면. 용면. 창평면 등 11개면 1읍의 현재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1955년과 1957년. 1983년에 약간의 개편이 있었으나 큰 골격은 변하지 않고 오늘에 이르러 2018년에는 군의 일천회 생일을 맞게 된다. 소쇄원 제월당과 광풍각(瀟灑園 霽月堂 光風閣)의 가을 풍경사진 소쇄(瀟灑)란 말은 '맑고 깨끗하다'라는 뜻인데 중국 제나라의 문인 공치규孔稚圭(447~501)가 쓴 '北山移文'에서, 여기에 瀟灑出塵之想(맑고도 깨끗하며 세속을 뛰어 넘는 고결한 생각)이란 말이 나온다. 여기서 따온 말이다 소쇄원 입구 시원한 대숲으로 지나던 중 잠시 뒤돌아서서 찰칵! 바람이 한차례 지나가더니 쏴아~ 댓바람소리를 남긴다. 대나무 반쪽을 쪼개어 홈통을 만들어 연지(蓮池)에 물을 받고 있다 五曲門밑으로 계곡물을 나무홈통으로 끌어들여 대봉대아래에서 연지로 들어가는 자연친화적인 관개수로 대봉대에서 봉황(훌륭한 사람)의 출현을 기다리는 대이다. 닭 벼슬같이 생긴 어릴적 많이 본 맨드라미꽃을 오랫만에 만나니 반가웠다. 애양단(愛陽壇) 담장밑으로 물이 흐르게 水路를 열었다 소쇄처사양공지려 : 소쇄처사 양산보공의 집 오곡문 : 우암 송시열의 글씨 제월당霽月堂 앞에서 霽月堂 -방과 마루가 있는데 양산보(1503~1557)가 거처하던 곳 제월당 글씨는 우암 송시열 글씨의 서각임 제월당과 광풍각은 광풍제월에서 따온 이름이다. 광풍제월은 중국 송나라 때 명필 황정견(黃庭堅 :1045~1105)이 성리학자 주돈이(周敦頤 :1017~1073)의 인물됨을 '胸懷灑落 如光風霽月' 이라는 문구에서 나온 말이다. '胸懷灑落 如光風霽月'이란 가슴의 품은 뜻의 맑고 맑음이 마치 비가 갠뒤 해가 뜨면서 불어오는 청량한 바람과 같고 비 개인 하늘의 상쾌한 달빛과도 같다. 벽에는 도연명의 귀거래사,소치 허련의 난초그림,천정에는 고산자 김정호의 대동여지도도 보인다. 하서 김인후의 '소쇄원48영'현판도 보인다 처사 양산보선생님은 정암 조광조밑에서 수학하였으나 기묘사화로 스승 조광조의 사사이후 속세를 떠나 이곳 소쇄원에 머물며 도연명의 귀거래사를 읊으며 살았다 - 자, 돌아가자, 歸去來兮 전원이 황폐해지려 하는데 어찌 돌아가지 않겠는가. 이미 내가 잘못하여 스스로 벼슬살이를 하였고 정신을 육신의 노예로 괴롭혔거늘 어찌 혼자 한탄하고 슬퍼만 하겠는가? 이미 지난 일은 탓해야 소용없음을 깨달았다. 앞으로 바른 길을 쫓는 것이 옳다는 것을 알았노라.- (중략) 河西 金厚之(金麟厚,1510~1560)의 소쇄원 四十八詠 -양언진(양산보)의 수풀 정자를 방문하여- 제월당에 오르기위해 벗어놓은 신발 뒤축 끝에 호랑나비가 반갑다고 잘 오셨다고 살짝 앉으며 반긴다. 자연의 사랑도 받으며 다니는 여행길이다. 제월당 아궁이에는 불땐 그을음 흔적이 벽으로 꺼멓게 나 있고, 마루에는 쉬어가는 사람들의 정겨운 모습이 자연친화적인 풍경으로 아름답다. 광풍각으로 광풍각光風閣 광풍각은 사랑방 격으로 소쇄원의 풍광을 마음껏 누릴 수 있는 중심공간이다. 정면 3칸, 측면 3칸의 팔작지붕 집인데 가운데 한 칸에 방을 들였고 빙 둘러가며 마루를 깔았다. 불을 넣는 아궁이가 뒤편에 있어서 그곳 마루가 다른 것보다 한 단 높게 달려 있는 점이 색달라 보인다. 광풍각의 측면 광풍각 앞 계곡에서 만난 물결무늬다. 이 숲에 바람도 찾아와 우리에게 고운 물결로 반긴다. 귀여운 다람쥐도 만나고 눈이 마주치며 반갑다 인사도 건넨다. 지도 아래 오른쪽으로 현위치,소쇄원,한국가사문학관, 그리고 우리가 갈곳인 식영정도 보이고, 위쪽 좌측에서 면앙정도 보인다. 메타세콰이어 길은 오른쪽 맨 끝에 위치해 있다. 한국가사문학관 가사문학관 정문으로 들어가서 잘 꾸며진 뜰의 풍경들을 만난다. '소 등을 타고 피리 부는 소년상' 김인후의 소쇄원 48영 중 제8영 舂雲水碓(용운수대) 구름 위로 절구질하는 물방아 永日潺湲力(영일잔원력) : 온종일 좔좔 흐르는 물의 힘으로 舂來自見功(용래자견공) : 찧고 찧어서 절로 공을 이루네 天孫機上錦(천손기상금) : 천손(직녀)이 베틀 위에 비단을 짜듯 舒卷擣聲中(서권도성중) : 방아 찧는 가운데 책을 걷으락 펴락 S자로 꾸며진 길이 주렁주렁 매딜린 표주박으로 풍요와 사랑과 다정함이다. 뜰을 다 둘러보고 전시실로 회방연도回榜宴圖 금봉 박행보 그림 면앙전 송순이 1579년 87세로 과거 급제 60돌을 맞이하자, 백호 임제 등의 제자들이 회방연을 베풀고 스승을 가마에 태워 즐겁게 해드린 미담을 그림으로 형상화한 작품 담양에서 지어진 가사 18편 면앙정가ㆍ성산별곡ㆍ관동별곡ㆍ사미인곡 속미인곡ㆍ축산별곡ㆍ향음주례가ㆍ낙지가 사미인곡ㆍ백발가ㆍ원유가ㆍ초당춘수곡 사친곡ㆍ효자가ㆍ석촌별곡ㆍ경술가ㆍ충효가 민농가 등을 새롭게 제작한 것 歌辭文學의 개관 가사는 時調와 더불어 한국 고시가의 대표적 장르이다. 그 형식은 거의 대부분 1음보 4음량에 1행 4음보라는 기본 율격을 지니며, 종래 가창.음영.율독의 형태로 향유되었다. 발생 시기에 대해서는 이견이 없지는 않으나 대체로 고려말이나 조선초에 비롯되었을 것으로 보고 있으며, 특히 懶翁和尙나옹화상이 지었다는 西往歌와 丁克仁의 賞春曲이 그 발생 시기를 가늠하는 초기의 작품으로 주목을 끌고 있다. 정극인의 상춘곡 이후 가사는 조선시대 사대부층에 의해 폭 넓게 향유되면서 사대부 시가문학의 중심으로 자리를 잡았는데, 그들의 강호 자연 생활을 비롯하여 명승지의 유람. 유배의 체험. 유교적 이념의 설파 등을 주요 내용으로 삼았다. 宋純과 鄭澈은 바로 이러한 시기에 면앙정가.성산별곡.관동별곡.사미인곡. 속미인곡을 통해 사대부가사의 절정을 구가한 작가이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겪으면서 일기 시작한 조선 후기 사회의 변화는 가사문학에도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이전에는 사대부 위주였던 그 향유 계층이 서민과 여성층으로 확대되면서 서민가사와 여성가사가 새롭게 성행하였으며, 작품의 내용도 전쟁.기행.역사.산업.애정.현실.비판 등으로 다양화되었다. 이에 따라 점차 작품의 형태가 길어지고 산문화되는 현상이 나타나게 되었으며, 전반적으로 음악적 요소가 희석되면서 가창보다는 음영이나 율독으로 향유 방식이 바뀌어져 갔다. 재화기를 지나면서 가사는 또 한 차례의 변화를 체험하였다. 외세의 진출이라는 특수한 상황 아래에서 종교가사. 개화가사. 의병가사 등이 등장하였고, 이에 따라 지난날의 봉건적 가치관을 부정하고 개화와 자주 독립을 부르짖는 목소리가 주요한 내용으로 떠올랐다. 또 형식면에 있어서는 독립신문이나 대한매일신보와 같은 언론매체의 활용으로 작품이 분련화되고 후렴이나 반복구가 사용되었으니, 이러한 과정을 거처 가사는 본래의 모습을 버리고 창가로 이행되는 길을 걷게 되었다. 면앙정 담양군 봉산면 제월리에 위치한 면앙정(지방기념물 제6호)의 현판 명아주 지팡이 俛仰亭 송순(宋純)이 지은 俛仰亭三言歌 면앙정삼언가 중에 나오는 명아주 지팡이 *유래 본초강목에 명아주지팡이를 짚고 다니면 중풍에 걸리지 않는다는 기록이 있어 장수를 상징하여 통일신라시대부터 사용 제2전시실 추월취벽(秋月翠壁):추월산의 푸른절벽 제봉 고경명의 면앙정삼십영을 그린 그림 금봉 박형보 作 관동별곡關東別曲 작자:송강松江 정철鄭澈(1536~1593) 내용 금강산을 비롯한 관동 지역의 산수를 두루 돌아보며 느낀 감흥과 포부를 엮은 기행가사이다. 정철의 가사중 가장 긴 작품이다. 필사:국민대학교 교수 이상보 박사 식영정의 이름이 세상에 널리 알려지게 한 글은 송강 정철이 지은 '성산별곡'이다. 식영정 앞산인 별뫼, 성산을 노래한 이 가사의 첫머리는 식영정 주인 김성원을 부르는 것으로 시작된다. 어떤 지나가는 나그네가 성산에 머물면서 서하당 식영정 주인아 내 말을 들어 보소 인생살이 좋은 일 많건마는 어찌 한 강산을 갈수록 낫게 여겨 적막한 산중에 들어가고 아니 나오시는가 솔뿌리를 다시 쓸고 대나무 침상에 자리를 보아 잠시 올라 앉아 어던가 하고 다시 보니 하늘가에 떠 있는 구름이 상서로운 돌을 집 삼아 나가는듯 들어가는 모습이 주인과 어떠한가 시내의 흰 물결이 정자 앞에 둘러 있으니 한르의 은하수를 누가 베어 내어 있는 듯 펼쳐놓은 듯 야단스럽기도 야단스럽구나 산 속에 달력이 없어서 사계절을 모르더니 눈 아래 펼쳐진 경치가 철을 따라 절로 생겨나니 듣고 보는 것이 모두 신선이 사는 세상이로다. 상암대기床巖對棋(평상바위위에서 바둑을 두며) 평상바위 조금은 넓고 평평하여 石岸稍寬平(석안초관평) 죽림에서 지냄이 거지반이라네 竹林居一半(죽림거일반) 손님이 와서 마둑 한판 두는데 賓來一局碁(빈래일국기) 공중에선 우박이 흩어져 내려 亂雹空中散(난박공중산) 김인후의 소쇄원사십팔영 중의 하나 하서전집 소재 면앙정가면俛仰亭歌 작자:면앙정俛仰亭 송순宋純(1493~1582) 내용 무등산의 동쪽 산맥 끝에 자리한 제월봉의 벼랑에 세워진 호남 제일의 누정인 면앙정에서 봄ㆍ여름ㆍ가을ㆍ겨울의 아름다운 사계절의 풍광을 읊은 강호가사이다. 총 145구로 구성되어 있다. 필사:충남대학교 교수 조정업 박사 침계문방도 소쇄원 48영 중의 하나인 침계문방을 그린 그림으로 오곡문ㆍ소쇄정ㆍ광풍각이 보인다. 석성 김형수 그림 제3전시실 가사문학관 관람을 마치고 식영정으로 담양 식영정 일원(潭陽 息影亭 一圓, 명승 제57호)은 조선 명종 때 서하당(棲霞堂) 김성원(金成遠, 1525~1597)이 그의 스승이자 장인 석천(石川) 임억령(林億齡, 1496~1568)을 위해 지은 정자로, 이곳에서 송강(松江) 정철이 성산별곡, 식영정 20영 등 한시와 가사 및 단가 등을 남겨 송강 문학의 산실이 되었고, 우리나라 고전문학 발전의 기틀을 마련한 곳으로 역사·문화적 가치가 있는 곳이다. 정자는 정면 2칸, 측면 2칸의 단층 팔작집(건물의 네 귀퉁이에 모두 추녀를 달아 만든 집)으로 온돌방과 대청이 절반씩 찾이 하고 있다. 정자 안에는 이 현판을 포함해 많은 문인들의 시구들이 걸려 있다. 식영정에서 내려와 왼편 안쪽으로 보이는 부용당은 1972년에 지어진 것이고, 서하당 김성원(棲霞堂 金成遠 1525-1597)이 식영정 바로 곁에 본인의 호를 따서 서하당(棲霞堂)이란 정자를 지었다고 하며 최근 복원하였다. 경내에는 서하당과 석천을 주향으로 오셨던 성산사(星山祠)가 있었는데 그간 없어진 것을 최근 복원하였다. 석천(石川)은 이곳에서 식영정 20영을 지었는데 김성원(金成遠), 제봉 고경명(齊峰 高敬命 1533-1592) 송강 정철(松江 鄭澈 1536-1593) 등의 제자들이 차운하였으며, 이들 네 명을 식영정사선(息影亭四仙) 이라 불렀다. 이런 이유로 식영정을 사선정(四仙亭)이라 달리 부르기도 한다. 정철은 이곳 승경을 무대로 성산별곡(星山別曲)을 비롯한 많은 시가를 지어 송강문학의 산실이라 할 수 있다. 식영정(息影亭)이란 ‘그림자가 쉬고 있는 정자’라는 뜻이다. 그가 쓴「식영정기」에는 이런 내용이 있다. “(장자에 나온, 자기 그림자를 두려워하여 도망치는 사람 이야기를 말하고 나서) 그림자는 언제나 본형을 따라다니게 마련이다.······이와 마찬가지로 사람도 자연법칙의 인과응보의 원리에서 벗어나지 않는 것이다.······그러는 처지에 기뻐할 것이 무엇이 있으며 슬퍼하고 성내고 할 것이 무엇이 있겠는가.······내가 이 외진 두메로 들어온 것은 꼭 한갓 그림자를 없애려고만 한 것이 아니다. 시원하게 바람을 타고, 조화옹(造化翁)과 함께 어울리어 끝없는 거친 들에서 노니는 것이다.······ 그러니 식영(息影)이라고 이름짓는 것이 좋지 아니하냐.” ‘그림자는 내버려두고 그 이전의 경지에서 조화옹(造化翁)과 더불어 노닌다’는 이 유래를 알고 보면, 식영정이라는 이름은 그저 서정적일 뿐만 아니라 엄청나게 호방하고 무애(無碍)한 경지를 가리키는 이름임을 알 수 있다. 식영정(息影亭)은 주변 무등산과 광주호 등이 있어 자연환경과 조화미가 뛰어나고 주변의 소나무 고목과 송림, 배롱나무 등이 있어 아름다운 경승지이다. (자료출처: 문화재청, 네이버 지식백과 문화유산정보) * 문화재 소재지: 전남 담양군 남면 가사문학로 859, 등 (지곡리) * donga.com Jounalog: http://blog.donga.com/yil2078/archives/24372 어떤 지날 손이 성산에 머물면서 서하당 식영정 주인아 내 말 듣소 인간 세상에 좋은 일 많건마는 어찌 한 강산을 그처럼 낫게 여겨 적막산중에 들고 아니 나시는고 송강(松江) 정철(鄭澈, 1536~1593)은 식영정(息影亭)과 서하당(棲霞堂)이 있는 별뫼(星山) 주변의 아름다운 경치와 밤하늘에 떠 있는 별을 보며 이렇게 노래했다. 식영정은 담양의 창계천가 언덕 위에 지어진 정자로 조선 중기 호남가단의 한 맥을 이루는 식영정가단의 중심이 되었던 장소였다. 정철은 이곳에서 가사와 단가, 한시 작품을 많이 남겼다. 〈성산별곡(星山別曲)〉은 정철이 김성원을 흠모하여 지은 가사로 국문학사에 길이 남는 빼어난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이처럼 식영정은 송강문학의 산실로 우리나라 고전문학의 기틀이 마련된 곳이기도 하다. 창계천 주변에는 식영정을 비롯하여 서하당, 부용당, 환벽당, 취가정 등 많은 정자가 있고, 이웃에는 별서정원으로 유명한 소쇄원이 자리하고 있다. 식영정은 1560년(명종 15) 서하당 김성원(金成遠)이 자신의 스승이자 장인이었던 석천(石川) 임억령(林億齡)을 위해 지은 정자다. 김성원이 쓴 시문집 《서하당유고(棲霞堂遺稿)》에는 “공이 36세 되던 해인 1560년, 창평의 성산에 식영정과 서하당을 지었다(庚申公三十六歲 築棲霞堂于昌平之星山)”고 기록되어 있다. 식영정은 정면 2칸, 측면 3칸의 팔작지붕 정자로 우뚝 솟아 있는 노송과 한여름 붉은 꽃의 무리로 온통 뒤덮인 배롱나무가 함께 어울려 아름다운 조화를 이룬다. 출처:다음백과 식영정은 1972년 전라남도 기념물 제1호로 지정되었으며, 2009년 9월 국가지정 명승(名勝)으로 승격 지정되었다. 식영정(息影亭)은 전라남도 담양군 남면 지곡리에 있는 정자이다. 원래 16세기 중반 서하당 김성원이 스승이자 장인인 석천 임억령(林億齡)을 위해 지은 정자이다. 식영정이라는 이름은 임억령이 지었는데 '그림자가 쉬고 있는 정자' 혹은 '그림자도 쉬어 간다는 정자'라는 뜻이다. <서하당유고> 행장에 따르면, 김성원이 36세 되던 해인 1560년(명종 15)에 식영정과 서하당을 지었음을 알 수 있다. 김성원은 정철의 처외재당숙으로 정철보다 11년이나 연상이었으나, 정철이 이곳 성산에 와 있을 때 환벽당에서 같이 공부하던 동문이다. 식영정 건너편에 있는 환벽당은 어린 시절 정철의 운명을 바꾸어 놓게 한 사촌 김윤제(金允悌,1501~1572)가 기거했던 곳이다. 당시 사람들은 임억령, 김성원, 고경명(高敬命), 정철 네 사람을 '식영정 사선(四仙)'이라 불렀는데, 이들이 성산의 경치 좋은 20곳을 택하여 20수씩 모두 80수의 식영정이십영(息影亭二十詠)을 지은 것은 유명한 이야기이다. 이 식영정이십영은 후에 정철의 <성산별곡>의 밑바탕이 되었다. 정자의 규모는 정면 2칸, 측면 2칸이고 단층 팔작지붕이며, 온돌방과 대청이 절반씩 차지한다. 식영정 주변에는 정철이 김성원과 함께 노닐던 자미탄(紫薇灘), 노자암, 견로암, 방초주(芳草州), 조대(釣臺), 서석대(瑞石臺) 등 경치가 뛰어난 곳이 여러 곳 있었으나 지금은 광주호의 준공으로 거의 물속에 잠겨버렸다. 현재 판소리를 연주하는 부용당(왼쪽)과 김성원의 서하당(오른쪽) 식영정이라는 이름은 《장자》의 〈제물편〉에 등장하는 ‘자신의 그림자가 두려워 도망치다 죽은 바보’ 이야기에서 유래되었다. 그림자를 두려워하는 바보가 있었다. 그는 그림자에서 벗어나려고 끝없이 달아났다. 그러나 제아무리 빨리 달려도 그림자는 끝까지 그를 쫓아왔다. 더욱더 빠르게 달려도 절대로 그림자를 벗어날 수 없었다. 결국 그는 그림자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힘이 다해 그만 쓰러져 죽고 말았다. 여기서 그림자는 인간의 욕망을 의미한다. 누구나 욕심으로 가득 찬 세속을 벗어나지 않고는 이를 떨쳐버릴 수 없다는 것이다. 옛날 선인들은 세속을 떠나 있는 곳, 그림자도 쉬는 그곳을 ‘식영세계’라 불렀다. 식영정은 바로 이러한 식영세계를 상징하는 곳이다. 식영정의 주인이었던 임억령은 관직에서 물러난 뒤 노후를 이곳에서 유유자적하며 자연을 벗 삼아 생활했다. 그는 세상의 부귀영화를 초개와 같이 여기고 산림에 묻혀 산 선비로 진퇴를 분명히 한 올곧은 지식인이었다. 그는 호남의 사종(詞宗)으로 불리는데 사종이란 시문에 뛰어난 대가라는 의미다. 해남의 석천동에서 다섯 형제 중 삼남으로 태어난 그는 14세 때 엄한 어머니의 뜻에 따라 청백리로 불렸던 조선 사람의 정통인 박상의 제자가 되었다. 임억령은 30세가 되던 해 과거에 급제하여 관직에 나갔다. 그가 금산군수로 재직할 당시 을사사화(1545)가 일어났는데, 그의 동생 임백령이 사화에 연루된 것을 알고 벼슬을 내놓고 향리에 은거했다. 그는 명종조에 다시 벼슬에 나아가 담양부사를 끝으로 은퇴한 후 이곳 식영정에서 은일했다. 식영정에는 당대를 풍미한 시인묵객이 드나들었는데, 그들은 이곳의 아름다운 경치에 취해 시를 짓고 노래를 했다. 이때 식영정을 다닌 인물로는 면앙정 송순, 사촌 김윤제, 하서 김인후, 고봉 기대승, 소쇄공 양산보, 서하당 김성원, 송강 정철, 제봉 고경명, 옥봉 백광훈 등이었다. 이들이 바로 식영정가단을 형성한 인사들이다. 특히 석천과 서하당, 송강, 제봉을 일컬어 ‘식영정 사선(四仙)’ 또는 ‘성산 사선’이라고 칭했다. 식영정 사선을 강조하는 의미에서 식영정을 ‘사선정’이라는 별칭으로 부르기도 했다. 이들 식영정 사선은 식영정과 환벽당을 오가면서 각 20수씩 총 80수의 〈식영정 20영〉을 지어 이곳의 아름다운 풍광을 노래했다. 성산은 식영정의 뒷산인 별뫼를 말한다. 광주호가 만들어지면서 현재는 지형이 변형되었지만 과거에는 식영정 앞 창계천을 따라 경치가 뛰어난 장소가 많았다. 자미탄, 견로암, 방초주, 부용당, 서석대 등 식영정 주변의 아름다움을 노래한 시가 곧 〈식영정 20영〉이다. 식영정을 지은 김성원은 정철과 함께 김윤제의 문하에서 동문수학한 사이로 유년에 창계천 건너 작은 동산 위에 지어진 환벽당(環碧堂)에서 함께 공부했다. 정철이 지은 〈성산별곡〉은 성산의 사계절을 아름답게 표현한 시가로 가사문학의 정수로 꼽힌다. 가사(歌辭)는 고려 말에서 조선 초에 걸쳐 생겨난 우리 문학의 한 형식으로 시조와 함께 양반, 평민, 부녀자 등 다양한 계층에서 부른 노래를 일컫는다. 시가와 산문의 중간 형식인 가사문학은 담양 지방의 정자원림, 특히 이곳 식영정을 중심으로 크게 발전했다. *출처: 다음백과 星山祠(성산사) 석천 임억령과 서하당 김성원을 모신 사당 부용당芙容堂 분홍꽃에 앉아 꿀 빠는 까만 점박이 노랑나비가 아가처럼 사랑스럽다. 마치 분홍꽃이 나비어미처럼이다. 棲霞堂 서하당 김성원(棲霞堂 金成遠 1525~1597)이 식영정 바로 곁에 본인의 호를 따서 서하당(棲霞堂)이란 정 자를 지었다고 하며 최근 복원하였다. 棲霞堂八詠 主人 제1영 松窓(송창 : 소나무가 비친 창) 最愛蒼髥叟 長身俯松窓 風來聽天籟 濤起殷秋江 푸른 솔이 가장 사랑스러운데 장송(長松)이 북쪽 창(窓)에 굽어 보이네. 바람이 불면 송풍(松風)이 들리고 물결이 일면 추강(秋江)이 출렁이네. 제2영 月戶(월호 : 달집) 桂子低堪摘 姮娥喚欲應 仙蹤來幾許 俗跡到何曾 계수나무 열매를 딸만큼 나무가 낮으니 항아를 부르면 금방 대답할 듯하여라 신선의 족적도 찾아 오기 어려운데 속인들의 발자취가 어찌 이르겠는가 제3영 琴軒(금헌 : 거문고 집) 良宵撫古琴 松月是知音 長嘯悄終曲 雲林深復深 달 밝은 밤에 거문고를 타고 나니 소나무에 걸친 달이 음율을 아네. 큰 소리 내며 한 곡조 읊고 나니 구름 자욱한 산속 깊고 또 깊다. 제4영 書架(서가 : 책꽂이) 室中無長物 架上有殘篇 卷裏對聖賢 嚴師長在前 방 가운데 큰 물건이 없고 책꽂이 위에는 잔편이 있구나 책속에서 성현과 마주하니 엄한 스승님 오랜 동안 앞에 계시네 제5영 藥圃(약포 : 약초를 심는 밭) 辛苦十年疾 栽培一畝餘 自能知對病 何必對方書 십년 묵은 고질 않고 오다가 한 뙤기 남짓 약초를 심었다오. 스스로 병 고칠줄 알았으련만 어찌하여 방서(方書 양방문 책)만을 대해 왔는고 제6영 蓮沼(연소 : 연꽃이 있는 못) 丁寧茂叔說 千載口徒喧 欲得無窮意 空山獨閉門 정녕 주무숙(주돈이)의 애련설을 천년 동안 입으로만 떠들어 왔네. 그 한없는 뜻을 알고자 하여 쓸쓸히 공산에서 홀로 문을 닫네. 제7영 假山(가산: 석가산) 片石當階立 層巒翠幾重 深思夢爲鶴 飛入訪仙翁 조각돌이 층층히 세워 있고 묏부리엔 신기운이 몇 겹이네. 깊이 든 꿈 속에 학이되어 날아서 선옹을 찾아 가 보리. 제8영 石井(석정 : 돌 우물) 山下有源泉 分流開小井 淸明徹玉壺 作我照心鏡 근원이 깊은 물 산 밑에 내려 갈라져 흘러 샘이 되었네. 옥병같은 우물에 가득찬 물 마음을 비춰주는 거울이라네. 점심식사는 수려재에서 담양맛집 수려재는 전라남도 담양군 남면 학선리 88번지에 위치해 있다. 예약문의는 전화(061-382-1203)를 통해 가능하다. 퓨전한정식으로 종류에 따라 1인 1만4000원부터 2만2000원까지 주요 메뉴로는 국내산 돼지떡갈비가 나오는 수려재정식과 매운수려재정식, 국내산 오리떡갈비가 나오는 참살이정식, 한우떡갈비를 맛볼 수 있는 수라상정식, 효소돼지갈비정식이 대표적이다. 상차림이 훌륭했다. 맛도 있어 그림을 보면서 입맛 다시게 된다. 식객들로 붐빌 수 밖에 없다. 식사를 마치고 드넓은 앞뜰에 시설된 분수에서 잠시 쉬어가며 다음일정은 전라남도 담양군 고서면 원강리에 있는 조선 후기의 누정인 송강정이다. 정철이 동인(東人)들의 압박에 못이겨 대사헌의 자리를 그만두고 하향하여 초막을 짓고 살던 곳이라고 한다. 도로명:담양군 고서면 송강정로 232 사진및편집:찬란한 빛 김영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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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란한은빛소녀님의 댓글의 댓글

profile_image 찬란한은빛소녀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이처럼 함께하는 시간이 고맙고 행복합니다.
열심히 사진담아 공들여 올리는 이유중 하나입니다.
늘 고맙습니다. 함동진시인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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